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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내용 연구

토지(마을사람들에게 보존되어야 할 삶의 원형으로 제시되고 있으며, 농민들의 삶의 터전이며, 최 참판댁과 소작의 관계를 이어주어 신분과 질서의 기준이 되며, 토지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며, 또한 토지의 상실은 국권의 상실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제 1 편 어둠의 발소리 (앞으로 전개될 사건을 암시하는 말로 몰락, 우울한 분위기를 상징)

서(序)

1897년의 한가위.(작품의 시대적, 계절적 배경 제시. 한가위는 농경 사회에서는 큰 축제이지만 여기서 묘사되는 한가위는 동학 농민 운동 때 실패와 굶주림으로 죽어간 자들이 남긴 한과 고달픈 현실 생활이 투영된 앙상한 겨울의 전조를 느끼게 하는 쓸쓸한 이미지로, 축제가 끝나고 보름달이 차차 이울어지듯 평사리 마을의 공동체는 최치수와 윤씨 부인의 죽음으로 급격히 무너지고, 토지를 둘러싼 이해 관계로 인한 갈등과 욕망으로 점철된 어둡고 긴 겨울을 맞게 된다. 이런 배경 묘사는 '운수 좋은 날'의 '비'처럼 앞으로 전개될 사건의 방향을 암시하는 기능을 가진다.)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옷(물감을 들인 천으로 지은 옷. 색복(色服))에 댕기꼬리(댕기를 낮잡아 이르는 말로 댕기는 길게 땋은 머리 끝에 드리는 장식용 헝겊이나 끈을 말함.)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한가위를 맞은 평사리 마을 집집마다 정답고 흥겨운 분위기 묘사]. 어른들은 해가 중천에서 좀 기울어질 무렵 이래야, 차례를 치러야 했고 성묘를 해야 했고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다 보면 한나절은 넘는다(까치들이 울타리 안 - 한나절은 넘는다 : 한가위를 맞은 농촌 사람들의 정답고 흥겨운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이때부터 타작(打作 : 곡식의 이삭을 떨어서 낟알을 거두는 일로 유사어로 '바심')마당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들뜨기 시작하고- 남정네 노인들보다 아낙들의 채비는 아무래도 더디어지는데(결과)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식구들 시중에 음식 간수를 끝내어도 제 자신의 치장이 남아 있었으니까(원인). 이 바람에 고개가 무거운 벼이삭이 황금빛 물결을 이루는 들판에서는, 마음놓은 새떼들이 모여들어 풍성한 향연을 벌인다.[모두들 일손을 놓았기 때문에 새 떼들을 쫓을 사람들이 없다는 말로 새들에게조차 특별한 한가위라는 말]

"후우이이- 요놈의 새떼들아!"

극성스럽게 새를 쫓던 할망구는 와삭와삭 풀발이 선 출입옷으로 갈아입고[와삭와삭 풀밭 - 갈아입고 : 풀이 잘 먹은 옷을 입고 외출하는 모습을 통해 한가위를 맞는 즐거움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타작마당에서 굿을 보고 있을 것이다. 추석은 마을의 남녀노유(老幼 : 노인과 어린이), 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강아지나 돼지나 소나 말이나 새들에게, 시궁창을 드나드는 쥐새끼까지 포식(배부르게 먹음)의 날인가 보다.

빠른 장단의 꽹과리 소리, 느린 장단의 둔중한(반대어는 예리하고 경쾌한) 여음(餘音 : 소리가 그치거나 거의 사라진 뒤에도 아직 남아 있는 음향.)으로 울려 퍼지는 징소리는 타작마당과 거리가 먼 최참판댁 사랑에서는 흐느낌같이 슬프게 들려온다['흐느낌'이라는 표현을 써서 앞으로 전개될 비극적 상황의 어두운 그림자를 암시]. 농부들은 지금 꽃 달린 고깔을 흔들면서 신명을 내고 괴롭고 한스러운 일상(日常)[당대 현실에 대한 작가의 인식]을 잊으며 굿놀이에 열중하고 있을 것이다. 최참판댁에서 섭섭잖게 전곡(錢穀 : 돈과 곡식)이 나갔고[최참판댁의 인심을 알 수 있음], 풍년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실한 평작(풍작도 흉작도 아닌 보통 정도로 된 농사. 지난 5년 가운데 수확량이 가장 높았던 해와 가장 낮았던 해를 뺀, 나머지 3년간의 평균 수확량이다.)임엔 틀림이 없을 것인즉 모처럼 허리끈을 풀어놓고 쌀밥에 식구들은 배를 두드렸을 테니(고복격양 : 鼓腹擊壤 : 태평한 세월을 즐김을 이르는 말. 중국 요 임금 때 한 노인이 배를 두드리고 땅을 치면서 요 임금의 덕을 찬양하고 태평성대를 즐겼다는 데서 유래한다.) 하루의 근심은 잊을 만했을 것이다.[전지적 작가 시점]

이날은 수수개비(볏과의 한해살이풀. 줄기는 높이가 2미터 정도이며, 잎은 어긋맞게 나고 넓은 선 모양이다. 7~9월에 줄기 끝에서 이삭이 나와 꽃이 원추(圓錐) 꽃차례로 피고 열매는 흰색, 누런 갈색, 붉은 갈색, 검은색 따위로 가을에 익는다. 열매는 곡식이나 엿, 과자, 술, 떡 따위의 원료로 쓰고 줄기는 비를 만들거나 건축재로 쓴다. 아프리카 또는 인도가 원산지로, 우리나라에는 중국을 거쳐 건너와 오랜 옛날부터 재배되었다.)를 꺾어도 아이들은 매를 맞지 않는다.(수수는 식용이지만 한가위날은 마음이 풍성해져 아이들의 장난에도 혼을 내지 않는다는 말) 여러 달만에 소증(素症 : 푸성귀만 너무 먹어서 고기가 먹고 싶은 증세.) 풀었다고 느긋해하던 늙은이들은 뒷간 출입이 잦아진다(과식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 힘 좋은 젊은이들은 벌써 읍내에 가고 없었다. 황소 한 마리 끌고 돌아오는 꿈(씨름판에서 이겨 장사가 되어 부상으로 황소를 받아옴)을 꾸며 읍내 씨름판에 몰려간 것이다.

