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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김종철 칼럼] 37년 전 8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12.08.16 08:18

이기우*71문리대 Views:5349

 [김종철 칼럼] 37년 전 8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박정희의 숙적 장준하, 그의 죽음이 실족사가 아니라면..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짙은 의혹에 휩싸였던 장준하(1918~1975) 선생의 죽음이 ‘실족사’가 아니라 타살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검안 결과가 나왔다. 37주기를 앞두고 유족과 장준하추모공원추진위원회 관계자들이 이장(移葬) 과정에서 고인의 유골 감정을 서울대 의대 법의학과 교수에게 의뢰한 결과 타살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밝혀진 것이다.

검시를 한 교수는 유골의 머리 뒤쪽에서 6cm 정도 크기의 구멍과 머리 뼈 금이 발견돼 ‘인위적인 상처로 보인다’는 1차 의견을 냈다. 8월 15일자 한겨레 1~3면을 거의 모두 차지하다시피 한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 재점화’ 관련 기사는 1975년 8월 17일 그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지 37년 만에 큰 파문을 다시 일으켰다.

당시 유족과 민주화운동권 사람들은 장준하의 죽음에 대한 경찰의 발표를 아예 믿지 않았다. 경찰은 그가 ‘산악회원 40여 명과 함께 경기도 포천시(당시 포천군) 이동면 약사봉(489m)에 올랐다가 높이 14m의 낭떠러지에서 발을 헛디뎌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문익환은 장준하가 실족사 했다는 자리에 쏜살같이 달려가서 여러 가지 정황을 수집해 본 결과 군사독재정권에 의한 타살이라고 확신했다. 사고현장 은 온통 의문투성이였다. 높은 언덕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하는데 그가 메고 있던 마호병이 하나도 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귀 뒤의 급소에 못으로 구 멍이 뚫린듯한 타박상이 있었으며,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때 생기는 상처가 없는 대신에 양 팔꿈치에 무엇인가가 꽉 조여진 자국이 있었다. 문익환, 문동환 등은 신체검사를 하고 사진까지 찍었다.(김형수 지음, <문익환 평전>, 430쪽)  




                                        지난 2005년 명동성당에서 거행된 고 장준하씨 영결미사.



장준하의 주검을 발견해서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김용환이었다. 그는 장준하가 총선에 출마했을 때 자원봉사자로 일한 적이 있을 뿐 그날 산행 이전에는 몇 년 동안이나 만난 적이 없는데 그날 지방에서 갑자기 올라와 등산에 합류했다. 그는 일행이 약사봉 샘물터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사이 장준하와 단 둘이 산길을 올랐다가 일행이 있는 데로 내려오던 중에 장준하가 실족했다고 경찰에서 ‘증언’했다.

장준하 의문사 이틀 뒤인 1975년 8월 19일자 동아일보는 “검찰은 김 씨가 65년부터 3년 동안 신민당 서울 제4지구당 총무로 있었는데 사고 당일 등산길 버스 안에서 장 씨와 우연히 만났다고 진술한 점과 김 씨가 사고 직후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군부대에 신고한 점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1993년 3월에 구성된 민주당의 ‘장준하 선생 사인 규명 진상조사위원회’는 아래와 같은 의문을 제기했는데, 이번에 이루어진 유골 감정은 그 의문이 타당했음을 입증했다.

-추락 지점이 경사 75도의 가파른 암벽이어서 장비 없이는 내려갈 수 없다.
-시신이 발견된 암벽은 경사도로 볼 때 굴러 떨어지는 물체가 멈출 수 없는 곳이다.
-시신에는 외상이나 골절이 전혀 없고, 휴대한 보온병과 안경이 깨어지지 않았다.
-당시 시신을 검안한 조철구 씨에 따르면 오른쪽 귀 뒤에 가로 2cm 가량의 흉기로 찍힌 자국이 있고, 팔과 엉덩이에 주사바늘 자국이 있었다고 한다.
-어깨 안쪽에 피멍이 들어 있어, 어깨를 붙들려 억지로 끌려간듯한 흔적이라 생각된다.

1975년 ‘장준하 의문사’ 직후 민주화운동권 인사들이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김용환의 행적이 수상하기는 하지만, 장준하 선생이 타살 당했다면 고도의 특수기술을 가진 복수의 인물들이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답변을 들었다. 2004년에 대통령 산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고 현장에 출동한 포천서 경찰관들은 그날 자정께 검사가 도착하기까지 목격자 진술을 듣지도 않고 현장 사진을 찍지도 않은 채 수수방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중앙정보부 요원이 검사의 현장 검증 뒤에 ‘변사사건’ 기록을 복사해 갔다.

