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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명의 (名醫)

2012.02.03 21:04

노영일*68 Views:4721


명의 (名醫)


잠자리에 들려고 이불을 펴고 있는데 누가 보건소 문을 요란하게 두드려댄다.

문을열고 내다보니 한 사내가 초조하게 서있다. 무슨사연이냐고 물으니 아내가 이틀전 출산을 했는데 아직 후산이 없고 열이 불덩이같이 나며 눈을 까뒤집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것이 꼭 죽을것만 같아 부랴부랴 의사선생님을 찾아 왔단다.

어이쿠 드디어 올것이 왔구나 하며 가슴이 덜컹내려 앉았다.

그러면 큰병원에 데려가야 될것이 아니냐고 했더니 읍내에 나가는 뻐스는 하루에 한번 들어오고 이런 밤중에는 택시를 불러도 오지를 않는다고 한다. 더구나 읍내까지 나가자면 몇시간이 걸리는데 그전에 꼭 죽을것만 같다고한다.

할수없이 주섬주섬 필요할만한 의료기구와 약품을 왕진가방에 대강 챙겨넣고 사내를 따라 나섰다.

밤은 교교하고 어두운데 반쯤찬 달빛이 주위를 제법 훤하게 비치고 있었다. 50미터쯤가니 신작로가 끊어지고 깎아세운듯한 절벽위로 철교가 있는데 내려다보니 아찔아찔하게 현기증이 날정도의 높이였다.
건너가자면 족히 이삼십분정도는 걸릴것 같은 긴 철교였다.

사내는 철교를 건너갈 심산인양 그위로 걸어올라간다.
그러다가 기차가오면 어떡할거냐고 물으니 그래도 급하니 어쩌겠냐는 눈치다.

다른길은 없냐고 물으니 강상류로 올라가면 물이낮은곳에 징검다리가 있는데
그리로 가자면 30분은 더 걸린다는것이었다.

나는 철교는 못건너 가겠으니 시간이 더 걸려도 돌아가자고 했다.
사내는 할수없다는듯 철교에서 내려서 제방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방은 고요하고 풀벌레 소리만 찌르륵 찌르륵 나는데 가끔가다가 후루룩하며
무엇이 지나가는 소리가났다. 소름이 오싹끼쳐 혹시 뱀이 아니냐고 물으니
이런밤중에 뱀은 없단다.

철면부지의 사내를 따라가다가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지는것은 아닌가 겁도났다.

사내의 뒷발꿈치만보고 따라가자니 지난 며칠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갔다.




어릴적 부터 친구인 松亭 李炳學 화백의 그림.
서울갔을때 송정 갤러리에들러 전시된작품들을 감상하다 그냥 들고 나왔다.
주인이 웃으며 보는 앞에서 들고 나온것이기 때문에 도둑질 한것은아니고 우정있는 탈취(?)였다.


군사정권의 서슬이 퍼런데 수련의들이 쥐꼬리만한 월급을 올려달라고 파업을 했다가
다음날로 무의촌으로 내몰렸다.
정부는 오래전부터 계획한 일이라 하지만 파업에대한 보복임이 분명했다.

집에는 갓 돌을지난 딸아이가 있었고 아내는 쌍둥이를 임신하여 만삭인 몸이었다.
취프 레지덴트로 할일도 많고 보드시험준비도 해야 할때다.

며칠간의 말미도 주지않고 내일 당장떠나란다.
날벼락을 맞은듯 난감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정부관리들은 모든것이 다 준비되어있으니 여러분들은 몸만 가서
인술만펴면 된다고 했다.
여러분들같이 높은 의술을 가진분들이 현지에 도착하면 열열한 환영은 물론
모든 편의를 다 보아줄것이라고 했다.

다음날 옷가지와 이부자리를 싼 보따리를 챙겨들고 생전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오지 산골을 찾아갔다.

구세주가 온듯 환영을 받을줄로 생각했던 기대는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산산조각이 났다.
말단 지방공무원들의 관료주의, 불친절, 무관심은 서울 뺨칠정도였고,
환영은 커녕 그들에게 나의 출현은 도리여 한가지 귀챦은 일이 더 생겼을 뿐이며
아예 외면을 할려고 들었다.

임지에 도착하여서도 마찬가지였다.

주민들의 눈길이 당황할 정도로 차가왔다.
보건소라는 곳은 아무런 시설도 없고 약품도 없었다.
서울에서 가지고간 몇가지 약품과 의료기구가 전부였다

보건소앞 길건너에 파출소가 있었는데 그래도 이웃끼리 인사는 해야 될것같아서
찾아갔다.

지서장은 경찰관답지 않게 마음좋고 순하게 생긴 중늙은이었다.
그당시는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라 커피대접은 금기였고 손님이 찾아오면 박카스
한병씩 내 놓는것이 상례였다.

박카스를 컵에 따라 한모금을 마시고는 한다는 이야기가 이 마을에는 과거에 몇몇
공의가 있었는데 모두 월급만 타먹고 살기는 읍내에 살면서 마을에는 그저 한달에
서너번 정도만 들렀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돌팔이들이어서 병은 고칠줄도 모르고 자꾸 사고만내서 모두 쫒겨 났다며,
“노선생도 엔간히 잘하지 않으면 힘들거요” 라고 은근히 겁을준다.

그러고 보니 마을사람들의 찬 눈길이 이해가 갔다.

부임후 몇일간 찾아오는 환자가 하나도 없었다.

정신과 레지덴트 4년차에 이제 아무도없는 시골에와서 이병저병 다 고쳐야하는 공의 (公醫) 노릇을 할려니 추상화만 그리다가 갑자기 초상화를 그리는것 같은 기분이었다.

