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도 지나고 금년 한해의 반이 가 버리는 날이다. 봄부터 유난히 비가 잦아서 이곳 저곳에 물이 고이고 나무들이며 잔디는 푸르름을 머금어 싱그럽고 꽃밭에 온갖 꽃들은 야한 빛갈을 뽐내며 난무하는 사이로 벌 나비와 새들이 바쁘게 들락거리니 무르익은 여름 아침, 삶의 약동함이 가득하게 넘쳐 흐른다. 오늘 일기예보에 따르면 간혹 소나기가 오가지만 기온도 알맞은 쾌적한 여름날, 손자에게 보낼 생일 카드를 들고 우체국으로 걸음을 옮겼다. 햇님이 걷혀 가는 엷은 구름을 베일처럼 쓰고 있는 아침, 가벼운 마음으로 이십여분 걸어 우체국에 당도했으나 우체국 근처에 도착할 즈음, 가벼운 빗방울이 날리기 시작했다. 살짝 뿌리다가 그치려니 바라면서 우체국 점원 앞에 섰다. 순간, 이럴 수가? 분명히 지갑과 집 열쇠를 넣어 왔는데? 지갑이 없다. 집 열쇠와 핸드 폰 밖에 없다! 가랑비는 폭우가 되어 쏟아져 나리는데 부치려던 카드를 손에 든채 난감하기 짝이 없다. "엄마가 뿔 났다"라는 드라마 속에 지갑없이 시장에 간 엄마 꼴이다. 한심했다. 이런 날씨에 우산도 없이 나선 자신의 경거 망동을 후회하면서 원망스럽게 비 나리는 창밖을 내다 본다. “네가 걸어 오는걸 보았는데 비가 오니 어쩌지?” 순서를 기다리며 서로 눈인사를 나누었던 할머니의 말씀이다. “글쎄요, 비가 그만 오고 그쳣으면 좋겠는데요. 내가 이런 날 걸어 온게 실수였어요.” 핸드 폰을 꺼내어 동네에 사는 친지께 전화를 해 보았지만 이 시간에 나 도와 주려고 집에 앉아 있을 리가 없다. “집이 어딘지 멀지 않으면 우리가 데려다 줄가요?” “아, 아니요. 괜찮아요.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겠어요.” 반가운 선의지만 염체없어서 일단 사양을 했다. “우리가 도서관에 들리려고 했는데 먼저 데려다 줄께요. 사양하지 마세요.” 끝내 사양할 수 없게 장대비가 쏟아진다. “그럼 도서관에 같이 가서 비가 그칠때까지 기다리겠어요.” “아뇨, 먼저 데려다 드리겠어요.” 안경낀 젊잖으신 할아버지께서 손을 내미시며 인사를 하신다. “죠셒이라고 합니다.” “저는 승자라고 합니다.” “나는 Sue라고 해요.” 채 삼마일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이지만 이 비속으로 걸어 갈수는 없다. 염체없으나 그분들의 자동차에 올라 탓다. 집으로 오는 5분 남짓한 시간동안 나는 이 젊잖은 노 부부께 어떻게 나의 고마움을 전해 드리나 궁리하는데 내가 앉은 뒷자리에 놓인 우편물이 눈에 뜨였다. 이름은 Joseph Lawhead, Crooked Dr 주소가 눈에 들어 왔다. 요즈음 서글프게 둔해져 가는 머리지만 이분의 성함과 주소의 길만 우선 기억하자. 번지는 전화번호부를 찾으면 되니까. 집 문 앞에 내려 주고 가시는 두 분께, “대단히 고맙습니다. 어떻게 저의 고마운 마음을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리자, “You already did!” 라고 젊잖은 음성으로 대답하시고 할머니는 우산을 받쳐 나를 문까지 데려다 주신다. 전화 번호책을 꺼내 드는 내 마음은 낯선 노 부부의 따스한 인정에 훈훈하게 젖어 있었고 밖에는 부슬비가 여전히 꽃밭을 적시고 있었다. 붙잡아 매어 놓을 수 없는 세월이야 무심하지만 무심한 세월따라 육신과 정신은 닳고 있지만 오늘의 아름다움을 산다는 것은 축복이야. 2008년 유월 마지막 날. |
2008.07.05 01:27
2008.07.05 01:32
아름다운 승자님의 정원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구나 노년에?든 우리들에게 흔이 일어날수있는 anectdote를
끼어 Midwesterner들의 훈훈한 때뭊지 않은 인심까지 곁드린
좋은글 잘 읽었읍니다.
