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04 04:34
전장 4백28킬로미터에 이르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은1968년 2월부터 1970년 7월 7일까지 2년 5개월간1백65만 대의 장비와 연인원 8백93만명이 동원된 유례없는 국책사업이었다. 당시 공사 현장은 열악했다.공사 참여 16개 시공업체 중 고속도로 건설 경험이 있는 곳은현대건설뿐이었으며, 공사 장비들 대부분이 노후장비였다.믿은 것은 오직 사람뿐, 20~30대의 젊은 노동 인력이 투입됐다. 반대 여론도 드셌다.1인당 국민소득이 1백42달러에 불과했던 1967년 당시국가 예산의 23.6퍼센트인 4백29억7천3백만원이 투입된대형 국책사업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서울과 부산 간 지역에 대한 중복투자와 지역편중,시기상조란 주장과 더불어 졸속공사, 환경파괴라는 지적도 잇따랐다. 온갖 악조건 속에서 완공된 경부 고속도로는서울에서 부산까지 소요시간 단축이란 의미를 뛰어넘어우리 사회 전반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원활한 물류 수송에 힘입어 경공업 위주에서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등으로의 산업구조 재편이 가속화돼‘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발전을 가져왔다.또 인근 도시까지 더불어 발전하며 국토 균형발전을 이끌었고,전국이 일일생활권 으로 가까워지며 국민의 삶의 질이 향상됐다.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되던 날, 젊은 도로 기술자들과박정희 전 대통령이 함께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이 있다.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77인의 희생으로 이뤄낸 경부고속도로,이는 당장은 힘들더라도 대역사(大役事)를 이뤄내면국가는 물론 국민 개개인의 생활까지 바뀐다는국책사업에 대한 인식을 전환한 대혁신이었다. 충북 옥천군 동이면 조령리 경부고속도로 순직자 위령탑 박정희 대통령은 1964년 12월 서독을 방문했다.2차세계대전 패전 후 잿더미 위에서 경제 부흥에 성공한라인강의 기적을 직접 눈으로 보고 서독에 차관을요청하기 위한 나들이였다. 서독 방문 중박 대통령의 눈길을 확 잡아끄는 기반시설이 하나 있었다.자동차 전용 고속도로인 아우토반(Autobahn)이바로 그것이었다. 1932년 쾰른과 본을 잇는 도로가처음 개통된 이래 아돌프 히틀러 치하를 거치면서아우토반은 독일을 종횡으로 가로 지르는국가 대동맥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우토반을 본 이후 고속도로 건설은 박 대통령의 꿈이 됐다.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인프라 스트락처(Infra-structure),그중에서도 서울과 부산을 잇는 국가대동맥의 건설이시급하다고 굳게 믿었다.1967년 재선에 도전한 박 대통령은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선거 공약으로 내놨다. 이 공약에 환호성을 올린 사람은아마도 한국에서는 정주영밖에는 없었을 것이다.결국, 유사 이래 최대 규모가 될 역사(役事)는박정희, 정주영의 합작품이 된다. 언론과 학계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무엇보다 공사에 들어갈 막대한 자금을과연 조달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다.설사 재원을 확보한다 해도그로 인해 빚어질 인플레이션을 우려했다. 마침 세계은행은 한국의 교통량이 경부고속도로를뚫어야 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언론과 학계는 이 보고서를 금과옥조처럼 활용했다.세계은행과 같은 권위있는 기관이부정적인 의견을 내자 여론도 부정적으로 돌았다.당장 세계은행에서 차관을 얻어 쓰는 길도끊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주저앉을 박정희, 정주영이 아니었다. 하루는 박 대통령이 정주영을 청와대로 불렀다.단둘이 만나기는 그 때가 처음 이었다.박 대통령은 현대건설이 태국에서고속도로를 건설한 경험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정 사장이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드는최저 소요 경비를 좀 산출해 봐주시오." 