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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7 - 꽃상여

2011.08.16 03:21

이기우*71문리대 Views:5219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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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꽃상여


나의 외가는 아랫동네에 진외가는 윗동네에 있었다.
윗동네 윗마을을 “웃말” 이라고 불렀다.
진외가가 있는 웃말은 오리도 안되고 우마차 길로 평편하니 한쪽으로
논밭을 끼고 산모퉁이 하나만 돌아가면 되는 가까운데 있었다.
나는 가끔 혼자서 진외가를 찾아가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외증조모님과 더불어 번성하고 정이 많은 진외가에 가면 어른들의
각별하신 칭찬과 덕담이 좋아서 이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진외가를 가려면 항상 다리가 후둘후둘 떨리고 머리털이
뒤쪽으로 땡기는것 같은 진땀나는 일이 있었다.
산모퉁이를 돌아 한적한 곳에 이르면 웃말 동네에 들어서기 전
샛길 가까운 곳에 곳집이 있었다.
종각같이 생긴 큰 방만한 초가집인데 창살 없는 통 문짝 위 처마
밑에는 나무 창살들이 많이 있어 바람이 잘 통하게 지은 것 같았다.
애들까지도 누구나 곳집에는 상여가 있고 어쩌면 귀신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알고 있었다.
어른들도 꺼리고 무서워하는 곳집인데 하물며 나 같은 애들임에야.
나는 심부름도 아니고 앞 뒤 생각없이 혼자 진외가를 간다고
가다가는 산모퉁이쯤에 이르면 괜히 왔다고 후회도 하고 다시
돌아갈까 망설이기도 한다.
그래도 이왕 반 이상 왔으니 내쳐가자 하고 마음을 굳게 먹고 되도록
길 오른쪽 곳집은 쳐다보지 않고 땅을 보고 왼쪽 길 가장자리로 빨리 걷는다.
그런데 하필 그곳쯤 길가 왼쪽 논에는 물 모아두는 웅덩이가 있어서 길에서
미끄러지면 곧장 물에 빠지니까 그것 또한 곳집 만큼 무서웠다.

외갓집으로 돌아 올 때는 진외가 식구들이 동구밖까지 전송도 해주시고
뒤에서 든든히 지켜준다는 생각이었을가 아니면 칭찬과 덕담을 받은 생기가
으스스한 귀기를 누를 수 있었는가 별로 무섭다는 생각 없이 쉽게 지나왔다.

언제 곳집에서 상여를 내왔는지 종이꽃으로 치장도 했고 작은댁 바깥 마당에
차일(遮日)을 치고 제사(祭祀) 준비가 되었다.

어제는 솜씨 좋은 영길아재가 어른들과 종이꽃을 많이 만들었다.
오빠 또래들과 놀며 어울리는 영길아재는 일에 따라 어른들과 어울리기도 한다.
진분홍 노랑 녹색 가루 물감을 각각 대접에 풀어놓고 한지를 촉촉하게 습기를
멕인 다음 한지의 끝 부분을 대접에 담가 물감이 퍼지면 건져서 말린다.
연꽃잎 만들 종이는 끝자락만 분홍 물감을 들인다.
노랑색 종이는 가위로 오려서 꽃술을 준비하고 도화지 만하게 자른
진분홍색 종이는 붓이나 긴 젓가락 같은 막대에 돌돌 말아서
막대 양쪽에서 조물조물 밀면서 주름을 잡는다.
나무 막대에서 빼낸 종이의 주름을 펴가며 잡아 댕기고 인두로 긋고
손가락에 침을 발라 종이 끝을 비벼 꼬면 연꽃잎이 되고 둥글게 피면
모란 꽃잎이 되고 주름을 남기면서 반쯤 펴고 오므리면 장미 꽃잎이 된다.
가운데 노랑 꽃술을 넣고 여러장의 꽃잎으로 감싸고 녹색 이파리를
곁들어 쥐면 한 송이 꽃이 피어난다.

