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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훈 컬럼


문재인, ‘울보 대통령’ 될까


 

임 춘 훈

언론인, 전 한국방송공사 미주지사 사장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의 색다른 문재인 품평이 잔잔한 화제를 낳고 있습니다. 며칠전 어떤 라디오 아침프로에서 그가 한 말이지요. 빼어난 문장의 글 잘쓰는 교수로, 중앙일보의 고정칼럼등에서 많은 독자층을 갖고있는 송 교수는, 대선후보 빅 쓰리를 평가해 달라는 진행자의 요청에 문재인을 이렇게 평했습니다.

“선량한 이웃 아저씨같은 문재인은, 뭔가 속마음을 다 털어놓고도, 헤어질 때 전화번호를 묻고싶지 않은 사람이다.”

촌철살인의 인물평입니다. 문재인의 학교동창등 많은 친구와 친지 중엔 송호근의 이 짧은 촌평이 전하려는 함의(含意)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많은 모양입니다. 항상 옳은 말만 하고, 신념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사람-. 문재인은 그렇게 ‘썩 괜찮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헤어질 때 서로 전화번호를 나누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라는 인물평은 뜻밖입니다. 삼겹살에 쐬주가 고플 때, 야 나와라, 더러운 세상얘기 한번 같이 해보자며, 스마트 폰 때리고 싶지 않은 사람-. 그래서 전화번호를 기억할 필요가 없는 사람-. 그가 문재인이라지요.

몇달전 문재인이 대선출마를 선언하고 나설 무렵, 어떤 논객이 인터넷에 올린 글엔, 문재인이 모교인 경남고 동창들 사이에 인기가 별로라는 얘기가 쓰여있습니다. 노무현정부 시절 대통령실장 등으로 잘 나갈 때, 어려운 동창들을 챙겨주지 않아 실인심(失人心)을 했다는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성품이 강직한 그가 단지 동창들의 사사로운 민원을 받아주지 않아 인심을 잃었다면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헌데 어쩌면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모교 역사상 가장 자랑스러운 동문의 존재 자체를, 이해관계와는 상관없이 대다수의 동창들이 시큰둥해 한다면, 얘기는 썰렁해 집니다.

문재인은 친구가 없다?

올해는 내가 한국서 산 날과 미국서 산 날이 엇비슷해지는 해입니다. 

계산해보니 대충 만삼천날 정도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았고, 만삼천날 정도를 미국 이민자로 살았습니다. 한국에 모처럼 나가 만나는 고교동창이나, 미국 여행을 와서 이곳에서 만나게 되는 동창중엔, 기억이 야리끼리한 친구들이 제법 있습니다. 한국을 떠나 산 날이 만삼천 날이나 되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헌데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중엔 헤어질 때 연락처라도 받아놓고픈 친구가 있는가 하면 그냥 데면데면한 친구도 있습니다. 

학교다닐 때 공부는 안하고 온갖 야지랑스런 몹쓸 짓 골라하며 쌈질과 주먹질 깨나하던, 요즘 말로는 ‘일진’이니 날라리니하는 친구들이, 반세기전 우리들의 그 푸르던 학창시절에도 있었습니다. 

물론 공부 잘하고 몸가짐 반듯한 범생이들도 많았습니다. 헌데 이상한 일이지요. 수십년만에 만난 동창 중 헤어질 때 전화번호라도 받아놓고 싶은 녀석들은, 범생이 보다는 날라리쪽입니다. 

십여년전 한국에 출장나갔다가 졸업후 처음만난 한 친구가 있습니다. 

학창시절 심심하면 방과후 학교 뒷산으로 나오라며 나를 괴롭힌 그는, 요즘식으로 하면 일진의 우두머리쯤 되는 우리학교의 ‘공포의 주먹’이었지요. 싸움 못하는 나에게 그는 작가 이문열이 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엄석대같은 친구였습니다. 

헌데 이 친구가 사십여년만에 만난 나를 자지러지게 반가와 하는겁니다. 괴롭던 옛날 생각에 순간적으로 쭈뼛거린 나는, 주먹질 대신 한참의 뜨거운 포옹으로 나를 반겨준 그 친구의 진한 ‘사람냄새’에 감동을 먹었습니다. 그는 며칠후 내가 묵고있는 호텔로 찾아와 한턱을 ‘거하게’ 쐈습니다.

장점도 약점되는 문재인 패러독스

문재인은 머리좋고 몸가짐 반듯한 전형적인 범생이 타입입니다. 사법시험 합격에 사법연수원 차석졸업, 인권변호사, 대통령 비서실장등의 화려한 커리어까지 쌓은 ‘성공 맨’ 이기도합니다. 한국사회에 이만한 재목도 많지 않습니다. 헌데 그가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국민여론은 대체로 뜨악했습니다. 사람좋은 이웃집 아저씨같고, 공부잘해 출세하더니, 마침내는 대통령 되겠다며 명세지재(命世之才)로 나타난 사람-. 그런 문재인을 보는 세상의 시선은 뜻밖에도 무덤덤했습니다.

