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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과 가정

1. 혼인

성인이 되면 대부분은 배필을 찾아 혼인하게 되며, 결혼은 남녀 공히 일생에 중대사이다. 남녀에게 주어진 일이 각기 다르기는 하나, 여성에게는 임신과 자녀 출산에 따른 부담으로 남성에 비해 육체적, 혹은 정신적 고통이 많이 따른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여 결혼을 한 두 남녀에게 때로는 시련이 닥쳐 올 수 있으나. 결혼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에 모든 인내를 감수하기로 한 부부는 넘겨야 할 고비를 슬기와 지혜로 이겨내야만 마지막에 참다운 사랑의 열매를 맺으며 결혼의 의의를 가지게 된다.

이 점을 혼인한 여성은 깨닫고 남성보다 더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야만 한다.

1) 고통

용기는 신앙과 구원의 세계에서 결코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덕목이라는 것이 하혈을 하는 여인과 귀신 들린 딸을 가진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는 사실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이들은 특별히 아름답지도 않았고 내세울 만한 이름도 없는 평범한 여성들이었지만 슬기와 함께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용기가 그들을 구원하였다. 이 여인의 용기의 근원은 고통과 고난이었다. 이 세상에 고통 없는 삶은 없겠지만 병마에 시달려본 사람은 그것이 고통 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자 여인은 곧 하혈이 멈추면서 병이 낫게 되었다. 동시에 예수님 역시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가 누군가의 병이 나았다는 것을 아셨다(마가 5:29-30). 우리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쏟아 부어서 다른 한 생명을 소생시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주님의 독특한 사랑과 생명의 능력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고통’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특히 ‘인간의 본성에 본질적으로’ 관련된 의미를 띠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고통은 인간 자신과 마찬가지로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통이야말로 특별히 그 나름대로 인간에게 고유한 깊이를 드러내고 있으며 또 특별히 그것을 능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은 인간의 초월성에 속해 있다고 하겠습니다. 곧, 인간이란 어떤 의미에서 인간 자신을 넘어서 나아가도록, ‘운명지어져’ 있으며 신비로운 방식으로 이 초월성을 향해 부름을 받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고통인 것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인간의 고통은 인간 본성에 본질적으로 관련되어 인간 고유의 깊은 의미가 있고 초월성에 속해 있으며 초월성을 향해 부름을 받고 있는 것 중 하나라고 말씀하신다.

하느님은 우리를 위해, 우리 안에서, 우리보다 앞서서, 고뇌와 고통, 질병, 빈곤, 외로움, 절망, 죄 등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는 모든 것을 지고 가신다. 그리고 우리보다 더 아프게 지고 가신다. 어머니는 아들을 자신과 동일시하므로 아들이 아프면 그 모든 아픔을 같이 견디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느님은 악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악으로 인해 고통 받으시고 그로 인해 죽으시며 누구보다도 먼저 상처를 입으신다. 악이 존재하는 것은 우선 하느님이 그 희생자이시기 때문이다. 그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그 악이 겨냥하는 것은 하느님이며, 하느님은 정면으로 타격을 입으신다. 왜냐하면 만일 인간 안에 하느님의 존재가 없었다면, 악이란 것이 그렇게 끔찍한 것이 아니었을 터이니 말이다. 빈대 한 마리를 죽인다는 사실과 비하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큰 상황이다.

정에 넘치는 사랑,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랑, 항상 희생당하는 사랑이신 하느님은 고통과 아픔이 있는 곳, 절망과 고독과 죽음이 있는 곳, 특히 그분의 도움을 거절하는 거친 절망이 있는 곳에 계신다. 바로 하느님이 희생자이시기에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찬 것이며, 악이 최고의 경지에 이를 수 있기에 악은 사람 안의 하느님을 못 박을 수 있다. 누구든 사람 안에 계신 하느님을 죽일 수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피폐된 유럽에 허무주의가 난무했을 때, 혜성처럼 나타나 인간의 고귀함을 외쳤던 가톨릭 철학자, 막스 셀러(Max Scheler)는 그의 “고통의 의미”라는 글에서 고통을 통하여 우리가 하느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었다. 그는 인간의 모든 감정은 그 감정을 체험한 사람의 내부에 언제나 어떤 의미의 반향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을 꿰뚫어 보았다. 예컨대 피곤의 감정은 휴식을 즉각 요구하고, 벼랑 위에서 느끼는 현기증은 뒤로 물러 설 것을 즉각 암시 한다. 공포의 감정은 가상적인 위험으로부터 자기방어와 예방책을 환기시킨다는 것이다. 그는 고통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죽음과 고통이 없다면 사랑도 없고 공동체도 없다. 희생과 희생의 고통이 없다는 사람의 부드러움도 없다. 지능에 의해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고통의 의미는 고통에 대한 순수효용적인 가치의 인식보다 갚은 방식으로 우리를 고통과 죽음의 현실과 화해시킬 수 있을 것이다.”

