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s 북가주 정치판도

2011.11.12 05:54

민경탁*65 Views:5523

백여년전만 해도
북미대육에 철도 노동자를 중국에서 수입해 놓고는,
가족도 대려오지 못하게하고, 이민도 막고,
세금도 더 내게하고 하든 시절이 있엇는데 
요새는 세상이 꺼꾸로 가는가 싶어요.

산프란 시스코 마즌 편 Oakland 시장선거에 중국 여자 분이 시장으로
당선이되드니 또 San Francisco 시장 자리가 비게 되었는데,
시장 출마자가 30 여명에 달해 혼전이 계속되는데..

중국사람은 San Francisco 인구의 25% 를 차지하는데도,
정치에 뛰어들어가겟다는 분이 없으니..

그래서 뒤에서 중국 여자 한분이 (Ms. Pak ) 억지 춘향격으로

정치에 않나가겟다는 Lee 선생을 입후보하게하고,
이 여자분이 시내 차이나 타운가서 투표를 록려하니 

孟賢  Lee 선생이 시장으로 무난이 당선됬으니
이제는 북가주의 주객이 100 만에 전도가된겁니다.

얘기들어보니 그분의 부친은 1930 년대에 광동에서 이민와서
씨아틀 중국음식점에서 요리햇다고 합니다.

어머니도 바느질하고 음식점에서 웨이트레스햇고.
그러나 자식을 잘키워 아들은 버크리 대학나오고,
전형적인 동양게 사람으로
그늘에서 일 열심히 하든 사람.


 

Edwin Mah Lee
 
(
simplified Chinese: 李孟贤; traditional Chinese: 李孟賢;
pinyin: Lǐ Mèngxián; Cantonese Yale: Leih Maahngyìhn; born May 5, 1952)
is the 43rd
Mayor of San Francisco, California.
He was appointed by the
Board of Supervisors on January 11, 2011
to serve out the remainder of former mayor
Gavin Newsom's term,
after Newsom resigned to take office as
Lieutenant Governor of California.

At the time of his appointment Lee pledged not to run for the office,
but he later decided to join the race.
Lee won the
election on November 8, 2011 to serve a full term as Mayor.

Lee is the first Chinese-American mayor in San Francisco's history,
as well as the first
Asian American elected to the office.
Before being appointed mayor, he was City Administrator.

 

 Personal life

Lee was born in 1952 in the Beacon Hill neighborhood of Seattle, Washington.
His parents immigrated to the United States from the Taishan region
in
Guangdong Province, China in the 1930s.
Lee's father, Gok Suey Lee, fought in
World War II,
and worked as a
cook managing a restaurant in Seattle.
He died when Lee was 15. His mother was a
seamstress and waitress.
Lee has five siblings. He graduated Summa Cum Laude from
Bowdoin College in Maine in 1974 and from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Law School in 1978.
He married his wife Anita in 1980 and has two daughters, Tania and Brianna
. 


이분이 시의 행정 담당하면서 금년도 균형 에산을 편성햇다는군요.

옛날 같으면 큰 소식 못되지만 요새같이 세 수입이 줄어들고
이태리 그리스 같은 정부가 적자로 휘청거리는 시기이니
이분의 업적이 사람의 시선을 모으지 않앗나 함.

