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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황룡, 그 오색의 그리움 (기행문)

2005.05.14 17:05

오세윤 Views:5892


李白 문학기행에 이은 구채구와 황룡 관광을 마치고 그제 돌아와 쓴
기행문이나 읽어 주심이 어떠할지?




황룡, 그 오색의 그리움

                                   오 세 윤

이백(李白) 문학기행 6일째, 이틀간의 꿈같은 구채구(九寨溝)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묵었던 금룡 어강호텔을 이른 아침에 떠나왔다. 오전으로 예정된 ‘신선지 풍경 구’를 돌아본 뒤, 잔설이 아직 남은 해발 4500m의 민산(岷山)산맥을 넘어 황룡으로 가는 길은 구절양장이 아니라 구십 절 양장이라 해도 크게 틀린 표현이 아니듯 험하고 아득했다.

희박한 산소 탓에 일행 모두 머리를 아파하고 개중에는 어지럼증과 함께 구토 증세마저 호소하는 이가 생겨나기도 했다. 4000m쯤까지만 해도 풀을 뜯는 야크 무리를 간간이 볼 수 있었지만 더 높이 오르자 그마저도 사라져 시야에는 하늘과 황량한 바람뿐, 어쩌다 지나치는 버스가 친근했다. 고산에는 자갈색의 키 낮은 관목 숲만 눈(雪) 사이로 자라 거센 바람을 힘겹게 이겨내고 있었다.

산 아래 구체구에서는 신록이 한창이어서 멀리 바라보이는 설산은 밝은 햇살 속에 신비하기만 했었다. 불통인 서울로의 전화로 쌓인 아쉬움처럼 산길 옆에는 곳곳이 눈이 쌓여 있었다. 하지만 막상 곁을 지나치다 보려니 듬성듬성 녹은 곳이 많고 먼지마저 내려앉아 전혀 신기할 것도 없었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암봉에서와 달리 길이 나있는 산은 아무리 높다 해도 더러움은 어쩔 수 없이 타야하기 마련인 듯 바라보기 씁쓸했다.

나의 그리움도 그러할까? 님 을 보기전이야 나의 그리움은 뜨거운 여름이 된들 녹을 리 없고, 만년을 쌓인들 먼지하나 묻어들리 없으니 어느 천 년에 허물 있다 탓을 하리오. 일을 마치면 꽃은 떨어져야 하고 봄이 오면 눈은 녹아야 추한 꼴을 피할 수 있는 법. 고매한 인품은 속세를 가까이해서는 안 될 듯 하다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황량하게 산을 넘었다.

버스를 타고서도 산을 내려가는 것은 오르는 것보다 오히려 더 힘이 들고 아찔했다. 풀을 뜯는 야크 무리가 점점 더 많이 눈에 뜨였다. 드물게 흰 털을 가진 야크도 섞여 있었다. 장족과 강 족, 회족과 한족이 섞여 사는 중에도 고산지대 산 중턱 높은 곳에 2층으로 나무집(지금은 돌을 많이 사용한다)을 짓고 사는 장족이 주로 야크를 키운다고 했다. 그네들에게 야크는 중요한 재산이기도 해서 적게는 한 집 당 5~6마리에서 많게는 100여 마리를 키우는 알부자들도 많다고 했다. 한 마리의 값이 우리 돈으로 60~70만원, 흰 것은 200~300만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고산지대에서도 돈은 행복의 우선순위일까? 문명이 아니고도 행복할 수 있었을 사람들이 지금은 어떨지 자못 궁금하기만 하다.

산맥을 넘는 것 하나만으로도 두 시간이 훨씬 넘게 걸렸다. 2시가 되어서야 해발 3800m의 천주사(川主寺)에 도착해 향토 음식점에 들었다. 천주 사, 마을 이름이 그러했다. 어딘가 절이 있기에 이름이 그러하련만 점심을 먹자마자 급하게 떠나 가보지를 못했다. 8박9일의 여정 중 유일하게 한식(韓食)을 했다. 된장찌개와 콩나물 무침, 고추장에 상추쌈, 김치는 없었다. 장은 연변에서 가져온다고 했다. 대부분 과식을 했다.