불구의 어린이를 키우는데 막대한 고통이 따른다 해도 절대적 불행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마태복음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스도는 “행복하여라 우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으리니”(마태 5,5)라고 역설을 선포하셨다. 이 세상에서 슬픔과 비참이 없는 것으로써 행복의 척도를 삼는다면 복음에 위배된다.

따라서 여성은 혼인을 통해 얻은 태아라는 생명에 대해, 고통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임신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혹은 여러 여건에 따라 부담이 되어도 그 어려움을 잘 받아들여 인공임신중절이라는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키는 행위는 없어야 하며, 어떠한 아기가 태어나더라도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인 생명체를 잘 받아들이고 출산하여 양육하는 일이 얼마나 뜻 깊고 행복한 일인가를 알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2) 혼인의 효과와 은총

세례를 받은 남녀 사이의 혼인으로 인한 결합은 사랑의 표지이고, 주님은 이 성사를 통하여 맺어지는 부부들이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준다. 혼인성사는 교회가 정한 규범에 따라 교회의 혼인법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혼인 유대는 하느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으로서, 세례 받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고 완결된 혼인은 절대로 해소될 수 없다. 부부의 자유로운 인간적 행위와 혼인을 완결 짓는 육체의 결합으로 발생되는 이 유대는 이제 취소할 수 없는 실재이며, 하느님의 성실하심으로 보장된 계약의 기원이다. 교회는 하느님 지혜인 이러한 안배를 거스를 권한이 없다.

그리스도교 신자 부부는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에서 자기 생활 신분과 영역에 고유한 은총을 받는다. 혼인성사의 이 고유한 은총은 부부의 사랑을 완전하게 하고, 해소될 수 없는 그들 사이의 일치를 강화한다.” 이 은총으로 그들은 “부부생활은 물론 자녀 출산과 교육을 통하여 성덕에 나아가도록 서로 도와준다.”

혼인 안에서 남자와 여자의 결합은 육체를 통해 하느님의 너그러움과 풍요로움을 본받는 것이다.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창세 2,24). 이 결합에서 모든 세대의 인류가 태어난다.

“혼인 제도 자체와 부부 사랑은 그 본질적 특성으로 자녀의 출산과 교육을 지향하며, 그로써 마치 절정에 이르러 월계관을 쓰는 것과 같다.”

여성은 혼인의 효과와 은총으로 남녀의 결합이 이루어지며, 이는 하느님의 너그러움과 풍요함을 본받는 것으로, 이 결합을 통해 태아라는 생명이 생겨나는 근거가 됨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3)모성애

인간이 자신의 창조주와 갖는 기본적인 관계의 위대함은 모성애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생명은 그 처음부터 인간 존재의 존엄성의 기초인 거룩한 선물로서 드러나며, 이 근원적인 선물은 어머니의 몸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인간은 그 자신의 첫 시작을 어머니의 마음 안에서부터 시작한다. 인간 존엄성의 첫번째 척도이며, 인간으로서의 침해당할 수 없는 권리들의 첫번째 조건은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에서부터 비롯된다. 우리는 인간을 그의 시작에서 결코 분리시킬 수 없다.” ‘어머니의 마음 안에’ 있는 이 시작 안에 이미 인간 실존의 전체가 자리 잡으며, 인간 전체와 함께 인간 존재의 “기초적인 가치와 그의 모든 권리의 기초”가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 바오로 2세는 확신에 차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머니로서 위치는 여성의 성소입니다. 이는 여성에게 하나의 영원한 성소이며, 또한 현실에서의 성소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세계는 특별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성모님께서 그리하셨던 것처럼 여성의 고귀한 성소인 모성애에 굶주리고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실상 모성애는 생명에 대한 원의와 생명의 현존을 밝혀 주며, 또한 생명의 성스러움을 드러내 보여 줍니다. 모성애는 생명에 대한 보호를 끊임없이 외치는 일종의 메시지입니다.”