박 대통령은 도대체 돈이 얼마나 들어갈지조차파악이 안 돼 답답하던 중이었다. 대통령의 말을 들은 정주영은 가슴이 벅차 올랐다.드디어 2년 전 태국에서 익힌 공사 경험을한국에서 써먹을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다. 정주 영은 즉시 5만분의 1 지도를 들고 한 달 가까이서울과 부산 사이의 강과 산, 들판을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주판을 두드려보니 380억원이라는 계산이 나왔다.건설부는 650억원, 서울시는 180억 원으로 추산했다. 박 대통령은 현대건설이 제시한 금액에 가까운 400억 원에예비비 30억 원을 추가해 총 430억 원으로 공사비를 책정했다.이 돈으로 서울과 부산을 잇는 총 428km의 고속도로를3년 이내에 완공하라는 게 현대건설을 비롯한17개 건설회사에 맡긴 지상과제였다. 마침내 1968년 2월 1일,흥분과 감동 속에 경부고속도로 기공식이 열렸다.현대건설은 서울~오산, 대전~옥천 등 전 구간의5분의 2가량을 맡았다. 공사비 책정이 워낙 빠듯했던 만큼애초부터 큰 돈을 벌기는 어려운 공사였다. 그렇다고 기업인이 이익을 포기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기업가는 이익을 남겨 소득과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지국가를 위해 또는 사회를 위해 거저 돈을 퍼 넣는자선사업가는 아니다. 기업가들이 사회에 주는 기업의 열매는소득과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면 된다. 어떤 경우에도이익을 남겨야 하는 것이 기업가의 절체절명의 명제였다."이익에 집착해 탈법 또는 부실공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가지 뿐이다. 공사기간을 최대한 단축해이자와 노임을 최대한 절약해야 한다.정주영, 아니 모든 건설회사 경영자들에게공기 단축은 곧 돈이었다. 정주영이 무작정 공기 단축에 나선 것은 아니다. 그는 당시로써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랄 수 있는800만 달러어치의 중장비를 도입했다.낙동강 고령교 공사(1953년 착공) 때 20t짜리 크레인한 대만으로 무리하게 덤벼들었다가 이루 말할 수 없는고생을 겪은 뒤 장비 확보는 정주영 에게 최우선 과제였다. 그는 고속도로 공사를 위해 중장비 1천900여 대를 들여왔다.당시 우리나라에 있는 중장비가 모두 1천400대 정도였으니장비에 대한 정주영의 집착을 읽을 수 있다. '호랑이' 정주영은 현장에 간이침대를 갖다 놓고 작업을 독려했다.공기 단축이 부실 공사로 이어지지 않도록 꼼꼼하게 챙겼다.잠잘 시간에는 일하고, 대신 덜컹거리는 44년형 지프를타고 가면서 잠깐씩 눈을 붙였다. 차에서 자는 습관은나중에 울산 조선소 건설 때까지 이어져결국 목 디스크의 원인이 됐다. 심지어 어떤 때는지프에서 잠을 자면서 지프는 공사장을 빙빙 돌도록 했다. 직원들은 '호랑이'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게으름을 피우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노동력을 착취한가혹한 자본가라는 비판을 받을 만도 하다. 그러나 약 40년 전 정주영은 현장 노동자들과크게 다를 바 없는 또 한 명의 노동자였을 뿐이다.그는 노동자가 일할 때 자기만 편하게 쉬는전형적인 자본가와는 거리가 멀었다.그는 평생을 두고 자신을 이렇게 평가했다. "나 자신은 나를 자본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나는 그저 꽤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며,노동으로 재화를 생산해 내는 사람일 뿐이다." 경부고속도로를 개통하고 기반시설을 확보한박 대통령 시대의 자본주의 산업화는,우리 사회를 오랜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단숨에 변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1960년 64%이던 농어민은 80년에 31%로 감소했으며,중화학공업화가 진행된 70년대에는 2차산업이1차산업을 능가하고 중공업이 경공업의 비중을 추월하는 선진국형 산업구조를 갖추었다. 하나 더...