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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군불

2012.01.29 11:46

김창현#70 Views:5441


            군 불

                                                              김창현

  간혹 할아버지 댁에 가면 군불을 때곤 했다. 진주 신안동 잿마당 꼭대기 그 집은 밥 하는 큰 아궁이는 부억에 있고, 탕수국 끓이는 작은 아궁이는 밖에 있었다. 작은 방 아궁이 옆은 사릿문 달린 대밭이고, 대밭 안에 들어가면 감나무 과수원이 있었다. 주로 추석이나 설날이었을 것이다. 명절 음식 장만 총감독은 할머니고, 며느리들은 요즘과는 달라서,  총감독 명령에 군소리 없이 복종하였다.

중학생 손자는 작은 방 군불 때는 임무를 맡았다. 돌아보면 나는 그 당시 군불 때는 일에 한번도 싫증낸 일 없다. 가을이면 작은 방 아궁이 옆은 언제던지 손 닿는 단감과 대봉시가 주렁주렁 달린 과수원이었기에, 겨울이면 군불 속에 고구마 같은 것이 구워졌기 때문에. 

  탁탁! 불똥 틔며 타오르는 장작불 피우기는 재미였다. 오직 재미 있었으면, '아이들이 불장난하면 자다가 이불에 오줌 싼다'는 금기어까지 생겼을까. 불길은 혓바닥 일렁거리며 장작을 태우다가, 새 장작에 금방 옮겨붙는다. 소나무 장작에선 짙은 송진향이 풍긴다. 작대기로 장작불 뒤척이거나, 갈비를 한 줌 던져주면 확 하고 소리내며 타오른다. 그때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기운이 몸을 뜨겁게 달궈주곤 했다. 얼굴 빨갖게 달아오르게 만들곤 했다. 간혹 바람 불어 매운 연기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솥뚜껑은 쉭쉭 소리를 내며 하얀 김을 내품었고, 탕수국 냄새는 사방에 퍼졌다. 국 끓고 나면 잿불을 화로에 담아 대청에 가져간다. 설 추위에  두루마기 입고 큰집 대청 끝에 늘어선 남정네들 손 녹이기 위한 것이다. 이 군불 때던 임무는 스무살 전후 상경한 후 사라졌고, 아련한 향수는 허공 속에 묻혀졌다. 

 그래 2년 전에 친구가 지리산 두류동에 초막을 만들 때, 내가 맨 먼저 권한 것이 난로를 하나 놓아보란 것이었다. 농사 짓던 사람도 아니고, 시카고서 귀국한 친구다. 해발 500고지 산속의 바람소리 들리는 쓸쓸하고 긴긴 동지밤에 혼자 방안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아쉬운대로 밤 고구마 구워가며 지내는 것이 낙일 것 같아서다.

 그래서 즉시 중고 난로 하나 구해 놓았더니 두가지 낙이 있더라 한다. 첫째는 겨울 난방비가 백만원 줄었다는 것이다. 산에 지천인 것이 나무다. 나무를 해다 때니 경유가 적게 든다는 것이다. 운동도 된다는 것이다. 영하 10도 15도를 기록하는 그곳 난방비 백오십만원이 50만원으로 확 줄었다는것이다. 둘째는 운치 있다는 것이다. 눈 내리는 산속의 난로불도 운치요, 고구마나 밤 굽는 재미도 운치더란 것이다. 마침 그 난로에는 고구마 굽는 칸까지 따로 있다고 한다. 난로를 같이 구해온 진주 오교장과 둘이, 난로 놓자 눈 온다고, 글 쓰는 자네 오면 좋겠다고, 서울로 전화해서 같이 웃은 적 있다.

강원도 산간지방에서는 '코쿨'이라 해서, 난방 및 조명용으로 만든 정통 흙벽난로가 오래 전부터 있었다고 한다. '코쿨'로 조명한 산속의 밤은 참 깊고 조용했을 것이다. 별빛만 총총 했을 것이다. 뒤에 두류동에 가보니, 친구 둘이 들인 쇠난로는 '코쿨'처럼 원적외선이 나오는 황토흙과 땔감나무에서 나온 두가지 향기가 어울린 것은 아니지만, 나무 타는 향기 하나는 그럴듯 했다.

 10년만에 남에게 세줬던 집에 다시 오니, 이 집은 전에 내가 산 10년 세월까지 합하면, 20년 넘은 낡은 집이다. 마당의 향나무가 하도 무성해 다른 나무들과 함께 잘라서 묶어놓으니, 큰 짐이 열개나 된다. 이걸 차 불러 쓰레기장에 보내려면 적잖은 돈이 든다. 도시는 이런게 탈이다. 차일피일 치우기 미루다가 마침 영하 15도가 넘은 날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거실 벽에 붙어있는 벽난로에 눈이 간 것이다. 낡았지만, 혹시 알 수 있나? 먼저 신문지에 불을 붙이고 마른 향나무를 때니, 연기는 고스라니 굴뚝으로 빨려 잘도 올라간다. 나무가 향 원료인 향나무라, 벽난로 전체에서 향냄새 풍겨온다. 완전히 중국 소림사 같다. 빗자루마냥 굵은 향다발 태우는 냄새다. 거실에서 30분 불기운 쬐니 얼굴 뜨건뜨건해진다. 원적외선이거니 싶어 흐믓하다. 가만 있자, 언제 또 날이 추워지나, 뉴스를 보게된다.  

 나이 70 바라보는 이제 벽난로 불 피웠다고 이불에 오줌 쌀 일 있겠는가. 마음 놓고 고향집에서 군불 때던 시절을 회상해본다. 일렁이며 피어오르는 불꽃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 불꽃 속에 연날리기 하던 시절, 춥다고 들불 쬐던 일 떠오른다. 정월대보름 타오르던 달집 생각난다. 양은도시락 얹어놓던 교실의 따끈하던 난로 생각난다. 지난 날의 향수가 어딘가서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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