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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저고리 다홍치마 
                                          
                                         김 영희 (이 건일*68)  

                                                            



   노랑저고리 다홍치마, 언제 이것을 입었지?

   희미한 기억을 더듬으며 다홍색 백일홍과 레몬 노랑 색의

   금잔화를 들여다본 다.    

   이 아름다운 색깔들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항상 이것이 의문이지만 나는 대답을 모르기에

   그냥 즐기기로 한다. 자연의 신비를 누군들 정확히 이야기 해주랴.


   승산 스님의 말씀대로 빈 마음으로 사물을 지켜 볼뿐이다.


   이글거리는 중서부의 태양은 예쁜 다홍색을 다 바라게 해 버린다.

   이번 여름 5개월간 비 내린 날이 몇 번일까?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이 열악한 자연환경 속에서 열심히 자라면서, 시든 꽃을 잘라주면

   옆에서 다른 꽃 봉우리가 나오고 또 나오고.

   백일이 아닌, 백 오십일 이나 아름다운 다홍색으로 피어준다.

   레몬 색 금잔화와 좋은 조화를 이루며 열심 피고 진다.

   이 꽃들을 보면서, 자연을 사랑하는 우리의 조상들은

   한복의 색깔 대비를 이렇게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색 깔 대비를 보면 한복은 한가지 색이거나 혹은 채도가

   강한 반대색 대비, 크고 작고의 대비, 곡선과 직선의 대비,

   풍부함과 꼭 낌의 대비, 끝동이나 장신구로 강약의 대비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하! 그래서 자기의 귀한 아이들의 옷에 자연의 모든

   예쁜 색을 다 모아 색동 저고리를 만들었구나!





   오월 말 늦게 심은 하얀 나팔꽃은 씨를 부린지 두 달 반이

   넘도록 꽃 봉우리 조차 생기지도 않고, 자꾸자꾸 덩굴손이 나와,

   또 자라고, 또 자라면서 올라만 가고, 그 옆에 핀 다른 꽃들에

   흰나비와 호랑나비들이 쌍으로 넘나들어도 무소식이더니,

   아! 어느 날 하얀 나팔꽃들이 활짝 피었다!

   꽃핀 그 옆에는 작은 꽃 봉우리들이 동생들 인양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있다. 흰 나팔꽃이라고 봉투에 써 있었으나

   흰색과 파란색이 교배된 씨였다. 그리고 끝 없이 끝 없이

   많은 꽃들이, 멘델의 법칙에 따라서, 순 하얀색, 흰색에 푸른색을

   분무기로 뿌린 듯한 색, 파란 줄무니들, 그 줄무니도 제각기 달라

   넓기 도 또 좁기도 하게 피는 구나.


   "너희들 나 이렇게 깜짝 놀래라고 이리 오래 기다리게 했니?" 하면서,

   아침저녁으로 물을 준다. 넉 달이 넘도록 정말 열심히

   아침이면 활짝 미소를 보내면서 피고 있는데, 뚱보 범블비가

   몸을 비틀며 나팔꽃의 좁아지는 대롱 속으로 겨우 기어들어

   갔다가 노란 꽃가루를 뒤집어 쓰고 나온다.

   장난꾸러기 뚱보 십대가 멋 모르고 들어간 좁은 굴속에서

   혼이 나고 겨우 기어 나오는 듯 하여 박장대소를 금 할 수가 없다.


   정말 효자들이다.

   많은 기쁨과 기다림을 주다니 이런 효자가 또 있을까?

   이 나팔꽃의 색은 단정한 중년 여인이 입은 흰색저고리에

   파란치마라고 할까?

   그러나 아직도 씨가 영글 때까지 시간이 필요 한데,

   소리 없이 내리는 가을비는 겨울을 재촉하고, 씨는 제대로 맺을까,

   엄마의 마음에 걱정이 인다.


