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31 10:56
http://blog.koreadaily.com/view/myhome.html?fod_style=B&med_usrid=barndrive&cid=1091517&fod_no=1
(온기철: 황성태, 박상희, 김종필, 박정희; 대구 10월 항쟁)
박상희의 딸, 박정희의 조카이며 김종필의 아내였던 박영옥 여사는 2015년에 사망했다. 황성태는 박상희의
절친한 친구였고, 독립운동의 동지있으며, 해방후에 좌파 쪽에서 새나라를 세우려고 같이 노력 했다. 박상희
는 항쟁동안에 경찰의 총탄을 맞아 사망하고 황성태는 월북 했다. 5.16 혁명 직후에 황성태는 친구의 딸을
찾아 왔는 데....
1946.10.1 대구 사건은 우파는 공산주의들의 책동에 의한 폭동이라고 하고 좌파는 민주화 항쟁이라고 한다.
2019.02.02 17:19
2019.02.02 23:52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44522#09T0
(페르시안; 똘레랑스를 생각한다)
오류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명자 씨의 박정희에 대한 책을 옛날에 읽은
기억이 납니다. 군사 독재정권 시절에 박정희의 어두운 면을 적나나하게 적은
책을 발간 한 용기에 놀랐 습니다.
몰랐는 데 “똘레랑스’’ 참 좋은 말이 내요. 한국 사람들도 이제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개인주의”를 이해하여, “우리”라는 울타리와 “옳고 그름을 확실히
갈라 좋아야” 하는 흑백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Needs minor corrections,house cleaning,--. 황태성 vs 황성태 vs 황장엽 등 이름이 혼재되어 있는 듯 합니다.
황태성 과 박상희 -대구 폭동의 남노당 관련 내용은 신복룡 교수의"한국 분단사"나
한국 기자로서는 남녀 구분 없이 미국 주류 언론에 당당히 입성(미국 여기자 협회 부회장),
반독재 운동은 물론 미국기자단 대표로 등소평 인터뷰등 큰 족적을 남긴 문명자 기자(Julie Moon)의
회고록에 잘 나와 있다.
대구 폭동이나 제주 사태등 모두 해방 직후의 식량난 전염병 등으로 시작된 민란의 성격이 더 많지만
정치하는 자 들이 끼어들어 남도당은 폭동을 부추기고 친일 잔재의 경찰은 잔인한 진압으로 사태를
악화시킨 듯 하다.
.물론 대구는 한때 조선의 "모스코바" 라고 불릴 정도로 남노당 세력이 쎈 도시였고, 명문 경북고 출신의 인재들이 좌익 운동의 선두에 있었다.
나중에 전향 박정희 때 공화당 정권에서 큰 역활을 했던 쌍룡/금성의 창업자 김성곤, 서울 법대 교수
내무부 장관, 주일대사를 지낸 엄민영, 백남억 등이 모두 해방 전후 남노당 또는 좌익 운동의선두에 있었고, 이러한 경력이 어쩌면 나중에 더 우익 정치인이 되게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한국 신문에는
한줄도 나지 못 했으나,특히 경북의 인재로 알려진 엄민영 같은 분은 북한에 사랑하는 아내, 아들 이
있어 박정희때 주일대사로 있는 중 자살시도 결국 사망----
민족 역사의 비극적 단면이라 하겠다.
대구 폭동의 시작도 식량부족에 콜레라 창궐로 철도등 운송금지, 콜레라 관련 경찰과 대구의전(경북의대) 교수들의 의견 충돌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요즈음도 머리 싸매고 싸우는 좌파 우파의 극단적 싸움을 보며 프랑스 인들이 말하는 "똘레랑스"자세는
언제 한국 정치에 스며들게 될지 한 숨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