Jim Wilson/The New York Times

    10. 14도산 안창호와 부인 이혜련 유학 차 샌프란시스코 도착
    11. 16대한제국 정부, 이민업무를 전담하는 수민원(綬民院) 설립
    궁내부 관제로 수민원 직제 선포, 민영환을 총재로 임명
    12. 22인천(당시 제물포)에서 하와이 사탕수수농장 이민자 121명 떠남.
    일본 나가사끼에서 미국 상선 S.S.Gaelic호로 갈아타고 호놀룰루로 향함
    1903년
    1. 13첫 한인 이민자 102명 호놀룰루 도착
    3. 13제2차 한인 이민자 63명 캅틱호로 호놀룰루 도착
    3. 09제3차 한인 이민자 72명 코리아호로 홀놀룰루 도착
    4. 30니혼마루 (日本丸) 선편으로 한인 이민자 113면 호놀룰루 도착
    6. 09파할라 통신 "하와이 사탕수수 한인 이민자들이 성실하게 일한다"고 칭찬
    7. 04하와이 몽골리아 사탕수수농장에서 김이제 전도사 인도로 예배 시작
    8. 07호놀눌루에서 홍승하, 윤병구, 문홍식 박윤섭, 임치성, 안정수 등이 정치적 단체인 신민회 조직
    9. 22샌프란시스코 동포9인이 친목회 조직
    회장 - 도산 안창호
    회원 - 박성겸, 이대위, 김성무, 위영민, 박영순, 홍종술, 김병모, 정동삼
    당시는 샌프란시스코에는 학생, 인삼장사 등 한인 20명 거주
    11. 10호놀룰루의 안정수 등 한인 전도회 시작. 홍승하 목사 예배 인도로 제일 한인감리교회 창립
    12. 05하와이 이민국은 박윤섭을 이민 통역 겸 검사원으로 임명
    1904년
    2. 22대한제국, 주미한국공사 조민희 소환
    3. 11감리교 은퇴선교사 Florence Sherman여사 남감리교 선교부 보조로 남가주대학
    인근 매그놀리아가에 한인 기숙사 세우고 영어, 성경교육, 예배인도
    현 나성 한인연합감리교회 전신
    6. 01캅틱호 선편으로 한국인 노동이민자 130명 호놀눌루 도착
    6. 04샌프란시스코에 대지진
    7. 08몽골이아호로 한국인 노동이민자 176명 호놀눌루 도착
    8. 22캅틱호 선편으로 한인 154명 도착
    9. 26몽골리아 선편으로 한인 152인 호놀룰루 도착
    11. 09이승만 사이베리아 선편으로 호놀룰루 도착
    12. 06이승만 죠지 워싱턴대학 입학
    1905년
    2. 06박용만 샌프란시스코 도착
    2. 10호놀룰루 세이트 앤드류스 교회당에서 한인성공회 예배
    2. 27하와이의 문홍석 한성여관에서 대륙간 철도 노동자 모집
    3. 06멕시코 이민선 제물포 출발
    남자 802명 아이 231명, 모두 1,033명
    3. 31만추리아 선편으로 한인노동자 278명 호놀룰루 도착
    4. 05샌프란시스코 한인들 공립협회 창립
    목적은 애국과 애족, 동족 상부 상조화 한인구호 등이며 회장은 도산 안창호
    한국정부 일본의 압력으로 하와이 이민 금지
    4. 13코리아호 선편으로 한인노동자 191명 호놀룰루 도착
    4. 14미국 정부는 알렌 주한공사 소환하고 E.B. 모갠을 새 주한공사로 임명
    4. 30오아후의 에와농장에서 한인예배당 헌당식 거행:
    호놀룰루 와드앤목사 헌당예배 사회
    윤병구 목사 농장주에게 감사 인사
    이날 참석자 모두 110명 , 미주에서 최초로 건축한 한인 예배당
    5. 15한인 멕시코 이민자 1,033명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메리다 지방 도착. 4년간
    계약이민으로 어저귀 농장에서 일함
    7. 09호놀룰루 누아누 145에 한인감리교회 예배당 설립
    와드맨 목사와 윤병구 목사 예배 인도
    7. 17하와이 거주 한인동포수 7천명을 넘어섬. 한인사회는 윤병구 목사를 한인 대표로 선정하고
    아일 (러시아와 일본)강화 회의에 보냄
    8. 13오아후섬 와이파후농장에서 한인예배당 헌당식 거행 와두맨목사, 윤병구목사,