광복 67주년 기념일인 8월 15일, 타살 혐의가 짙다고 언론에 대서특필되어 역사 속에서 현실로 되돌아온 장준하는 어떤 인물이었던가? 한마디로 말하면 그는 박정희의 ‘숙적’이었다. 두 사람의 삶은 극과 극을 달렸다. 장준하는 26세 때인 1944년 1월 일본군에 자원입대했다가 같은 해 7월 중국 쑤저우에서 탈출한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장교로 복무했다. 박정희는 일본 육사를 3등으로 졸업하고 만주군 중위로 근무하다가 일제가 패망하자 광복군에 들어가서 목숨을 부지하려고 했다.

장준하가 피난수도 부산에서 <사상계>를 창간한 이래 4월 혁명 때까지 이승만 독재에 맞서 정력적으로 필봉을 휘두른 데 반해 박정희는 1961년 5월, 그 혁명을 뒤엎는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1960년대 중반에 박정희 정권이 추진하던 ‘굴욕적 한일회담’과 ‘베트남 파병’에 맞서 장준하는 재야조직 활동과 개인적 행동을 통해 박정희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1966년에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졌을 때 장준하는 ‘우리나라 밀수 왕초는 바로 박정희’라고 공격했다. 박정희가 ‘10월 유신’으로 종신집권체제를 굳히고 나서 독재를 강화하던 1973년 12월 장준하는 ‘헌법개정 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가 이듬해 4월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간경화증과 협심증이 악화되어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그는 병상에서 박정희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파괴된 민주헌정의 회복을 위해 대통령 자신이 개헌을 발의하되, 민족통일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완전한 민주헌법으로 하여, 이 헌법으로 자신의 거취는 물론 앞으로 모든 집권자들의 규범으로 삼게 하라”고 촉구했다.

장준하는 1960~1970년대에 37 번의 체포와 9번의 투옥을 당하면서 박정희의 독재에 맞섰다.

장준하는 1975년에 들어서자 평소 잘 만나지 않던 김대중을 비롯해서 함석헌, 홍남순을 접촉하며 광복 30주년인 8월 15일에 ‘모종의 거사’를 일으키기로 계획했다고 한다. 마침 김영삼이 동남아를 여행하고 있어서 그가 귀국한 뒤인 8월 20일로 계획이 연기되었다.(김삼웅 지음, <장준하 평전>, 37쪽) 그의 장남 장호권은 <신동아> 1985년 8월호에 실린 글(‘아버님은 암살당했다’)에, 당시 ‘무엇인가 어마어마한 일’이 계획되고 있었으며, 아버지가 “박정희를 깨는 것은 민중의 힘으로 역부족이니 게릴라전으로라도 박을 제거해야 한다. 군부 쪽에도 상당한 연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고 기록했다. 이런 증언의 사실 여부를 떠나 장준하는 문제의 8월 20일을 사흘 앞두고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박근혜 의원은 2007년 6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하면서 “아버지 시대의 불행한 일로 희생과 고초를 겪으신 분들과 그 가족 분들에게 항상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7월 11일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 씨가 살고 있는 서울 일원동의 아파트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장준하 선생이 갑자기 돌아가신 후에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을지 생각하니 진심으로 위로 드린다. 장 선생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애국심이 뜨거우셨고, 민주주의 열정을 갖고 계셨던 분이다.
저의 아버지와는 반대 입장에 계셨고 방법은 달랐지만 두 분 다 개인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셨다고 믿고 있다. 장준하 선생이 바란 것은 자유민주주의 확립인 만큼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박 후보는 그 해 8월 17일에 열리는 장준하 선생 32주기 추도식에 참석하겠다는 뜻을 전했으나 장준하기념사업회가 “가해자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니 만큼 먼저 사과를 하든지 아니면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게 도리”라면서 추도식 참석을 거부했다.

새누리당의 대선후보 경선 투표를 앞두고 터진 ‘장준하 타살 의혹’에 대해 민주통합당은 강력한 정치공세를 펼쳤다. 박용진 대변인은 8월 15일에 발표한 성명에서 “진상 규명과 더불어 유신독재의 정치적 계승자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의 사과와 태도 변화를 촉구한다”면서 “박 후보가 이미 2007년 대선후보 출마 당시 장준하 선생 유족과의 화해 노력 등을 했지만 최근 장준하 선생이 목숨을 걸고 싸워온 5·16쿠데타 세력과 유신독재에 대한 태도로 볼 때 당시의 태도가 진정성이 결여된 것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장준하는 실족사 했는가, 아니면 타살 당했는가? 타살이라면 그는 왜 죽어야 했는가? 역사를 바로잡아 민주체제를 굳건히 세우려면 정치권이 앞장서서 이 문제를 반드시 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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