식사를 끝내기 무섭게 부지런히 차에 올랐다. 낙오자가 생겼다. 고산병으로 힘들어하는 몇 사람은 식당 옆 호텔(岷江源 國際大酒店)에 들어 쉬기로 했다. 민강이 여기서 발원이 된다 해서 미강원이라 이름 한다 했다. 시간여를 더 버스에서 흔들리고서야 황룡 입구에 도착했다. 해발3200m, 고산지대이기도 했지만 저녁바람이 쌀쌀했다. 오후 4시, 등산이 시작됐다. 오르는 사람보다 내려오는 사람이 많았다. 목에 등산머플러를 두르고 손에는 목장갑을 꼈다.

지난 4월 26일 허리 disc를 수술하고 여행을 따라나선 이명숙 선배,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를 가상타해야할지 정신이 온전하다 해야 할지 옆에서 보기 가늠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그분은 남의 눈이나 염려 따위는 아랑곳도 하지 않는 채 어떤 난관도 마다않고 따라나선다. 고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고산병을 염려해 모두들 25위엔 씩을 주고 산소통을 준비했다.

오채지(五彩池)까지의 왕복 8.4km, 천천히 걸었다. 오르는 길가 숲 사이로는 흰 색, 때로는 선분홍의 두견화가 화려하게 피어 눈을 즐겁게 했다. 삼나무와 주목, 히말라야 시다와 전나무, 때로 소나무가 울창하게 자란 계곡은 부러울 정도로 정비가 잘 되어 걷기에 무리가 없다. 하지만 자연을 왜곡하지는 않았다. 계곡사이로 멀리 정상에는 흰 눈을 덮어쓴 암 봉(설보정, 雪寶頂)이 기품 있게 솟아 있었다.

깜박 잊고 급하게 몇 발자국을 내 딛다보면 금세 숨이 찼다. 찬찬히 걸어도 느닷없이 숨이 찰 때가 가끔 있었다. 그럴 때면 가만히 서서 숨을 깊게 들어 마시며 맥을 가다듬었다. 다행히도 흐린 날씨덕분에 산소의 증발이 적어 크게 어지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견딜만한 정도이긴 한대로 머리는 계속 아팠다.

산소도 희박한터에 관절도 좋지 않아 되도록 천천히 걸었다. 기압이 낮아서인지 아니면 엊저녁 발 맛사지를 받아서인지 다행히도 무릎은 크게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정상가까이의 오채지를 보고 내려오기란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처럼만 보였다. 그런걸 알아서인지 입구에서부터 끈질기게 호객을 하던 가마꾼들은 손님보다 먼저 올라 곳곳에 대기하며 눈독을 드리고 있었다.

정상을 2300m 남겨둔 곳, 길옆으로 흰 석회암 벼랑이 신기하게 물굽이 무늬를 이룬 곳에서 그예 가마를 탔다. 넓게 펼쳐진 벼랑의 길이가 1300m가 된다고 했다. 입구에서 정상을 왕복하는 요금이 400위엔, 기왕에 오른 거리가 있어 300위엔으로 높지 않게 값이 흥정됐다. 50m를 채 오르지 않아 뒷 가마꾼의 숨소리가 듣기 민망하게 거칠어진다. 힘들게 50m를 더 오르더니 털썩 가마를 내려놓는다. 자리에서 내려 뒤를 보니 160cm가 겨우 넘을, 60kg도 채 되지 않을 작은 체구가 비 오듯 땀을 흘리며 내 덩치를 가리키며 밉지 않게 불평한다.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됐다. 걷다 타다를 반복하며 남은 거리를 올랐다. 나의 75kg은 그들에겐 만만치 않을 거구였다.