그 근간에는 월남전 참전용사들이국내로 송금한 달러가 기반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DJ는 "경부고속도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차 있는 사람들만 팔도 유람하고 다닐 것 아닌가?쓸데없는 돈 낭비다" 라고 웅변하고 다녔다. 아래 사진은 김대중이 가면을 쓰고 고속도로 공사현장에드러누워 고속도로 건설을 극력 반대하는 모습이다.고속도로 건설반대 데모 선동으로 유명세를 탄 김대중은불과 3년 만에 1971년 대선 후보가 되었다. DJ는 "정 고속도로를 건설해야 하겠다고 해도16차선(왕복 8차선)은 절대 안 된다. 뭐 하려 그렇게 넓게 짓는가?우리나라 1년 예산보다 많은 건설비 조달할 수 없다" 박정희는 "절대로 16차선을 해야 하지만...김대중이가 너무 반대하니 할 수 없다. 경부고속도로를 완성하면우리나라는 중진국이 될 수 있다. 8차선으로 하자." 박정희 대통령이 1967년 경부고속도로 예정지를 순찰하고 있다. 박대통령이 직접 스케치한 고속도로 구상도. "내가 야당 반대 때문에 양보하지만,미래에는 반드시 도로가 부족할 것이다.그러니 왕복 4차선으로 하더라도반드시 경부 고속도로 양옆으로 50m는 남겨 두라.건물 신축을 금지하라.미래엔 분명히 더 확장해야 할 것이다." 조국근대화와 경부고속도로에 대한 박 대통령 집념. 직접 공사를 챙기고 독려했다. 1968년도 경부고속도로 건설공사,천안 - 신사리 구간 중 천안삼거리 부근(1968.12월) 작업 중 휴식시간에 건설 현장 인부들의 기념사진. 경부고속도로 건설 현장의 박 대통령.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의 박정희-육영수-정주영 |
2011.03.04 04:41
2011.03.04 09:08
황선배님.
잘 보았습니다.
준공기념식은 대구 공설 운동장에서 하였고요.
사진에 나오는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 청도 휴게소는 그 후 최근에 건설된
청도를 경유하는 고속도로에 있고 경부고속도로상에는 있지 않습니다.
몇년전 저녁자리에서 박 전대총령 주치의이었섰던
민 헌기선생님이 저보고 "자네는 카리스마가 뭔줄 아느냐?"하고 물으셔서
"모르겠습니다" 하였더니 "그건 거리감이야"
박 전대통령은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항상 거리를 두신다는 이야기이었습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살아 계셧더라면 지금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그 분의 애초 생각대로 미사일과 핵을 이북보다 먼저 개발하였더라면
지금같은 수모를 당하지 않았겠지요.
안타까울 뿐입니다.
2011.03.04 10:14
유선생!
실감나는 답글에 감사드립니다.
맞습니다. 진정한 카리스마란 근접하기 어려운 威嚴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대통령은 우리나라가 혼자 설수있는 自立國家를 만들려고 渾然의 힘을
다바친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주말 되세요. 규정
2011.03.04 17:49
2011.03.04 17:55
근 4년을 250 마일 기차 통근을 하다 보니 미국 고속 철도에대해 상당한 관심을 갇게 됏지요.
현재로는 250 마일 가는데 기차가 연결이 안돼 산은 뻐스로 넘어가서 다시 기차를 타고
화물차와 선을 공용하니
탈탈거리기가 심해 똑 바로 기차안에서 걸어갈수가 없지요.
250 마일 가는데 5 시간 걸리지요.
칼리포니아에 고속철도 놓자니까
한국 고속 도로 놓을때 같은 반대의견이 50 % 이상 이드니 얼마전에
찬성 투표가 50% 를 겨우 넘어 놓자는 방향으로 칼리포니아에서 정책 수립 .
반대의견은
농지가 없어진다.
환경에 악역향끼친다'
세금 낭비한다
농사꾼들은 땅값 올리여고 결사 반대하고
주민들은 소음으로 집값 떨어진다고 반대하고,
반대하는 사람들
구라파일본 한국 여행해보면 생각이 달라질것이고
미국의 교통문제는 기름 값이 한 가론 6 $ 이상 올라가야만
빨리 해결된다는 역설에 전적 동감,
우리 동네에 공공 뻐스도 타는 사람이 없어 다 없애 버렷고,
아래 사진이 미국에 고속 도로기차가 필요한곳인데
기름 값이 너무 싸서 고속 기차 놔야 탈사람이 없단는 결론.
참으로 한심한 사정이지요,
.
2011.03.04 18:16
민선배님.
선배님같이 출퇴근을 시간이 걸리는 교통수단으로 하면 모르지만
저는 정보 통신의 발달이 우리들의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예로 요즈음은 편지쓰고 기다리는 재미도 없어졌지요.
