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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연속 단편] 죽음 앞의 삶 - 전지은 (5)

2011.07.07 06:59

전지은#76 Views:5415

죽음 앞의 삶 - 전지은 단편 연재

죽음 앞의 삶 (5/6)
전지은


일러스트·조은명
Kathy Smith

어느 날 암 병동의 케이스 매니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한국 환자가 있는데 좀 도와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시간 되는 대로 가기로 하고 환자의 병력을 미리 알기 위해 방문해야 할 환자 이름과 방 번호를 물었다. ‘Kathy Smith’. 성명만으로는 한국인임을 전혀 알 수 없었다. 환자가 미국으로 건너온 것은 1960년, 이후 한 번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 50년 가까운 세월을 미국에서 살았으니 완전한 미국인일 것도 같았다. 병명은 자궁 경부암과 폐암.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고 기록되어 있다. 점심시간이 지나 시간 여유가 조금 생겨 환자를 찾아가 병실 문을 노크하며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 간호사이고 케이스 매니저입니다. 할머니를 도와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러나 환자는 어눌하고 악센트 심한 영어로 답했다. 한국말이 더 편하면, 한국말로 답을 하라고 다시 한 번 이야기하자, 그제야 한국말을 시작했다. 6·25 이후 미군 병사였던 남편을 따라 미국에 왔고, 한때 한국의 가족들과 연락을 했었지만 모두들 고달픈 짐이 되어 인연을 끊고 산다는 것이다. 자식을 낳으려고 노력해보았으나 임신이 되지 않았고, 담배를 피운 것은 50년이 넘었다. 30분이면 끝날 줄 알았던 대화는 한 시간이 넘도록 이어졌고 그래도 어디로 어떻게 퇴원시켜야 할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미국인 남편, 할아버지는 치매가 심해 한 요양원에서 지내는데, 그곳에 들어간 것이 1년은 넘었단다.

“그럼, 혼자 사시네요? 교회는 다니세요?”

한국 교회를 몇 번 나가보았지만 적응이 안 되어 지금은 어디에도 교적을 두지 않았다. 모두들 자신의 병을 심각하게 걱정하는 것 같다며 어두운 표정이다. 나를 ‘애기엄마’라고 부르며, 애기엄마가 보기에도 그런가 하고 묻는다. 늘 듣는 질문이지만 늘 답이 궁하고 당황스럽다. 가끔은 애매하게 끝을 흐리고 또 가끔은 확실하게 답을 한다. 어떤 답이 되었든 쉽지는 않다.

“그런 것 같아요. 상당히 진행된 암이거든요. 한국에 가족 있으면 연락해서 들어오게 하고 남편 쪽 친척들한테도 연락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환자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전혀 인식하지도 파악하지도 못하는 것 같아 극 처방의 답을 택했다.

“내겐 아무도 없어, 남편이 내 유일한 친구였고 전부야. 그 사람 친척들하고는 연락을 전혀 안 해.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데 뭐. 그 사람, 저렇게 아프기 전까지는 정말 좋았는데…. 정말 잘했어 나에게. 어디 가자 그러면 두말도 않고 같이 가주고, 뭐 사달라고 하면, 이틀도 안 되어 사주곤 했는데…. 한 2년 전부턴가 엉뚱한 말을 자꾸 하는 거야. 날 보고 돈 줄 테니 잠자리를 같이 하자고 하고, 이상한 몸짓도 시키고 그러다간 또 미안하다며, 손잡고 쓰다듬고, 배고프지 않으냐고 물어보고…. 그러다가 아이처럼 대소변도 못 가리게 되어서 요양원으로 보냈지.”

할머니가 얼마나 아픈지 알려고 갔었는데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만 듣고 말았다.

“그럼, 친구 분들은요? 꼭 할머니 친구가 아니라도 할아버지의 친구들 중 누구라도 연락할 사람 없나요. 그럼, 1년 동안 할머니 혼자 어떻게 사셨어요?”