최참판댁 사랑은 무인지경(無人之境 :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외진 곳.)처럼 적막하다. 햇빛은 맑게 뜰을 비춰 주는데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을까. 새로 바른 방문 장지(障- : 방과 방 사이, 또는 방과 마루 사이에 칸을 막아 끼우는 문. 미닫이와 비슷하나 운두가 높고 문지방이 낮다)가 낯설다.[타작마당의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최 참판댁의 불행을 닥칠 것을 암시]

한동안 타작마당에서는 굿놀이가 멎은 것 같더니 별안간 경풍(驚風 : 어린아이에게 나타나는 증상의 하나. 풍(風)으로 인해 갑자기 의식을 잃고 경련하는 병증으로 급경풍과 만경풍의 두 가지로 나뉜다) 들린 것처럼 꽹과리가 악을 쓴다. 빠르게 드높게, 꽹과리를 따라 징소리도 빨라진다. 깨깽 깨애깽! 더어응응음- 장구와 북이 사이사이에 끼여서 들려온다. 신나는 타악(打樂 :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소리는 푸른 하늘을 빙글빙글 돌게 하고 단풍든 나무를 우쭐우쭐 춤추게 한다. 웃지 않아도 초생달 같은 눈의 서금돌이 앞장 서서 놀고 있을 것이다. 오십 고개를 바라보는 주름살을 잊고 이팔 청춘으로 돌아간 듯이, 몸은 늙었지만 가락에 겨워 굽이굽이 넘어가는 그 구성진(천연스럽고, 구수하고 멋진) 목청만은 늙지 않았으니까. 웃기고 울리는 천성의 광대기(광대로서의 기질 /'로서'는 기능, 자격을 의미하고 '로써'는 도구, 수단, 재료를 의미)는 여전히 구경꾼들 마음을 사로잡고 있으리. 아직도 구슬픈 가락에 반하여 추파(①가을의 잔잔하고 아름다운 물결. ②이성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은근히 보내는 눈길. ③환심을 사려고 아첨하는 태도나 기색. ④맑고 아름다운 미인의 눈길로 여기서는 ②에 해당) 던지는 과부가 있는지도 모른다.['있을 것이다. '있을 지도 모른다' 등의 말투가 초반부에 계속 이어진다. 추측과 확신을 포함한 화자의 어조는 화자가 마치 평사리의 일원인 듯한 느낌을 갖게 하고, 과거형의 단정적 어조를 피함으로써 외부의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마을을 잘 알고 있는 또 다른 인물인 듯이 여겨지게 한다. 다시 말해 화자를 이야기 내부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쯔쯔 ... 저 좋은 목청도 흙 속에서 썩을랑가?"

"서서방이 죽으믄 자지러지는 상두가(상엿소리(喪輿--)로 상여꾼들이 상여를 메고 가면서 부르는 구슬픈 소리로 만가(輓歌), 상여가, 상여메김소리, 요령잡이소리, 행상소리, 향도가.) 못 들어서 서분을(서운하다의 잘못) 기요."

"할망구 들을라? 들으믄 지랄할 기다."

"세상에 저리 신(끼)이 많으믄서 자게 마누라밖에 없는 줄 아니 그것이 보통 드문 일가?"

"신주[(神主 : 죽은 사람의 위패. 대개 밤나무로 만드는데, 길이는 여덟 치, 폭은 두 치 가량이고, 위는 둥글고 아래는 모지게 생겼다. 유사어로 사판(祠板)]단지[신주 모시듯 : 몹시 귀하게 여기어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다루거나 간직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를 그리 위할까? 천생연분이지 머."

"소나아로 태어나가지고 남으 제집 한 분 모르고 지내는 것도 벵신은 벵신이제?"(일편단심을 비꼬는 말)

나이 듬직한 아낙들은 그런 말을 주고받는지 모른다.

목수가 본업이요 섬진강의 강태공인 곰보 홀아비(정확히는 총각) 윤보는

"이 사람들아! 사랑도 품앗이(힘드는 일을 서로 거들어 주면서 품을 지고 갚고 하는 일.)라 안 하더나?"

"머라 카노? 자다 봉창(封窓 : ①창문을 여닫지 못하도록 봉함. 또는 그 창문. ②채광과 통풍을 위하여 벽을 뚫어서 작은 구멍을 내고 창틀이 없이 안쪽으로 종이를 발라서 봉한 창) 뚜디리네."[자다가 봉창 두드린다 : 전혀 관계없는 얼토당토아니한 소리를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타작마당에서만 이럴 기이 앙이라 강가에도 가서 한마당 굴리자!"

"그는 또 와?"

"용왕님네 심사도 풀어주어야 안 하겄나? 그래야 개기도 풍년이 들제."

"제상(제사 때 제물을 벌여놓는 상)에도 못 오르는 민물개기가 어디 개기가! 당산에 가자! 당산(堂山 : 토지나 마을의 수호신이 있다고 하여 신성시하는 마을 근처의 산이나 언덕.)에!"

누군가가 팔팔하게 반대하고 나서면 너희들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두만아비는 느릿느릿 징을 칠 것이다. 봉기는 헤죽헤죽 웃으며, 구경하는 아낙들보고 부끄러워하며 고깔을 흔들 것이다. 이들은 한창 일할 나이, 살림의 기틀을 잡고 있는 삼십대 중간쯤의 장정들이었고, 나이 좀 처지는 축으로는 장구 멘, 하얀 베수건 어깨에 걸고 싱긋이 웃으며 큰 키를 점잖게 가누어 맴을 도는 이용(李龍)이다. 그는 누구니 누구니 해도마을에선 제일 풍신(풍채로 사람의 드러나 보이는 의젓한 겉모양) 좋고 인물 잘난 사나이, 마음의 응어리를 웃음으로 풀며 장단을 치고, 칠성이 북을 더덩덩! 뚜드리면 무같이 미쭉한 영팔이는 욱욱 헛힘을 주어 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아낙들은 노인들 아이들 틈새에서 제 남편 노는 꼴을 반쯤은 부끄럽고 반쯤은 자랑스러워 콧물을 홀짝일 것이다.[전지적 작가시점]

타작마당에서 한마당 벌이고 나면 시장기가 든 농부들은 강가도 당산도 아닌 마을길을 누비다가 삽짝(나뭇가지를 엮어서 만든 문짝) 큰 집에 밀고 들어 한바탕 지신(地神)을 밟고(마을 사람들이 굿놀이로 흥겹게 놀다가 이제 집집을 돌며 지신밟기를 하면서 행사를 마치려 한다.) 그러고 나면 갈고리 같은 손(농부들의 거친 손)으로 땀을 닦으며 술과 밥을 먹게 될 것이다.

팔월 한가위는 투명하고 삽삽한(매끄럽지 않고 껄껄한) 한산 세모시(韓山細-- :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 지방에서 나는 올이 가는 모시.) 같은 비애는 아닐는지. 태곳적부터 이미 죽음의 그림자요, 어둠의 강을 건너는 달에 연유된 축제가 과연 풍요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는지. 서늘한 달이 산마루에 걸리면 자잔한 나뭇가지들이 얼기설기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소복 단장한 청상의 과부는 밤길을 홀로 가는데 - 팔월 한가위는 한산 세모시 같은 처량한 삶의 막바지, 체념을 묵시(默示)하는 축제나 아닐는지(팔월 한가위는 - 아닐는지 : 삶의 막바지에 이른 사람처럼 체념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민중들의 고달픈 현실을 생각할 때 한가위 축제는 이름뿐인 축제다. 애상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한산 세모시를 비유적 이미지로 사용하고 있다.). 우주 만물 그중에서도 가난한 영혼들에게는.