    한국선교사 스웨러 참석, 모두 5개 한인예배당 에와, 가후구, 와일루아, 호놀룰루에 설립
    8. 14호놀룰루교회에서 한인에배트 청년회 한국선교사 스웨러목사 초청 한국정황 보고
    8. 24 호놀룰루, 와아파후, 에와, 와일루아, 가후구 각 지방 한인들 와드맨목사 제의로 한인상조회 조직
    회장-송헌주, 부회장-민찬호, 박윤섭, 서기-김성권, 재무-이지성
    9. 08만추리아 선편으로 한국 외무협판 윤치호 호놀룰루 도착.
    멕시코 이주 한인동포 예방 목적이었으나 하와이 각 지방의 한인들만 방문하고 귀국
    9. 18한국에 나가 있는 노블선교사 호놀룰루 도착
    하와이 각 지방 한인교회 방문
    10. 08샌프란시스코 한인들 한인전도회 조직
    문경호 전도사 인도로 예배 후에 상항한인감리교회가 됨
    10. 27샌프란시스코 퍼시픽가 938호에 공립협회 회관 설립 건관식 거행
    11. 04몽골리아 선편으로 한인동포22인 샌프란시스코 도착
    11. 13한국정부에 고용되어 일하던 헐버트씨 샌프란시스코 도착 공립회관 방문
    11. 17을사보호조약 체결
    11. 22샌프란시스코 공립협회 공립신보 창간 대표 송석준
    11. 25미국정부, 서울 공사관 폐쇄
    11. 30대한제국 시종무관장 충정공 민영환 자결
    12. 03미국 공사 모갠 공사관 폐쇄 후 귀국, 불란서, 영국 공사관 폐쇄
    12. 05만추리아 선편으로 호놀룰루에서 한인 8명, 샌프란시스코 도착
    12. 09남가주 파사디나에서 대동교육회 설립
    12. 16워싱턴DC 한국 주미공사관 폐쇄
    12. 17호놀룰루에서 한인22인 샌프란시스코 도착
    12. 26남가주 레드랜드지방에 공립협회 지부 설립
    12. 28호놀룰루 미국인교회에서 제1회 감리교 연회 개최
    한인교회 각 지방목사 임명 : 호놀룰루 민찬호, 에와 김영식, 와이파후 김이제,
    와일루아 가후쿠 임정수, 스판렉클스빌 신판석, 리휘 하나말루 현순, 엘리엘리골로아 이경직, 힐로올라 홍치범, 고할라 최진태, 교회월보 주필 윤병구 교회월보 발행인 송헌주, 야학교 및 복음회 감찰 이지성
    1906년
    1. 09알라메다 선편에 한인5인, 12일 사이베리아 선편에 4인 호놀룰루로부터 샌프란시스코 도착
    2. 061882년 5월 22일 한미수호통상조약 체결후 워싱턴DC에 한국공사관을 설치하고 20여 년을 외교공관으로 활동해 왔는데 아일강화조약 후 공사관을 철폐, 김윤정 대리공사 샌프란시스코에서 몽골리아 선편으로 귀국
    2. 12호놀룰루 수산나 웨슬레홈 개원식
    한일과 일인의 고아, 의지할 데 없는 부인 수양
    3. 16로스앤젤리스에 공립협회 지방회 설립
    3. 29만추리아 선편으로 호놀룰루로부터 한인22인 샌프란시스코에 도착
    4. 06호놀룰루 과학구락부원 더스틴이 하와이 도착
    이민자 발표 (1852년~1905년)
    한인 6,908명 중국인 44,494명 일본인 111,137명 포루투칼인 11,440명
    4. 12소노마 선편으로 한인 19명 호놀룰루에서 샌스란스시코 도착
    4. 18오전 5시 15분 샌프란시스코에 대지진, 사망 402명, 공립협회회관 화재,
    오클랜드로 한인 40인 피신, 하와이 에와 친목회장 정원명 지진의연금 보냄
    서울의 대한매일 신보사에서 의연금 592달러, 고종황제 1,900달러 하사금,
    공립협회 오크랜드에 다시 설립.
    5. 04호놀룰루 한인 감리교회 월보 국문활판으로 인쇄 시작
    하와이의 26개 한인교회에 보냄
    5. 10LA 교포들이 벙커힐에 집을 얻어 장로교 미션 오픈 현재의 나성 한인연합장로교회 전신
    5. 11로스앤젤레스에서 공립협회 총회 개최 :
    총회장-송석준, 서기-정재관, 학무-안창호 선출
    5. 29한인 70명 호놀룰루에서 샌프란시스코 도착
    7월초양주삼 샌프란시스코 한인교회에 부임
    8. 02한인 52인 호놀룰루에서 샌프란시스코 도착
    8. 11호놀룰루 한인감리교회 건물과 대지 1만 8천달러에 구입, 한인 기숙학교와 교회 본부로 사용