페스탈로치는 “사랑, 신뢰, 감사의 싹은 이렇게 자란다. ……어린이는 어머니와 닮은 사람을 사랑한다. 어머니와 닮은 사람은 어린이에게는 엄마처럼 좋은 사람인 것이다. ……어머니가 사랑하는 사람을 어린이도 사랑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어린이의 마음속에 인류애, 동포애가 싹트고 자란다.” 라고 하였다. 인간의 가장 고귀한 감정들이 아늑한 모자 사이에 싹이 트고 자라는 것임을 그렇게도 감미롭게 묘사했다.

이렇게 여성의 성소는 어머니로서의 위치이며, 인간으로서 가지는 모든 권리 중, 가장 완전하고도 으뜸이 되는 권리가 생명에 대한 권리인 바, 이 권리의 위대함이 바로 어머니와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이므로, 모성애를 가진 어머니로서 태아에 대한 생명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4) 성(性, sexuality)

현대 과학의 연구에 따르면, 성욕이 인간에게 상당히 깊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것은 개인 생활에 주요 특성을 제공하는 요인들 가운데 하나로 취급되어야 한다. 사실 인간은 자신의 성에 따라 생리적, 심리적, 정신적 차원에서 한 남자 또는 여자가 되게 하는 특성을 얻으며, 또한 그것에 따라 그의 성숙의 진보와 사회적 적응이 크게 좌우된다.

인간은 하느님 마음 속에 기록해 놓은 법을 갖고 있다. 그것에 복종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성의 본질적 질서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인간의 존엄성은 보존될 수 없다. 물론 문화사 과정 중에 인간 생활의 많은 구체적 조건과 요구가 변하였고 또한 계속 변할 것이다. 그러나 도덕의 진화와 생활 형태는 인간의 구성 요소와 본질적 관계에 바탕을 둔 불변적 원칙에 따라 규정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 요소와 관계는 역사의 우연성을 초월한다.

성도덕은 인간적이고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기본 가치와 관련되므로, 이상의 일반적 교훈은 성도덕에도 적용된다. 이 원칙과 규범은 결코 어떤 문화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신법과 인간성에 관한 지식에 근거를 둔다. 그러므로 새로운 문화적 상황이 출현하였다는 이유로 그것들은 구식이나 의심스러운 것이 되었다고 간주할 수 없다.

사회생활의 조직과 교육을 위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격려와 지령은 이 원칙에서 흘러 나왔다. 사회 생활의 조직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동등한 존엄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람의 “성적 본성과 생식 능력”에 관하여 논하면서 인간은 “하급 생명체의 성벽을 훨씬 초월한다”는 점에 공의회는 주목하였다. 그리고 공의회는 배우자간 성행위에 관련되며 성 기능의 목적에 기초하는 원칙과 기준을 설명하는데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 점에서 혼인 생활에 합당한 인간 존엄에 따르는 행위의 도덕적 적합성은 의향의 성실성이나 동기의 내용에 따라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공의회는 선언한다. 윤리성은 객관적 기준에 따라 규정되어야 한다. 인간성과 행동에 바탕을 둔 이 기준은 참된 사랑 안에 상호 자기 증여의 의미와 인간 생식을 보장한다.

성 본능은 인간에게 일종의 격렬한 힘이지만 전적으로 무질서하거나 일정한 형태를 갖추지 못한 힘은 아니다. 이는 인간이 지닌 힘이며, 또한 인간을 위한 힘이다. 성은 인간 내부에 밀착되어 있으면서 인간에게서 악습과 허상을 극복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는 인간 안에서 큰 영역을 차지하면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지니도록 돕는다. 성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실존적 빈약을 체험하고, 또한 다른 사람을 향해 개방된 삶을 살도록 이끈다. 즉 자신의 실존적인 결핍으로부터 제기되는 개방성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성적 행위가 지니는 가치는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인격의 의미를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성은 그 자체 안에 인격의 내외적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의지까지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부부가 친밀하고 정결하게 서로 결합하는 행위는 아름답고 품위 있는 행위이다. 참으로 인간다운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그러한 행위는 상호 증여를 뜻하고 북돋우며, 기쁘고 고마운 마음으로 서로를 풍요롭게 한다.

