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7 01:32
지난 13일 별세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영결식이 17일 오전 9시30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사회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박희태 국회의장과 원혜영 민주통합당 공동대표,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모리 전 일본수상 등 6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태극기로 덮인 영구(靈柩)를 든 국군 의장대가 고인이 생전에 받았던 충무무공훈장 등을 앞세우고 장례식장에 들어서자 조문객들은 모두 일어서 고인에 대한 예를 표했다.이어 황경로 장례위원장이 박 회장의 약력을 보고했다.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조사(弔詞)에서 “원대한 소망을 이뤘지만 어찌 당신이 우리를 떠날 수 있겠나. 존경하고 사랑하는 박태준 명예회장을 고인이라 부르고 싶지 않다”며 애통해했다. 위인전 평전에 박 회장의 인생을 그려넣은 인연이 있는 조정래 작가는 “당신은 이 나라 경제의 아버지다. 앞으로 박태준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이 땅에 얼마나 될까”라고 조사를 읽으며 흐느끼자 조문객 사이에서도 울음이 터져 나왔다. 다음으로는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의 조사, 장례위원장인 박준규 전 총리의 추도사, 가수 장사익씨의 조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가 이어졌다.참석자들은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추모 영상을 지켜본 뒤 영정 앞에 헌화하고 묵념하는 것으로 작별 인사를 고했다. 약 1시간30분에 걸친 영결식이 끝나자 고인의 시신은 운구차에 실려 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으로 옮겨졌다.유공자 3묘역에 마련된 장지에서 하관된 고인 위로 장남 성빈씨와 부인 장옥자 여사 등 유족과 장례위원들이 차례로 관 위에 허토한 뒤 군 의장대의 조총 발사를 끝으로 안장식이 마무리됐다. 앞서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출발한 고인의 운구 행렬은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에 들렀고 이곳에서는 임직원 1천5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추도식이 열렸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으로 발탁된 고인은 1968년 포항제철 사장으로 지명돼 포철의 일관제철소 사업을 이끌면서 한국 철강산업의 신화를 써내려갔다.11·13·14·15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으며 민자당 탈당과 일본 망명생활 등을 거쳐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국무총리를 지냈다. 박 회장에게는 14일 1등급 훈장인 청조근정훈장이 추서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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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태준 명예회장의 인품을 알수있는 이야기하나 더 보탭니다. 규정
故 박태준 명예회장과 23년前 인연 강순남씨, 눈물의 조문
지난 14일 오후 7시쯤 경북 포항시 남구 대도동 포항문화예술회관.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분향소가
차려진 이곳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강순남(58)씨가 들어섰다. 합장한 채 눈을 감았다 이내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렸다.
"회장님은 우리 가족이 반듯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따뜻하게 도와줬던 햇살 같았던 분입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강씨는 1978년 포항종합제철에 근무하던 남편 이진욱씨와 결혼했다. 남편은 1988년 정부의 감사에
대비하며 감사 마지막 날인 12월 9일 포항의 한 여관에서 잠을 자다 돌연 숨을 거뒀다. 다섯 살과 초등학교 2·3학년인
딸 셋을 혼자 키워야 했던 그녀는 남편의 순직 처리를 요구했으나 "근무 중 회사에서 숨진 게 아니라 곤란하다"는 회사 측
답만 돌아왔다.
그달 30일 동네 은행에 가던 중 한 남성으로부터 "혹시 지금 박태준 회장님과 점심 먹을 생각 있느냐"는 질문을 받아 응했다.
박 회장은 이날 제철소 노조 문제로 맘이 편치 않아 비서에게 "누가 내 답답한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 누구든지 데려와라"고
지시했고, 우연히 강씨가 제의를 받았다. 밥과 국, 생선구이 등이 차려진 사택 식탁에서 박 회장은 과거 척박한 상황에서 제철소를
세웠던 경험담 등을 쏟아냈다. 얘기를 끝낸 박 회장은 "이제 부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다. 강씨는 "내 남편을 포철에
바쳤으니 순직 처리해주세요. 광양제철남초등학교에서 교사를 채용하는데 제가 지원 자격을 갖췄으니 일할 수 있게 해주세요. 아이들을
키워야 합니다"하고 청했다.
박 회장은 "서른여섯이면 내 딸이랑 동갑이다. 지금 얼굴이 말이 아니니 밥그릇을 다 비우면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강씨는
오랜만에 밥그릇을 싹 비웠다. 박 회장은 "남편 부조금"이라며 100만원짜리 수표가 든 봉투도 건넸다. 강씨가 거절하자 "큰딸
결혼 축의금 미리 주는 셈 치자"며 다시 권했다. 봉투 겉면엔 '꿋꿋하게 잘 살아가기 바랍니다'라는 글도 써 줬다.
만남 후 맞이한 새해 1월 남편은 순직 처리됐고 강씨도 제철남초등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포항제철서초등학교 등으로 근무지를
옮겼고 3년 전 명예퇴직했다. 강씨는 "제가 살아갈 수 있는 삶의 기틀을 마련해 준 고인은 내 마음속 친정아버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