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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유월 마지막 날에

2008.07.05 01:02

조성구#65 Views:8480



My Garden, June 30, 2008




    벌써 유월의 마지막 날이다.
    하지도 지나고 금년 한해의 반이 가 버리는 날이다.

    봄부터 유난히 비가 잦아서 이곳 저곳에 물이 고이고
    나무들이며 잔디는 푸르름을 머금어 싱그럽고
    꽃밭에 온갖 꽃들은 야한 빛갈을 뽐내며 난무하는 사이로
    벌 나비와 새들이 바쁘게 들락거리니
    무르익은 여름 아침, 삶의 약동함이 가득하게 넘쳐 흐른다.

    오늘 일기예보에 따르면 간혹 소나기가 오가지만
    기온도 알맞은 쾌적한 여름날,
    손자에게 보낼 생일 카드를 들고 우체국으로 걸음을 옮겼다.

    햇님이 걷혀 가는 엷은 구름을 베일처럼 쓰고 있는 아침,
    가벼운 마음으로 이십여분 걸어 우체국에 당도했으나
    우체국 근처에 도착할 즈음, 가벼운 빗방울이 날리기 시작했다.
    살짝 뿌리다가 그치려니 바라면서 우체국 점원 앞에 섰다.
    순간, 이럴 수가? 분명히 지갑과 집 열쇠를 넣어 왔는데?

    지갑이 없다.
    집 열쇠와 핸드 폰 밖에 없다!
    가랑비는 폭우가 되어 쏟아져 나리는데
    부치려던 카드를 손에 든채 난감하기 짝이 없다.

    "엄마가 뿔 났다"라는 드라마 속에 지갑없이 시장에 간
    엄마 꼴이다. 한심했다.
    이런 날씨에 우산도 없이 나선 자신의 경거 망동을
    후회하면서 원망스럽게 비 나리는 창밖을 내다 본다.

    “네가 걸어 오는걸 보았는데 비가 오니 어쩌지?”
    순서를 기다리며 서로 눈인사를 나누었던 할머니의 말씀이다.
    “글쎄요, 비가 그만 오고 그쳣으면 좋겠는데요.
    내가 이런 날 걸어 온게 실수였어요.”

    핸드 폰을 꺼내어 동네에 사는 친지께 전화를 해 보았지만
    이 시간에 나 도와 주려고 집에 앉아 있을 리가 없다.

    “집이 어딘지 멀지 않으면 우리가 데려다 줄가요?”
    “아, 아니요. 괜찮아요.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겠어요.”
    반가운 선의지만 염체없어서 일단 사양을 했다.

    “우리가 도서관에 들리려고 했는데 먼저 데려다 줄께요.
    사양하지 마세요.”

    끝내 사양할 수 없게 장대비가 쏟아진다.

    “그럼 도서관에 같이 가서 비가 그칠때까지 기다리겠어요.”
    “아뇨, 먼저 데려다 드리겠어요.”

    안경낀 젊잖으신 할아버지께서 손을 내미시며 인사를 하신다.

    “죠셒이라고 합니다.”
    “저는 승자라고 합니다.”
    “나는 Sue라고 해요.”

    채 삼마일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이지만 이 비속으로
    걸어 갈수는 없다. 염체없으나 그분들의 자동차에 올라 탓다.

    집으로 오는 5분 남짓한 시간동안 나는 이 젊잖은 노 부부께
    어떻게 나의 고마움을 전해 드리나 궁리하는데
    내가 앉은 뒷자리에 놓인 우편물이 눈에 뜨였다.
    이름은 Joseph Lawhead, Crooked Dr 주소가 눈에 들어 왔다.
    요즈음 서글프게 둔해져 가는 머리지만 이분의 성함과 주소의 길만
    우선 기억하자. 번지는 전화번호부를 찾으면 되니까.

    집 문 앞에 내려 주고 가시는 두 분께,

    “대단히 고맙습니다. 어떻게 저의 고마운 마음을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리자,
    “You already did!” 라고 젊잖은 음성으로 대답하시고
    할머니는 우산을 받쳐 나를 문까지 데려다 주신다.

    전화 번호책을 꺼내 드는 내 마음은
    낯선 노 부부의 따스한 인정에 훈훈하게 젖어 있었고
    밖에는 부슬비가 여전히 꽃밭을 적시고 있었다.

    붙잡아 매어 놓을 수 없는 세월이야 무심하지만
    무심한 세월따라 육신과 정신은 닳고 있지만
    오늘의 아름다움을 산다는 것은 축복이야.

    2008년 유월 마지막 날.

Video and Webpage by Sungja Cho, June 3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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