제일 겁나는 분야가 산부인과였다.

인턴때 야간당직 레디덴트 옆구리를 쿡쿡찔러 밀어내고 내손으로 아기를 몇번
받아본 것이 내실력의 전부였다.
학생때 보던 산과책을 다시 꺼내서 그림만이라도 보며 기억을 되살리려 했다.

그런데 이 사내는 얼마나 급했으면 그렇게 인기없는 공의를 찾아왔는가?
첫번째 환자가 하필이면 내가 제일 자신이 없는 문제를 가지고와 나를 괴롭히려 하는가?
마치 나의 급소를 정확히 알고 정면으로 도전해 오는것 같았다.





갑자기 사내가 멈춰섰다.
이곳에 분명 징검다리가 있었는데 없어졌다며 지난 홍수에 떠내려갔는가 보다고
혼자 중얼거렸다.

사내는 바지를 걷어 부치더니 나더러 업히란다.
잠시 망서리다가 구두를 벗고 바지를 걷고 하는것이 번거러워 그냥 업혔다

다시 논두덩을 따라 한참가다가 언덕배기에 다다르니 쓸어져가는 초가집이 하나보였다.
희미한 등잔불이 새어나오고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는걸 보니 목적지에 도착한것 같았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컴컴한 방에 들어서니 산모는 반 혼수상태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신음소리만 내고 있었다. 이마를 만져보니 고열이 있었다.

그래도 격식은 갖추어야 될것 같아서 멸균 고무장갑을 끼고 진찰을 시작했다.

반쯤마른 태줄이 보였다.
조금 당겨보니 요지부동이다. 내진을하듯 손가락으로 입구를 조금 벌려보니
시커먼 공같은것이 보였다.
조금더 벌려보니 “퍽” 하고 물총쏘듯 검은 공이 튀어나와 하마터면
내 얼굴에 정통으로 맞을번 했다.

자세히 보니 태반이었다.

대강 식염수와 소독약으로 닦아주고 항생제를 주사 해주고,
해열제를 주고나니 위기를 면한것 같았다.
내 심장고동도 안정되어 가는것 같았다.

사내는 내가와서 채 일분도 않되어 후산을 했으니 감격하여
머리를 연방조아리며 고맙다고 한다.
조금 시간을 두고 상태를 보아야 할것같아 앉아 있는데,
사내는 자기 넉두리를 시작한다.

한참 이야기 하는데 결론은 자기는 소작농으로 지금이 제일 어려운시기다.
가을에 추수를 끝내야 품삯이 나오는데 왕진비는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단다.

나는 솔직히 왕진비같은것은 생각에도 없었고 다만 위기를 면한것만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아무때나 형편될때 내고 형편이 안되면 안내도 괜챦다고 얼버무렸다.

그러는 사이 열이 떨어 졌는지 산모가 눈을뜨고 의사선생님이
이 밤중에 이렇게 먼곳까지 와 주셔서 고맙다는 인사치례를 한다.
이제 임무는 완수됐다 싶어 일어나려고 했다.

사내는 잠시만 더 앉아계시란다.
아무것도 사례할것이 없으니 보신탕이라도 만들어 대접하겠단다.
그러고보니 아까 들어올때 툇마루앞에서 자다가 일어나 꼬리를 치던
강아지 생각이 났다.

질겁을하고 나는 보신탕은 못먹고 더구나 저녁을 다 먹고와서
전혀 아무생각도 없다고 하며 도망치듯 방을나왔다.

마을의 불빛이 보이는데 까지 와서는 혼자 갈수있으니
산모도 돌볼겸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궂이 보건소 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것을 쫓아보내다 시피 돌려 보냈다.

혼자서 시골 밤길을 걸어 오자니 어릴적 듣던 달걀귀신이 쫓아 오지나 않나
겁이나 뛰다시피 돌아왔다.





다음날 또 한 사내가 보건소에 헐레벌덕 찾아왔다.

자기 아내가 산고를 이틀씩이나 했는데 아직 아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제밤 죽을번한 산모를 단 몇분만에 살려낸 용한 의사가
여기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단다.

시골에는 소문도 빨랐다.

이번에는 진짜 마각이 들어나겠구나 생각하니 또 가슴이 방망이질을 했다.
그러나 할수없이 그 사내를 따라나섰다.

산모를 내진하니 자궁은 열렸는데 애기머리는 만져지지가 않고
무슨 조그만 것이 만져졌다.
자세히 드려다 보니 애기 발이 쏙내밀고 있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애기가 발부터 나오면 응급상황이라는것쯤은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첫번 환자는 재수가 좋아서 위기를 면했지만
이번에는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것 같았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이었다. 제발 무사하기만을 기도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어깨가 나오고 턱이 나오고 그러더니 머리가 홀깍 빠져 나왔다.

우렁찬 애기울음소리에 벌떡 정신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는 마을사람들의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다.
우리마을에 용한의사가 왔다고 소문이 쫙 퍼졌다.
거리에서 지나가다 만나는 사람마다 웃으며 인사를했다.
보건소에 환자들이 연일 바글바글 대었다.

내가 제일 실력없고 겁내던 분야에서 명의(名醫) 소리를 듣게된것이었다.
단지 닫혔던 문의 빗장을 열어주고, 위기에서 구해달라고
기도를 한것밖에 없는데 명의라니.
명의란 재수가 좋아 엉뚱한곳에서 엉뚱한 계기로 만들어 지는 것인가.

4년동안 심혈을 기우리던 후로이드 나 융 같은 정신분석학은
여기서는 돼지 발톱에 매니큐어 같아 보였다.


2012년 2월 3일 시카고에서 노 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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