    8. 12하와이를 방문중인 한국선교사 조지 하버 존스목사 지방 판사의 "하와이 온 외국 노동자가 무식하고 빈궁하고 예의가 없다"고 한 말을 사과하라고 공개질의서를 보냄
    8. 13존스목사 한인감리교회에서 한인교회의 발전을 칭찬
    9. 02하와이 감리교회 호놀룰루에서 한인기숙학교 설립
    9. 17한인 20인 호놀룰루에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
    11. 11가와이섬 리휘농장에서 한인교회당 봉헌식 거행
    11. 2811월과 12월 호놀룰루에서 한인 220명 샌프란시스코에 도착
    12월초솔트레이크 부근 철도 부설 공사에 종사하는 한인을 위해 박제순 여관 설립
    12. 061905년에 세워진 상항한인감리교회는 처음 문경호가 예배를 인도했고, 다음은 방화중 인도, 새롭게 남감리교회 선교부에서 다시 관리하면서 양주삼을 전도사로 임명
    1907년
    1. 01호놀룰루 예배당에서 한인에베트청년대회 개최 모두 1백여명 참석, 한국의 지방전도를 위해 1백62달러 모음
    1. 02호놀룰루에서 한인 16인 샌프란시스코 도착
    1. 08공립협회 학무 안창호 귀국
    2. 04한인 22인 호놀룰루에서 샌프란시스코 도착
    2. 16하와이와 캐나다, 그리고 멕시코 등지에서 미국으로 오는 동양이민금지법 상하원 통과, 3월 14일 대통령 서명
    4. 26공립신보 제2권 제1호 국문활자로 발간
    5. 10국립협회 총회장 송석준 서거
    7. 19고종황제 퇴위, 순종황제 즉위
    7월고종퇴위 후 국권회복 위해 각 단체 통합
    미주에는 상항공립협회와 대동보국회, 그리고 뉴욕에는 공제회, 시애틀에는 동맹 신흥회 설립
    8. 01헤이그 세계 평화회의에 참석하려 한국 사절 이상설, 이위종 뉴욕 도착
    9. 02하와이 24개 단체 통합 후 한인 합성협회 조직 초대회장 임정수
    9. 24샌프란시스코 대동보국회 총무 장경 상해 도착 대동보국회 지회 설립
    10. 03샌프란시스코 대동보국회 대동공보 창간 주필 최영만, 사장 문양목
    10. 17호놀룰루 합성협회 합성신보 창간 국문판 인쇄, 김성권 집필
    11. 17알라스카 어장에서 일하던 한인 10인 샌프란시스코 귀환
    1908년
    1. 26샌프란시스코 대동보국회 제3회 대위원회 소집
    중앙회장 문양목 퇴임, 새 중앙회장 겸 대동공보 주필 백일규 선임
    3. 21한국 외교고문 D.W.Stevens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 인터뷰에서 “일인의 한국 보호는 한국에 유익한 일이 많다”고 말함, 문양목 최정익, 정재관, 이학현 페이몬트 호텔로 찾아가 정정 및 사과 요구
    3. 23오전 9시 30분 Stevens가 워싱턴 DC로 가려고 샌프란시스코 패리 정거장에 나왔을 때 장인환, 전명운 의사가 저격
    3. 25밤11시 10분 Stevens 사망
    (6월 27일 전명운 의사는 석방, 1909년 1월 2일 장인환 의사는 25년형을 받고 샌퀸틴 감옥에 수감, 1919년 1월 10일 가석방)
    4. 08김길연, 백락범 한인 50인 모집하여 알라스카 어장에 감
    4. 09샌프란시스코 대동공보 25호 발행 후 경비난으로 정간
    4. 27감리교회 동양감독 해리스 “일본이 한국을 보호하는 것은 천명” 이라고 말해 한인들 항의
    5. 23샌프란시스코에서 김밀리사 등 한국부인회 조직
    6. 24이승만, 하버드대학 문학사 학위 받음
    7. 10이승만, 콜로라도 덴버 애국동지대표자 대회 의장 피선 활약
    7. 13박용만 콜로라도 주 덴버시 애국동포대표회 소집. 독립운동 방책 토의
    9월초호놀룰루 천흥협회 천흥신보 창간, 박상화 집필
    9. 19샌프란시스코 공립회관에서 알라스카 어장에서 일하고 온 한인 환영회 개최
    12. 21샌프란시스코 한인남감리교회 월간 대동보 창간 주필 양주삼 목사
