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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손녀

2012.08.28 19:20

노영일*68 Views:5467


손녀

스위스에 사는 세째딸이 손녀 셋을 데리고 집에 왔다.
매년 7월 아이들이 여름방학을 맞으면 온가족이 시카고에 와서 한달을 지내다 간다.
손녀들이 외가집 식구들과 어울리고, 영어도 익히고, 또 대도시의 생활도 경험하게 하기위한 딸의 세심한 배려가 있다.
오헤어 공항에서 조그만 바이올린을 하나씩 등에 멘 계집애들 셋이 뛰어나와 나를 둘러싸 얼싸안고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며 깡충깡충 뛰는것이 흐뭇해 보였는지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쳐다보며 미소를 짓는다.



우리 딸이 보스톤에서 대학원에 다닐때 였다.
하루는 전화를 걸고 자기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결혼하고 싶다고 한다.
듣던중 반가운 소리여서 “그래 어떤남자냐?” 하고 다그쳐 물었다.
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스위스에서 유학온 남학생인데 아주 착실하고 좋은 남자란다.
처음에는 길안내도 하고 영어도 배워주고 하다가 정이든 모양이었다.
나의 반응은 신속하고 단호했다. “안된다. 집안이 어떤지도 모르고 더구나 유럽에서 온 사람을 어찌 믿고 결혼을 한단말이냐?”
그래도 한번 만나나 보란다. 만나봐도 소용없다고 전화를 끊었다.

그동안 친척, 친지 나 동창들을 통하여 몇몇 좋은 한국남자들을 소개 받아 만나보라고 하면 마지 못해 한두번 만나 보고는 시큰둥하게 흐지부지 하기가 일쑤였다.
“케미스트리”가 맞지 않는단다.
미국에 이민온 한인 일세들이야 누구나 할것없이 자녀가 한국인과 결혼해 주기를 바란다.나도 예외일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같이 되지를 않는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그 감정까지 강요 할수는 없는것이다.
더구나 자기 평생 배필에 관한것이 아닌가.
한국인끼리 자연스럽게 만나 사귈수있는 기회는 하늘의 별따기 같이 드물다.
실제로 열명중 일곱명이상이 타인종과 결혼하는것이 요즘의 실태이다.

며칠후 딸이 무작정 자기 남자 친구를 데리고 집에 왔다.
첫인상은 깔끔하고 착실해 보였다.
갑자기 들이닥쳐 집도 잘 치우지 못하여, 한국사람들은 지저분하다는 인상을 줄까바 도리여 내가 거북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아무런 거부감도없는듯 우리식구와 잘 섞이고, 한국음식도 잘먹고, 부침성이 있어 다소 안심을 했다.
이것 저것 물어보니 거짓말을 하지 않는한 결격사유는 없는듯 했다.
자식한테 이기는 부모가 있었던가.
졸업을 하자마자 본인들의 고집으로 스위스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쪽 가족, 친지, 친구들이 대거 스위스에 몰려갔다.
나는 그때 처음 스위스에 가는 것이었는데 동서남북 어디를 쳐다봐도 그림엽서같이 아름다웠다.
신랑집이 영화 Sound of Music 의 무대인 오스트리아 접경지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결혼식은 옛성 (古城)을 개조하여 만든 작은 교회에서 했는데 화려하지는 않으나 우아하고 품위있게 했다.
가족, 친척과 친한 친구들만 초대를 하여 오히려 미국에서 간 원정팀의 숫자가 더 많을 정도였다.
얼마후 시카고에서 다시 피로연을 했는데 신랑부모들이 시카고에 이렇게 한국사람들이 많은줄 몰랐다고 혀를 내둘렀다.

보스톤에서 작은 아파트를 세내어 신혼살림을 차렸다. 그리고 거기에서 첫아이가 태어났다.
나에게는 첫번째 손주였다.
아내가 가서 산바라지를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도 않되어 딸이 삼칠일도 채 않된 손녀를 둘쳐없고 시카고 집으로 왔다.
나에게 아기를 보여 주고 싶기도 하고, 자기도 혼자 아기를기르기가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첫아이에 더 정이들었다.

미국에서 살기로한 결혼전 약속은 신랑이 향수병에 걸려 깨어졌다.
그대신 일년에 한번씩 미국에 오기로 하고 스위스로 이사를 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딸이 향수병에 걸려 일년에 수도없이 왔다갔다 하더니 차츰 세월이 지나고 아이들이 셋이나 되니까 아이들 방학때 한달씩 왔다가는것이 고작이 되어 버렸다.
스위스 사람들도 아들을 선호하는데 딸만 내리 셋을낳아 남편이 하나 더 낳자고 졸라대는 모양인데, 딸은 이제 나이도 많고 아들 난다는 보장도 없는데 또 딸을낳으면 어떡하느냐고 버티는 모양이다.