처와 연애할 때 밤사이 쓰다가 아침이면 찢어 머리고 다시 쓰던 생각들이 나는데.
처는 저의 편지를 기다리다 지칠 때 쯤이면 오는 답장.
젊은애들은 만났다가 싫으면 그대로 밤늦더라도 휴대전화를 하지요.
아니면 집에 가는 길에 문자를 날려 끝내어 버리면.
연애라는 감정은 좀 묵혀야 되는 것인데 생각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2011.03.04 18:48
유석희 님
1.
제가 일하는 17 만명이 들어가있는 깔리포니아의 감옥에 매일 공문서가 전자 메일로 20 여통씩 날아오는데
종이로 팩스로 옛날같이 햇다가는 일이 안됩니다.
종이 공문서가 99% 줄어들엇읍니다
제가 카이저 란 의료 씨스템에 35 년간 가입해 있으니 의무기록이 수백장일텐데 다 콤표터에 들어가있고
엑스레이도 요새는 필름이 없는데
의사는 빈손으로 와서 진단하고 처방전도 없고 콤퓨터에 몇자 넣으면 걸어나갈때 약국에 약이 준비돼있지요
옛날 같이 처방전 써들고 줄서있는 날은 몇년전에 없어졋지요,
지금 옛날 종이로 하든 의무기록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면
저는 결사 반대.
물론 그림 엽서를 여행중에 보내는것을 말릴 사람은 없고
그것을 전자우편으로 대치하자는 얘기는 않합니다.
2.
제가 중국에 1988 년에 혼자 여행을 갔는데 정보통신이 엉망이라
비행기표를 출발 하는 시에 가지 않고서 다른 데서는 예약이 안된다고 합디다.
아마도 팩스로 고관들은 빨리 빨리하는 수가았엇겟지만
일개 외국인을 위해 그런 사정을 보아주지 않읍디다.
서울서 동경-뉴욕간 비행기 표를 살수 없단
얘기들으시면 어덯게 생각하십니까?
개인간 전자우편은 정보통신에 미미한 비중을 차지 할겁니다.
3.
옛날에는 몇년 못보든 친구 어른들한테 연말 소식 전한다고
카드 사들고와서 일일이 같은 내용의 소식을 20-30 군데써서
우표사서 부치고 했는데 요새는
그런식 고집하는 사람이 95 % 정도 줄어들엇고 최근 사진 몃장씩 해외있는 분들에서
돈안들이고 부쳐 교환합니다.
옛날 크리스 마스 카드 받은것 일주일 지나면
다쓰레기 통에 넣엇는데
전국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계산 하면 막대한 자원 낭비갔어요.
그것 배달하든 인력은 지금 보면 낭비같아 보입니다.
4.
GPS 없이 모르는 길 찾어갈려면 지도 공부 30 분하고도 길을 찾지 못해 시간 낭비 하든 시절이 1-2 년 전이엿는데, 일주일전에 스마트 전화 삿는데
거기에 GPS 가 들어있다니 길찾는 시간 절약될것같읍니다
문제는 새로온 기계를 배우는것이 꼭 자동차운전 배우는것 마냥 시간이 들어가는데
그것은 영어 배울때 들어간 고생 비슷하다고 여깁니다.
세상이 이렇게 자주 변하니
변화에 어덯게 적응하는냐가 어려운 문제지요.
김대중선생의 고속도로 반대도 그런 변화애 대한 異見에 불과하지요.
5.
제가 땅파먹으러 7000 평대지 산집도, 집에서 인공위성 사진 으로 보고
콤푸터로 값 위치 다 확인 후에 광고에 올려논 사진 보고 찾아가서 골랏지요.
여기서 400 키로 떨어진 곳에
집을 100 여개 찾어가 본다는 일은
불가능 하지요
집 거래 문서 교환도 집에서 미리 콤퓨터로 다햇지요.
6.
일레로 유형이 우리 동네에 50 만 불짜 이하짜리 5000 평에 커다란 연못이있는집을 찾느다고 하신다면
여기 아래 부동산 광고를 눌어 보시면 위치 인공위성지도 값 자세한 사진 다 보이고
친구 통해 모든것 확인하고 비행기 타고 한번만 타고 찾아 오셔서
집 서너개 구경하고 결정하면 됩니다.