방탕은 성애(性愛)를 무질서하게 원하고 그것에 문란하게 탐닉(耽溺)하는 것이다. 성적 쾌락은, 부부 일치와 자녀 출산이라는 그 궁극 목적에서 벗어나 그 자체를 위해 추구될 때, 도덕적 문란이 된다.

사음(邪淫)은 혼인하지 않은 남녀의 육체 결합이다. 이는 인간의 품위에, 그리고 본래 부부의 선익과 자녀 출산과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성의 품위에도 크게 어긋난다. 그뿐 아니라 젊은이들을 타락하게 하는 매우 악한 표양이 되는 것이다.

여성이 이러한 성행위의 본질을 바르게 인식하고 방탕과 사음이 부부일치와 자녀 출산이라는 궁극의 목적과 어긋나며 악의 표양이 됨을 생각할 때, 인공임신중절의 원인이 되는 방탕과 사음은 있어서는 안 된다.

5) 피임

1985년부터 2009년까지의 자료에 의하면, 기혼여성의 인공임신중절 경험률이 감소하면서 경험 횟수도 감소 추세에 있다. 특히, 2회 이상 반복경험자가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의료기술의 발전과 함께, 여성들이 피임법에 대해 익숙해짐과 생명윤리 운동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2009년 11월 1일, 발족한 낙태 반대운동을 표방하는 ‘프로라이프 의사회’ 등, 낙태 시술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앞서부터 다짐해온 낙태 반대에 대한 강한 의지에 따른 것으로 사료된다.

주기적인 절제, 곧 자기 관찰과 불임 기간의 이용에 바탕을 둔 출산 조절(가족계획)은 도덕성의 객관적 기준에 합치되는 것이다. 이 방법들은 부부의 육체를 존중하고, 그들 사이의 애정을 북돋우며 진정한 자유를 가르쳐 준다. 반면에, “부부 행위를 앞두고, 또는 행위 도중에, 또는 그 자연적인 결과의 진행 과정 중에, 출산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거나 수단으로 하는 모든 행동은” 근본적으로 악이다.

출산 조절은 책임이 있는 부성과 모성의 한 측면을 표현한다. 부부가 정당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직접적인 불임수술이나 피임과 같은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방법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피임에는 자연조절방법 이외에 피임 기구를 이용한 인위적인 방법이 있다. 월경 주기의 각 단계는 여성의 호르몬 분비와 신체의 변화를 수반하여, 이 현상들을 적절한 방법으로 관찰, 해석하여 여성이 가임기에 있는지, 아닌지를 알아낼 수 있다. 이런 사실에 기반하는 임신의 자연 조절은 부부 성행위의 본성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 그러나 부부는 이것을 ‘책임 있는 출산’을 위한 방법으로 사용하고, ‘출산 회피’의 전적인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여성은 낙태 방지를 넘어서서 가족 계획의 일환으로서 자연 조절법을 통해, 부부 성행위의 본성을 존중하고 ‘책임 있는 출산’을 하도록 하여야 한다.

 

2. 가정

인생은 험난한 것으로, 인류 역사를 보면, 평화가 지속된 적은 거의 없으며 인간이 규범과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보장도 전혀 없고, 가족이든 이웃이든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그러하기에, 인간은 끊임없이 상처를 받는다. 그래서 인간의 온전함은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 인생 여정에서 받은 상처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상처 때문에 성장할 수 있는 마음이 요구된다. 인간의 마음은 사랑이 넘치고 자비로우신 창조주께서 고안하신 지극히 슬기로운 자연 계획의 결과로서, 태어날 때부터, 혹은 태어나기 전부터 온전함을 향한 이 과정에 맞춰져 있다. 세포 조직은 영양 상태가 좋은 신체에서 치유되도록 고안된 것처럼, 제대로 준비된 인간의 마음은 치유와 성장을 향하게 되어 있다. 이 길, 이 설계, 이 계획이 가정이다.