가을의 대지에는 열매를 맺어놓고 쓰러진 잔해가 굴러 있다. 여기저기 얼마든지 굴러 있다. 쓸쓸하고 안쓰럽고 엄숙한 잔해 위를 검시(檢屍 : 사람의 사망이 범죄로 인한 것인가를 판단하기 위하여 수사 기관이 변사체를 조사하는 일.)하듯 맴돌던 찬바람은 어느 서슬엔가 사람들 마음에 부딪쳐와서 서러운 추억의 현(絃)을 건드려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하고 많은 이별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흉년에 초근목피(草根木皮 : 풀뿌리와 나무껍질이라는 말로 곡식이 없어 산나물 따위로 만든 '험한 음식'을 이르는 말)를 감당 못하고 죽어간 늙은 부모를, 돌림병에 약 한 첩을 써보지 못하고 죽인 자식을 거적에 말아서 묻은 동산을, 민란 때 관가에 끌려가서 원통하게 맞아죽은 남편을, 지금은 흙 속에서 잠이 들어버린 그 숱한 이웃들을, 바람은 서러운 추억의 현을 가만가만 흔들어준다.(구한말 농민의 꿈과 희망이 집결된 1894년의 동학 농민 운동이 일본군의 개입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낸 채 퇴조하던 1897년 한가위는 좌절과 한의 서러운 분위기를 더욱 느끼게 만든다.)

"저승에나 가서 잘 사는가."

사람들은 익어 가는 들판의 곡식에서 위안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들판의 익어 가는 곡식은 쓰라린 마음에 못을 박기도 한다. 가난하게 굶주리며 살다 간 사람들 때문에.

"이만하믄 묵을 긴데……." (회한, 안타까움)

풍요하고 떠들썩하면서도 쓸쓸하고 가슴 아픈 축제, 한산 세모시 같은[애상과 슬픔이 담긴] 한가위가 지나고 나면 산기슭에서 먼, 먼 지평선까지 텅 비어 버린 들판은 놀을 받고 허무하게 누워 있을 것이다. 마을 뒷산 잡목 숲과 오도마니('오도카니'란 말로 작은 사람이 넋이 나간 듯이 가만히 한자리에 서 있거나 앉아 있는 모양) 홀로 솟은 묏등이 누릿누릿 시들 것이다[늦가을이라는 계절적 배경]. 이러고 저러고 해서[여러가지 이유로] 세운 송덕비며 이끼가 낀 열녀비며 또는 장승 옆에 한 두 그루씩 서 있는 백일홍나무에는 물기 잃은 바람이 지나갈 것이다. 그러고 나면 겨울의 긴 밤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복선의 역할을 하고, 인간사와 결부된 계절감이 드러나고 앞으로 전개될 사건의 방향을 암시하며, 당시 민중들이 처할 역사적 상황을 암시한다.)

해가 서산에 떨어지고부터 더욱 흐느끼는 듯 꽹과리 소리는 여전히 마을 먼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밤을 지샐 모양이다. 하기는 마을 처녀들의 놀이는 이제부터, 달 뜨기를 기다려 강가 모래밭에서 호작거리는(강이나 호수의 물이 기슭에 가볍게 흔들리며 소리를 내는) 물 소리를 들으며 시작될 것이다.

"진지상 올릴까요."

방문 앞에 계집종 귀녀가 와서 묻는다. 벌써 두 번이나 물어보는 말이다.

방안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다.

"등잔에 불을 켜야겠습니다."

하며 귀녀는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최참판댁 당주(당대의 호주)인 최치수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오래 묵은 한지 같은 저녁 빛깔이 방안에 밀려들고 있다. 등잔불이 흔들리면서 밝아온다. 어둑어둑한 방에서 정말 글을 읽고 있었는지. 최치수 콧날에 금실 같은 한줄기 불빛이 미끄러진다.(어둠과 밝음의 선명한 대조를 통해 최치수의 날카롭고 강인한 인상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수그러진 그의 콧날이 날카롭다. 이 세상 온갖 신경질과 우수가 감도는 옆모습, 당장에라도 벌떡 일어서서 눈을 부릅뜨고 고함을 칠 것 같은 위태위태한 분위기가 방안 가득히 맴돈다.

"자리나 깔아."

"예."

거들떠보는 것도 아니었건만 귀녀는 눈웃음치며 도토롬한 입술을 오므린다.(장차 최치수와의 관계가 암시되는 부분으로 귀녀의 음탕한 면을 엿볼 수 있음)

병약한 치수로서는 번거로웠던 명절날 집안 행사에 어지간히 시달리어 피곤했던 것 같다.

"저녁은 안 드시겠습니까?"

아랫목에 자리를 깔아놓고 다시 확인하려 했으나 귀녀는 대답을 듣지 못하고 방에서 물러난다. 대청을 지나 건너편 방으로 해서 그 방에 잇달린 골방으로 들어간 귀녀는 품속의 면경을 꺼내어 얼굴을 비쳐본다. 치수 방에 들어가기 전에도 이 방에서 면경을 보았었는데. 머리를 쓰다듬고 한 번 더 꺼무꺼무한 자기 눈을 들여다보고 나서 면경을 품속에 넣는다. 뒤뜰로 향해 난 장지문에서는 아직 엷은 빛이 스며들고 있다. 골방문을 열고 뒤뜰 신돌 위의 신발을 신으려다 말고 귀녀의 눈이 맞은켠으로 쏠린다. 사랑 뒤뜰을 둘러친 것은 야트막한 탱자나무의 울타리다. 울타리 건너편은 대숲이었고 대숲을 등지고 있는 기와집에 안팎 일을 다 맡는 김서방 내외가 살고 있었는데 울타리와 기와집 사이는 채마밭(집에서 가꾸어 먹을 정도의 몇 가지의 남새를 심은 밭)이다. 그 채마밭을 질러서 머슴 구천이가 지나가는 것이었다. 냉담한 귀녀의 눈이 구천이의 옆모습을 따라가다가 눈길을 거두며 실뱀이 꼬리를 치는 것 같은 미미한 웃음을 머금는다(귀녀의 행실이 엿보이는 표현임). 귀녀는 신발을 신고 치맛자락을 걷으며 안채를 향해 돌아나간다.

무 배추를 심은 채마밭이 아슴아슴한(정신이 흐릿하고 몽롱한 모양) 저녁 안개에 싸여 들어가고 있고, 부스스한 옷매무새의 김서방댁이 부엌을 들락거리며 부산을 떨고 있다. 닭장에 들어갈 때가 되었는데 닭들은 배춧잎을 쪼아먹고 있었다.

