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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2012.01.21 00:59

김창현#70 Views:5212


          

 언제부턴가 자주 꾸는 꿈이 있다. 그곳이 어딘가는 자세치 않다. 장소는 더러 바뀐다.
내 첫직장 회현동 신문사 근처도 되고, 살고있던 삼성동 봉은사 근처이기도 했다.
나는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포장마차에서 2차까지 했던 것 같다. 
비틀거리며 건널목을 건너다 무엇이 쿵하고 나를 들이받는 것을 느꼈다.
과속으로 질주해온 택시였다.

금방 내 주변엔 사람들이 우르르 모였다. ' 사람이 죽었나봐.'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은 멀쩡했다. 툭툭 옷의 먼지를 털고 일어났더니,  '괜찮나?' 친구들이 물었다.
'괜찮다.' 이상하게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들은 어처구니 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하로 내려가 내가 전철 타는 것을 배웅해주었다. 
차에 오르자 친구들이 창밖에서 나를 향하여 잘가라고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저들끼리 3차 가는 모양이었다.
나만 버리고 저들만 가는 것이 좀 섭섭하기도 했다. 그렇게 친구들과 헤어졌다.

 전철 안에 어떤 여인이 어린애를 안고 있었다. 그러자 제복 차림 역무원이 오더니
'이 아이는 해당이 않되니, 내려놓고 가야됩니다!'  억지로 아이를 떼어놓으려 한다.
여인과 아이는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부짖고 야단법석이 난다. 
역무원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이상한 곳으로 가는 느낌이 들었다. 
전철은 떠났다.
전철은 출발하기 전은 진동이 심하더니, 일단 출발하자 한없이 조용하고 편안하였다.

 좌석은 텅텅 비었고, 노인 몇 분만 앉아있었다. 어딘가 긴 지하터널을 한없이 간다. 
역무원에게 차가 어디로 가느냐 물어보니 그냥 앉아 있으라고만 한다.
옆 사람들은 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터널을 벗어나자 전철은 어떤 황량한 푸른 달빛 가득한 곳에 선다. 역무원은 우릴 내리게 하고, 한사람씩 방에 들어가도록 했다. 방은 저마다 독립된 방이었다. 
방 앞은 잔디인데 비석이 하나씩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비석에 내 이름이 적혀 있다. 
아하! 비로서 온 곳을 알 수 있었다. 저승사자가 날 데려온 것이다.
목슴은 풀잎에 맺힌 이슬이라더니, 그런 작은 부주의가 나를 저승에 데려오는구나 싶었다.

 문득 아내 모습이 보였다. 아내는 상석을 잡고 흐느끼고 있었고,
아들과 딸은 머리 숙인채 가만히 있었다.
내가 닥아가 그들 이름을 불러보았으나 그들은 듣지 못한다.
육신을 흔들어도 그들은 느끼지 못한다. 이승과 저승으로 격리된 모양이었다.
잠시 후 아내를 아이들이 부축하고 가버렸다. 손을 흔들며 안타깝게 소리쳤지만, 
그들에겐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의 입학, 결혼, 취직 때 기뻐하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머리 속을 스쳐갔다. 
그렇게 가족과 헤어졌다. 친구도 가족도 그렇게 떠나버렸다.

 '새로 오신 분이구나.'
옆집들이 모여 들었다. 한 영혼이,
'잘 오셨소. 여긴 처음은 이상하지만, 더위도 추위도 없는 곳이요. 배고픈 것도, 생노병사도 없소.'

알만한 이야기였다. 그 말에 내가 수긍을 하자, 다른 영혼도 한마디씩 한다.
' 전쟁도 가난도 없소.'
'사랑도 미움도, 고독과 원망도 없소.'

 그들은 아무런 적의를 가진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고 무슨 특별한 호의를 보이는 건 아니었다. 마음이 무색투명, 감정이 없는듯 했다. 그들 이야기에 나도 공감을 느꼈다. 
여기가 안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승에서 도를 깨친 고승이나 학문을 깊이 닦은 사람도 저승에선 마찬가지요.'
'고생해서 깨달은 것도 여기선 다 헛것이요.'

 어차피 그들처럼 희미한 한줄기 연기로 변할 바에야... 그 말이 공감 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승은 지식이 그리 많이 필요한 곳이 아니었다. 
그저 살아가는데 필요한 조금만 있었으면 되었다.
그것 때문에 어리석게 너무 많은 시간 소비하였다 싶었다.

'쓰지도 못할 재물 잔뜩 모아놓고 온 부자도 마찬가지요.'
'재물 모운다고 헛고생만 잔뜩 하고 온 것이요.'
이 말은 이승에서도 듣던 소리다. 그러나 저승에서 들으니 확실한 공감이 갔다.

'인생을 비극이라고 호들갑 떨다가 온 사람도 마찬가지요.'
'벼슬했다고 우쭐대던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그말도 공감이 갔다. 모든 것이 잠시 지나간 하나의 드라마인데, 
자신이 어디에 속했던가에 애태울 필요도 없었다. 배역에 충실하면 되었던 것이다. 

'다정히 정이나 주고받고, 서로 격려하며 살다가 왔어야 했어요. '
 마지막 말이 가장 가슴에 걸려왔다. 사실 한떨기 소리없이 지는 낙화가 인간이었다. 
희노애락애오욕의 감정을 지닌채, 황홀한 오페라 무대에 하늘하늘 떨어지는 꽃이었다.
그저 가난한 이웃과 정이나 주고받고 살았어야 했다. 
좋은 사람 만나면, 먼저 '존경 합니다. 사랑합니다.'란 말 건네다가 왔어야 현명했었다.

 저승의 말은 이승의 철학을 넘어선 어떤 깊이가 있었다.
나는 그 모든 이야기가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뭔가 깊은 아쉬움에 잠겨있을 때였다. 

 아까 나를 데려온 그 역무원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병원에서 3일장 이전 아직 육신이 식지 않은 사람을 실수로 데려왔다는 것이다. 
나를 태우고 온 그 전철에 다시 태워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나를 끌다시피 전철로 데려갔다. 
'여보시오! 이승 가거던 여기서 들은 이야기 잘 기억하시오. 의미있게 살다 오시오.'
뒤에서 영혼들이 당부하는 소리가 들렸다.
역무원이 전철 안에 탁! 나의 어깨를 떠미는 순간 나는 눈을 떴다.

 탁! 의사가 내 어깨를 두드린 모양이었다. 그는 응급조치 해놓고 환자들 회진 후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응급실 하얀 베드 위에 누워있었다. 
걱정하는 아내 모습이 보였다. 친구들 얼굴도 보였다.
생전에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자식들은 아직 오기 전이었다.

 간혹 이런 꿈을 꾸고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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