아무리 천수를 다했다고 해도 영이별을 하는데 호상(好喪)이 있으랴마는
이러한 애상(哀喪)에는 간략하게 서두르는 것이 상책이다.
자식 앞세우는 부모가 무슨 굴건제복이며 철모르는 아이들이 어찌
상주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전쟁중에 변을 당했으니 복(服)재기들도 몇 안되고 쓸쓸했다.

외증조부님상 때는 동네 여자 모두에게 깃광목으로 복(服)을
입혔다고 외숙모와 엄마는 자랑이다.
그때는 깃광목을 빨아서 광목 치마 저고리 만들면 평상복도 되니까
작은 시골 동네사람들이 식구처럼 복(服)을 입게 해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떻게 발인제를 지냈는지 곡성소리도 지친 무리에서 갑자기 큰 파도가 일듯
출렁하니 상여가 불쑥 솟아오르고 그 물결에 따라 와르르 무리들이 파장을
일으키며 무거운 화음으로 통곡이 터졌다.
허공의 파도를 잡으려는 듯 몸부림치는 홍천댁은 손도 제 손이 아니고
발도 제 발이 아니었다.
악몽에 가위 눌리는 것은 아닌가?
입에서 말도 안 나오고 눈에서 눈물도 마르고 이제는 손발도 제멋대로
휘적휘적 나는지 걷는지 파도에 떠밀린듯 눈앞이 하얗다.
못 떠날듯 못 떠날듯 너울대던 상여가 만장 깃발을 따라 앞으로 나갔고
뒤를 이어 수철엄마와 영길엄마의 부액(扶腋)으로 홍천댁이 비실비실
밀려가고 있다.
동네사람들 모두가 한 무리의 물결처럼 출렁이고 있다.


***
(선소리) “저승길이 멀다 해도 삽작(대문) 밖이 황천이네~”
어허 어어어~ 어기넘차 어허어~

(선소리)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북망고개로 나는 간다~ ”
어허 어어어~ 어기넘자 어허어~

(선소리) “이길을 가면 언제 오나, 인생일장 춘몽이드냐~”
어허 어어어~ 어기넘자 어허어~

(선소리) “니를 두고 혼자 가니 서러워서 못 가것네~”
어허 어어어~ 어기넘차 어허어~

(선소리) "이제 가면 언제 올라나, 오마는 날 알려주소~"
어허 어어어~ 어기넘차 어허어~

(선소리) "앞동산의 두견새야, 너도 나를 기다리나~"
어허 어어어~ 어기넘차 어허어~

(선소리) "뒷동산의 접동새야, 너도 나를 기다리나~"
어허 어어어~ 어기넘차 어허어~ "

(선소리) "두견 접동아 우지마라, 나도 너를 찾아간다~"
어허 어어어~ 어기넘차 어허어~

(선소리) “북망산이 멀고 먼데 노자없이 어이가리~”
어허 어어어~ 어기넘차 어허어~
*** [퍼옴]

수철 아버이가 선소리꾼 요령잡이이다.
요령을 흔들면서 선창하는 수철 아버이는 언제 이런 것들을 배웠나.
밭에서 농사나 짓는 수철 아버이 인줄 알았는데 구성진 목소리가
동네를 울리고 동네사람들을 울린다.
후렴으로 따라 부르는 상두꾼 아저씨들의 가락이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달래준다.

엄마는 요령 흔들면서 선창하는 사람이 말이 막히면 해롭다고 한다.
어디가 어떻게 해로운지는 아무도 말을 안 해준다.
아마도 이런 심각하고 중요한 일을 그르치면 안 되니까 잘 해낼 수 있는
사람한테 책임을 맡겨야 한다는 말일게다.

작은댁 마당에서 한 바퀴 돌아 나온 상여는 길을 따라 외갓집 쪽을 향한다.
그리고 느티나무를 지나고 언덕을 올라 산기슭을 타고 선산 쪽으로 갈게다.
애들까지도 뒤에서 따라 가던 물결이 외갓집 바깥 마당가에서 주춤주춤
앞에서부터 멈추었다.