땅바닥에 눈을 떨구고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당산 누각 앞에까지 올라간 구천이는 자신의 발부리를 오랫동안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구천'의 심리적 방황과 갈등을 암시하는 부분으로 인물의 심리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갈등에는 내적 갈등과 외적 갈등이 있다.). 다시 느릿한 보조로 누각에 올라간 그는 난간을 짚으며 걸터앉는다. 달 뜨기를 기다리는가. 마을엔 아직 불빛이 보이지 않았고 최참판댁 기둥귀에 내걸어놓은 육각등(육면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도록 만든 등)이 뿌윰한(뿌윰하다 : 빛이 조금 부옇다. '부윰하다'보다 센 느낌을 준다.)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달은 솟을 것이다(소망을 상징). 낙엽이 날아 내린 별당 연못에, 박이 드러누운 부드러운 초가 지붕에, 하얀 가리마 같은 소나무 사이 오솔길에 달이 비칠 것이다. 지상의 삼라만상은 그 청청한 천상의 여인을 환상하고 추적하고 포옹하려 하나 온기를 잃은 석녀(石女 :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 달은 영원한 외로움이요 어둠의 강을 건너는 검은 명부(冥府 : 저승, 황천)의 길손이다.(지상의 삼라만상은 - 명부의 길손이다 : 지상의 존재로서 인간의 달은 맑고 깨끗한 순결함을 소망해야 마땅하지만, 암울한 현실을 사는 마을 사람들에게 달은 창백하고 외롭고 죽음의 빛을 띤 비극적 대상으로 보일 뿐이다. - 은유법)

구천이는 눈을 반쯤 감고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깊은 생각에 빠져 있음을 의미, 전개될 사건을 암시 - 최치수의 아내 별당 아씨와의 문제임)

지난 정월 대보름날에는 당산에 달집(달맞이할 때 불을 질러 밝게 하기 위하여 생솔 가지를 따위를 쌓아 집채처럼 만든 나무 무더기)을 지었었다.

"워어이이- 달 나왔다아!"

아이들이 달을 향해 소리치면 강아지도 덩달아서 짖어대었다. 저마다 한 가지씩 소망을 품었을 마을 사람들이 달집 둘레에 모여들면서 불을 질렀었다. 훨훨 타오르는 불길, 아낙들은 손을 모아 수없이 절을 했었다. 불빛을 받은 사내들 얼굴은 짙붉게 번들거렸으며 눈은 숯덩이처럼 짙게 빛났었다. 순박하고 경건한 소망의 기원[고대시가 '정읍사']이 끝났을 때 마을 사람들은 장날에 모여든 장꾼처럼 떠들기를 시작했었다. 사내들은 곰방대(주로 지체 낮은 사람들이 사용하던 짧은 담뱃대)를 꺼내들며, 아낙들은 코를 풀고 치맛자락을 걷어 불빛에 윤이 나는 콧등을 닦으며 새삼스럽게 서로 인사를 나누고 친지들의 소식을 물어보고, 씨받은 암소 얘기며 떡이 설어서 애를 먹었다는 얘기며 노친네 수의(壽衣 : 시신을 관에 넣는 일인 염습할 때 시체에 입히던 옷) 걱정이며, 이윽고 달집은 불길 속에 무너지고, 무너진 자리에서 불길마저 사그러지면은 끝없이 어디까지나 펼쳐진 은빛의 장막, 그 장막 속에서 노니는 그림자같이 마을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갔던 것이다. 달이 떠오른다.

강이 굽이쳐 돌아간 산마루에서 달이 얼굴을 내비친다. 까맣게 찢겨진 나뭇잎들의 흔들리는 모양이 뚜렷해지고 밋밋한 나뭇가지는 잿빛, 아니 갈빛을 띠기 시작한다. 꽹과리 징 소리가 먼 곳에서 흐느껴 울고 강가에서 부르는 처녀아이들의 노랫소리는 좀더 가깝게 들려온다.(청각적 이미지를 통해 잔치가 끝나고 흩어지는 분위기를 원근법으로 표현)

달은 산마루에서 떨어져 나왔다. 아직은 붉지만 머지않아 창백해질 것이다(소망의 세계의 해체와 몰락). 희번덕이는(희번한. 동이 트면서 허연 기운이 비쳐 희미한) 섬진강 저켠(저쪽)은 전라도 땅, 이켠(이쪽)은 경상도 땅, 너그럽게 그어진 능선을 확실한 윤곽을 드러낸다.(이 글의 공간적 배경인 평사리의 상징적 의미가 드러난다. 평사리의 위치는 근대와 일제 강점기로 넘어가는 당시의 시대적·상황적인 분기점을 상징한다.)

난간에 걸터앉아 달 뜨는 광경을 지켜보는 구천이의 눈이 번득하고 빛을 낸다. 달빛이었는지 눈물이었는지 아니면 참담한 소망이었는지 모른다. (달의 이미지를 드러내면서 서술자의 견해를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1장 서희

김서방이 떠들어댔다.

"해마다 애를 믹이는 사람들은 딱 정해져 있다 말이다!"

"누가 애를 믹이고 싶어서 믹이는(먹이는) 기요."

"말 마라. 소가 죽었심다. 다리를 뿌라서(부러져서) 일 못했심다. 혼사가 있어 장리빚(곡식을 꾸어 주고 받을 때 본디 곡식의 절반을 이자로 받는 빚. 흔히 봄에 꾸어 주고 가을에 받음)을 냈심다. 나중에는 무슨 핑계를 댈 기든고?"

그러나 김서방을 넘보고 있는 상대는 "내가 핑계를 댄다믄 벼락을 맞일 거요. 그런 애맨 ('애먼'의 방언으로 엉뚱하게 딴, 애매하게 딴)소리는 안 하는 기이 좋겄구마."

볼멘소리(서운하거나 성이 나서 퉁명스럽게 하는 말투)로 대꾸했다.

"이래가지고는 못 해 묵는다 못 해 묵어. 양새 낀 나무맨치로 어디 사람이 할 짓이가."(작인들의 어려움을 알면서도 지주의 편에 서서 그들을 가혹하게 대할 수밖에 없는 김 서방의 곤란한 처지를 드러내는 자기 변호적 표현이다.)

저마다 이러고 저러고 통사정해오는 작인들을 상대하다 보면 유순한 김서방도 짜증이 나는 모양이다.

며칠 전부터 최참판댁은 안팎이 시끄러웠다. 늘비하게['즐비하게'와 같은 뜻으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음을 의미한다.] 이어진 고방('광'으로 세간이나 그 밖의 여러 가지 물건을 넣어 두는 곳. 곳간)에는 끊임없이 볏섬이 들어갔다(많은 농토를 가진 대지주의 집이라는 것을 암시). 한편 읍내로 곡식을 실어내는 바람에 하인들도 지치지만 근력 좋은 마구간의 말과 외양간의 살진 황소도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최참판 댁의 경제적 규모를 알 수 있음). 행랑은 행랑대로 먼 곳 가까운 곳에서 모여온 마름(지주를 대리하여 소작권을 관리하는 사람.)과 작인들이 득실득실 판을 치고 있었으며[일을 벌이고 있음] 그들을 위해 큰 가마솥은 쉴새없이 밥을 삶아내야만 했다.