저도 우체국이 집에서 25분이 채못되는 거리라서 가끔 우편물을
가지고 운동삼아 걸어 갔다오는데 어느 겨울철 눈이 많이 쌓였던날에
side road까지 미처 치우지 못해 뺑뺑 돌아온 경험도 있고요.
집뒤 정원에서 꽃몽우리가 나오는것을 보며 흥분했던것이 엇그제
같었는데 세월은 이렇게도 빨리 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좋은 슬라이드 쇼 축하드립니다. 규정
2008.07.05 04:07
2008.07.05 10:39
2008.07.06 12:47
No. | Subject | Date | Author | Last Update | Views |
---|---|---|---|---|---|
Notice | How to write your comments onto a webpage [2] | 2016.07.06 | 운영자 | 2016.11.20 | 18130 |
Notice | How to Upload Pictures in webpages | 2016.07.06 | 운영자 | 2018.10.19 | 32258 |
Notice | How to use Rich Text Editor [3] | 2016.06.28 | 운영자 | 2018.10.19 | 5846 |
Notice | How to Write a Webpage | 2016.06.28 | 운영자 | 2020.12.23 | 43785 |
8720 | 안동 에 다녀 와서 [4] | 2008.06.25 | 이건일*68 | 2008.06.25 | 6664 |
8719 | 그때 그 시절 - 여름 피서 (동아 사진첩에서) | 2008.06.25 | YonnieC#65 | 2008.06.25 | 9035 |
8718 | June 25, 2008, A Personal Reflection - 이한중 [4] | 2008.06.25 | 이한중*65 | 2008.06.25 | 3032 |
8717 | 게 이야기 [1] | 2008.06.26 | 유석희*72 | 2008.06.26 | 7797 |
8716 | Klimt 의 그림을 보고 [1] | 2008.06.26 | 이건일*68 | 2008.06.26 | 8655 |
8715 | 웃으며 삽시다, ㅎ. ㅎ. ㅎ. [1] | 2008.06.29 | YonnieC#65 | 2008.06.29 | 5709 |
8714 | 가족여행 [3] | 2008.06.29 | 이건일*68 | 2008.06.29 | 6133 |
8713 | 태극기에 담긴 뜻, 황규정*65 [3] | 2008.07.02 | 첨지*65 | 2008.07.02 | 6796 |
8712 | Elvis Presley 의 노래들 [2] | 2008.07.04 | 이건일*68 | 2008.07.04 | 8120 |
» | 유월 마지막 날에 [5] | 2008.07.05 | 조성구#65 | 2008.07.05 | 8480 |
8710 | 한국의 임상 현실. '험악한 세상 이지요' 를 읽고 느낀 단상 [3] | 2008.07.07 | 이건일*68 | 2008.07.07 | 6694 |
8709 | 우리 집 사람의 정원 2008년 7 월 [2] | 2008.07.07 | 이건일*68 | 2008.07.07 | 8285 |
8708 | "백암 온천을 가다." [6] | 2008.07.08 | 유석희*72 | 2008.07.08 | 7456 |
8707 | 서울의대 미주동문 남미여행기 7 [5] | 2008.07.08 | 황규정*65 | 2008.07.08 | 7131 |
8706 | 불같이 뜨거운 情이 없이 - 詩 / 유행가 - 서 량*69 [2] | 2008.07.09 | 서 량*69 | 2008.07.09 | 8696 |
8705 | 브람스 현악 6중주 1번 2악장 과 '연인들' | 2008.07.10 | 이건일*68 | 2008.07.10 | 10803 |
8704 | 우표속에 태극기 [3] | 2008.07.10 | 첨지*65 | 2008.07.10 | 7346 |
8703 | 북한산의 여름. [3] | 2008.07.10 | 유석희*72 | 2008.07.10 | 7308 |
8702 | Solitude and Community / Henri Nouwen [2] | 2008.07.11 | 이한중*65 | 2008.07.11 | 6076 |
8701 | Enjoy the ride; There is no return ticket | 2008.07.12 | 이건일*68 | 2008.07.12 | 7095 |
Beautiful pictures and music. Heart warming short story. Life is bearable because of human kindness.
You're right. Half of the year already passed.
I know it takes a lot of time and efforts to post slide show clip with music.
Brav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