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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오세윤 수필집 - 등받이] 3. 미역국

2011.10.29 11:13

오세윤*65 Views:5191

  
오세윤 수필집 "등받이"

 

미역국

 그냥 끓이면 되는 줄 알았다. 이제까지 내내 그렇게 해왔다. 닭백숙을 해 먹고 남은 국물에 마른 미역 한줌을 씻어 넣고 끓이는 게 내  미역국 노하우였다. 손녀를 데리고 사는 이래 나는 이렇게 미역국을 끓였다.
 

 별게 다 내력인지 손녀도 딸을 닮아 닭요리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튀김을 특히 좋아해 내가 집을 비우기라도 할참이면 옳다구나 하고 한결같게 치킨 프라이만을 사다 먹는다. 사춘기인 나이답게 먹성이 이만저만 좋질 않다.
 

 과일보단 육류를 더 좋아하는 아이, 외국에 나간 제 부모를 떨어져 조부모인 우리와 함께 지내는지 이미 3년째로 접어드는 손녀. 허전할 속을 조금이나마 달랠까하여 한 달 두서너 차례는 닭요리를 한다. 아내는 주로 닭도리탕을, 나는 백숙을 한다. 끓이기가 간편한데다 기름기를 덜 먹일 요량에서다. 아내가 백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탓에 마트에서 토종닭 큰 것 한 마리만 사도 손녀와 둘이 대충 배부르게 먹는다.
 

 손녀의 열일곱 번 째 생일 하루 전날, 허리 병이 도져 와병중인 벌곡 장모에게 가있는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이 아이 생일인데 미역국을 해 먹일 수 있겠느냐고 -. 평소 끓이던 이력(?)을 떠올리며 벌써 수십 번을 끓여 이골이 난 정돈데 무슨 소리냐고, 사람 뭘 로 보냐고, 걱정 말고 장모님이나 잘 돌보라는 대꾸로 퉁명스레 전화를 끊었다.
 

 내년이면 성년이 되는 아이. 미성년의 끝 생일. 이제 제 부모가 돌아오면 내 품을 떠날 아이. 생일 미역국을 정식으로 끓여주기로 했다.
 

 중간크기 무쇠냄비에 밸을 뺀 다시멸치 일곱 마리를 넣어 볶고, 사각 다시마 석장을 씻어 넣어 국물을 냈다. 양지 한 덩이를 따로 접시에 담아 냉장실에 넣어두고, 마른미역을 꺼내 조리대위에 올려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마른미역은 5분만 불리면 열배로 늘어난다고, 그걸 물기를 빼어 소고기, 참기름 국간장과 함께 볶아 육수에 끓이면 된다고 미역봉투 뒤에 적혀있으니 그만 자고 5시에 일어나도 충분할 터였다.
 

 걱정이 됐던가, 3시 반에 잠이 깼다. 다시 잠을 청하기도 뭣해 차라리 잘됐다 생각하고 인터넷에 들어가 다른 노하우가 없을까 미역국 끓이는 법을 검색해봤다. 있었다. 그 중에서도 시모 생일상을 준비하면서 며느리가 끓였다는 방법이 그럴싸해 그걸 따라 끓여보기로 마음을 바꿨다.
 

 마른 미역을 찬물에 한 시간 불렸다가 뽀독뽀독 잘 씻어 소쿠리에 담아 물기를 뺀 다음 5cm크기로 잘라두고, 양지도 30분간 찬물에 담가 핏물을 뺀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참기름 큰 한 술과 국간장 큰 두 술로 조물조물 무쳐 30분 재웠다. 미역국을 끓일 냄비에 재워 둔 고기를 넣고 겉 표면이 익을 정도로 볶다가 미역을 넣고 푸른빛이 날 때까지 잘 볶아줬다. 여기에 육수를 붓고 껍질 벗긴 양파 하나를 통째로 넣고 중간 약 불에 시간 반을 끓인 다음 양파는 건져내고 중약 불에 한소끔 더 끓였다. 물이 졸아들 때마다 두어 번 새로 물을 보충해가며 끓이고 굵은 소금으로 간을 맞추었더니 뽀얗게 울어난 국물이 여간만 개운하지 않았다. 일찍 일어나기를 참 잘했다. 진국이었다.
 

 딸이 가져다 준 명란젓을 곁들여 차린 생일상 앞에 앉은 손녀가 “잘 먹겠습니다.” 한 마디  하더니 부지런히 수저를 놀린다. 맛있단 소리도 없다. 잘 먹어주는 게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론 밉살스럽다. 맛있다면 어디 덧 나냐, 멋대가리 없는 녀석. 사춘기라니!
 

 마주앉아 식사를 하면서 나는 동생들이 태어날 때마다 먹던 미역국을, 대학병원 산과병동 분만실에서 먹던 미역국을 떠올렸다.
 

 어머니가 동생들을 일곱이나 낳는 통에 나는 일찍부터 미역국에 익숙해져 자랐다. 동생들이 태어날 때마다, 나와 그 동생들의 생일 때마다 미역국을 먹어왔지만 나는 별로 미역국에 길들여지지 못했다. 멸치국물만으로 끓인 밍밍한 국이 보름이고 한 달이고 줄곧 상에 오르다보면 나중에는 식사 때마다 짜증을 부리는가하면 아예 먹지도 않고 내빼기도 했다.
 

 젖이 잘 나오라고 자신다고만 생각했을 뿐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게 산고를 겪었는지, 열 달 동안 뱃속에 동생을 안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출산의 불안이 얼마나 컸을지는 조금치도 생각지 못했다. 짐작조차 못했다. 식어서 찝찔한 소금물맛만 난다고 투덜거리거나 국에 남아 있는 퉁퉁 불은 멸치를 찾아 휘젓는 것뿐으로 어머니의 처지는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어머니의 산고가 어떠했던가를 알게 된 건 대학병원 수련의로 산과병동에 근무하면서였다.
 

 수련의 과정 두 번째 달에 나는 산과 병동에 배치됐다. 분만실의 실 상황은 교과서와 달랐다. 분만을 끝내고 자리를 가다듬고 난 뒤에 들어가 보았던 어머니의 안방과는 사뭇 달랐다. 의사에게도 산모에게도 분만은 미지에 대한 기대와 흥분인 동시 불안한 긴장이고 두려운 기다림이었다. 팽팽하게 긴장 감도는 산실은 불안과 초조로 때를 기다리는, 땀이 흐르고 피가 튀고 절박한 외침이 생생한 원시의 공간이었다.
 

 분만대위에서 진통을 겪는 산모들은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악을 쓰고, 몸을 뒤틀고, 때로는 입에 담기조차 면구한 온갖 욕지거리로 남편을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 첫 울음을 터뜨리면서 홀연 산고는 끝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땀범벅 된 얼굴에는 기쁨과 평화가 자애롭게 피어났다. 이마와 뺨에 헝클어져 붙은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쓸어 다듬으며 짓는 환한 웃음. 진정한 행복과 기쁨은 고통과 인내 끝에 온다는 말을 실감케 하던 현장. 그 관문을 겪었을 모든 어머니들, 나의 어머니.

 자정을 넘긴 분만의 뒤처리를 끝내고 분만실 주방에 앉아 미역국을 먹을 때면 어머니의 산고가 뒤늦은 여진으로 가슴을 울렸다.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것이나 진배없이 싱거운 국, 하지만 그 미역국은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성찬이었다.
 

 일상의 표정으로 어제 있었던 학교에서의 일을 재잘대며 맛있게 미역국을 먹는 손녀, 정작 아이는 멀쩡한데 왜 내가 목이 메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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