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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짓" 예찬

                                         조영남 · 가수

말이 되는소린진 몰라도 나는 딴짓애호가다.
60평생을 뒤돌아보니 그렇다.
남달리 딴짓거리를 많이 한 것같다는 얘기다. 호들갑이 아니다.
말이 되는 소린진 몰라도 나는 딴짓 애호가다. 60 평생을 뒤돌아보니 그렇다. 남달리 딴짓거리를 많이 한 것 같다는 얘기다. 호들갑이 아니다.

세상이 알다시피 나는 일찍부터 가수였다. 노래를 불러 먹고사는 가수로 쭉 살아왔다. 그렇다면 나는 날이면 날마다 노래만 부르며 살아왔는가. 천만 만만의 말씀이다. 엄격했다.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경우에만 불렀다. 다시 말해 노래에 상응하는 선불이나 후불을 꼭 받아 챙길 수 있는 경우에만 노랠 불렀다. 그리고 받은 금액만큼만 불렀다. 사람들은 노래방에 가서 돈을 지불하고 노랠 부르지만 나는 달랐다. 친구들과 술자리에서도 나는 노랠 부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게 있어 노래는 더 이상 취미활동이나 오락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가수는 지상 최고의 직업이다. 내 경우는 좀 특이해서 고정 출연이라는 것도 없었다. 한 달에 두서너 차례만 노랠해도 생활하는 데 큰 지장이 없었다. 따라서 시간이 판판이 남아돌았다. 물론 나는 남는 시간에 새 노래를 작곡하고 목청을 연마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일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있는 노래 부르고 남의 노래 슬쩍해서 불러도 가수직이 웬만큼은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그게 화근이었다.

그리하여 남아도는 시간과 세월 나는 딴짓으로의 긴 항해를 떠났던 것이다. 은행원이 돈 세는 게 제일 재밌고 의사가 수술할 때 제일 재밌고 운전기사가 운전할 때 제일 재밌다고 말하면 나는 할 말 없다. 나는 노래할 때가 제일 재밌다고 말하기가 왠지 싫었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 먼 곳을 향해 항해를 떠났던 것이다.

딴짓이라는 게 별것 아니다. 재미있으면 그게 딴짓이다. 나는 머리를 굴렸다. 뭐 좀 재미있으면서도 효과적이고 실용적인 딴짓거리가 없을까.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음악대학에 착실히 다니는 것부터 재미가 별로였다. 나는 즉시 대중가요 가수로 방향을 틀었다. 딴짓을 한 것이었다. 와우 아파트 무너졌다는 풍자 노래를 불러 즉시 군 복무로 불려들어간 것도 딴짓이었고 제대 후에 미국 목사들을 따라 무턱대고 미국으로 건너가 졸지에 복음성가 가수가 되고 거기서 신학대학에 들어가 목사 라이선스까지 따게 된 것도 역시 딴짓의 일환이었다.

별의별 딴짓이 다 있다. 결혼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주례목사와 수백명 증인들 앞에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어쩌고저쩌고 굳게 맺었던 신과의 약속까지 몇 년 후 가차없이 깨버린 것도 가히 대표급 딴짓이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연속으로 말이다. 그 모든 딴짓을 순전히 재미삼아 했다면 나는 나쁜 놈이다. 불량한 놈이다. 물론 본의는 아니었다. 뒤돌아보니 그런 것들이 치명적인 딴짓으로 남았을 뿐이다.

내 딴짓 항해의 폭은 꽤나 광활했다. 폭풍우 세례도 받았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났으면 한 번쯤은 조국을 위해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일념에서 '맞아 죽을 각오로 쓴 100년 만의 친일선언'이란 책을 써 실제로 맞아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간 것도 그런 것이다. 아!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이다.

그보다 한발 앞서 나는 '예수의 샅바를 잡다'라는 제목의 심각한 종교서적을 써 낸 바 있다. 당시 나는 모태신앙의 소유자에 신학까지 공부한 터라 무조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심지어는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에 불타고 있었다. 내 깐엔 맞아 죽을 각오와 순교자적 정신으로 두 종류의 책을 써 냈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도 두터웠다. 한갓 치기 어린 딴짓거리로 취급되고 만 것이다.

폭풍우가 지나간 이후 나의 딴짓거리는 매우 온건해졌다.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이라는 책을 써 낸 것만 봐도 그렇다. 믿거나 말거나 나는 지금 내년 2010년 이상(李箱) 시인 탄생 100주년에 맞추어 이상 시 해설서 '이상(李箱)은 이상(理想) 이상(異常) 이상(以上)이었다'를 쓰고 있다. 이상하게도 이상에 관한 단편적 논문은 넘쳐날 정도로 많지만 온전한 시 해설서는 단 한 편도 구할 수가 없었다. 있는 것은 주로 주해 수준의 책들이었다. 너무 난해한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이상의 시는 현대 미술이론으로 풀어야 한다는 기치 아래 내가 또 자청을 하고 나선 것이다. 그 책에서 나는 우리의 이상이 보들레르 랭보 포우 엘리엇보다 한 수 위라는 논리를 펴고 있는데 글쎄, 또 하찮은 딴짓거리로 무시당할지 아니면 제법 괜찮은 딴짓거리로 우대를 받을지 그건 그때 가봐야 알게 될 것 같다.

내가 이때까지 저지른 딴짓의 결정판은 뭐니뭐니해도 그림을 그린 것이다. 그림은 인간이 찾아낼 수 있는 최상의 딴짓거리였다. 가수가 그림을 그리는 것부터가 딴짓이고 게다가 화투짝을 그리는 것은 또 다른 딴짓, 겹치기 딴짓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얼결에 화투 그리는 화가로 널리 알려졌다. 최근 세계현대미술에서 가장 핫하게 떠오른 중국 베이징에서 거창한 나의 초대전이 열렸을 정도니 말이다. 이제는 딴짓거리인 그림이 본짓거리인 노래를 압도할 지경에 이르렀다. 가수인지 화가인지 헷갈리게 됐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내 딴짓 항해의 끝은 어디인가. 바로 오늘이다. 오늘 밤 잠들기 직전까지다. 만일 내일 아침 내가 또다시 눈을 뜰 수 있다면, 뜬다는 보장은 없지만, 놀면 뭐하냐 나는 또 딴짓의 긴 항해를 떠나야 한다. 딴짓은 곧 재미이고 재미는 곧 이 시대의 총아, 바로 문화(culture)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수필란에서


제비 (originally a Spanish folk song) - 조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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