"여보시오. 내 말 좀 들어보라니께!"

"들으나마나 뻔하지 머. 축이 난 것만은 틀림이 없인께."

"아 그러매 하는 말 아니오."

" 만 분 해봐야 그 말이 그 말이지 머."

"이런 딱할 데가 있나. 돌 하나라도 들어가는가 싶어서 올빼미겉이 눈을 크게 뜨고[정성을 들였음을 의미]."

"크게 뜨믄 소용 있소? 눈이 뵈야 말이지."[작인들이 쏟은 정성을 여지없이 무시하는 말로 김 서방의 계급적 우월감이 드러난다. 호가호위(狐假虎威 : 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부림.) 또한 심각한 갈등 관계를 암시하기보다는 추수 때에 마름과 작인 사이에 흔히 오갈 수 있는 말다툼을 표현한 대목]

"그래. 그라믄 우리가 거부지기(검불을 이르는 말로 가느다란 마른 나뭇가지, 마른 풀, 낙엽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를 쑤셔 넣었겄소? 축이 날 리가 없단 말이요!"(축가다 : 일정한 수나 양에서 모자람이 생기다는 말로 유사어로 축나다)

담장 밖에서 다투는데 막걸리 사발이나 들이켠 걸걸한(목소리가 좀 쉰 듯하면서 우렁차고 힘이 있다) 목소리였다.

"봉순아 흐흐흐... 흐, 나 여기이 있다아!" [서희의 장난스러운 성격을 엿보게 함]

볏섬을 져나르는 구천의 다리 뒤에 숨어서 살금살금 걸어오던 자그마한 계집아이(주인공 최서희)가 얼굴을 내밀었다. 앙증스럽고(작으면서도 갖출 것은 다 갖추어 아주 깜찍한 데가 있다) 건강해 보이는 아이의 나이는 다섯 살. 장차는 어찌 될지(서술자의 목소리로 불길한 예감을 담고 있음 / 독자에게 정보를 최소한으로 제시하고 서술자의 판단을 유보함으로써 궁금증을 유발함), 현재로서는 최치수의 하나뿐인 혈육이었다. 서희는 어머니인 별당아씨를 닮았다고들 했으며 할머니 모습도 있다 했다. 안존하지(조용하고 얌전하지) 못한 것은 나이 탓이라 하고 기상이 강한 것은 할머니 편의 기질이라 했다.[서희에 대한 인물 소개]

서희를 찾아서 두리번거리고 있던 봉순이 건너오려 하는데 서희는 맴돌아 구천이 앞으로 달아나며 끼룩끼룩 웃는다.(새가 우는 소리를 뜻하는 의성어로 서희의 장난스럽고 천진한 모습을 빗댄 표현, 아직 어려서 집안의 형세나 분위기를 모르는 서희의 순진무구한 성격과 귀한 신분에 대한 간접 묘사의 표현이다.)

"넘어지믄 큰일난다 캤는데, 애기씨(하인이 주인집 어린 딸을 높여 부르는 말)!"

봉순이 울상을 지었으나 날개짓을 배우기 시작한 새새끼처럼 서희는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니며[천방지축(天方地軸) : 못난 사람이 종작없이 덤벙이는 일, 너무 급하여 허둥지둥 함부로 날뛰는 모양]

좀체 봉순이에게 잡히려 하지 않는다. 유록빛(푸른 빛과 누른 빛의 중간 빛)에 꽃 자주선(자주색의 헝겊띠)을 두른 조그마한 꽃신은 퍽으나['퍽'의 잘못된 표현] 날렵하다.

"애기씨!"

일꾼들 발에 걸려 넘어지지나 않을까, 이 광경을 마님한테 들키면 큰일나겠다 하며 조마 조마하는 봉순이를 곯려주려고['곯리다'는 '곯다'의 사동형으로 '속을 상하게 하다'의 의미로 '골리다'는 상대편을 놀리어 약을 올리거나 골이 나게 하다'의 뜻] 서희는 다시 구천이 다리를 방패삼아 뒤에 숨는다.

"애기씨, 이러심 안 됩니다."

이번에는 걸음을 멈춘 구천이가 말했다.

"넘어지지 않아!"

깡충 뛰며 구천이의 땀에 젖은 잠방이 뒷자락을 심술궂게 잡아당긴다.

"이러심 안 됩니다."

나지막한 소리로 타이른 구천이는 볏섬을 진 채 몸을 돌리며 봉순이에게

"애기씨 뫼시고 별당,"('별당'은 서희의 어머니가 기거하는 곳이다. 구천이 말을 중단한 것에서 별당 아씨와 구천이 사이에 미묘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참 만에 다시

"별당에 가서 놀아라."

하고 말을 끝맺었다. 서희는 구천이의 잠방이(가랑이가 무릎까지 내려오도록 짧게 만든 홑바지 )를 잡고 늘어지며 오도가도 못하게 방해를 한다.[여기서 '잠방이'는 서희가 구천이의 잠방이에 기대어 고집스러운 행동을 보임으로써 자신의 완강한 심리를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잠방이'는 인물의 심리 상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소재로 쓰이고 있다.]

"애기씨, 가서 사깜(소꿉) 사입시다."

꾀듯이 봉순이 손을 잡는데 뿌리치고

"나 여기서 놀 테야."

"일질[일을 하느라고 움직이는 동작]에 넘어지십니다."

구천이의 목소리는 역시 나직했다.[구천이의 의젓하고 침착한 성품을 말투에서 짐작케함]

"싫어. 안 갈 테야!"

"마님께서 보시면 꾸중하시지요."

"나 할머니 무섭지 않다!"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한 성격을 드러냄)

잠방이자락을 겨우 놓아준 서희는 구천이를 노려보면서 제 주장을 뚜렷이 나타내었다. 그러나 할머니가 무섭긴 무서웠던 모양으로

"구천이는 바보 덩신! " [자신을 계속해서 제지하는 구천이에 대한 원망의 표현]

욕을 하며 달아난다. 봉순이 그 뒤를 쫓아 뛰어간다. 짧은 저고리 도련 밑에 늘어진 빨강 댕기가 할랑할랑(매달린 것이 가볍게 흔들리는 모양) 그네를 뛰더니, 아이들의 모습은 사라졌다. [다양한 의태어를 통해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고, 사투리 표현을 통해 토속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고, 인물이 처한 상황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인물 간의 대립 양상이 주로 대화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볏섬을 짊어진 채 아이들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던(구천이의 미묘한 심리 상황을 드러냄) 구천이는 고방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으윽!"

힘주는 소리와 함께 볏섬은 고방(광, 곳간)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장골(기운이 세고 큼직하게 생긴 뼈대. 또는 그런 뼈대를 가진 사람)이 나락 한 섬을 지고 맥을 못 추니 우찌 된 일고."

