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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1.04.12 23:30


'미친 대학'이 있어야 세계 수준 발전 가능


1993년 봄 나의 카이스트 (KAIST) 신입생 시절을 떠올려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았던 막막함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한국사 책을 제외하고는 온통 영어 원서 교과서였고, 방대한 숙제와 시험이 매주 이어졌다. 교수님들과 박사과정 조교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은 예습을 해야 알아들을 수 있는 어려운 영어 단어로 구성됐고, 일주일에 이틀 이상 밤을 새우지 않으면 숙제를 해낼 수가 없었다. 설계 팀워크 프로젝트를 할 때는 함께 아이디어를 짜낸 후, 며칠을 멤버들끼리 번갈아 새우잠을 자면서 프로젝트를 완성시켰다. 그때 나의 꿈은 오직 하나, 무사히 졸업하는 것이었다. 당시 10% 정도의 카이스트 학생이 학사경고 누적으로 제적됐고, 20% 정도의 학생은 미리 살 길을 찾아 다른 학교로 떠났다.

그 무렵 카이스트 교수와 학생의 경쟁상대는 MIT와 칼텍(Caltech)이었고, 그들보다 잘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해야만 했다. 그것이 국민의 혈세(血稅)로 카이스트를 설립하고 운영했던 이유였고, 소속된 사람들의 의무였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지금 카이스트는 MIT와 카이스트의 학생 수준이 같으며 수년 내에 MIT를 능가하는 대학을 만들겠다는 총장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어느 총장도 하지 못했던 말과 행동을 현재의 카이스트 총장은 자신감 넘치게 하고 있다.

최근 카이스트 학부 학생들의 자살 사건으로 카이스트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교육행정 제도를 담당하는 교수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타당한 비판이다. 카이스트 교육제도는 학생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면서 점진적 교육을 하는 식과는 거리가 멀고, 국내의 다른 대학들과 비교하면 참으로 냉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현재의 카이스트 교육제도와 그것을 이끌어가는 서남표 총장을 옹호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첫째, 힘들겠지만 학부생들은 4년만 고생하면 해방된다. 카이스트에는 영원히 혹한의 겨울밖에 없지만, 학생들에게는 졸업이라는 봄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런 고생을 해서 얻은 지식과 창의성은 자신들의 두뇌로 간다. 둘째, 대한민국에 대학이 카이스트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학생친화적인 교육을 하는 명문대학도 많이 있다. 학생들은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을 바꿀 수도 있다. 셋째, 카이스트라는 브랜드가 만들어지기까지, 결국은 실력 있는 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온다고 믿고 묵묵히 피나는 경쟁을 견뎌온 졸업생들의 노력과 성취가 있었다. 이번 학부생 4명의 비극적 자살로 인해 40년 동안 4만명이 넘는 카이스트 졸업생이 이룬 성취와 그를 이룬 교육제도를 폄하해선 안 된다. 한국의 대학 중에 MIT를 능가해서 세계 1위를 하겠다는 '미친 주장'을 하는 대학은 카이스트밖에 없다.

우리 대학들은 각자 설립이념과 목적이 있다. 1970년대 카이스트 대학원의 설립목적은 '조국의 과학기술 발전'이었고, 1986년 카이스트 학사과정 설립이유는 MIT보다 좋은 대학, 세계 1위의 이공계 대학을 갖는 것이었다. 좁은 영토에 자원빈국(貧國)으로 과학기술밖에 의지할 것이 없는 상황에서, 치열한 경쟁 속에 천재성과 창의성을 요구하고 급박한 상황 속에서의 팀워크를 가르치는 '비정상적인 대학'이 하나라도 있어야 대한민국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이병욱 건국대 기계공학부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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