방선생님 이런데 이사올 생각 없으신지
집값이 뉴욕에 비해 반값?
힌번 구경하세요!
아래 주소 눌러 보시고 삿삿이 찾어보세요.
2011.03.04 20:39
민선배님.
지당한 말씀입니다.
저는 한면을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시간대로 선배님과 필담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사실 신나는 일이지만요.
2011.03.04 21:21
1. Minn sun-bae-nim, I clicked those addresses you gave
and I found they're too Expensive for me. Therefor I can't
afford any one of them, but will try to visit you someday.
2. Dr.Yu, you're in the same boat with me. What can we do?
Just ride with the tide. Or else? We have to fade into the Shadow of the Era.
3. Hwang sun-bae-nim, your article above about Park Jung-hee
'Dae-tong-ryeong' restored my heratbeat which has been lost long time.
He was the one that Transformed Our Country to Korea Today, no matter what
others, especially "Min-ju-hwa Se-reuk" who did Nothing but Shouting.
4. About Charisma; Literally speaking, it might refer to Magnetic Power
as a Leader or as a person, but to me it's the Power that can make you Enjoy,
not feeling lonely, "Absolute Solitude"_Standing Alone meeting with his/or her
Destiny.
I saw his, Park Jung-hee Dae-tong-ryeung's, Absolute Solitude when I met him.
Now, He is Standing in the History of Korea,
Not Alone, but with 85% of the Population, Year in, Year out.
2011.03.05 00:54
EST zone에서 사는 이사람은 쿨쿨 자고있는 시간에 PST zone에 사는
민선생과 early bird이신 우리 방선생 그리고 지구 건너편에 계신 유선생,
계선생께서 들어오셔서 댓글들을 남겨 놓으셨네요.
밤낮이 바뀔정도의 넓은 세상에 사는 우리들로서 인터넷이라는 매개체로
이렇게 소통할수있는것이 새삼 경이롭습니다.
Digital high tech.시대에 유선생 말같이 옛 analogue system이 그리워
질때도 있는것이 사실입니다. 미국에 옮겨와 얼마동안 부모님들이 보내주신
Aerogram은 지금도 간직하고 있지만서도 다 지금은 그리운것들입니다. 규정
2011.03.05 03:24
방선생님.
위에 보이는 싸이트에서 new search란 단추 누르고 값을 누르면
100-200~400 k 짜리 구경하실수도 있고 땅만 고를 수도있고 호수가 냇 물가
단추 누르는 것만 알면 간단히 됩니다.
진일보해서
유석희형님은
미혼이시라면,
여친을 찾을때 대졸/고졸/문맹, 콤맹정도지수, 지능지수, 취미, 인종, 체중, 용모, 성격, 종교 ..다 맞는 단추눌러 접선하면 선을 1000 번 정도 선을 보아 보아 이상적인 배필을 구할수있는 시절이 닥아오고 있읍니다.
전자우편 쓰지 않는 실어하는 사람을 구인광고로 계제하면, 궁합이 100% 맞는 친구도 접선이 되고
문제는 낙시밥을 잘못알고 물으면, 돈 다뜻겨 알거지로 되니까,미인계, 사기꾼 감별등에 어는정도 훈련을 하고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합니다.
제가 감옥에서 취급하는 분들이 지능이 높은 사람도 많은데,
그들한테 잘못 걸린 여자 수도없이 많을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으로 이루어낸 경부 고속도로 완공은 경공업위주를 탈피
철강,석유화학,자동차산업등으로의 중공업을 이루어내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우는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야당 지도자들은 공사현장에 누어 가면서 절대 반대하는것에 비해
'내가 야당 반대 때문에 양보하지만 미래에는 반드시 도로가 부족할 것이다.
그러니 왕복 4차선으로 하더라도 반드시 경부 고속도로 양옆으로 50m는 남겨두라.
건물신축을 금지하라. 미래엔 분명히 더 확장해야 할것이다.' 라고 말했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혜안은 가히
'참새가 대붕의 뜻을 어찌 알리오!(燕雀不知大鵬!)'라는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웹페이지는 '부산 갈매기'님(nolboo 54)의 webpage를 조금 modify
해서 만든것임을 알립니다. 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