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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16 - 영길 할머니

2011.08.30 14:23

이기우*71문리대 Views:5539

[강민숙의 연재수필] 홍천댁 16



16. 영길 할머니


“젊은 양반, 혹시 우리 아들 못 보셨수?
성은 권씨 이름은 수맹이라고 해유. 우리 아들 수맹이는 갓 사십인데유,
키도 크고 체격이 장대하니 눈도 어글어글 해서 멀리서두 눈에 확 띠지유.”

“할머니 저는 못 보았시유~” 지나가는 행인이 대답한다.

“젊은 양반! 혹시 나중에 만나걸랑 우리 수맹이 빨리 집으로 돌아 오라고
전해 주시유. 이 에미가 애타게 기다린다고 해주시유~“

“예, 예 ??...” 행인은 난색을 표하며 빨리 지나 가려고 한다.

“젊은 양반~, 아이구 젊은 양반~~, 이 에미가.........”
영길 할머니가 쫓아가며 당부를 하건만 행인은 갈 길을 재촉한다.

타인이 별로 다니지 않는 촌마을에 낯선 남자만 보면 영길 할머니는
달려가서 제2국민병으로 나간지 2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유복자 외아들의 이름 권수명을 대며 안부를 묻는다.

1.4 후퇴 피난은 한 달 인지 두 달 인지 걸어서 갈수 있는데 까지 남쪽으로
갔다가 국군과 유엔군이 강원도 까지 북진 했다하여 경기도 여주 외갓집
동네는 전부 집으로 돌아왔다.
제2국민병으로 나갔던 동네 남자들도 다 돌아 온 듯 하나 영길 아버지는
감감 무소식이다.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고 다시 해가 바뀌어도 소식이 없다.
동네사람들의 추측으로 병사 했거나 동사 했을 것 이라고 한다.
아니 그보다 굶어 죽었을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동네에서 아는 사람들과 같이 걷기도 했다고 하나
수백 수천명이 무리지어 걷는데 빨리 걷는 사람도 있고 뒤처지는
사람도 있고 며칠 몇 달을 걸으니 무리가 흩어지기도 하고 모이기도
하고 낙오자도 생기고 추위에 먹고 잘 곳도 없이 무작정 걷다보니
동사자도 생겼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한 발짝 뒤처지는 것이 무슨 대수랴 이웃 끼리라도
같이 다니자 했으면 서로 의지가 되었을 텐데 그때는 누구도
한치 앞을 모르고 긴박한 상황에 당장 뒤에서 총부리를 겨누고
쫓아오는 것 같은 목숨을 건 탈출이었다.

나라에서 젊은 남자들을 불러 모았는데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조직망도
없이 리더도 없이 무조건 남쪽으로 가라하여 걷고 걷다가 어느 날 해산
되었다고 한다.
명부도 없고 군번도 없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먹고 입고
잘 곳이 없었다고 한다.
더 기막힌 것은 집합 장소로 가도 갈 곳이 없고 모르는 상태였다고 한다.
조직이 없으니 정보도 없어 언제 해산이 되었는지도 모르고 남이 뛰면
따라서 뛰고 남이 돌아서 집으로 가니 따라서 집으로 왔다고들 한다.
준비도 없이 가장 혹독하게 추운 계절에 이런 사태가 벌어져서 열에 하나는
굶거나 얼어서 죽었다고 한다.

나는 뜻밖에도 이런 행렬이 외갓집 마을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1.4후퇴 며칠 전이었는지 후 이었는지는 모르나 동네 남자들이 삼삼오오
떠나 버린 후 여주보다 북쪽에서 모여서 오는 사람들이 고개를 넘어 큰길도
아닌 골짜기 샛길을 타고 지름길로 지나 간다는 소문에 벌 들판으로 나갔다.
수백 명이 이포 나루를 건느려고 강나루를 향해 걸어가는데 동네 몇 몇
사람들이 물동이에 물이라도 떠다 주려고 했는데 역부족 이었다.
물동이는 고사하고 치여 죽을 지경이었다.
물 가져다주려는 아주머니를 보자 벌떼처럼 몰려드는 사람들로 물동이는
찾을 수도 없이 손에서 손으로 날라가 버렸고 한 번씩 스치는 사람들의
옷자락으로 아주머니의 손등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해서 동네 사람들이
아주머니를 부축해서 피해주지 않았으면 치어 죽고 말았을 것이었다.

그 날의 살인적인 행렬 이후 동네 사람들도 서둘러서 피난 보따리를 쌌다.
처음에는 행렬에 기운이 보였으나 날이 갈수록 차차로 기진맥진
죽음의 대열이 되었다고 한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 제2국민병 즉 국민방위군이 전투가 아닌 걷기만
하다가 굶주리고 추위에 약 10만명이 죽었을 것이라고 한다.

