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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도시에서의 죽음 - 김병종

2013.07.1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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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김병종]

도시에서의 죽음

기사입력 2013-07-11 03:00:00 기사수정 2013-07-11 10:18:26

삭막하고 고독한 병실에서 희망없는 연명치료 받다 몸과 마음 만신창이 된 채 쓸쓸히 죽음 맞는 현대인들… 평소 기거했던 공간에서 친지들 따뜻한 애도 받으며 작별 준비하는 옛날식 임종이더 행복한 마지막 길 아닐까

평소 가까이 지내던 친척 형수님의 부음을 들은 것이 지난 주말이다.

빈소가 마련된 대형 병원 영안실에 도착하니 대소가의 친인척 몇 분의 얼굴이 보였다. 아내가 고인의 전화를 직접 받은 것이 불과 열흘쯤 전이었다. 늘 쾌활하고 목소리가 밝은 분이었는데 그날만은 달랐다. 띄엄띄엄 힘없는 목소리로 “자네 얼굴 한번 보고 싶다. 나, 7월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몇 달째 병원에 입원 중이었는데 우리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문학소녀였던 데다 유난히 책 읽기를 좋아해서 소설을 쓰는 아내와 참 가까이 지내던 분이었다. 시댁 쪽 식구였는데도 친언니처럼 살갑게 대했고, 아내의 새 책이 나오면 그것을 빌미삼아 불러내 밥을 사주거나 선물을 보내주곤 하던 분이었다.

그런데 문병을 다녀온 아내의 설명을 듣자니 듣는 내가 괴로울 지경이었다. 오랜 항암 치료에 머리가 다 빠지고 뼈만 앙상한 것은 그렇다 치고라도 줄레줄레 달린 주삿바늘과 함께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호흡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이었다. 호흡 보조장치를 떼고 나면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듯해 보였다는데 그 상태로 몇 달을 지냈을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는 것이었다. 당사자 외에는 누구도 동참하거나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절대 고독과 공포 속에서 몇 개월을 버텨낸 것이었을 터였다. 그러다 마침내 부음을 접한 것이었다.

기왕 저렇게 떠날 것이었으면 무차별로 주입되는 항암주사에 몸을 맡기다 만신창이가 되어 끝을 맞기보다는 차라리 정겨운 사람들 속에 누워 창밖으로 푸른 하늘과 나무들을 보다가 눈을 감게 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병했다 하면, 특히 큰 병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병원, 그것도 소위 큰 병원을 찾는 것이 현실이고 달리 뾰족한 대안도 없지만 그 병원들에 문병이나 조문을 갈 때마다 이것이 최선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다섯, 여섯 사람이 좁은 병실에서 북적대야 하는 경우 TV는 왕왕거리고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이 들락거려 환자와 눈으로나마 조용히 대화할 여유마저 없다. 거기다가 비정하도록 차갑게 느껴지는 조명등 하며 참으로 정붙일 구석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데 대개는 그런 상태에서 임종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 즈음에서 문득 얼마 전 읽은 두 종류의 책 생각이 난다. 하나는 오랫동안 중환자실 간호사 생활을 했던 저자가 쓴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이라는 이름의 책이고, 다른 한 권은 독일 함부르크의 한 호스피스동 요리사에 대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기록으로 제목이 ‘내 생애의 마지막 저녁식사’였다. 두 권 다 삶의 종장(終章)에 관한 기록인 셈인데 내용은 천차만별로 달랐다.

전자는 의료진의 입장이 아닌 환자나 그 가족의 관점에서 끝이 뻔한데도 연명만을 위한 치료로 삶의 질이 황폐하게 망가져 가는 가운데 환자가 최후를 맞는 데 대해 회의하며 일종의 고발 형식으로 쓴 글이다. 반면에 후자는 소위 말하는 ‘웰 다잉’의 관점에서 환자가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에 관한 것이었다.

‘등대의 불빛’이라는 이름의 숲 속 호스피스동의 요리사 루프레히트 슈미트는 모든 요리사가 꿈꾸는 일류호텔 주방장 자리를 나와 이 호스피스동에 취직하는데 생의 마지막 촛불이 깜박거리는 임종 환자를 위해 최고의 요리를 선보인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주문을 받아 그야말로 정성을 다해 마지막 만찬을 준비하는데 대개는 입에 대지도 못한 채 그가 가져간 음식을 바라보다가 스르르 눈을 감는다.

하지만 그 순간 얼굴에 희미하게 번지는 기쁨과 행복의 빛을 보는 보람으로 요리사는 이들의 마지막 식사를 주문받아 최선을 다해 만들어 병실로 가져간다. 그는 “누구에게나 가슴이 먹먹해 오는 음식의 추억이 있는 법”이고, 결국 못 먹을 줄 알면서도 임종 환자가 입술을 달싹여 그 음식을 주문하는 것도 그 음식 속에 녹아 있던 사랑하는 이들과의 추억을 다시 맛보고 싶은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결론을 짓는다.

“아름다운 기억의 그늘에서는 죽음의 고통도 멎는다”고.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제는 의료진으로서는 최선을 다했으니 댁으로 모시고 가서 맛있는 음식이나 실컷 드시게 하라”고 했던 과거형 병원의 모습이 훨씬 인간적이라고 느껴진다.

웰빙 열풍과 함께 웰 다잉 선풍도 부는가 싶었지만 여전히 병원 외에 달리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인다. 병원의 차가운 불빛 아래서가 아닌 마을 혹은 친지 공동체의 애도를 받으며 평소 기거했던 자신의 공간에서, 유언까지는 아니더라도 눈으로나마 일일이 작별을 고하고 떠났던 옛날식 죽음이 새삼 떠오른다. 도시에서도 이런 따뜻한 임종을 할 대안은 없는 것일까. 큰 병원 영안실에 다녀올 때마다 해보는 생각이다.

김병종 화가·서울대 교수 (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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