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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12 - 누에치기

2011.08.24 07:25

이기우*71문리대 Views:7599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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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누에치기


나는 운좋게 1952년 봄 외갓집에서 누에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외갓집에서 마지막 했던 양잠 이었고 나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보는 누에치기 이었다.
왜정 시대에는 고치를 공출 당했기 때문에 싫으나 좋으나 해야 했고
누에씨는 배급을 받았다고 한다.

전에는 집에서 명주를 짜기도 했지만 지금은 명주 짤 사람도 없고
집에서 필요한 생사를 만들어 쓸 만큼 만 누에를 친다고 한다.
지금도 골방에 차려 놓은 베틀에서 쉬엄 쉬엄 무명은 짜고 있지만
명주는 짜기 힘들어서 집에서 아무도 배우려 하지 않으니 고치가
많으면 명주 짜는 사람한테 맡겨서 명주를 짜 올수도 있다고 한다.

외증조모님은 어디서 구하셨는지 고치 한 쪽박을 다락에서 꺼내서
골방에 두었다가 다시 안방으로 신주 모시듯 애들은 근처에 오지도
못하게 하시며 애지중지 하셨다.
안방 아랫목에서는 채반에 한지를 깔고 고치에서 나방이 나와 알을
까도록 준비를 하시며 미리미리 건너방을 비우고 누에칠 준비를 하셨다.

누에 기르는 방은 따로 깨끗이 치우고 구둘장 연기가 새지 않게
도배장판을 다시 하고 습하지 않게 군불을 때고 통풍도
가끔 하고 담배도 안 피우고 금하는 것이 많다고 한다.

솜씨 좋으신 큰외숙과 외숙모는 건너방 가득히 나무틀을 짜서 층층이
선반을 매고 소쿠리 같이 대나무로 짠 네모진 채반을 많이 준비해 놓으셨다.
말하자면 물건 창고 마냥 사람 드나 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선반 마다 누에를 기를 채반을 준비한 것이다.

섶은 깨끗이 말려두었던 짚을 마늘 접 엮듯이 가운데를 엮어
고치길이의 세배 가량 약 10 센티 폭으로 잘라서 높이
들고 살살 돌리면 나선형의 입체적인 엉성한 섶이 되어 누에가 뽕을
다 먹고 고치를 지을 때 올려놓으면 공간마다 들어가서 고치를 짓는다.

겨우내 말라있던 고치를 뚫고 나방이 기어 나와 미리 깔아 놓은
한지위에 기름칠한 좁쌀처럼 반지르르한 알을 낳았다.
나방도 짝짓기를 한다니 언제 했는지 알 수는 없다.
한 나방이 백 개 이상의 알을 낳는다니 집에서 기르는 정도로는 고치
한 바가지만 씨로 잘 보관하고 나머지 고치는 삶아서 말려 두었다가
생사를 만든다.
생사는 나일론이 없었던 시절이라 쓰이는 데가 많았다고 한다.
그때는 무명 옷도 뜯어서 빨아서 삶고 하는데 옷 만들은 것을
뜯는 것도 큰일이었다.
그래서 삶을 수 있는 무명옷을 생사로 재봉틀에 박아 만들면 빨아서
삶을때 생사가 녹아서 없어진다고 한다.

고치를 미리 삶아두지 않으면 봄에 나방이 구멍을 뚫고 나오니까
실이 끊어져서 생사를 만들 수가 없다고 한다.
생사를 뽑을 수 없는 구멍 뚫린 고치와 못생기고 결함 있는 고치는
풀어서 풀솜을 만드니 씰크 솜이다.
풀솜으로 만든 명주 솜이불은 따뜻하고 가벼워서 아주 귀하게 여기고
집안에 제일 어른이나 쓰시고 애들은 구경도 못한다.

누에들은 어떻게 세월을 아는지 연한 뽕잎이 파랗게 나올 때쯤 알에서
깨어 조그만 회색빛 개미같이 애기 누에들이 되어 꼼지락 거린다.
이렇게 어린 애기 누에들은 선반에 올릴 수도 없어 안방 아랫목에
놓고 며칠을 기른다.

애들은 증조모님의 걱정에 가까이 곁에 가 만져 볼 수는 없지만
아랫목에서 꼬물대는 벌레들을 징그럽다고 하면서도 다가가려고
밀치기를 하면서 낄낄거린다.
증조모님은 부정 탄다고 애들이 나쁜 말도 못하게 하시면서 누에는 깨끗
하고 똥까지 거름에 좋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귀한 벌레라고 하신다.

누에 기르는 동안에는 애들이 마루에서 뛰지도 못하게 하셨다.
우리는 조그마하시고 걷기도 힘들어 하시는 증조모님의 꾸중은 무섭지도
않아서 언제나 떠들고 딩굴며 말썽을 부렸다.

