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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잃어버린 봄

2014.06.13 16:34

노영일*68 Views:1795


잃어버린 봄

전화를 받으니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나 김태기다”. 볼일이 있어 시카고에 잠깐 들렸다고 한다. 시간을 좀 내라하여 차이나 타운의 한 화식집에서 만났다.



김태기선생이 한국으로 돌아간지도 벌써 일년반이 지났다. 인디아나 사우스 벤드에 살때만해도 두시간 거리이긴 했지만 동기중 가장 가까이 살았고 시카고 동창회에도 자주 나왔었다. 신시나티에 사는 이건일선생과 셋이 작당하여 “중서부 동기”들이라 하며 함께 놀러 다니기도 했다.

졸업하고 곧바로 미국에 와서 한국의 의사생활이 궁금하기도 하고, 부인이 한국 에서 “살림을 해보지 못해서” 어떤가 경험해 보고 싶어 한국에 간다고 했다. 나도 그들의 한국생활에 호기심이 갔다.

김태기선생이 전하는 한국 생활은 이렇다. 일주일에 여섯날을 아침 8시 부터 저녁 늦게 까지 진료실에 붙잡혀 있으니 한국에 있으나 미국에 있으나 다를바가 없다. 한국의사들은 더 일을 많이 하고 자유시간이 별로 없는것 같다.
일요일이 되도 각자의 생활에 바뻐 친구들을 자주 만나 볼수도 없다. 막상 만나도 한두번이지 그 이상은 별로 할 이야기 거리도 없다. 병원일에 매달려 있다보면 더 이상의 생활이 없으니 이야기 거리가 있을수 없다. 그만큼 의사 생활은 메마른 것이다. 동기들도 본 직장에서는 은퇴를 하였으나 대부분 아직 일을 하고 있다.
질병이야 다 한가지 이겠지만 한국의 의료방식은 좀 다르다. 약 쓰는 것도 다르고 환자 다루는 방식도 다르다. 미국 촌놈같은 짓을 많이 했다.

그러나 부인은 한국생활을 진정 즐기는것 같아 보였다. 거리에 나가면 모든 사람들이 자기와 똑 같이 생겨 편안하고, 우선 영어를 않해도 되니 무엇보다 좋다고 한다.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나가 친구들 만나 수다를 떨고, 한국음식먹고, 이것저것 구경하고 , 다시 지하철타고 집에 오면 하루가 꿈같이 지나가 버리고 만다고 한다.
허기사 인디아나의 조용한 작은 마을에서 오래 살다보니 한국친구가 없어 적적하였겠고, 한국음식도 무척 그리웠을 것이다.

따님도 시카고에서 레지덴트 수련을 끝내고 뉴욕으로 이주한다 하며, 인디아나 강가에 새로지은 그림같은 집도 팔고, 모든것을 정리하는 것을 보면 이제 시카고 커넥션이 완전히 끊어져 버리는것 같다.
신시나티에 살던 이건일선생도 그 호화주택을 팔고 곧 LA 로 이사한다고 한다. 모두 떠나고 나면 중서부에는 혼자 남는 기분이다.
은퇴를 하고는 대개 따뜻한 고장이나 자녀들이 정착한 곳으로 이사를 간다. 늙으면 할수 없는 모양이다. 우리 동기들은 은퇴하여 주로 버지니아나 캘리포니아로 많이 이사했다.



사실 지난 겨울은 너무나도 춥고 길었다. 시카고에 삼십여년 살며 그렇게 춥고 긴 겨울은처음이다.
이곳에서 평생을 산 미국인들도 혀를 내두르며 잔인했던 지난겨울을 회상한다. 꽃나무들도 놀랐던지 금년에는 개나리꽃을 본사람이 없다. 꽃이 나오려 하다 질겁을하고 다시 들어간 사이 잎이 나와 버린것 이다. 봄소식을 제일 먼저 알리는 목련꽃도 부실하게 피었고, 화단의 모든 꽃들이 비실비실한다.
오월말 동창회 골프대회 하기전날도 눈발이 날려 주최자들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지구 온난화니 엘니뇨니 하는것이 모두 호사가들의 말장난같아 보였다.

그래도 봄은 오겠지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또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세월호의 침몰은 본국에 있는 사람이나 해외에 있는 사람이나 모든 한민족을 슬프게 했다. 타민족들도 애처럽게 생각 했다.
수많은 어린생명을 앗아간 사건 자체도 안타깝거니와, 그런 사고가 일어나게 된 배경, 그 후에 전개되는 일련의 사태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사십년전 내가 한국을 떠날때, 가난하고 아직 후진국의 대열에서 헤맬때, 그때의 모습을 다시 보는것 같아 서글펐다.
해외에 있는 한인들은 한국의 눈부신 경제적 발전이 자랑스러웠다. 이제 완전히 선진국 대열에 들어 섰나보다 하고 믿었다. 출가한 여인이 친정집이 번뜻하면 자기도 시집에서 체면이 서듯, 미국에서도 타민족에게 자부심을 느꼈었다.
그러나 감정적 반응이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고, 법을 조롱하고 국위를 짓밟는 행동도 서슴없이 행하는 것을 보면 국민성의 성숙이 경제발전에 걸맞게 따라가지 못한것 같아 부끄러웠다.

그간 벅찬 생활에 쫒기며 조용한 시간을 가질 여유도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이해도 반이나 지나갔다. 지난 십년, 이십년을 생각하면 어제와도 같다. 앞으로 올 십년, 이십년에 내 나이는 얼마나 될것이고 어디서 무엇을 하게 될것인가?

개나리꽃이 피지않고 잎새가 나오듯, 금년봄은 영영 오지 않고 여름이 될것인가.

2014년 6월 13일, 금요일, 보름달이 떴다.
미국사람들이 공연히 불안해 하는 13, 금, 만월(full moon)이 다 합쳐진 날이다.



시카고에서 노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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