문재인은 노무현 사람입니다. 노무현의 장자방이고 충복입니다. 그의 이미지가 실패한 대통령 노무현과 겹친다는 것은 그의 운명이고 한계입니다. 

그의 지지자는 노무현 지지자이고, 그의 반대자 또한 노무현 반대자라는 세간의 평가는 시사적입니다. 문재인에게 덧씌워진 노무현 색깔을 지워도, 그에겐 도무지 자기만의 색깔이라는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나라를 이끌어 갈 미래비전, 장단기 국정전략, 위기관리 능력, 통찰력, 지도력 같은 최고 지도자의 덕목이 좀체로 드러나 보이지 않습니다. 

이웃집 아저씨같은 편안한 이미지와 올곧고 선량해 보이는 인품조차도, 대통령후보 문재인에겐 강점이 아닌 약점으로 보입니다. ‘문재인 패러독스’입니다.

선거 슬로건이 대한민국 싸나이?

지난 여름 문재인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서면서 내세운 슬로건은 ‘대한민국 남자’였습니다. 

건달세계에서 부산 싸나이니 목포 싸나이니 하며 폼을 잡는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헌데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이 내세운 정치 슬로건이 하필이면 대한민국 싸나이라니, 처음엔 내 귀를 의심했습니다.

문재인이 자신의 섬약해 보이는 이미지. 그리고 권력의지가 약하다는 정치권의 비판등을 의식해 내놓은 상징조작성 이벤트가 두가지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얼룩무늬 군복 입고 나와 펼치는 벽돌격파 시범, 그리고 다른 하나가 바로 이 ‘대한민국 남자’ 세일즈입니다.

대한민국 남자는 결국 3일천하로 끝났습니다. 여성계가 들고 일어나 남성우월주의를 조장하는 마초이즘이라고 공격하자 3일만에 간판을 바꿔달게 된거지요. 지금 문재인 캠프의 대선 슬로건은 ‘사람이 먼저다’입니다. 10년전 노무현후보가 써먹은 ‘사람사는 세상’의 짝퉁냄새가 풍깁니다. 자기만의 정치색깔과 철학의 빈곤은 여기서도 읽힙니다.

정권 재탈환 기회는 왔는데

요즘 문재인후보는 각종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경제민주화, 복지확대, 일자리 창출, 군 복무기간 단축, 10,4 남북공동선언 이행과 서해 남북공동 어로등 진보적 정책공약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습니다. 실현 가능성이 의심되는 포퓰리즘적 공약도 있지만 국민의 호응이 제법 있는 것들도 있지요.

지금 국민의 60% 이상은 정권교체. 즉 야권의 승리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당의 박근혜는 각종 악재와 대다수 국민의 반새누리당 정서라는 이중의 덫에 갖혀 지지세력을 전혀 확장해 나가지 못한채 고전하고 있습니다. 

무소속 안철수의 인기는 선거일이 가까워지면 어차피 거품이 일정부분 빠져나가게 되어있습니다. 제일야당인 민주당과 후보 문재인은 정권재창출의 호기회를 목전에 두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도 투표일이 꼭 두달이 남은 현재 문재인은 ‘일편단심’ 3등입니다. 가끔 양자대결에서 박근혜를 누르고, 야권 단일후보 선호도에서 안철수를 이기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아직은 박근혜, 안철수 선두싸움에 문재인이 바짝 쫓아가고 있는 형세입니다. 

문재인의 상품성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지난 12일 문재인은 울었습니다. 10분 동안이나 눈물을 훔쳤습니다. 지난달 21일에도 그는 ‘중인환시리’에 서럽게 울었습니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민심과 유권자들이 섭섭해서가 아닙니다. 한번은 쌍용자동차 해고자 가족들을 만나 위로하다가 울었고, 다른 한번은 광해군 영화를 보고 울었습니다.

<광해, 왕이된 남자>를 관람한후 그는 자리를 뜨지않고 자리에 그대로 앉아 10여분 동안이나 꺼이꺼이 울었답니다. 앞으로 두달사이 그는 또 몇 번이나 ‘눈물젖은 문재인’을 연출하게 될지 지켜볼 일 입니다.

대통령은 살기 힘들어 서럽게 우는 서민의 눈물을 닦아줘야하는 사람입니다. 헌데 자칫 잘못하다가는 국민이 되레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줘야 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12월 선거에서 ‘울보 대통령’이 나오면 말입니다. 

<2012년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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