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23 14:42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별 하나에 추억과 어머님,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버레는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별 헤는 밤>은 식민지 시대 창씨개명을 소재로 다룬 유일한 작품이다. 윤동주는 일본 유학을 위해 평소동주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름대로 뜻을 가지고 동경유학을 결심하고 창씨개명을 했지만 강제로 이름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던 현실을 생각할 때 그 수치심과 모욕감은 말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창씨개명을 하고 유학 서류를 접수한 다음 윤동주는 자주 다니던 언덕에 올라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옛날에는 저 별 아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똑같은 별 아래서 모든 것, 특히 자신의 존재의 상징과도 같은 이름자마저 빼앗기고 말았다는 모욕감에 젖어 이 시를 쓰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고향> 처럼 <별 헤는 밤>에서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시대적인 어둠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그것은 식민지 억압이 없는 자유로운 공간으로서의 이상적인 세계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시대적인 상황은 "나의 별에도 봄이오면"이라는 구절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죽음의 계절인 겨울로 설정되어 있다. 겨울이 모든 식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듯이 식민지 상황은 나의 별의 모든 것을 박탈하고 죽음의 세계로 화하게 만든다. 겨울로 인해 상실된 것들은 추억, 사랑, 쓸쓸함, 시, 어머니, 어릴 적 동무들, 그리고 이 시에서 여러번 반복되고 있는 이름자이다. 이들은 상실된 것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계열체에 속하며 그 기능적 의미를 같이 한다. 별은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별은 옛날처럼 빛나고 있지만 그 별 아래 존재했던 밝고 자유스러운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지상의 "나의 별"과 하늘의 "별", 현재의 삶과 과거의 삶의 기본적인 대립이 성립되며 과거의 삶에 대한 그리움은 단순한 감상의 차원을 넘어 당위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밝음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의 의미를 지니게 되고 그것의 상실은 수치와 모욕감을 느끼게 한다. 식민지의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삶은 화자로 하여금 별을 매개로 상실된 것들을 하나 하나 떠올려 보고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는 행위로 나가게 한다. 여기서 화자가 흙으로 썼다가 덮어버린 이름은 창씨개명으로 이제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 이름으로 보인다. 그것은 "내 이름자를 써 보고", "이름자 묻힌 언덕", "부끄러운 이름" 등 이름에 대한 특별한 반복과 마지막 연의 "무덤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라는 비유를 통해서 확인된다. 이 비유에서 "이름자 묻힌 언덕"과 "무덤", "흙으로 덮어버린" 이름자와 무덤 속에 묻혀 있는 주검은 등가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이 비유는 이름의 죽음, 즉 우리 말 이름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이름을 사용할 수 없는 치욕의 이 시대가 무덤과 같은 죽음의 시대임을 드러내주고 있다. 이 구절이 창씨개명을 의미한다는 것은 그 외에도 이름을 빼앗긴 삶을 벌레와 같은 것으로 비유하고 있는 데서도 드러난다. 이름이란 존재의 상징이다. 이름의 상실은 인간으로서의 죽음, 곧 동물적인 수치스러운 삶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윤동주의 동경 유학 직전에 씌어진 이 시는 윤동주의 동경유학을 위한 창씨개명과 그 수치감을 보여주기도 하며 전체적으로 강압적인 식민지 현실과 그로 인해 빼앗긴 자유스러운 공간으로서의 고향의 대립을 통해 되찾아야 할 이상적인 곳으로서의 고향을 노래하고 있는 시이다. 특히 마지막 연은 계절의 순환과 더불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죽었던 풀들이 되살아나듯이 국권이 회복될 때 일제에 의해 강제로 빼앗긴 이름자도 자랑스럽게 되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와 소망을 보여주고 있다. 윤동주 시에서 고향은 식민지 현실과 대립되는 상실된 민족적 터전과 그곳에서의 자유스러운 삶을 의미한다. 그것은 현재는 상실되었지만 과거에는 존재했고 앞으로 회복되어야 하는 이상적인 곳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윤동주 자신의 고향으로서의 의미보다는 빼앗긴 조국을 의미하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국권회복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준다고 할 수 있다. (위의 詩 해설자: 누구인지 모릅니다) 1937년 광명중학교 졸업반일 무렵, 상급학교 진학문제를 놓고 부친(의학과 진학 희망)과 갈등하나, 조부의 개입으로 연전 문과 진학을 결정한다. 1938년 2월 17일 광명중학교를 졸업한 후 경성(京城)으로 유학, 그해 4월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하숙생활을 하며 그는 저녁밤 하숙집 근처를 산책하며 시상을 떠올리고 시를 짓거나 담론을 하였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44년 3월 31일 교토지방재판소 제1 형사부 이시이 히라오 재판장 명의로 된 판결문은 징역 2년형을 선고하면서 “윤동주는 어릴 적부터 민족학교 교육을 받고 사상적 문화적으로 심독했으며 친구 감화 등에 의해 대단한 민족의식을 갖고 내선(일본과 조선)의 차별 문제에 대하여 깊은 원망의 뜻을 품고 있었고, 조선 독립의 야망을 실현시키려 하는 망동을 했다.”라고 적혀 있다. 교토지방 재판소에서 송몽규와 함께 치안유지법 제5조 위반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뒤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송되었다. 1945년 2월 16일 오전 3시 36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간도 용정에 유해가 묻혔다. 당시 그의 나이 27세였다. 1990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독립장, 국민훈장을 수여 받고,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으로 지정되었다. (자료 from Wikipedia) Content from the Internet, edited by SNUMA WM, 10-17-2013 |
2013.10.23 15:00
2013.10.24 03:40
2013.10.24 05:12
2013.10.24 06:28
Dr. Seo, thanks for your comment.