 

1) 삶의 원천

가정은 인간이 최초로 맞이하는 자그마한 공동체이다. 그러나 이 공동체는 생명적 공동체이며 거기서 새 생명이 태어나 성장하는 평온한 작은 성이다.

집의 존재론적 풍요를 ‘집의 모성’에서 찾아 낸 바술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부터 인간은 집이라는 요람에 놓여 있다.” 즉 “우리는 집이라는 요람으로부터 그 안에서 숨겨지고 지켜지며 그 품안에 따뜻하게 안겨서 출발한다.” 인간은 가정 속에서부터 세계를 내다보고, 그 근경과 원경에 익숙해지고 친밀해지면서 세계와 대화하고, 눈앞 저 너머의 인생을 조망하고 몽상을 그리는 생의 원근을 배우게 된다. 이렇게 가정은 육체의 요람인 동시에 정신의 요람이며, 인간의 기본적인 감성을 키우기에 가장 기초적인 공간이다. 쉬는 것, 안락한 것, 신뢰하는 것, 희망하는 것, 꿈꾸는 것, 이런 모든 것들은 어머니의 상냥한 부름에 눈을 뜨고 거니는 어린이의 완만한 발걸음 속에서 점차 체험된다. 이렇게 가정은 인간의 생명을 키워 성장으로 이끌고 때로는 상처난 생명을 치료함으로써 생명의 풍요로움과 신비에 넘치는 둘도 없는 생의 드라마에 깊이 관계하면서 그 사명을 다 한다. 불행하게도 가정의 행복을 잃은 어린이들은 주도면밀한 입법과 다양한 사업으로 보호하고 적절한 도움으로 불행을 덜어주어야 한다.

가정은 생명적 공동체이며 생명이 태어나 성장하는 삶의 원천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부터 인간은 집이라는 요람에 놓여 있음을 생각할 때 가정과 태아의 생명과의 관계는 의미가 깊다.

2) 가정 공동체와 사회

혼인은 부부간에 사랑의 일치를 이루고 가정생활 안에서 이 일치를 통해 자녀를 낳아 기르고 부부가 서로 사랑과 기쁨을 나누며 모든 일에서 상부상조하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리스도인의 혼인에서 표현되는 남자와 여자의 결합의 의미를 신학적으로 하느님과 인간의 결합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창조된 인간이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인간 존재가 되었음을 뜻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하느님과 비슷하게 만들어졌음을 뜻한다. 이렇게 하여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첫 번째 연결이 가능해졌고, 이는 인간 안에서 불가분하게 영혼과 육체의 결합으로 표현되었다.

그리스도인의 혼인 생활은 ‘부부 사랑과 생명의 친밀한 공동체’의 소명을 살아가는 것이며, 이는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희생하신 자비와 사랑이 기억, 기념으로 변화된 삶을 요구한다. 가정은 남녀가 사랑과 생명을 전달하며 헌신하라는 부르심을 받은 자연적 사회이다.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권위와 안정과 사귐의 생활은 사회에서 누리는 자유와 안전과 형제애의 기초가 된다. 가정은 사람들이 어릴 적부터 도덕적 가치를 깨닫고, 하느님을 공경하기 시작하며, 자유의 선용을 배울 수 있는 공동체이다. 가정생활은 사회생활의 입문이다. 가정은 인간 사회의 기본 단위이며 교회의 축소화된 세포이므로 인간 사회와 교회의 모든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의로운 사회 안에 훌륭한 교회를 건설하고자 한다면 이는 가정의 성화와 쇄신으로부터 착수해야 한다. 거룩한 가정을 통해서는 이 사회를 일신할 수가 있으나 우리의 각 가정이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충만하여 생동하지 않는다면 사회의 복음화는 요원하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렇게 말한다. “출산은 한 인간의 생산을 지향하기 때문에 그 본성상 순수한 생물학적 질서를 초월하며 일련의 인간 가치와 관련됩니다. 이런 가치가 조화 있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끈기 있고 일치된 기여가 필요합니다.”

