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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철' 밑거름이었던 박태준과 박정희의 인연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하 박태준)의 ‘철강 신화’ 이면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하 박정희)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가 있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박태준이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 직후인 1948년. 당시 육사 탄도학(彈度學) 교관을 맡았던 박정희는 수학에 강하고, 자기 규율에 엄격한 박태준을 눈여겨봤다.박태준의 졸업을 끝으로 헤어졌던 두 사람은 10여년이 지난 후 재회했다. 박태준이 육군본부 인사과장(대령)으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박정희는 박태준에게 “제2군수기지 사령관으로 발령을 받았는데 참모장으로 나를 보좌해 달라”고 요청했고, 박태준은 망설임 없이 그를 따랐다.

강한 자제력, 완벽주의, 직선적 성격 등 여러 면에서 ‘닮은꼴’이었던 두 사람은 이 시기에 두터운 친분을 쌓게 된다.이런 일도 있었다. 2군수 사령관 박정희가 박태준을 시험하기 위해 박태준에게 다음 날 아침 군수본부 장비계획을 보고하게 한 뒤, 부하들을 시켜 그날 밤 박태준에게 술을 잔뜩 먹였다. 그러나 ‘말술’이었던 박태준은 박정희의 부하들이 만취해 모두 귀가할 때까지 자리를 지킨 뒤, 밤을 새워 보고서를 작성, 다음날 아침 약속한 시각에 사령관실에서 박정희를 기다렸다가 차질없이 보고를 올렸다.당시 박정희는 박태준 을 ‘무쇳 덩어리’라고 부르며 만족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을 준비하던 박정희는 박태준에게 이렇게 말했다. “임자는 일에 참여하지 말고 일이 잘못되면 내 식구들이나 좀 돌봐줘.”박태준에 대한 박정희의 신뢰가 드러나는 대목. 그러나 박태준은 5·16 당일, 박정희의 지시를 어기고 박정희 세력의 지휘부에 불쑥 합류함으로써 박정희의 지시를 어겼다.

군사정부 수립과 함께 박종규·김종필 등 모든 측근이 정치권으로 나갔지만, 박태준은 기업체로 나간다. 그리고 얼마 뒤, 한국에서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철’이 필수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박정희는 ‘종합제철소’라는 국가적 프로젝트를 구상한다. 프로젝트의 실행을 맡은 인물은 박태준이었다.그러나 세계무대에서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가 채 안 되는 한국에 선뜻 ‘제철소를 만들라’며 차관을 제공하거나 기술 이전을 해주겠다고 나서는 국가나 기업, 개인이 있을 리 없었다.

백방으로 알아본 끝에 간신히 미국으로부터 투자 약속을 받아 냈다. ‘먼저 공장을 지으면 차관단이 돈과 기술을 빌려주겠다’는 조건이었다.그런데 막상 한국이 포항 영일만에 부지를 마련하자, 미국 측이 차관 제공 약속을 깨버렸다. 후진국 한국의 제철사업에 회의를 품게 됐던 것이다. IBRD(세계은행)가 미국의 수출입은행에 제출한 보고서가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보고서에는 “한국은 노동기술 집약적인 기계공업을 먼저 하는 게 좋다”고 적혀 있었다.

망연자실해 있던 박태준의 머리에 떠오른 것이 우리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받기로 한 ‘대일청구권 자금’ 1억 달러였다. 이 돈은 당초 농업 분야에만 쓰기로 약속됐었지만, 이를 제철소에 전용(轉用)하겠다는 발상을 한 것이다. 박태준은 박정희를 설득해 일본을 방문했고, 결국 대일청구권자금 중 농업에만 쓰기로 했던 자금을 '제철소 건설'에 쓸 수 있도록 하는 회담을 성사시 켰다. “제철소 건설의 목표는 국가안보이며, 한국이 적화하면 일본에도 손해”라는 논리를 폈던 게 주효했다.

마지막 남은 관문은 ‘기술이전’이었다.박태준은 일본의 3대 철강회사 사장과 소유주를 막무가내로 따라다니며 기술 이전을 조르기 시작했다. 박태준은 자신의 방일(訪日) 일정에 맞춰 휴가를 떠나버린 철강회사 소유주들을 휴가지까지 따라다니며 읍소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에서도 ‘어차피 한국이 일본의 경쟁상대로까지 크기는 어려울 것이고, 가까운 나라에서 철강 산업과 경제가 일어났을 때 인접국으로써 얻는 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여론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박태준은 마침내 뜻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제철소 건설 계획이 진행되기 시작하자, 주위에서는 이권을 둘러싼 이런저런 음모론이 돌기 시작했다. 제철소 부지 인근 아파트 건설 사업이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박태준은 ‘허허벌판인 영일만에 유능한 엔지니어와 관리직 사원들을 끌어들이려면 훌륭한 생활 여건을 먼저 마련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었지만,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왜 공장이 돌아가기도 전에 근처에 아파트부터 짓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권을 둘러싼 음모론이 판을 치면서, 정보기관은 가택 수색도 수차례나 받았다.견디다 못한 박태준이 결국 사의(辭意)를 표하자, 박정희는 종이에 친필로 박태준에 대한 지지 의사를 적어 그에게 건넸다. 박태준이 박정희의 뜻으로 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종이 마패’였다. 이와 함께 포항제철의 인사 및 경영에 대한 전권도 박태준에게 줬다. 이때부터 박태준은 오직 제철소 건설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그는 '제철보국(製鐵報國·제철로써 나라에 보답한다)', '우향우 정신'(포철을 성공하게 하지 못하면 오른편 영일만에 모두 빠져 죽자는 각오) 등의 구호를 내걸고 일에 매진했고, 기둥 하나가 잘못 세워질 때마다 가차없이 폭파시키는 그의 완벽주의 속에 제철소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3년 6월 9일 구호들은 모두 현실이 됐다. 마침내 제 1고로에서 쇳물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경부고속도로의 3배가 넘는 1215억원이 든, 유사 이래 최대의 사업은 이렇게 완성됐다.

미국의 제철소 차관 제공을 만류했던 IBRD 보고서의 작성자, 지페 박사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그때 내 보고서가 틀렸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지금 다시 보고서를 쓰라고 해도 똑같은 보고서를 쓸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모르고 지나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박태준입니다.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닙니다. 박태준과 포철이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Contents from Internet,Webpage by Kyu Hwang,December 13,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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