들여다주는 볏섬을 돌이와 함께 맞잡아서 고방에 쌓아올리던 삼수는 갈고리를 볏섬에 걸며 말했다.

"땀 좀 닦아라."

이번에는 돌이가 딱해하며 말한다. 구천이는 지푸라기가 엉겨붙은 잠방이 소매를 끌어당겨 땀을 닦는다. 얼굴빛이 푸르고 눈은 움푹 패어 있었다.(표면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음을 드러내나, 밤새 떠돌아 다녀서 그런 것으로 구천이의 정신적 고뇌를 암시함)

갈고리를 걸어놓기는 했으나 돌이는 땀 닦는 구천이를 멍청히 쳐다보고만 있었으므로 삼수는 코를 힝 푼다. 콧물 묻은 손을 옷에 문지르며

"니 그라다가 몸 베릴라(몸 버리겠다. 건강을 상하겠다. 걱정과 우려가 담겨 있음)?"

땀을 닦다 말고 구천이는 삼수의 입매를 쳐다본다. 삼수는 다시

"무슨 짓을 하는가 우리도 좀 알고 싶구마."(구천의 행동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냄)

멀리서 무슨 소리가 나는구나 하듯 서 있던 구천이의 눈이 다음 순간 거칠게 빛났다.(자신의 행적에 대한 삼수의 태도에 민감한 반응. 비밀스러운 일임을 알 수 있음)

삼수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돌이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영치기!"

볏섬을 들어올린다. 그러고는 날씨 이야기며 부춘서 벼 싣고온 박서방의 혹이 금년에는 더 커졌다는 둥 하며 삼수보다 돌이가 무관심한 척하려고 애를 쓴다. 삼수는 곁눈질로 구천이의 기색을 살피면서

"어서 가서 나락 져오라고. 아무도 해를 잡아 매놓지 안 했인께."(해가 지기 전에 일을 끝내야 한다는 재촉의 말로서, 민중들의 생활 의식이 반영된 관습적 표현으로 구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삼수의 의도가 드러난 대화이다.)

했다. 등받이로 쓰는 마대(굵고 거친 삼실로 짠 커다란 자루)를 고방 바닥에서 주워 어깨 걸치고 구천이는 긴 팔을 늘어뜨리며 돌아서 나간다.

"싫대두, 싫어! 아버지가 싫단 말야."

서희가 발을 동동 구르고, 침모(남의 집에 매여 바느질을 맡아 하고 일정한 품삯을 받는 여자) 봉순어미는 옷고름을 여며주며 달래고 있다. 구천이는 눈을 내리깔며 그들 옆을 지나간다.

"마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으리께 문안드리라고."

중년으로 접어든 봉순네는 살빛이 희고 좀 비대한 편이었는데 서희는 봉순네 치맛자락을 잡으며

"두만네 집에 강아지 보러 갈 테야."

"마님께서 아시믄 큰일나지요. 꾸중하십니다. 봉순아, 어서 애기씨 뫼시고 사랑에 가거라."

서희 등을 도닥거리며 봉순네는 딸에게 이른다.

"아버진 싫다는데두, 고흠! 고흠! 하고."

목을 뽑고 기침하는 치수의 시늉까지 낸다. 봉순네는 웃음을 참는다.

"큰일날 소리, 봉순아, 어서."

"애기씨, 가입시다."

봉순이도 싫은지 부스스 말했다.

"그라믄 사랑마당에까지 지가 데리다 디리지요."

봉순네는 병아리를 몰 듯 뒤에서 아이들을 몰아낸다. 서희는 민적민적(자꾸 꾸물대거나 망설이는 모양)하면서도 가기는 간다.

"이제 가시지요?"

고개를 끄덕이고 봉순네를 올려다보는 서희 눈에 겁이 잔뜩 실린다.

사랑의 앞뜰에는 햇빛이 화사하게 비치고 있었다(최치수의 우울한 삶과 대비됨). 돌담 용마루(지붕 위의 마루) 높이만큼 키를 지닌 옥매화(장미과의 낙엽 관목으로 줄기는 무더기로 나고, 잎은 길둥글며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봄에 연분홍 꽃이 피고, 둥근 열매는 여름에 붉게 익는데 먹을 수 있음), 매초롬한(젊고 건강하여 아름다운 태가 있는) 회색가지를 뻗은 목련, 삼화에 석류나무, 치자나무는 마치 봄날의 햇빛을 받아 노곤한(몸이 나른하고 피로하다.) 것처럼 보였으나 이미 순환은 멈추어졌을 것이며 메말라버린 나뭇잎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잎을 추려버린 파초 역시 누릿누릿 시들고 있는 것 같았다. (을씨년스럽고 생명의 기운이 사라져 가는 분위기)[최치수가 거처하고 있는 사랑 주변의 풍경 묘사, 간접 묘사를 통해 최치수가 중병에 걸려 생기를 잃고 희망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

긴장하여 땀이 나는 손을 잡고 마주보고만 있던 아이들은 결심을 하고 치수가 기거하는 방 앞에까지 간다. 목소리를 가다듬은 봉순이

"나으리마님. 애기씨께서 문안오셨습니다. 마님께서 문안드리라 하시어 오셨습니다."

몇 번이나 입 속으로 굴려보았던지 줄줄 외듯 나왔다(주인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 방안에서 밭은기침(병이나 버릇으로 소리도 크지 아니하고 힘도 그다지 들이지 않으며 자주 하는 기침) 소리가 났다. 기침이 멎은 뒤,

"들어오너라."

음산하게 울리었다.

신돌(신발을 벗어 놓은 평평한 돌) 위에 작은 신발을 나란히 벗어놓고 서희는 마루로 올라간다. 서희의 얼굴은 해쓱해져 있었다(두려움과 긴장). 봉순이 열어주는 방문에서 서희가 방안으로 들어갔을 때 방금 일어나 마주했는지 치수는 서안(書案 :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아랫목에 깔아놓은 이부자리는 반쯤 걷혀져 있었으며 벼룻집의 벼루랑 연적, 붓(문방사우 : 종이, 붓, 먹, 벼루의 네 가지 문방구), 두루마리에 먼지가 뿌옇게 앉아 있었다. 문갑 위의 상감청자 향로와 아무렇게나 쌓아올려 놓은 서책 위에도 먼지는 뿌옇게 앉아 있었다.(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음)

"바깥 날씨가 차냐?"

길게 찢어진 눈(신경질적인 성격 묘사)이 서희를 응시하며 물었다. 서희는 그 말이 귀에 닿지도 않았던 것처럼(두려움 때문에 소리를 의식하지 못함)붉은 치마를 활짝 펴면서 나붓이(자그마한 것이 찬찬히 납작 엎드리는 모양으로) 절을 한다.

"요즘에는 아버님 병환에 차도(병이 조금씩 나아가는 정도)가 있으신지 문안드리옵니다."

