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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13 - 화전놀이

2011.08.26 05:50

이기우*71문리대 Views:7494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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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화전놀이


숙희는 나보다 두 세살 많은 10살 쯤 되어 보이는 깔끔하니 예쁘게
생기고 공부도 잘하는 착하고 지혜로운 계집애다.

숙희네 집은 편편한 동네 중간을 지나 약간 비탈진 산자락 끝머리에
있는데 타작마당이나 사랑채도 없이 흙 담장에 싸립문 좁은 마당이 있다.
집은 작지만 마루가 넓고 앞뒤로 티어 있어서 시원하고 집이 약간 높은데
있어 동네를 내려다 볼 수 있어서 경치가 좋았다.

숙희는 엄마가 데리고 온 딸로 의붓 아버지와 사는데 엄마가 밑으로
동생을 셋이나 낳았다.
숙희 엄마는 나의 엄마 또래인 삼십 초반으로 옛날에 논단이(화류계)
였을거라는 말도 있고 지금 애들 낳고 남편과 얌전히 잘살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을 거라는 추측들도 했다.

개나리 진달래 철쭉도 꽃이 지고 논밭에 저마다 제일 아름다운 녹색을
풀어 놓은 듯 사방이 다 아름다운 녹색의 계절인 것 같았다.
손이 부르트도록 바쁜 농촌의 아낙네들도 하루 모여서 놀 수 있었던
명절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런 명절들이 오히려 시들하다고 한다.

나는 삼월 삼진날 단오날 7월백중 등 말은 들었어도 정말 명절을
추석이나 설 대보름 처럼 지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농악이니 천렵이니 해도 경기도 여주의 가난한 작은 촌
외갓집 동네에서는 본적이 없다.

오늘은 숙희네서 화전놀이를 한다고 동네 아낙들을 불렀다고 한다.
숙희가 외갓집에 와서 외숙모와 엄마를 오시라고 한다.
두분은 정중히 사양했다.
잠시후 아랫집 종분 엄마가 와서 같이 가시자고 졸랐다.
수십년 함께 사는 작은 마을에서도 아녀자들이 마실 가는 것은
금기가 많았다.
여자가 정초나 아침에 남의 집 대문을 넘지 않으며 늦게 다니지도 말고
대로에서 활보해도 안 되며 소리 없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얌전히 다녀야 한다.
특히 큰 외숙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여자들이 대문 밖을 나가는 것을
싫어 하셨다.
십 여세 되는 사촌언니들도 남의 집에 놀러 가는 것은 금기였다.

외숙모와 엄마는 이 핑계 저 핑계로 숙희네를 못 간다고 했다.
숙희 엄마가 다시 다른 사람을 보내왔고 숙희와 종분이 엄마도 같이 왔다.
특히 엄마가 안 오시면 안 된다고 떼를 쓰다 시피 했다.
외숙모님은 으례히 안 가시는 것으로 아는지
엄마를 꼭 모시고 가야 한다고 양쪽에서 거들었다.

엄마한테는 사실 반가운 초대는 아니었다.
숙희네가 친척도 아니고 옛날부터 안면 있는 고향 사람도 아니었고
그때만 해도 딸 데리고 와서 사는 근본 모르는 여자라고 공연히
꺼리는 눈치였었다.

숙희 엄마의 초대를 엄마로서는 서울로 시집가서 잘산다는 옛날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전쟁 중에 어디서 어떻게 내일을 맞이할지 모를
인간사를 헤쳐 나간다는 마음으로 받아 들였고
숙희 엄마는 더욱 한발 앞서 지체 근본 전통을 깨는 사람과 사람으로
내일만 날이냐 오늘도 사람답게 살자는 교제를 제시한 것 이었으리라.
다시 말하자면 엄마는 자신의 격을 낮추는 자리라고 생각했겠지만
세상을 크게 보면 숙희 엄마가 평등한 인간관계의 만남 사회 질서의
격을 높이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엄마는 애들도 별로 없는 어른들 노는 곳에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놀러가는 것이 무조건 좋았다.
모인 아낙들은 많지도 않게 여나믄 되고 애들까지 합쳐서 스무명쯤 되었다.
삼 사십대의 젊은 여자들이고 머리에 수건을 동여맨 농사꾼들이고
대부분 검정치마에 흰 앞치마 차림이었다.

홍천댁 같은 상제는 초대되지 않았다.
상제는 흰 상복을 입고 놀이나 재미있는 일에 참여를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초대하는 것이 도리에 어긋난다.
처녀들도 없었다.

지금 생각하니 까르르 웃고 막걸리 한 사발 돌리고 김치전 장떡
부쳐 먹으며 걸찍한 농담도 오고 갔을 터이니 처녀들은 자리를 피하는
것이 정숙한 행동이었다.
말로만 듣던 화전도 없었다.
쑥 미나리 파전 밀장떡에 국수 한 대접이면 진수성찬 이었다.

숙희네 마루에는 내가 지금까지 딱 한번 본 물동이에 바가지
엎어 놓은 물장구가 있었다.
윤이 자르르 흐르는 오지 물동이에 물을 엄지 길이 만큼 덜 채우고
바가지를 엎어 띄워 퉁퉁 쳐서 움직여도 물동이 전에 닿지 않을만한
크기의 바가지를 엎어놓는다.
손바닥 손가락 손톱으로 치고 긁고 튀기는 것으로 장단을 친다.
숙희 엄마는 장구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장구 소리를 묘사할 때 "덩~덩~ 덩 더 쿵~" 하거나
"덩 기덕 쿵 더러러러 쿵 기덕 쿵 덕~ " 하면
그냥 "랄랄랄라~" 라던가 "뚜뚜뚜뚜 따따따따~~" 하는 식으로
의성어로만 알았다.

이제 서야 구음이라고 부르는 장구의 “덩더쿵..” 이라는 장단이
두 개의 장구채로 궁편(왼편)과 채편(바른편)의 어느 쪽을 치며 어느
부위에 얼마의 강도로 친다는 악보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덩" 하면 양편을 다같이 치며
"기덕" 하면 채편의 가운데를 장식음처럼 대는듯 하면서 전을 가볍게 치고
"쿵" 하면 궁편을 치고
"더러러러~" 하면 채편을 떨림으로 친다는 것을.
강약의 표시로 “다 따 따악 딱 기닥...” 하는 말 자체가 악보가 되니
참 재미있다.

장구를 메고 손바닥이나 채로 치는 것을 보면 신이 나고 장구를
가로질러 왼 손 궁채로 바른쪽의 채편을 칠 때는 온몸이
자지러들게 흥이 난다.
장구를 멘 사람은 절로 춤이 나온다.
물장구를 치는 사람은 추임새를 넣는다.
한국춤은 상대가 없어도 저절로 어깨춤이 나오고 궁둥춤이 나온다.
마당 에서도 두둥실 마루 위에서도 더덩실 이다.

화전이 무엇인가 보지는 못했어도 춤추는 아낙들이 꽃이고 나비이고
손바닥 무릎장단에 물장구 두둥둥 장구는 덩 기덕 쿵 더러러러~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절제 있게 분출되는 “읏” “얼씨구” “조오타~”
나에게 한국 혼을 심어 주는 환상곡 한마당 이었다.

숙희의 눈동자에는 아련한 첫사랑의 빛깔이 번지며 나의 사촌 오빠를
평생 아름답고 순결하게 짝사랑으로 지켜갈 새싹이 보였다.

2011.2.9 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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