“생여가 붙었시유~”
“그러게유~”
동네 여자들의 쯧쯧 혀차는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원퉁해서 발걸음이 안 떨어 지겠지유~”
“오죽 허겠시유~ 생여가 형님댁에 쩔꺽 붙어서 안 떨어 지니~”

이게 무슨 소리람.
나는 무리의 뒤에서 따라가며 상여 네모서리에 불거져 나온 장식들과
색색의 꽃장식이 슬프도록 곱고 너울대는 하얀 상여 포장 너머로 보이는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같이 너울대는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 깜짝 놀랐다.

상여가 안 움직이고 붙었다는 이야기는 황진이 이야기를 통해서 누구나
아는 이야기 아닌가.
이런 낭패가 어디 있는가.
외갓집에 무슨 원한이라도 서려 있는가.

나는 무리의 뒤에서 사람들을 헤치고 상여가 어떻게 쩔꺽 붙었는가
살펴보러 상여 옆으로 바짝 다가갔다.
상여는 땅바닥에 붙은 것이 아니고 열두명이나 되는 상여꾼 아저씨들의
어깨위에서 아직도 너울대고 있었다.
애들은 어른들과 얼굴을 마주하려면 고개를 쳐들고 보아야 하나 애들
눈높이로 보면 어른들 치맛자락이나 바지 가랑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상여 밑으로 열두명의 상여꾼 아저씨들의 짚신발에 하얗게 행전(行纏)친
다리들이 눈에 쉽게 들어왔다.
답삭답삭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는 짚신들의 행렬이 앞으로 가야 하는데
제자리 걸음이다.
쩔렁쩔렁 요령 소리에 맞추어 만장을 치켜든 아저씨들의 발들도 똑같이
자박자박 걷는것 같은데 제자리 걸음이다.

수철 아버이 선소리꾼은 아예 뒤로 돌아서서 상여를 마주하고 눈을
감은채 제자리 걸음으로 더욱 구성지게 선소리를 뽑고 있다.
상여밑의 많은 다리들이 왼발 오른발 똑같이 들었다 놓았다 하는것이
한 마리 지네의 많은 발처럼 보였다.

내가 더 많은 생각을 할 틈도 없이 큰외숙의 달래시는 음성과 엄마와
외숙모의 울며 고개 숙여 하는 축수를 들었다.
"어서 편안히 가시게"
"서방님 식구들 걱정일랑 마시고 훌훌 떨치고 좋은데로 편히 가십시오"
"이제는 이생에서 못다 한 복 저 세상에서 누리고 편히 쉬시오"
동생뻘 되는 망자에게도 하대를 안한다.
외가에서 노제를 준비 안한 것이 서운 했지만 노제를 준비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것 같았다.
큰외숙께서 준비하신 돈을 꺼내 매어놓은 새끼줄에 끼우고
선소리꾼 아저씨께 어서 어서 좋은 곳으로 모시기를 당부 하였다.

선소리꾼 아저씨가 요령소리에 맞추어 뒷걸음질을 치니 붙었다던
상여가 서서히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무리의 물결도 서서히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상여가 원한이 있어서 붙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느티나무 아래에 가서는 선소리꾼 아저씨도 앞을 향해 걸었고 물결이
빨라지는 듯 하면서 대부분의 여인네들이 물결에서 떨어졌다.

이제는 영 이별이구나.
상여가 붙지않고 쉽게 떠나가니 다행이라 안심하던 마음에 갑자기
쨍하며 겨울에 여주강 얼음 얼면서 쬐이는 소리가 들렸다.

동네 사람들은 다시 작은댁으로 가겠지.
나는 성자와 이 슬픈 물결을 좀 더 따라 가다가 여주 강과 동네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다랑고개 위에서 다락바위로 가야겠다.

마태오빠도 지금은 성자 오빠랑 같이 멀리는 강변이 보이고 눈아래
개미행렬 같은 우리의 행렬을 눈이 시도록 내려다보고 있겠지.

2010.8 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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