    12. 26공립신보 주필 정재관 사임, 최정익 맡음
    1909년
    1. 07샌프란시스코 공립협회 대의원 회의 소집 총회장 정재관, 부회장 최정익 선임
    1. 20현순, 하와이 유람기 발행
    2. 01미주공립협회와 하와이 합성협회는 두 단체가 모여 국민회로 새로 출발하기로 하고 발기인 선임 하와이 대표는 고석주, 김성권, 민찬호, 안원규, 이래수, 강영소, 한재명 미주는 최정익, 이대위, 강영대, 안석중, 황사용 이경의 샌프란시스코와 하와이에서 국민회 창립축하식 개최 하와이 국민회 총회장 정원명 선출
    합성신보 신한국보로 개칭, 홍종표 주필, 미주 국민회 총회장 정재관 선출
    2. 10대한인국민회 기관지 신간민보 창간, 주필 최정익
    2. 19한국의 송병준 한국의 일본 합방 찬성에 샌프란시스코와 하와이 한인들 항의 전문
    4. 22이상설, 정재관 국민회 사명을 갖고 블라디보스톡으로 출발
    5. 05샌프란시스코 국민회관 태동실업주식회사 조직 자본금은 2만 5천달러 한주의 가격 25달러
    5. 09멕시코 유카탄주 메리다 지방에 동포 305인 국민회 설립 회장 이근영
    5. 12멕시코 이민 4년 노동계약 만료 4월3일 미주 국민회 총회 황사용, 방화중 위문 차 파견
    6월초박용만, 박처후, 임동식, 정한경 네브라스카주 허가 받고 커디농장에 한인 소년병 학교 설립, 청년학생 모집 병식 훈련
    7. 14신한민보 최정익 주필 사임 강영대 편집자 임명
    10. 26안중근 의사 하르빈에서 이등박문 저격 사살
    12월초샌프란시스코 한인 감리교회 양주삼 목사 사임. 윤병구 목사 부임
    12. 18리들이에서 국민회 대의원회 소집, 총회장 황사용 선임, 하와이 국민회 이래수 총회장 선임
    1910년
    1. 30한국 기독청년회 대표 윤치호 호놀룰루 경유 샌프란시스코 도착 5월19일 위싱턴 DC 세계주일학교대회 한국대표로 참석
    콜로라도주 프리메로 석탄광 게스폭발, 100여명이 사망 한인동포 9명 숨짐
    2. 10로스엔젤레스 매그놀리아가 1620호 대동서관 문학사 이승만이 쓴 독립정신 간행
    샌프란시스코 국민회와 대동보국회 대한인국민회로 통합
    3. 05호놀룰루 신학국보 주필 홍종표 사임 노재호 맡음
    3. 07안중근 의사 변호 비용 미주와 하와이에서 모금 두 차례에 걸쳐 1,500달러 블라디보스톡으로 송금
    3. 21런던에 체류하던 이항우 샌프란시스코 도착 신한민보 영문판 책임
    3. 25로스앤젤레스에서 오운과 동지들 권업동맹단 회사 설립 농업과 상업 시도 5~6년후 실패
    5. 10대동보국회 국민회에 참가, 명칭을 대한인국민회로 고침. 중앙 총회장 최정익
    7. 12만추리아 선편으로 샌프란시스코 한미무역회사 총무 최영만 한국화물 수입위해 귀국
    7. 18이승만,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 학위 수여
    8. 10경비난으로 신한민보 9월 21일 까지 6주간 발행 중단
    8월초레들랜드에 거주하는 송석중 캘리포니아주 각 처에 사는 한일동포들을 방문 모금 활동 전개
    8. 29한일합방 · 융희 황제 퇴임
    샌프란시스코와 호놀룰루 동포들 공동회 조직
    합방반대 항의서 작성 한국황제와 일본황제, 그리고 구미열강 정부에 보냄
    9. 03이승만 박사 유럽 경유 10월 10일 서울 도착
    9. 10북미국민회 총회장 황사용 호놀룰루 도착 각 군도와 지방 순방
    10. 01샌프란시스코 국민회관 건물을 페리가 232호에 3천5백달러로 구입, 신한민보 건물로 함께 사용
    11. 17멕시코 메리다 지방에서 이근영, 양귀선 등 숭무학교 설립
    11. 28사진결혼 제1호 최사라 호놀룰루에 도착 1924년 이전까지 모두 1,100명 하와이와 본토에 도착
    12. 02하와이 국민회 총회장 이래수 사진결혼, 주례 민찬호 목사
    12. 22업랜드에서 북미국민대의원회 개최
    미주 국민회 총회장 문양목, 하와이 국민회 총회장. 정칠래 선임.

