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English
                 

Essay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3 - 운수점

2011.08.08 03:29

이기우*71문리대 Views:6086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3
Photobucket



3. 운수점


엄마와 방물장수가 건너방으로 들어가서 무릎을 마주 댈 듯이
앉자 나도 그 옆에 끼어 앉았다.
방물장수는 엄마에게 가락지가 있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빈손을 내보이며 없다고 하자
방물장수는 이런 전쟁 통에 반지가 있다 한들 누가 버젓이
끼고 있겠는가 하며 걱정 말라고 매디 굵은 자기 손가락에서
백통 가락지를 빼며 엄마에게 운수점을 봐 주겠다고 한다.

엄마는 무슨 영문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는데 동네
반장 같고 오지랖 넓게 생긴 방물장수는 인생의 굴곡쯤이야
오르고 내리고 별일 아니라는 듯한 몸짓으로 엄마가 남편의
소식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겠느냐며
언제 우리 아버지의 소식이 오겠는지 점을 봐 주겠다고 했다.
엄마와 나는 귀가 번쩍해서 갑자기 태도를 바꾸고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방물장수를 올려다보았다.

어느 집에 밥이 끓고 죽이 끓는지 안 보아도 속사정을 훤히 아는
방물장수는 삼십도 안 된 서울 아씨 젊은 애기 엄마가 난리에
얼마나 고생이 많으며 답답하겠느냐고 자기가 아주 용하게
운수점을 칠 줄 안다고 했다.

평소에 점치는 것을 생각하거나 믿는 것 같지 않는 엄마 인데
지금 엄마 모습은 고양이 앞에 쥐 모양으로 기라면 업드려
기기라도 할 것 같이 맥을 못추고 앉아 있다.

그동안 피난통에 어린 사남매를 데리고 고생이나 남편 걱정을
사람들 앞에 보이지 않았던 엄마도 갑자기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나도 아버지라는 말을 듣자 가슴이 막 뛰기 시작 하고 엄마가
울면 나도 따라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방물장수는 나더러 부엌에 가서 놋대접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나는 얼른 아무도 없는 부엌에 가서 빈 놋대접을 들고 왔다.
그때의 놋대접들은 지금의 냉면 그릇처럼 컸다.

빈 놋대접을 가지고 오니 방물장수는 벌써 가락지를 실에
매달고 실 한쪽 끝은 엄마의 손에 쥐어주며 가락지가 움직이지
않고 방바닥에 닿지 않게 눈앞에 가만히 들고 있으라고 했다.
나더러는 놋대접에 가락지를 담듯이 가운데 놓으라 하고
가락지는 놋대접 가장자리나 바닥에 닿지 않게 엄마가 들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엄마더러 눈감으라고 하고 조용히 속삭이는 말로
주문을 외우는 것이었다.
내용은 무슨 용하다는 장군님인지 신령님인지 청하면서
만약 우리 아버지가 살아계셔서 곧 좋은 소식이 오겠다면
가락지가 놋그릇을 땡땡 울려 달라고 비는 것이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실에 매달린 가락지를 움직이지 않게 들고
있는 엄마의 가냘픈 손가락이 떨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 하였다.

방물장수의 주문에 힘이 들기 시작하면서 나까지 세 사람은 무슨
마력에 빨려들듯 머리가 핑하도록 집중하였고 가락지가 점점
신통력을 발휘 하는 것 같았다.
엄마는 손을 안 흔들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지만 어느 결에
실에 매달린 가락지가 뱅글뱅글 우왕좌왕 놋대접의 전을
부딪히고 말았다.
가늘게 째앵 하는 다음 부터 방물장수의 주문은 최고조에 달한다.

"강씨 대주 30세 좋은 소식이 빨리 온다면 때앵땡~ 때앵땡~
크~게 울려주십시요~~"
"더 크~게 울려주십시요~~~"

엄마는 홍조를 띄우고 이마에 땀이 맺히면서도 움직이지
않고 태연하려 애쓰는것 같은데 이번에는 정말 때앵땡~ 때앵땡~
백통 가락지가 놋그릇 전을 치는 것이 아닌가.
아마 엄마의 손이 떨린 것보다 심장이 더 쿵쾅쿵쾅 온몸을
흔들었을 것이다.
나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일어서서 손벽치며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혹시 불경 스러울가 방물장수의 눈치만 보고 있는데
방물장수는 가락지가 시계추 마냥 제법 왔다 갔다 여러번
힘차게 놋대접을 때앵땡 때앵땡 친 것에
만족한 듯 젊잖게 주문을 낮추며 천천히 신령님이
용하시다는 칭송까지 덧붙이고 끝을 맺었다.

나이로 치면 3세대의 여자 셋이 한 찰나를 벼랑 위 암자에
있었던 듯 아니면 긴 여름날 강물위에 배를 띄우고 졸았던 듯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왔는지 우리는 최면에 걸린 듯 했다.
엄마는 울었는지 땀이 흘렀는지 얼굴을 닦고 있었고
나도 손에 땀이 나고 얼굴이 화끈 거렸다.
날씨가 더웠는지 문 닫아 놓은 방안도 후끈 하였다.

방물장수는 엄마에게 이제 좋은 소식이 곧 올 테니
아무 걱정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어쨌든 엄마와 나는 방물장수가 고마웠고 방물장수는
아주 후덕하고 좋은 사람 같았다.