티벹 불교사원인 중사(中寺)에서 사진을 한 장 찍고 조금 더 올라 드디어 황룡사에 들었다. 우리네 절과는 규모부터 달랐다. 법당의 본존불 자리에는 도인(道人)의 입상(立像)을 모셨다. 진인(眞人)이라고 했다. 가마에서 내려 걸어준 게 고마워서였을까, 앞 가마꾼이 내 카메라를 빼앗다시피 받아들고 앞장을 서더니 날보고 오라며 절 뒤를 돌아 오채지로 인도한다.
형형색색의 물이 층층이 작은 연못들을 만들며 저녁을 맞고 있었다. 석회를 품은 물이 수 만년을 흐르면서 가랑잎과 나뭇가지를 얽어 자연스럽게 둑을 쌓아 다랑 못을 만들었다.

어찌 이를 두고 비경이라 아니하랴, 신선이 사는 곳은 이러해야 하지 아니할까. 아 아 물빛, 오채지 곳곳의 물빛은 환상 그 자체요, 신비 그 본연이었다. 티 없이 투명한 비취색, 연한 코발트, 새침한 옥빛, 움켜 품어 그대로 물들고 싶은 에메랄드 진녹색, 그냥 그대로 빠져들어 여한이 없을 그리운 하늘색, 미색은 금빛에 가까웠다. 햇살이 밝은 가을날의 아침나절에는 온통 넋을 빼앗겨 자기를 잊는다고도 했다. 마치 감은 눈 속, 그녀의 신비처럼- 불현듯 멀리 님이 그립다.

가을 보다는 물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그만으로도 아름다움은 완벽했다. 감탄스러운 곳마다 나를 세우고 사진을 찍던 가마꾼이 갑자기 동작을 멈추더니 멍하니 옆을 지나는 중국인 일행을 쳐다보며 깊게 한숨을 내쉰다. 젊은 부부가 너 댓살의 사내아이의 양손을 잡고 노부인과 함께 웃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자기의 처지가 한탄스러워 그런가 하여 모르는 척 하다가 아무래도 의아하여 넌지시 물었다.
“왜 그러오? 아는 분들이오?”
“아, 아닙니다요.”
“그런데?......”
“사내아이가 부러워서 그래요.”

한족(漢族), 나이 서른여섯, 딸만 셋이라고 했다. 아들을 얻으려 아내가 또 임신을 했는데 아무리 태연하자고 해도 불안하기만 하다고 했다. 아들을 바라다 낳은 딸 둘은 벌금 3000위엔 씩을 내고 그래도 호적에 올리기는 했다고 한다. 엊저녁 구채구의 민속공연장 옆에서 발 맛사지를 해주던 여자애 생각이 났다. 여자애가 그랬다. 나이 열일곱 살, 자기 집은 딸만 셋이라고 했다. 아들을 낳느라 엄마가 또 임신을 했는데 아들이 뭔지 자기가 보기에도 부모의 처지가 참 딱하다고 했다. 하는 말이 맹랑했다. 발 맛사지를 한번 받는데 45$, 그녀가 받는 돈은 10위엔, 우리 돈으로 1400원정도, 하루에 평균 두 사람. 팁으로 2000원을 줬다.
“집이 이 근처인가?” 그녀에게 물었었다.
“아-뇨, 산 너머 황룡 가다가 있는 천주사예요.”
자세히 묻게 되면 자존심에 상처를 줄듯 싶어 거기에서 그쳤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계곡의 밤은 물이 먼저 저문다. 짙은 보라색이 되면서 그만 떠나기를 재촉한다. 기온이 차다. 풀었던 머플러를 다시 꺼내어 감고 장갑을 꼈다. 저무는 이국의 산 숲길이 낭만적이면서 외롭다. 오래도록 그리울 추억하나를 가슴에 담으며 어둠 짙어지는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만리 밖, 두고 온 님이 사뭇 그립다.


2005년 5월 14일 湛 如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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