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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만원의 행복

2010.02.15 01:41

유석희*72 Views:8219

 

만원의 행복.


 토요일 아침, 모처럼 목욕탕을 갔다. 우리 아파트 옆에 있는 “황금온천”.
전에는 택시를 타고 나의 집 신동아 아파트를 가자고 하면 모르는 기사들이 많았으나
요즈음은 “황금온천”을 가자고 하면 틀림이 없다.
요사이 들어 동네 목욕탕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언제부터인가 목욕탕이 사우나나 온천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얼마 전 오랜 기간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목욕탕이 신문에 날 정도이니까.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 동네 목욕탕인 風呂도 다 사라지고 있다고.


 우리 어릴 때 다니던 목욕탕은 옷 바구니에 벗은 옷을 담고, 물론 그 뒤에는 옷장이 생겼지만.
남탕과 여탕을 칸막이로 해 천장은 통할 수 있어 장난꾸러기 형들이 여탕 안을 몰래 훔쳐보기도 하였지.
탕 속이 물이 차다고, 물이 모자란다고 “휙”하는 휘파람 소리나 아니면 손뼉을 쳐서 종업원을 불렀었지요.
명절 전에는 갑자기 손님들이 많이 몰려들어 북적대기도 하였습니다.
여탕에서 들리는 애들 울음소리, 남탕에는 한가하게 탕 속에 들어서는 시조를 읊는 어른들하며 소란스럽기 그지없다.
정말 예전에는 변변한 수도꼭지도 없이 그냥 탕 속의 물을 퍼서 쓰곤 하였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잘 꾸며진 로비에 들어가니까 조조할인 요금이 7천원이고 정상요금이 만원,
그런데 하루 종일 조조할인이 된다나. “눈 가리고 아웅”인 꼴.
만원은 잠자는 손님을 위한 숙박 요금이다.
구두를 벗어 구두닦이한테 맡긴다.


 이른 아침인데도 목욕탕을 찾은 부지런한 사람들이 꽤 많다.
대부분 나처럼 혼자 왔으나 야근한 뒤 직장동료들과 같이 온 팀, 애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도 보인다.
탈의실에는 목욕을 마치고 나 온 젊은 남자 애들이 마치 여자가 화장하듯이 얼굴을 두드리면서 크림을 바르고,
갖고 다니는 화장품들이 여자 뺨치게 웬 그렇게 많은지 로션도 제대로 바르지 않는 나는 눈꼴이 시어서 못 봐주겠다.


 먼저 습식 사우나에 들렸다가 다음은 건식 사우나에서 겨울철 땀 흘릴 일 없으니 이곳에서 땀을 빼고는
사우나 밖에 있는 사워 꼭지에서 샤워를 한다. 젊은 애들이 뜨겁다고 잘 들어가지 않는 열탕 44도 녹차 탕에
혼자 느긋하게 즐긴다. 흡연이 당연시 되던 시절, 담배를 물고 탕에 들어가 적도 있었지만.
21도짜리, 15도짜리 냉탕도 있으나 생략하고 전기 토굴사우나도 생략한다.
그러니 나는 남녀 혼탕인 찜질방은 더욱 들어가지 않지요.


남에게 때 밀어 달라고 하지 않고 혼자서 몸을 씻는다.
옆에는 아버지가 아들을 정성스럽게 때를 밀어 주는 광경은 보기가 좋다.
발뒤꿈치의 각질을 민다. 12월 산행 때 어두운길 내려오며 다친 엄지발톱이 시커멓게 변했구나.
예전에는 때를 밀 때 자그마한 조약돌을 섰지요.
나중에는 이태리 타올로 바뀌었지만, 왜 하필 이태리입니까?
설마 그 동네에서는 그런 목욕 때밀이 수건을 쓰지는 않겠지요.


 저기 웬 유난을 떠는 인간이 있어 보니까 허벅지에 커다랗게 佛心이라고 문신을 했네.
저런다고 불심이 생긴다면 뭐하려고 참선과 입산수도를 하겠어요.
용이 되고 싶은 저 젊은이는 온몸을 용으로 문신을 하였네요. 그런다고 이무기가 용이 되나.
한 때는 문신만 크게 하여도 삼청교육대에 불려가 봉체조를 하였지.
중환자실에 혼수상태로 누워있는 눈썹만 새카맣게 문신을 한 여자 환자는 얼마나 보기가 싫은데요.


조마조마하며 체중계에 올라간다.
12월과 1월 사이 잦은 회식과 운동량부족으로 조금 체중이 늘었다.
집에 가서 처에게 이실직고하면 주의를 받을 것이 틀림없다.  


 이 소위 온천은 PC방, 시네마, 기원, 이용소, 찜질방, 마사지실, 식당 등을 갖추고 있어
간편복차림으로 몇 시간이고 보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시네마는 잠자는 사람들로, 기원은 아예 이층침대를 들여 놓아
마치 우리가 훈련 받았을 때 삼군사관학교 내무반 같네.
자동 전신 안마의자에 몸을 맡기고 스르르 잠이 든다.


 때 빼고 구두 광내고 이만하면 오늘 오후 두 번의 결혼식 참석 준비는 다 되었다.
구두 닦는데 3천원, 안마하는 데 1천원이 추가되었구나.
그러니까 만 천원의 행복이랄까.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냉장고 속의 시원한 맥주를 생각하며 목욕탕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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