영길 할머니는 소시적에 외증조모님 연줄로 타 곳에서 이 동네로
오셨다는데 늦게 본 외독자를 혼자 키우시며 동네에서 멀리 보이는
강이 가까운 벌쪽 싸립문이 달린 초가 외딴집에 살고 계셨다.
나의 외증조모님을 “성님”으로 부르며 일도 도와 주시니 우리들은 영길
아버지를 젊은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열여섯 살 영길이를 아재로 불렀다.

팔십이 가까운 영길 할머니는 망령끼가 있다고 한다.
며느리도 몇 번 쫓아냈다고 한다.
며느리를 쫓아 낼 때는 성질이 나빠서인지 망령끼가 있어서 이었는지
잘 모른다고 한다.
영길이 친엄마를 쫓아냈고 다시 들인 며느리도 쫓아냈고
지금 영길 엄마가 아들 셋을 낳고 십년 째 살고 있는데 매일
나가라고 한다.

영길 엄마는 균형 잡힌 체격에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사람들을
좋아했고 우리들도 젊은 할머니 영길 엄마를 좋아했다.
영길 할머니의 구박에도 내색 않고 사는 것을 용하게 생각했고
집안일이나 농사일이나 시원 시원히 잘 했다.
홍천댁하고 같은 또래의 아낙으로 우리 외갓집에서 하루가
멀다고 만나는 친구지간이다.
특히 홍천댁이 혼자된 후로 과부나 다름없는 영길 엄마 역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동병상린의 설음을 나누고 있다.

그때는 피난 시절이 아니라도 시골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줄 몰랐다.
어느날 영길 엄마가 시어머니에게 세 아이들을 맡겨 놓고 들일을 하고
돌아오니 큰 아이가 집 가까운 논가의 저수지에 빠져 죽었다.
외딴집이라 동네 사람들도 몰랐다.
그래도 살려고 영길 엄마는 쫓아내려고 구박하는 시어머니 밑에서
논일 밭일 가리지 않고 일했고 착한 영길 아재도 새엄마를 도와
논일 밭일 가리지 않고 일했다.

영길 아재는 저녁 먹은 후 언제나 우리 외갓집에 와서 오빠들과 놀면서
재미있는 이야기 수수께끼 손 그림자 성냥개비 쌓기 보자기 요술들을
보여주면서 종이 접기나 종이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을 재주 있게 만들었다.
영길 아재는 동네에서 몇 안 되는 짚신을 삼을 수 있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다.
밤이 깊어 외증조모께서 등잔에 기름 닳는다고 걱정을 하시면 영길 아재는
아쉽게 우리들과 작별을 하고 내일을 기약하고 외딴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해에도 또 다음 해에도 영길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영길 엄마와 영길 아재는 매일 밭일을 나갔고 영길 할머니는 매일
안돌아 오는 아들을 찾아 헤매었다.
할머니마저 돌보아주지 않는 영길 엄마의 두 아들마저 저수지에서 둘이
놀다가 같이 빠져 죽었다.

지금 생각하면 외딴집 아이들을 동네 가운데 데려다 놓고 놀라고 했으면
이런 불상사는 방지 했을 덴데 하고 생각한다.
영길 엄마도 그러고 싶었겠지만 먹을 것도 없는데 남한테 아이들을
맡길 수가 없어서 그랬겠지.
나 같은 애들이라도 여럿이 놀러 다니는 셈치고 애들을 보면서 같이
있었다면 좋았을걸.

“영길아 나 없어도 할머니 모시고 살 수 있지?"
영길 엄마는 착하고 듬직한 전실(前室) 아들에게 매일 다짐 한다.
"예, 어무이 걱정 마세유”
영길이도 매일 각오 한다.
“너는 아직도 안 갔냐? 이년아 당장 나가거라! 배고프다. 아직 밥 안됐냐?”
망령난 영길 할머니는 매일 며느리 쫓아낼 생각이다.

미리 알기는 했겠지만 영길 엄마가 없어진 날 홍천댁은
외갓집 부엌에서 흐느꼈다.
외갓집 식구들도 모두 맥이 풀렸고 넋이 빠져 일이 손에 안 잡혔다.
장례도 못 지내주고 제사도 못 지내주는 영길 아버지를 불쌍히 생각했고
홀로 떠나야 했던 영길 엄마가 불쌍했고 친엄마도 모르고 자란
열여덟 떡거머리 총각 영길이가 불쌍했고 망령난 영길 할머니가 불쌍했다.
십년지기 친구, 같은 처지의 친구,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잃은
홍천댁이 불쌍했다.

2011.7 강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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