봉순이가 그러했던 것처럼 목청을 가다듬고 외는 투의 억양 없는 소리를 질렀다.(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긴장함)

"괜찮다. 서희도 밥 잘 먹고 감기는 안 들었느냐?"

갈기갈기 갈라진 여러 개의 쇠가 서로 부딪칠 때 나는 것 같은 목소리는 여전히 음산했다[최치수의 병색으로 서희의 공포심을 유발]. 그는 서희의 공포심을 충분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풀어주려는 노력이 없는 싸늘하고 비정한 눈(외양 묘사를 통한 성격 제시)이 서희를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최치수의 음산한 쇳소리의 목소리, 비정한 눈길 등은 최치수의 날카로운 성격과 병색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앞으로 다가올 최치수와 관련된 불행한 운명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서희는 아버지의 눈을 피하기만 하면 당장에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질 것처럼 애처롭게 그를 마주본 채 고개를 저었다[좌불안석(坐不安席 : 앉아도 자리가 편안하지 않다는 뜻으로, 마음이 불안하거나 걱정스러워서 한군데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양을 이르는 말. ].(고양이 앞에 쥐꼴) 치수는 웃었다. 그 웃음은 도리어 서희의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 서희로부터 시선을 돌린 치수는 서안 위에 펼쳐놓은 책의 갈피를 넘긴다. 허약한 체질에 비하면 뼈마디는 굵은 편이었다. 그러나 가엾을 만큼 여위고 창백한 그의 손이 책갈피를 누르면서 눈은 글자를 더듬어 내려간다. 손뿐인가, 뜰 아래 물기 잃은 목련의 앙상한 가지처럼, 그러나 동정을 받을 수 있는 비참한 느낌이기보다는 도리어 상대에게 견딜 수 없는, 숨 막혀서 견딜 수 없어 결국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강한 분위기를 그는 내어뿜고 있었다(뜰 아래 - 내어뿜고 있었다 : 비정한 자신의 성격을 스스로 드러냄으로써 불운을 자처하는 최치수의 고통스런 심적 상황을 분위기의 서술을 통해 제시한 표현으로 서술자의 주관적 개입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부분임). 어떤 일에도 감동되지 않을 눈 빛, 철저하게 스스로를 거부하는 눈빛, 눈빛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뼈만 남은 몸 전체가 거부로써 남을 학대하는 분위기의 응결(엉기어 맺힘)이었다.

일단 방에 들어온 뒤에는 나가도 좋다는 말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서희는 일어설 수 없다. 숨소리를 죽이며, 그래서 가냘픈 가슴이 더 뛰고 양 어깨로 숨을 쉴 수밖에 없었는데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은 어린것에게 얼마나 큰 고통인가.(전지적 작가가 작중 인물인 서희의 내면에 개입하여 감정을 전달한 표현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동정과 연민의 정서를 유발한다.)

이따금 책장 넘기는 소리가 났다.(고요하고 음산한 방 안 분위기와 상황의 지속)

"길상아!"

별안간 귀청을 찢는 것 같은 고함에 서희는 용수철같이 앉은자리에서 튀었다.

"길상아!"

"예에!"

대답과 함께 급히 뛰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뜰 아래서

"나으리마님 부르셨습니까."

앳된 소년의 목소리였다.

"방이 왜 이리 차냐!"

"곧 불을 지피겠습니다."

"내가 지금, 방이 왜 이리 차냐고 묻지 않았느냐!"

푸른 정맥이 이마빼기에서 부풀어올랐다. 서희의 얼굴이 질린다.

"예, 지금 곧, 불 지피겠습니다."

"이놈! 방이 왜 이리 차냐고 물었겠다! 고얀 놈!"

"잘못했습니다. 나으리마님."

소년은 겁을 먹은 소리를 냈으나 매양 당하기 때문인지 길들은 사냥개처럼 뒤쪽으로 달려가서 장작 한아름을 안고 뛰어온다.

"으흐 컥!"

신경질은 심한 기침을 유발했다. 치수는 수건을 꺼내어 입을 막았으나 기침은 멎지 않았다. 눈이 활짝 벌어지면서 붉은 눈알이 불거져 나온다.

기침은 잠시의 틈도 용납치 않고 그에게 달겨든다. 입을 막고 상체를 흔든다.

고독한 모습이었다.(오직 권위와 위엄으로만 집안을 다스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 최치수의 내면적 고뇌를 제시해준다.)

"나, 나, 나가거라."

질식하는가 싶더니 기침은 멎고 가래가 끓어 분간하기 어려운 목소리로 간신히 치수는 말했다.

방문을 열고 마루에 나왔을 때 서희는 토할 것처럼 헛구역질을 했다.

마루에서 기다리고 있던 봉순이는

"애기씨."

감싸듯이 서희를 안았다. 헛구역질은 딸꾹질로 변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돌았다.

"애기씨."

치마를 걷어서 봉순이는 서희의 눈물을 닦아 준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1. 이 소설의 제목인 '토지'와 연관하여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농경 민족이었다. 다음에 제시된 농경민족의 특성을 읽고 농경 민족과 토지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 농경 생활로 이행한 것을 두고 신석기 혁명이라고까지 말한다. 이와 같은 발전은 생산 경제로서 농경 생활이 가져온 인구 증가, 식량 저장, 농번기와 농한기라는 생활 리듬 확립, 정착 생활로 인한 문화 축적 등으로 인한 것이다. 이처럼 정착 생활로 인한 문화 축적, 생활 기반을 이루는 식물과 대지를 향한 신앙과 의식 형성, 토지 애착에서 오는 보수적 경향 등, 농경 민족은 유목 민족과는 매우 대조적인 삶의 양상을 보인다.

- 농촌 공동체로서 형성된 우리 민족의 삶의 진통은, 한 곳에 정착하여 대대로 뿌리 내려 삶을 영위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사는 유목 민족과는 달리 정착한 그곳에서 모든 생산과 경제 활동이 가능했던 농경 민족은 안정된 삶의 의식을 가질 수 있었다.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익숙함은 보수적 세계관을 형성하게 되었고, 나무나 풀, 꽃과 같은 식물과 대지(大地)에 대한 상상력을 형성시켰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2. '농악놀이'나 '달집 태우기', '지신 밟기'의 유래를 찾아보고, 각각 '토지'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말해 보자.

- 농경 생활로 형성된 우리 민족 고유의 민속놀이들이다.

2. 이 소설은 '1897년의 한가위'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소설의 배경을 염두에 두고 아래 제시된 활동을 해 보자.

(1) 타작하는 마당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어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지 말해 보자.