가정은 사회생활의 입문이며 교회의 축소화된 세포이므로 인간사회와 교회의 모든 요소를 지니고 있음을 생각할 때 사회에서도 생명의 소중함을 인식할 수 있다.

3) 자신을 서로 증여하는 부부, 부부 사랑의 증표인 자녀 교육

부부 생활과 가정생활을 위한 임무, 의무, 권리 등이 서로 얽힌 환경들은 부부에게 이기적인 삶을 버릴 수 있도록 수많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며, 나아가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더욱 성숙하게 할 것이다. 또한 상호 간의 신뢰와 풍요로운 생명을 위한 희생은 단순히 그들에게 요구되는 명령이 아니며, 오히려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들 사랑 안에 머물고 또 승리한다는 것을 드러내 주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부는 서로에게 자신을 주면서도 자신들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녀도 주는 것이다. 자녀들은 부부애의 살아 있는 표상이고 부부 일치의 영원한 징표이며,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그들 존재의 생생하고 불가분한 종합이다.”

부모의 가장 신성한 의무 중 하나가 자녀 교육이다. 이 권리와 의무는 필요에 따라서는 이양하거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어도 면제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가 한 인간으로서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에게 부여된 재능을 발휘하도록 필요한 교육을 베풀어야 한다. 여기서 교육이라 함은 전인교육을 말한다. 이런 바른 교육을 통해서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자기의 소명을 깨닫고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인간이 어떻게 교육되었는가에 따라 양심 형성이나 가치 평가 능력이 달라진다. 인간의 지상 목표는 구원이므로 생활 안에서 믿음을 발견하고 확신에 찬 종교 생활이 가능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그리스도교적 믿음, 희망, 자녀들의 구원에 도움을 주고 협력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명에 실제로 참여하는 것이 된다.

유효하게 맺어진 혼인으로부터 그 본성상 영구적이고 독점적인 유대가 부부 사이에 생긴다. 유효하게 맺어진 혼인이란 바로 능력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교회법적 형식을 따르면서 표명된 혼인 합의가 이루어진 혼인을 말한다.

혼인 서약으로써 한 남자와 한 여자는 서로 그 본연의 성질상 부부의 선익과 자녀의 출산 및 교육을 지향하는 평생 공동 운명체를 이루기 때문에, 부모들은 자녀들의 교육을 돌보아야 할 중대한 의무와 권리를 갖는다.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의무와 권리는 무엇보다 먼저 자녀들의 신체적, 사회적, 문화적 교육과 관계된다. 뿐만 아니라 윤리적, 종교적 교육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서로를 증여하는 부부는, 부부 사랑의 증표인 자녀 교육에 있어, 그리스도교적 믿음, 희망, 자녀들의 구원에 도움을 주고 협력함과 동시에 교회의 사명에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태아에 대한 생명 존중은 태아인 자녀를 구원하는 것 뿐 아니라, 교회의 사명에 참여하는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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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8 '록산느의 탱고' 김연아, 여왕이 귀환하다 [3] 2012.08.25 황규정*65 2012.08.25 4983
6277 "8.10" 독도의 기적과 그때 그시절(8/24)에서 운영자 답글에 대한 나의 답변 [7] 2012.08.26 김이영*66 2012.08.26 4356
6276 "8.10" 독도의 기적과 그때 그시절(8/24)에서 운영자 답글에 대한 나의 답변 [4] 2012.08.25 김성심*57 2012.08.25 4722
6275 9월이 오면 / 안도현 (安度眩) [4] 2012.08.26 이기우*71문리대 2012.08.26 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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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3 The Risk of Faith [14] 2012.08.26 이한중*65 2012.08.26 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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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1 Aarhus, Denmark [7] 2012.08.26 Chomee#65 2012.08.26 4332
6270 Neil Armstrong, the moon’s mystery man [1] 2012.08.26 운영자 2012.08.26 3704
6269 Good Luck, Mr. Gorsky ! / Neil Armstrong [4] 2012.08.26 이한중*65 2012.08.26 2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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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7 [Memoirs of Summer] Lower Mohawk Lake, Breckenridge, CO [4] 2012.08.27 운영자 2012.08.27 4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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