            


   온 여름을 끝없이 피어대는 수국은 싱싱한 잎들의 한 가운데에서

   작은 봉우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이 꽃의 색은 다섯 번의

   변모를 거치면서 나타난다. 처음 봉우리의 시작은 잎과 같은 색이다.

   첫 봉우리가 맺으면서 엷은 연두 같은 푸른색을 띠나,

   활짝 피고 나면 파란 보라색, 성숙하면 분홍의 보라.

   이것이 시들기 시작하면 붉은 기운의 연두에서 초록으로 변모를 한다.

   물을 많이 먹는 수국은(응 그래서 이름이 수국이구나!)

   이번 같은 가뭄에 엄마가 잠깐 한눈을 팔면, 모든 잎을 내리고

   기운 없이 땅에 엎드려 있다. "아이고 얘들아, 엄마가 잘못 했으니

   얼른 이물 먹고 정신차려!"

   물주는 손을 바쁘게 만든다.



   연보라 저고리에 수박색 치마를 입은 수더분한 아줌마 같은

   꽃들은 정원의 한쪽에서 열심히, 열심히 자기 할 일에 열중이다.

   이외에도 나의 다른 효자의 하나는 여름내 작은

   별 모양의 작은 꽃들이 모여 한 큰 꽃송이들을 이루는

   란타나(Lantana)로 별 하나 하나가

   노랑에서 분홍으로, 분홍에서 주황으로 바뀌는 꽃이다.


                  


   작은 칠리(Chili) 고추는 미국 사람들에게는 빨간꽃으로 보이지만,

   나에게는 된장찌게, 배추국 혹은 짬뽕-스파게티에 갈깔한 맛을 내는

   숨은 효자이다. 된장 고추장을 먹는 한국인의 입맛에 이 칼칼하고

   구수한 맛은 우리에게 활력을 준다.

 


 
   나의 효자들을 먹어대는 놈들. 미워하기 미안할 정도의 늘씬하고

   예쁜 사슴식구들. 막 낳은 새끼를 데리고 오는 사슴부부,

   아무리 쫓차 버리려해도 왼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암사슴과

   큰 뿔의 수사슴이 앞으로 서면 내 쪽에서 피해버리는 것이 현명하다.

   인가에서는 사냥금지로 폭발적으로 불어난 사슴 식구들.

   새끼들은 모험성으로 가득해서 냄새나 독이 있는 식물도,

   가시가 있어도 새순은 다 먹어 버린다. 안 보이는 전기 충격 담장도

   시간이 가면 그를 피해 들어오는

   지능으로 무용지물이 되고,

   냄새나는 주머니와 비가 오면 씻어져 버리는 비눗물 등등

   별 방법을 다 써보았으나, 효과가 없었다.

   가는 망으로 덮어서 겨우 싱싱한 꽃 들을 보게 되었지만,

   어느 날 바람이 불어, 망이 날라 간 쪽의 반을 깡그리 먹혀 버렸다.

   그후 더 철저히 물을 주며 그물 같은 망을 점검하는 것은

   필수적인 아침인사가 되었다.

   어느 것이든 살아 있는 것은 정성과 마음을 다 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가질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느껴 본다.



   이렇게 나를 기쁘게 하는 효자들은 자연의 법칙을 철저히

   행동으로 옮긴다.

    종족보존 본능!!

   시간이 되어야 다시 말하면 "때가 되면 나오고 때가 되면 간다"라는

   법칙이 철저 하다.


   나의 정원에서 이 모든 효자들은 말없이 한구석에 꾸밈없이,

   속임 없이,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서리가 오기 전까지

   흔들림 없이 존재 할 것이다. 나의 사고와 마음의 실체가

   흔들리거나 의혹이 생기기 시작하면 이 효자들을 통해

   관찰하고 배우며, 명상하며 내 정원에서 나의 하루의 수행을 하고 있다.

   몇 차례의 가을 비는 나의 효자들을 추비하게 만든다.

   나는 새봄을 기대하며 가을의 끝에 서서 정원의 도구를 정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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