-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으로 제시된 평사리 마을은 지리적으로 볼 때 외부 세계와 단절된 공간일 뿐만 아니라, 이야기 전개상으로 볼 때에도 최참판 댁을 중심으로 한 봉건적이고 폐쇄적인 삶의 공간으로 드러난다. 이는 곧 소설의 공간이 민중적 유대감을 형성시키는 한편,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서술자의 시선을 통해 구체화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여기에서는 평사리 마을 사람들의 삶의 가치가 드러나 있고, 아이들은 기뻐서 날뛰고 어른들은 분주하게 타작 마당으로 모여드는 모습을 통해 한가위를 맞은 농촌 공동체 구성원들의 정겹고 흥겨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추석 : 마을 사람들은 들판의 곡식을 보며 위안을 삼기도 하지만, 풍경에 대한 작자의 비판적인 묘사는 삶의 허무를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텅빈 들판', '홀로 솟은 묏등', '물기 잃은 바람' 등의 표현이 이러한 허무 의식을 형상화한다.

: 한가위 보름달이 뜬 모습을 '한산 세모시', '청상과부' 등의 이미지와 결합함으로써 삶의 막바지에 이른 민중들의 한스럽고 고달픈 현실에 대한 작자의 비판적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1. 최치수와 서희의 성격을 중심으로 아래 제시된 활동을 해 보자.

(1) 최치수는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보는가?

 소설 속에 드러나는 인물의 성격은 행동이나 대화, 삶에 대한 태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가치관에 이르는 모든 내면적 인식과 밀접한 관련을 맺음을 알고, 최치수의 인물 묘사와 대화, 행동을 통해 그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유도한다.

- 최 씨 집안의 마지막 당주로서 선대에 이룩한 재산을 누리며 평사리의 지배자로 군림한다는 점에서, 그는 독선과 아집을 지닌 냉소적인 인간으로 그려진다. 이것은 그가 오직 전통적 계급 사회 질서의 유지를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로 생각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2) 최치수와 서희 사이에 나타나는 갈등의 원인은 무엇인가?

 소설의 갈등은 대체로 인물의 성격적 대립으로 인한 내적 갈등과, 그 인물이 처한 사회적 환경과의 부조화에 따른 외적 갈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둘 사이의 갈등은 소설의 서사적 사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이전에 제시되는 갈등이라는 점에서 갈등의 원인은 두 인물의 삶을 지배하는 배경적 요인에서 찾아볼 필요가 있음을 주지시킨다. 특히 최치수가 최 씨 집안의 마지막 당주라는 점을 감안해서 집안의 내력이 어떠한지를 고려하도록 한다.

- 최치수는 오로지 집안의 권위와 명맥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힌 까닭에 냉정함과 고집스러움을 잃지 않으려 하고, 이것이 딸 서희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의 사랑을 갈망하는 서희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오히려 아버지에 대한 반발과 증오를 형성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결국 봉건 사회의 가부장적인 질서와 그 전통적 틀에 대한 보수적인 집착이 빚은 결과라 할 수 있다.

(3) 최치수를 대하는 태도를 미루어 서희는 장차 어떤 삶을 펼쳐나갈 것으로 예상되는가?

 최치수가 왜 서희에게 냉랭하게 대하는 지를 생각해 보면서, 집안에서 서희가 차지하는 위치와 서희의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토대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한다.

- 서희는 몰락하는 집안의 마지막 핏줄로,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시련의 운명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인물로 그려진다. 따라서 그러한 운명에 맞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방향에서 삶이 전개될 것이다. 우선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문의 몰락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서희는 집안의 대를 이을 유일한 혈족으로 가문의 부흥을 삶의 제 1의 목표로 삼고 살아갈 것이다. 이를 위해 가문에 피해를 입힌 자들에게 복수의 의지를 다지기도 할 것이며, 한편으로는 서희를 도와 뿌리를 이어가는 매개 역할의 인물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어린 서희에게 동정과 연모의 정을 보인 길상이 그러하다.

2. 이 소설에 나타난 최 참판 댁 하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한지 행동이나 대화를 바탕으로 함께 이야기해 보자.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 소설에서는 제각기 다른 성격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인물 하나 하나가 살아있는 듯하고, 그들 모두가 제각기 다양한 인간 군상의 면모들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최참판 댁 하인들의 삶의 태도를 살펴보고, 다양한 그들의 삶의 태도의 공통점을 인식하여 말해 보도록 한다.

- 최 참판 댁 하인들은 최 참판 댁 식구들과 대립적인 관계를 맺고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거나 비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재 생활에 충실한 현실주의적 면모를 보여준다. 봉순 어미의 경우도 서희를 안쓰러워하고 잘 보살피려는 마음이 드러나고, 봉순이 역시 서희의 동무이면서 동시에 서희를 보살펴 주는 언니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 하인들 역시 서로의 심기를 상하지 않게 하려고 배려하면서 투박한 관심을 드러내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 준다. 단지 귀녀는 특이한 경우로, 무언가 야심을 품고 있는 분위기와 태도를 보인다. 소설 전반을 통해 볼 때, 귀녀는 신분 상승에 대한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소설 '토지'에서 볼 수 있는 삶의 양상은 어떤 것인가?

-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최 참판 댁 일가의 삶과 그들을 둘러싼 평사리 마을 사람들의 삶은 서로 긴밀한 상관 관계를 가지면서, 우리 민족의 수난사와 토지에서 한을 안고 살아가는 민중들의 힘겨운 삶의 역정을 대변한다. 특히 최 참판 댁 하인들과 평사리 마을 사람들은 개인의 이해 관계에 민감한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면서도 가식 없는 현실적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즉 전통적 계급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최 참판 일가의 형식주의적 삶과, 그리고 구시대적 질서의 붕괴 과정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가려는 민중들의 현실주의적인 삶이 대조적으로 드러난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우리 민족사를 통해 볼 때 소설 '토지'가 주는 의미는 어떤 것인가?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삶의 모습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 삶의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구한말에서 일제 치하에 이르는 우리 민족사의 격변기라는 점을 감안할 때, 농촌 공동체를 토대로 한 민중들의 삶의 모습은 우리 민족 정신에 내재해 있는 한의 정서를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한의 정서는 시대적 격동의 현장에서 끈질기게 우리의 땅을 지켜 내려는 민족 구성원의 강인한 삶의 의지와 애환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우리의 근대사에 대한 애정 어린 인식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소설 '토지'를 읽은 느낌과 관련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바람직한 가치는 무엇인가?

 이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관의 문제는 최 씨 집안의 마지막 당주로서 선대에 이룩한 재산을 누리며 평사리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최치수와, 최 씨 집안의 대를 이를 마지막 혈족으로서 가문의 부흥을 삶의 최대 목표로 삼는 서희 사이에 나타나는 대립적 관념이다. 보수적인 관념을 가진 최치수는 오로지 전통적인 계급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만이 옳다고 믿고 있지만, 이는 구한말에서 일제 치하에 이르는 격동기를 살아가는 삶의 태도로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과거에 얽매어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전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서희는 전통적인 삶의 뿌리를 지키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면서도 과거에만 집착하지 않고, 미래 지향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변화에 대처하면서 자신의 가치관을 관철시키려고 한다는 점에서 본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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