I am glad to know that there are people who follow our poet.
I will try to visit the memorial place for him.
Dr. Lee, if we are smart and diligent enough, we can fight against any aggression of the powerful.
Our own life in America is one good example. We worked against the hardship and we got it made.
So is the new South Korea under a strong leader. They created the miracle that no one expected.
Lee dynasty had 500 years to do something but they never did anything.
It was one of the most miserable and pitiful leadership in the world history.
Anyway, we all have different views. I guess yours is as good or better than mine.
2013.10.24 12:26
2013.10.24 16:33
여러가지 생각하면 착잡합니다.
숨을 걷우는 직전까지 가까이는 자손들에게 참된 것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당장 쉽고 안이하고 얕은 행복을 찾기보다는 가시밭 길이라도 진실된 길을 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운영자님, 그리고 선후배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조국의 얼이 숨쉬고 있는 우리들의 이 홈피를 사랑합니다.
2013.10.24 16:45
Dr. Bang이 준 URL을 보다가 같은 Youtube page에 나온 윤동주 documentary.
그의 죽엄뿐 아니라, 여러가지의 참고 할만한 정보가 있어서 여기 올림니다.
파란글자의 주소를 click하면 관련된 Youtube page로 갑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Md9vTOgOlVE&feature=player_detailpage
윤동주, 그 죽음의 미스터리_1
http://www.youtube.com/watch?v=6ABI2bZwYLM&feature=player_detailpage
윤동주, 그 죽음의 미스터리_2
http://www.youtube.com/watch?v=njXViLAUjnQ&feature=player_detailpage
윤동주, 그 죽음의 미스터리_3
http://www.youtube.com/watch?v=Fc3IIrInbFg&feature=player_detailpage
윤동주, 그 죽음의 미스터리_4
2013.10.27 10:40
2013.10.30 03:29
2013.10.31 10:29
하루종일 내리는 가을비, 비바람에 흩날려 이리저리 뒹굴며 쌓여가는 앞뜰, 뒷뜰의 낙엽들....
미시간 만추 오후에 윤동주 시를 읽기도 하고 고운 음성의 시낭송을 듣습니다.
일본 압제하에 창씨 개명까지 해야만 했던 모욕감에 울분하던 젊은 나이의 윤동주 시인 마음이
어느새 잔잔히 파문을 일으키며 내 가슴 가까히 전해지는 듯합니다.
헌데 요즈음 , 윤동주 시인의 詩들이, 일본 식민지 시대의 조국을 잃은 서러움과 恨 그리고 미래 밝은 새 세상의 희망을
이처럼 청순하고도 아름답게 표현한 그의 詩들이, 일본인들의 양심을 울리고, 곳곳에서 그를 추모하고 있다니 기쁘고,
불행하게도 옥사한 윤동주 시인 넋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리라 믿습니다.
저는 이 시 낭독을 들으면서 또한 운영자님의 코멘트를 읽노라니 저절로 일제 식민지 시절 오랜 세월을 독립운동을 하시다
돌아가신 저의 친 조부님을 떠 올리게 되었습니다.
집안 일이라 이곳에서 말하는 것이 망서려지기도 하나, 무엇보다도 한번도 뵌적이 없는 조부님께서 이런 손녀의 추모하는 마음을, 모습을
하늘나라에서 내려다보시고 많이 기뻐 하실 것 같아서 간단히 기록 하렵니다.