     

     

    another article:

    1. 태평양을 건넌 7,226 명의 선구자들

     

    100년전에 한국과 하와이와의 만남, 그만남은 역사적으로나 한국 해외 이민사의 의미로 보나 참으로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 하와이 초기 이민을 통해서 한국사람이 태평양을 오가는 새 다리가 놓여졌고 조용한 아침의 나라 동방과 서방 선진국 미국과의 교류가 한 세기 동안 이어져 올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역사상 첫 공식 이민의 땅이 바로 미국이었다는 것은 아메리칸 드림을 꽃 피울 수 있는 길을 활짝 연 것이며, 지난 한세기 동안 인적, 물적교류를 통해서 두 나라는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가 되었다.

    초기이민의 1번지 하와이는 한국덕립운동의 요지이다. 태평양상의 낙원인 하와이로의 노동이민으로 시작된 지난 한세기에 걸친 미주 이민사는 한국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일이었다.

     

     

     

    유교적 전통에서 대대로 살아온 서민들이 살아온 정든 고향과 가족을 뒤로 하고 신천지를 찾아나선 이민 길은 개화사상의 실천이자 본격적인 한미 교류시대를 열어간 개척자들의 의지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와이는 자연이 아름다운 땅이다 각종 특산물이 풍요로우며 그 중 사탕수수는 오랫동안 제일의 수입원이기도 했다.사탕수수는 야생으로 하와이의 각섬에서 자라났다. 처음으로 사탕수수에서 사탕을 추출한 것은 1802년의 일이고 돈을 벌기 위해서 농업으로 개발한 것은 1830년 이후의 일이다 그리고 1867년 하와이의 왕국 이 미국과 상호조약을 체결함으로서 하와이의 산물이 미국본토에 면세로 통과하게 되었다.