이어지는 할머니 이야기는 한결같았다. 친척도 친구도 아무도 없고, 오랫동안 둘이 서로 의지하며 살았고 살 만큼 살았으니 편안하게 가면 되지 뭘 그리 아등바등 하겠느냐고 말끝을 흐렸다. 마침 회진을 돌던 암 전문의가 들어왔다. 대화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마침 잘되었다며, 여러 가지 치료 방법을 알려준다. 할머니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모든 치료를 거부했다. 그리고 편안히 갈 수 있는 임종 간호(Hospice Care)를 택했다. 그러나 실제 죽음과 마주칠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단지 혼자 집으로 퇴원하게 되면 집에서 사용해야 되는 산소와 자궁 경부에서 흐르는 악취의 분비물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영양분이 충분한 식사, 적당한 운동, 병의 진행에 따라 진통제가 필요할 수도 있는데 제 시간에 올바른 약을 챙겨줄 사람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운전을 할 수 있어 혼자 장도 보고 할아버지 면회도 가고 의사를 보러가는 일 등을 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운전하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어 매일 해야 하는 일상에 커다란 불편은 물론이고 혼자서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서너 번 전화가 왔고 삐삐도 두어 번 울렸다. 금방 퇴원할 것이 아니므로 생각 좀 해보자며 방을 나오다가 다시 한 번 한국 친척들의 연락처는 정말 없는지 물어보았다. 할머니가 직접 연락하기 불편하면 대신 전화해드리겠다고 말하며 일어섰다. 다음 날, 다시 환자 방을 찾았다. “오, 애기엄마 오늘 참 섹시하네, 검은 스타킹도 그렇고, 입술 색도 그렇고, 남편이 좋아하겠어, 호호호”라며 반갑게 말문을 연다.

할머니 말에 난 참 당황스러웠다. 내 차림새를 보고 누구도 섹시하다는 표현을 한 적이 없다. 단정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다니는 편이며 목이 깊게 파였거나 민소매거나 꽉 끼는 바지 같은 것은 절대 입지 않는다. 그런 날 보고, 왜 그런 표현을 했을까. 어쩌면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일종의 찬사라는 생각도 들었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생글거리며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생각해보셨나요? 할아버지가 입원 중이신 요양원에 함께 보내드릴까요? 그곳에서도 임종 간호를 동시에 받을 수 있거든요. 한국 연락처는요?”라고 물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퇴원 준비를 해달라신다.

“근데 말이지, 혹시 나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혹 애기엄마가 와줄 수 있어?”

어느 정도의 책임이 나에게 주어질지 모르지만 혼자 돌아가시게 할 수는 없었다. 지난 세월 동안 혼자 충분히 외로웠고, 그 외로움이 사무쳐 아픔이 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만약 돌아가시게 되면 카운티에 연락을 취해 사후 처리를 하면 되고, 퇴원 후 몇 번 찾아가다보면, 한국 친척들이나 할아버지의 친척들의 연락처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 두 가지가 다 안 된다 하더라도 한국 할머니라는 것만으로도 도와드려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한국 친구들은 가끔 내게 그런 말을 한다. 미국 생활 25년이 넘고 미국시민권자가 된 뒤에도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이 훨씬 지났으니 이젠 확실한 미국 사람이 된 것 아니냐고. 그러나 그것은 아주 요원한 이야기 같다. 아폴로 안톤 오노와 한국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경기를 할 때 난 무조건 한국 사람을 응원한다. 오노가 미국인의 우상임에도 그를 좋아할 수가 없다. 그리고 병원에서도 한국인 이름의 환자가 있으면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고 불편한 것은 없는지 더 살핀다. 어쩌면 이것은 역차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민자들이 이룬 사회이므로 그 정도는 눈감아줄 수 있지 않을까.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요양원으로 임종 간호를 받기 위해 퇴원하던 날, 한국말로 커다랗게 내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드렸다. 급할 때 꼭 연락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설핏 눈물을 글썽이며 내 손을 꽉 잡는다.

“고마워, 애기엄마. 혼자인 것은 참으로 무서워!”

할머니는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다. 별일 없다는 것이겠지만 혹, 적어드린 쪽지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연락을 드려봐야겠다.