1904 년경, 그당시 유학자, 젊은 선비셨던 조부님은 일본인에 의한 민비 살해 사건 직후, 일본 항쟁 초창기 때, 유치상, 유우상등과 더불어
일본 항쟁운동을 시작 하셨다고 합니다. 그후 오랜 세월을 독립운동을 하시다
고향인 경기도 안성에서 3.1 운동 주동자셨기에 1년 6개월의 옥고를 겪으셨고, 결국은 옥고의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조부님을 추모하노라니 그당시 방방곡곡 터져 울리던 대한민국 만세 소리가 가슴을 찌르게 들리는 듯하고 눈시울이 뜨거워 지네요.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 받으셨고, 아직도 가족 묘지에서 국립 현충원으로 이장을 미루고 있으나 조만간 그곳에 안장되시겠지요.
운영자님께 감사드리고 동영상을 찾아 올려주신 방선생님께도 감사 드립니다.
김성심 제여고 대 선배님, 이곳서 오랜만에 뵈오니 반가웁고, 늘 삶의 지혜를 일깨워 주시는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부디 늘 건강하시기를 빌고 기쁜날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승자님, 시아버님의 가슴아픈 이야기를 share 해 주시어 감사하고 오랜만에 이곳서 뵈니 반갑습니다. 좋은 가을날들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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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ado의 가을 하늘에 쏟아질듯한 찬란한 별을 보는 나는, 때를 억세게 잘타고 난 행운아가 아닌가 하지요.
같은 하늘의 별을보며 일본 유학을 위해 창시개명의 수치에 눈물 흘리던 윤동주 시인의 마음을 더듬어 봅니다.
이 글은 "조선은 어떻게 500년이나 갔을까?"의 침 마르는 칭찬의 글에 대한 Antidote로 씁니다.
관점은 전혀 다르지만, 본인은 나무가 아니고 숲을 보면서 글을 쓰고있읍니다.
그러니 그렇게 이해하시고 읽으십시요. 윗 본문을 잘 읽으시면 이해가 훨씬 쉬울것입니다.
일제 강점기 밑에서 민족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려운 시절에 태어난 사람중에서
많은 훌륭한 詩人들이 태어났음에 무슨 연고와 슬픈 사연이 있음을 느낍니다.
친일파로서, 자의였건 타의였건, 왜놈들에게 아양떨면서 산 사람들이 있었던 방면에
많은 불쌍한 시인들, 문인들이 용감하게도 민족의 울분을 그들의 詩와 글로 표현하면서, 왜놈들 손에 죽어갔지요.
27세의 젊은 나이에 꽃을 피우기도 전에, 애석하게 죽엄을 당한 윤동주 시인의 마음을 다시 새겨봅니다.
나는 운이 좋아, 좋은 시절에 태어나 그들의 고충에 근처도 못같지만,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려 노력하지요.
비참한 이왕조시대의 못난짓들이 결국은 한국인들을 일제 탄앞의 대상으로 몰아넣었지요.
이왕조 가족들은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자기네 들의 목숨은 건졌지만,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희생되었나요?
중국의 하인 노릇을 하며 살아온 500년의 역사가 수치스럽기 짝이 없읍니다.
어떤 얼빠진 한국의 애숭이 교수라는 자가, 이왕조의 정치 또는 기록이 찬란하다고 떠들고 있지만,
그 결과를 봅시다. 한국인 역사 2000년 중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왕조였지요.
하두 지렁이 처럼 못났었으니 누가 건드리지도 안어서 500년을 연명한것이지 자기네가 똑똑해서 그랬던것이 아닙니다.
사실 이왕조 500년은 한번도 제대로의 국가 또는 나라로 존재하지 못했읍니다.
기껏해야 중국 변방의 오랑캐 "지방" (나라가 아니고)에 지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근대 한국인의 기본정서는 "한 (恨)"이라했듯이, "그렇게도 똑똑했고 잘했던" 정치하의 이왕조 밑에서
500년간 살아온 우리 선조들이 왜 恨에 차서 살아왔었을가요?
그 모든 우리의 근본적 恨은 이왕조에서 유래된것이지요.
중국의 노예노릇만 하던 무능한 이왕조 밑에서 백성들은 수시로 외부 침략자에개 약탈 강간을 당하며 살었지요.
우리는 속수무책인 무능한 집권자 밑에서 장장 500년 동안 恨에찬 거지로 살아왔던것입니다.
그러니 "엽전근성"도 이왕조의 위대한 선물이 틀림없지요.
비록 가끔 반짝 거린일은 있겠지만, 그중의 하나라도 지속되어 백성을 도운것은 없읍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억울한 죽엄과 윤동주 시인 같은 사람의 죽엄을 읽을때마다,
공자, 맹자, 중국의 노예로서, 무능 무력했던 이왕조에 대한 나의 혐오가 끓어 올라 옵니다.
수치스러운 이왕조 찬양은 이제 그만합시다. 나무만 볼것이 아니고 숲을 보십시요.
그럼으로해서, 우리는 다시는 이런 바보같은 수치의 500년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