이모는 나와 같이 어린 뽕잎 잎사귀를 조금 뜯어다가 채 썰어서
누에위에 뿌려 주었다.
애기 누에들 한테는 뽕잎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매일 아침 뽕잎을 새로 따 와야지 미리 따오지도 않았다.
뽕잎을 주고 몇 시간 후에 다시 와 보면 수많은 작은 누에들은
도망 안가고 어린 뽕잎 위로 전부 올라와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뽕잎도 자라고 누에도 자란다.
신기하게도 누에의 길이와 뽕잎의 길이가 똑같이 자라는 것 같다.
이삼일 사이에 누에들이 작은 송충이 처럼 꼬물 거리고 있다.
누에들은 며칠에 한번씩 허물을 벗으려고 잠을 잔다고 한다.
잠을 자고 나면 누에들이 커지고 그때마다 채반을 늘려 분가를 한다.

이제는 뽕잎을 채 썰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뽕잎을 채반위에 뿌려주면 누에들이 기어 올라오고 뽕잎채 다른
채반으로 옮겨주면 분가가 된다.
점점 뽕잎을 많이 따와야 되고 때마다 채반을 늘려서 선반 마다
누에들이 꽉 들어차게 된다.
혹시라도 비오는 날에는 뽕따러 갈 걱정을 하고 누가 따러 가나 꾀를
부리기도 한다.
누에가 한잠 자는 날이라고 하면 하루 쉬기도 하지만 매일 아침 저녁으로
뽕따 오고 채반을 늘리고 누에 똥을 치우고 누에 천지가 된 것 같다.

이때는 층층으로 한방 가득히 채운 채반에 누에들이 가득하다.
애기 누에들이 매일 같이 뽕을 먹고 하얗게 어른 가운데 손가락 만하게
자라는 동안 누에들이 징그러운 게 아니라 한집안 식구들 같아진다.
몇 마리의 누에를 길렀는지 잘 모르지만 천 마리는 넘었을 것 같다.

어느새 홍천댁이 건너방으로 뒤따라 들어 왔는지 외숙모님께 호들갑 스럽게
“성님 생사 뽑으면 저한테도 좀 주세요” 한다.
외숙모님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낸 후
“그래 내가 자네 쓸 만큼 어련히 안 줄란가?” 되물으신다.
“많이요 성님 ~”
“걱정 말게, 석 삼년을 쓰고도 남게 주고 말고.”
빙그레 웃으시는 외숙모님도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 젊은 청춘과부가 구만리 같은 앞길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젊잖으신 외숙모님과 귀엽게 당찬 홍천댁은 대조적 이었지만
모두 아름다운 여인들이다.
옆에 이모가 말 끼어 들 틈도 없이 홍천댁은 서두른다.
“작은 애기씨 뽕 따러 갑시다”
뽕 따~러 가세! 뽕 따~러 가세~. 노래가 절로 나올 것 같다.
물론 나도 따라 나섰다.

외갓집은 뽕밭이라고 부를 수도 없이 밭과 밭 사이에 뽕나무들이
경계선처럼 열댓 그루 있었다.
세칸 짜리 방에 누에 치는데 그 정도 뽕나무들이면 충분한 모양이다.

이모는 지금 자기 나이 열아홉에 물이나 불에 뛰어들 액이 있다는
말이 맞는다고 한탄을 했다.
나는 그 말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 시대 그 시골에 너무 당돌 하다고 해야 할 과부 홍천댁도 풀이 죽어
눈물을 주루루 흘렸다.
그러고 보니 이모도 울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람.
너무도 슬프게 울고 있는 두 여인들 사이에서 나는 어색하고 먹먹하고
뽕을 따는지 마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홍천댁이야 과부된 설움에 우는가 보다 했지만 제일 명랑한 이모가 왜 울가.

나는 나중에 이모가 “일~”을 보았다는 것을 알았다.
시골에서 그냥 힘있는 말투로 “일” 하면 농사 일이다.
아주 놀랍고 슬픈 얼굴로 “일” 을 당했다고 하면 사고나 죽은 것이다.
지금 전쟁 중 남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누가 “일~”
을 보았다고 하면 그것은 공산당을 도왔다는 말이다.
“일~”을 보았다는 것은 아주 공산당원으로 6.25 전부터 이념을 가지고
활동한 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모는 농촌으로 시집가는 것은 거부하고 서울로 갈 기회를 엿보다
6.25 사변이 났고 면 사무소에서 교육시켜 준다고 계속 권유하는 바람에
솔깃해서 큰외숙 몰래 몇 번 나가다 큰외숙께서 아시고 야단을 하시니
오히려 공부 더하고 독립 하겠다고 큰소리 치다가 9.28을
맞은 것이다.

이모는 삶이 자기를 속인 것이 분했다.
이모가 “만세” 부르고 총 맞을 만큼 이념에 빠진 것도 아니고
그보다 큰외숙의 신임과 젊잖은 동네 인심 등등으로 아무 일 없이
집에 있을 수 있는 것이란다.
집에 있을수 있다는 말보다 목숨을 보존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작은 애기씨 소나기 몰려 오네요”
홍천댁이 눈물을 거두고 바구니를 집어들었다.
“아차! 뽕은 언제 따지, 누에 굶기겠네. 언니 생사도 못 얻겠어요. 호호호...”
우는 사람도 웃기는 재주가 있는 이모가 다시 웃기기 시작이다.
“잔 애기씨! 가지째라도 꺾읍시다. 하하하”
나는 어른들이 울다가 웃는 것이 참 이상했다.

나도 울고 싶은 지금은 오히려 시원한 소나기를 흠뻑 맞고 싶다.

2011년 정월 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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