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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에즈라 파운드와 파시즘

2011.07.09 22:12

정유석*64 Views:6327

파리에서 4년을 지난 후 에즈라 파운드는 이탈리아의 라팔로로 옮겨 20년 이상 머물렀다. 그는 라팔로에서 매년 정기연주회를 개최하여 고전에서 현대에 이르는 광범한 음악을 청중에게 선사했다. 특히 사후에 철저히 무시당해 왔던 비발디의 유작을 발굴하여 20세기 악계에 다시 등장시킨 공헌도 크다. 많은 작가들이나 음악가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 라팔로를 방문했다. 이 도시는 파운드로 인해 소규모지만 활발한 문화 활동 중심지가 되었다.

“칸토”에서도 자주 다루었지만 그는 일차대전 전후 급속히 악화된 경제문제에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 전쟁이란 국제 자본주의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경쟁의 결과로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절제되지 않은 자본주의의 해악을 극복하는 방법은 소수의 은행가나 재벌들이 장악한 권력을 국가가 장악해서 국가 신용도를 높이고 결과로 일반 대중의 소비력을 증진시켜야 한다는 이론을 지지했다.

무솔리니의 정력적인 성격과 금융제도 개선에 대한 약속을 보고 유럽이나 미국에서 많은 지식인들은 그가 이탈리아의 경제를 부흥시킬 원동력을 지닌 위대한 사회 개혁가로 간주했다. 적어도 1935년 그가 이탈리아 군대를 보내 에티오피아를 무력 점령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를 지지하는 미국 인사들은 ‘타임’과 ‘라이프’ 잡지를 발간한 헨리 루스 부부까지 포함되어 있다.)

당시 만연한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대체하기 위해 소수의 자본가를 대신해서 노동자, 농민인 무산대중이 권력을 쥐어 독재를 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방침이었다. 그러니까 전제주의인 점은 같으나 그 주체가 상반되어 있어서 이들은 결코 동존할 수 없는 적대적인 이론이었다.

한편 “칸토” 45번에 밝힌 대로 파운드는 고리대금업은 인간 선의 창조적 본능에 해악을 끼치는 직업으로 보았다. 그런데 1932년대 고리대금업자 대부분은 유태인이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그는 반유태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1933년 무솔리니를 만났는데 이 독재자가 전 세계 경제는 소수의 유태인 자본가들에 의해 놀아나고 있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었다.
파시즘은 서구식 보수적 정치관에 사회주의를 접목시킨 형태같이 보인다. 따라서 파시즘은 좌파의 평등주의와 우파의 정통권위주의가 융합되어 있다. 당시 소련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국제 노동 계급 독재인 공산주의에 맞서 파시즘은 국가나 민중을 강조하게 되었다. 파시즘 중심에는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전지전능한 지도자가 위치한다. 민중이나 당원은 기꺼이 지도자에게 충성을 바치며 지도자의 권력을 칭송하고 맹종하게 된다.

파시즘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평민임을 강조한다. 그들은 “위대한 보통사람”이며 순수한 의지를 영웅적으로 실현할 “외로운 인간"으로 부각시킨다. 그래서 무솔리니는 파시즘을 “민주적 전제주의”라고 기술했는데 어쩌면 맞는 말이다. 파시즘은 자기와 다른 모든 체제와 싸워야 하기 때문에 평화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싸움의 대상은 첫째, 공산주의, 다음이 사회주의, 그리고 유태인과 자본주의 및 “퇴폐적” 자유주의가 그 대상이 된다.

따라서 평화주의나 주창하고 투쟁을 포기하는 것은 자기희생이 필요한 마당에서 안주하려는 비겁한 자의 행위로 간주된다. 전쟁을 통해서만 모든 인간이 지닌 에너지를 극도의 긴장상태로 항진시키며 그런 용기가 있는 사람에게 고귀함을 부여한다. 그래서 파시즘은 “외부의 적”을 공격하는 것을 합리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사하고 졸렬한 짓은 무솔리니가 당시 가장 약한 아프리카의 약소국 에티오피아 같은 식민지역을 강점하거나 히틀러가 동부 슬라브 땅에 침범한 점이다.
그러나 그들은 “내부의 적”이 있음을 깨닫고 이들과 싸워 소탕해야 했다. 그 대상은 유태인들이나 집시 족이었다. 불순하고 사악한 유태인들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기 민족의 순수성을 유지하려면 본거지가 없어 전 유럽에 산재한 유태인과 집시 족들의 뿌리를 내리기 전에 철저하게 박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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