    그 후 하와이 사탕농업이 크게 발전하였고 경제의 으뜸이 되었다. 사탕수수 재배에 필요한 노동력은 전적으로 외국에서 불러들인 인력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래서 1852년 처음으로 중국에서 대량의 노동자를 수입하였고, 그래도 모자라서 포르투갈 일본에서 노동자를 불러 들였왔다.

    1896년 11월 2일 하와이 정부는 한국에서도 노동자를 불러오는 문제를 토의 한 후에 정식으로 이를 승인했다.

    1902년 사탕수수농주협회는 데슐러를 한국에 보냈다. 이러한 사정을 안 고종황제는 하와이 이민이 결실을 보도록 허락했다.

    한국인의 하와이 이민의 배경은 여러 가지를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한국내의 사정 때문이다. 한말에 한국인이 외국에 나간다는 것은 엄두를 내지를 못했다. 그러나 1902년 겨울 심한 기근에다 흉년이 여러해 계속되었기 때문에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는데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굶주리는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쌀을 외국에서 들여와야 했던 조정의 관리들도 미국이민에 대해 상당히 호감을 갖게 되었다.

    둘째로 고종황제는 중국인도 가기 힘든 미국으로 한국인이 이민을 갈수 있다는 데에 상당히 고무되었다.

    고종은 오늘의 외교통상부 여권과 같은 수민원의 설립을 결심했고, 수민원은 동서 개발회사와 함께 서울, 부산, 인천, 원산등지에서 한국인의 하와이 이민 선발을 위한 광고를 냈다. 이렇게 해서 각지에서 응모한 이들중 121명이 선발되었고, 1902년 12월 22일 하와이를 향해서 첫 이민선이 떠나게 되었다. 이들을 전송하기 위해서 경인 기차편으로 민영환 수민원 총재등 조정관리들이 직접 제물포, 오늘의 인천부두로 나왔다. 바다건너 낯선땅으로 떠나는 이민자들은 고향을 등지는 아쉬움속에 눈물을 흘리며 친척들과 기약없는 작별을 했다. 첫 이민선이 떠난 날인 12월 22일은 음력으로 동짓달 스무날, 인천 부두에는 세찬 눈바람이 불어와 가뜩이나 긴장되고 서러워 하는 이민자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제 1진은 대부분이 기독교 인이었고 50여명의 남녀와 20여명의 부두노동자등 다양한 계층이었다. 첫 이민자를 모집한 동서개발 회사는 이민자들에게 뱃삯과 지참금조로 일정한 돈을 주었다.

    하와이 첫 노동자들은 수민원 민영환 총제가 발급한 20여명이 병이 있는것으로 밝혀져 뒤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102명이 통역과 함께 미국 상선 S.S. Gaelic 호로 갈아타고 호놀루루까지 1 만리나 되는 뱃길에 올랐다.

    2007년 10월 이민박람회에서 미국이민정보와 미국이민에 필요한 많은 정보,미국이민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2. 1903 년 1월23일 첫 이민선 도착

    초기이민의 첫 배가 하와이 호놀룰루 항구에 도착한 날짜는 1903년 1월 13일 아침, 갤릭호가 태평야상의 낙원이라는 호놀루루에 닻을 내렸다.

    첫 이민자들은 한국을 떠나기 전에 단발을 한 이들도 있었고 상투를 그대로 틀고 온 이도 있었다. 상투를 자르지 않고 온 이들은 하외이 에서 돈만 벌면 즉시 한국 고향땅으로 귀국하기 위해서 였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역 이민을 생각하고 온 이들도 있었다.

    첫 배로 도착한 이민자는 오하후섬 와일루아 농장 목굴리아 동네에 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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