빛의 터널

또 다른 할머니 환자도 있다. 아주 곱고 깨끗하게 늙으셨다. 병명은 뇌졸중. 뇌출혈이 심해 호흡기능이 저하된 상태. 인공호흡기를 단 채 경과를 보고 있었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할아버지를 다음 날 만났다. 환자가 살 수 있는지 무척 걱정했다. 자식들은 모두 다른 주에 살고 있는데 연락해 오도록 할까 물어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환자는 아무런 차도가 없이 일주일을 보냈다. 자는 듯이 누워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호흡하는 할머니는 참 편안해 보였다. 물론 인공적으로 잠을 재우는 약물과 진통제를 간혹 주사했지만 전신 감염 증상도, 인공호흡기로 인한 폐렴 증세도 없었다. 가족들이 다 모이자 잠을 재우던 약물을 줄이고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할머니가 깨어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빨리 주위를 알아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다음 날, 물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할머니는 일어나 앉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앉아 잡지를 뒤적거리다가 문득 말을 꺼냈다.

“난 거기 가서 애들이 잘 있는 거 보고 왔어요.”

“무슨 소리야?”

“거기 갔더니 죽은 우리 아이들이 다 잘 있습디다. 아직 어린데 날 알아봅디다. 한참 안아보고, 함께 있으려고 했는데, 당신이 기다린다며 아이들이 자꾸 가라고 해서 돌아왔어요.”

“그래. 아이들이 다 잘 있다니 다행이네. 그런데 힘들어 보이지는 않고?”

되묻는 할아버지 목소리에 물기가 가득했다.

“걱정 안 해도 되겠습디다. 뭘 하는지 몰라도 보기 좋았어요.”

할아버지가 할머니 손을 꼭 잡은 채 한참을 놓지 못했다.

노인 부부에게는 자녀가 다섯이었다. 그중 셋이 노인 부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둘은 아주 어릴 적에, 또 하나는 사춘기 때 사고로 먼저 갔단다. 자식들을 먼저 보낸 할머니는 늘 가슴이 먹먹하다고 했다.

“여보, 답답해! 답답해 죽겠어.”

손으로 가슴 쓸기를 습관처럼 했던 할머니.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 심정은 설명이 필요 없는 것이리라. 할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죽음 직전까지 갔는데 그곳에서 죽은 자식들을 다 만나고 온 모양이다. 죽은 아이들을 만나고 왔다는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할머니의 깊은 꿈속에서 비몽사몽간에 일어난 일이든 할머니는 먼저 간 자식들을 만났고 다시 이승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잘 지내고 있는 것을 확인했으니 앞으로의 삶에서는 명치끝의 고통이 덜하지 않을까 싶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손등을 쓸며 “아이들 만나러 가느라 이렇게 쓰러진 거였구먼. 이제 만나고 왔으니 그만 털고 일어나. 난 또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이제 그만 아이들을 가슴에서 내려놔. 이젠 내 손만 잡고 있으면 돼”라고 했다. 할아버지의 그 한 마디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죽은 자식들이 잘 지내는 것을 확인하고 온 때문인지 할머니는 며칠 사이에 몰라보게 좋아졌다. 후유증으로 말은 느려지고, 왼쪽 팔은 약해졌지만 재활 치료를 받으면 생활하는 데는 별문제가 없을 것 같다.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았던 자식들의 죽음을 이제 그만 내려놓으며 편안해지고, 할아버지와 함께 오래오래 해로하라고 말씀드리자 고개를 끄떡이는 표정이 참 부드럽다. 타지에서 왔던 장성한 아들딸은 모두 돌아갔다.

조용한 시간에 할머니가 다녀온 곳은 어떤 모양이며 멀리 보이는 빛은 어떤 색이더냐고 물어보았다. 모양은 분명하게 기억 못하지만 긴 터널 같고 그곳의 빛은 참으로 곱고 아련하더라고 전해준다. 아이들이 있던 곳은 아주 포근하고 따뜻하며 푹신한 통같이 느껴졌단다.

그래! 천국은 있는 것이구나! 천사 같은 아이들이 먼저 가 살고 있는 곳이니 속세와는 다르겠지. 나도, 우리들도 그곳으로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날 밤은 기도하는 자세가 되어 그분의 소리 청해 듣고 싶었다.

(다음에 계속)

Source: 신동아 2010년 11월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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