스위스 손녀들이오면 우리집은 비상이 걸린다.
아내는 골프리그도 취소하고 그림그리는것도 접어둔다.
나는 일만 끝나면 부리나케 집에와서 아이들과 놀아야 한다.
주말골프도 한달간 휴업이고, 주말마다 그대신 어린이 놀이터에 부지런히 다녀야 한다
모든 생활이 어린이 모드로 바뀌고 어린이 세계로 들어간다.

미국은 노인들의 지옥이요 어린이들의 천국같이 보인다.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들이 예상외로 많고, 아무리 불경기라도 어린이 장난감가개는 만년 호황이다.
처음에는 나도 다시 어린시절로 돌아간듯 아이들 보다도 내가 더 즐기는것을 문득문득 느끼곤했다.
그러다가 하나 둘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빙빙 도는것을 한번 탔다가 죽을것같이 어지러워 공원 벤치에 두시간이나 들어누어 있었다.
아이들에게 스타일 구기고 그다음부터는 이런핑계 저런 핑계를 대고 피했다.
물놀이 공원에서 손녀들이 손을 잡아끌어 조그만 계집애들도 타는데 내가 왜 못타랴싶어 물썰매를 타고 내려 오는데 커브에서 휙 돌다가 허리가 시큰하고 다 내려 와서는 물이 코와 입으로 확 들어와 심장이 콱 막히는것 같았다. 어이쿠 이러다가는 금년 골프는 완전히 가겠고 잘못하면 일도 못가고 들어 누을것 같아 그 또한 포기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이들이 다시 가자고 졸르는데 할아버지는 너희 사진을 찍어 주어야 하니까 너희들끼리 가라고 얼버무렸다.
처음에는 수영도 같이하고 물장난도 하곤 했는데 이제는 물속에 들어가기 조차 끔직하게 느껴져 비치의자에 앉아 있자니 한증을 하듯 더워 죽을지경이다.
휴대전화가 따르릉 울린다. “티타임이 됐는데 왜 않나오는거야?” “아차 내가 전화하는것을 깜박 잊었는데 오늘 급한일이 있어 못나가겠네. 미안.”
급한일은 무슨 급한일.. 마음은 푸른 초원을 달리고 있었다.
주위를 암만 둘러봐도 내 나이의 늙은이는 한명도 찾아볼수가 없었다.
역시 나는 여기에 속할수가없구나 하고 느꼈다.
그리고는 꽁수를 부려 어른과 아이가 함께즐길수 있는곳만 찾아다녔다.
어린이 박물관들은 물론 다른 여러 박물관에도 어린이 코너가 있어 재미있고 교육적이다.
수족관, 천문대, Medieval Times, 레고랜드, 전자 게임방, 어린이 놀이터, 미니골프,.. 이방면에 도사가 됬다.
그러나 아이들은 물놀이공원이 제일 좋은 모양이다.

전자게임기계와 수중 카메라를 사 주었더니 그렇게 좋아 할수가 없다.
"할아버지가 이렇게 좋은것들을 사주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면돼?" 하고 큰아이가 묻는다.
"너희들이 이뻐서 사주는것이니까 너희들은 아무것도 안해줘도 돼."
그러면서 "이다음에 내가 진짜 호호 할아버지가 되더라도 지금처럼 찾아와 주기만 하면 돼" 라고 중얼거렸다.
큰 아이가 무슨소린가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 본다.

어느덧 한달이 후딱지나갔다.
오늘은 아이들이 스위스로 돌아가는 날이다.
일년동안 못볼것을 생각하니 섭섭하기도 하고, 또 한편 이제는 골프도 치고 내 하고 싶은것도 할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즐겁기도 하다.
공항에 데려다주고 배웅을 하는데 아이들은 나를 껴안고 놓아줄 생각을 않한다.
군중에 휩쓸려 들어가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다 보며 손을 흔드는데 눈에 맺힌 이슬방울이 형광등불에 반짝하는것을 분명히 보았다.
코등이 시큰 했으나 여러사람들 앞에서 늙은이가 눈물을 보이면 주책스러울것 같아 참느라고 애를 먹었다.


2012년 여름      시카고에서 노 영일

Text & Photo by Y. 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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