나는 너무 기뻐서 이 좋은 소식을 온 세상에
빨리 알리고 싶어서 벌떡 일어섰다.
막 방문을 박차고 나가려는 순간 내 치마가 뒤로 당겨졌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엄마가 당황한 얼굴로 나를 잡아당겨
앉히고 오늘 점 친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말 하지 말라고 했다.
점을 친다는 것이 부끄러운 짓인가 아니면 젊은 여자가 남편을
애타게 기다린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인가.
두가지 모두 잘못은 아니지만 부끄러울 수는 있는가 보다.
나는 엄마에게 굳게 맹세하고 안방으로 갈 수가 없어서 들로 나갔다.
안방에서는 외숙모랑 다른 식구들이 눈치껏 모른 척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조각보처럼 이어진 물댄 논에는 벼들이 새파랗게 가지런히 자라고
논과 논 사이에 논두렁이 미로처럼 이리 가다가 저기서 끊기고
또다시 이어지고 있다.
둘이 나란히 걸을 수도 없이 좁은 논두렁길이란 생각보다
걷기가 힘들다.
논두렁 중간에 물길 트는 물꼬가 있어 항상 질척거리고
빗물에 씻긴 허방이 군데군데 있고 젖어 있는 잡풀도 잘못 디디면
미끄러지기가 일쑤다.
평원을 보기 힘든 좁은 경기도 촌에서 윗 논과 아랫 논의 높낮이가
클때는 논두렁에서 아랫 논으로 굴러 떨어질가 겁이 날 때도 있다.
걷다가 반대쪽에서 오는 사람과 마주치면 아랫 사람이
얼른 논으로 내려서서 길을 비켜주어야 한다.

나는 춤을 추듯 두 팔을 벌리고 논두렁길을 겅정거리고
미로를 찾아서 깨금질을 하며 아랫 논으로 펄쩍 뛰어
내리고 싶었고 논두렁길에서 누구라도 마주치고 싶었다.

마주치는 사람에게 인사도 큰소리로 하고 논으로 내려서서
따뜻한 논물에 발을 담그고 절도 꾸벅 하면서 웃고 싶었다.
그냥 앞 강물까지 뛰어가서 흐르는 강물에 대고 소리치고 싶었다.
“우리 아버지 한테서 좋은 소식이 곧 온대요~”
오늘처럼 기쁜 날이 또 있을가.

방물장수가 용한지 정말 아버지에게서 소식이 왔다.
일년을 더 기다려야 했지만 일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이 아닌가.

나는 엄마와 약속한 이 비밀을 미련스럽게 60년 가까이 지켰다.
이제 생각하니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식구들 다 모여앉아
한 때 웃으며 백통 가락지가 놋그릇 전을 때앵땡 울렸을 때의
감격을 발표 하고 사랑의 울타리를 확인하며 재산 나누듯
추억을 나누어 식구들의 가슴에 선물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2010.7 강민숙


No. Subject Date Author Last Update Views
Notice How to write your comments onto a webpage [2] 2016.07.06 운영자 2016.11.20 18193
Notice How to Upload Pictures in webpages 2016.07.06 운영자 2018.10.19 32347
Notice How to use Rich Text Editor [3] 2016.06.28 운영자 2018.10.19 5923
Notice How to Write a Webpage 2016.06.28 운영자 2020.12.23 43839
345 천재 시인 에즈라 파운드 2011.07.09 정유석*64 2011.07.09 6925
344 [연속 단편] 죽음 앞의 삶 - 전지은 (6/6) [3] 2011.07.10 전지은#76 2011.07.10 4858
343 [수필] 지고는 못살아 [7] 2011.07.13 오세윤*65 2011.07.13 5572
342 [Essay] 손자와의 저녁산책 [8] 2011.07.16 김창현#70 2011.07.16 6251
341 [Essay] 남방셔츠 [8] 2011.07.18 오세윤*65 2011.07.18 5181
340 [Essay] 판소리 춘향가 [3] 2011.07.19 김창현#70 2011.07.19 11935
339 思婦曲 - SNU Medical 동문의 모든 아내들에게 [10] 2011.07.20 오세윤*65 2011.07.20 5307
338 SNU MD -우리들의 자화상 [4] 2011.07.23 오세윤*65 2011.07.23 5825
337 답산(踏山)의 의미 [4] 2011.07.26 김창현#70 2011.07.26 5320
336 막걸리 -1 [2] 2011.07.28 오세윤*65 2011.07.28 5313
335 막걸리 -2 [12] 2011.07.28 오세윤*65 2011.07.28 5041
334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1 - 홍천댁 [4] 2011.08.05 이기우*71문리대 2011.08.05 6633
333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2 - 방물장수 [4] 2011.08.07 이기우*71문리대 2011.08.07 7162
»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3 - 운수점 [3] 2011.08.08 이기우*71문리대 2011.08.08 6086
331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4 - 장돌뱅이 [2] 2011.08.09 이기우*71문리대 2011.08.09 6102
330 노년의 시간 [5] 2011.08.10 김창현#70 2011.08.10 5942
329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5 - 외종조부 [12] 2011.08.12 이기우*71문리대 2011.08.12 5832
328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6 - 초상집 [4] 2011.08.14 이기우*71문리대 2011.08.14 5881
327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7 - 꽃상여 [13] 2011.08.16 이기우*71문리대 2011.08.16 5219
326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8 - 진오기굿 [8] 2011.08.17 이기우*71문리대 2011.08.17 6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