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09 06:44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68631
전쟁 판세 바꾼 낙동강 방어 주역
“버티지 못하면 죽어라” 군인 정신
‘별넷’ 승진 직전 비운의 교통사고
사망지점 전봇대에 초라한 안내문
대전 전투서 끝까지 버틴 딘 장군
목숨 건 그들의 사투 잊고 말건가
24 사단장 딘 소장은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요구대로 이틀동안 대전을 사수
하고 포위망을 뚫고 홀홀 단신으로 도주하다가 인민군의 포로가 되었다. 덕분
에 워커는 낙동강 전선에 방어선을 치고 인민군을 막아 낼 수 있었다. 딘 소장
은 1950년9월중순 낙동강 전투에서 미군 포로가 된 인민군 이학구 대좌와
1953년에 포로 교환으로 석방 되었다. 이학구는 거제도 수용소에서 인민군
포로 최고 지휘관이었고 미군 수용소장 납치사건의 주동자였다.
워커 중장은 1950년12월19일에 의정부 근처에서 그가 타고 가던 지프차가
국군 트럭과 충돌하여 사망 했다. 한국전쟁은 인민군과 미군, 그리고 미군과
중공군의 전쟁으로 나눌 수 있다. 전쟁 초기의 인민군과 미군의 전쟁은 한국
전쟁 야전사령관이었던 워커 중장이 주도 하여 승리로 이끌 었다고 생각
한다.
미국이나 한국에서 인천상륙작전을 미군이 인민군을 물리친 가장 중요한
작전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데 이것은 "정치적인 도색"이라고 생각 한
다.
인민군은 인천상륙작전이 시작하던 날 낙동강전선에서 총 퇴각하기 시작
했다. 맥아터는 인천등 서해안 상륙작전을 1950년7월 부터 계획 했다. 그러나
낙동강 전선에서 미군이 고전 하고 있어서 작전을 연기하고 있다가 유엔군이
낙동강 전선에서 화실하게 승기를 잡은 후에 작전명령을 내렸다. 당시의 인민
군은 보급 부족으로 아사 직전이었다. 무기 보급도 형편 없었고 보충병이 오지
않아 남한 현지에서 젊은이들을 강제로 끌어다가 전투에 투입 했다.
중공의 주을레는 전쟁 초기 부터 미 해군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을 예상하고 인민군과 소련에게 이를 알렸다. 그는
김일성에게 인천상륙을 막으려면 10만의 병력이 필요 한데 그럴만한
병력이 없으면 포기하고 무조건 후퇴하라고 충고 했다.
사실상 상륙당시 인천에는 2000명의 인만군이 있었고 미군은 별다른
저항 없이 인천을 점령 했다. 미군은 인천과 서울 사이의 인민군 병력
을 과대 평가 했다. 상륙 후 서울 점령 까지 열흘 이상이 걸렸다. 그러나
중간에 별다른 전투는 없었다.
7월한달 동안에 국군 병력이 괴멸 되었 듯이 9월 한달 동안에 인민군
병력이 괴멸 되었다. 인민군은 쫓아 오는 유엔군과 교전하지 않고 무조건
퇴각 했다. 그동안에 중공군은 남하하고 있었다. 아마 주을레는 맥이터
의 유엔군을 산악지대로 유인하고 있었는 지 모른다.
10월 부터 시작된 미군과 중공군의 전쟁은 맥아터의 직접 지휘하에 진행
되었다. 야전사령관이었던 워커를 8군 사령관으로 내려 앉히고 맥아터
자신이 전쟁 야전 사령관이 되었다. 그는 남북통일을 자신의 공로
로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뽐내고 싶은 그의 욕심은 전쟁을 망쳐 버렸다.
그는 중공군 개입을 부정 했다. 그는 모든 중공군 개입에 대한 정보를 무시
했다. 그는 북진 병력을 둘로 나누었다. 서 쪽은 워커의 8군, 동쪽은 아몬드
의 10군단 이었다. 10군단과 해병1사단은 행정 상륙이라고 웃음 꺼리가
된 원산 상륙 작전(?)으로 북으로 들어와 장진호 전투에서 패배 했다. 8군은
청천강에서 무참히 중공군에게 패퇴 했다. 얼마후에 그는 파면 되었다.
"노병은 죽지 않았지만 사라졌다."
https://youtu.be/LpKv5NhKoSM
Walton Walker - Forgotten Hero of the Korean War
https://youtu.be/X3aCIfVhW7w
Lessens learned; General MacArthur Dismissal
한국 전쟁 당시에 중공과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의 차이는 엄청나게
컸다. 맥아터의 주장대로 대만의 장개석이 남쪽에서 공격하고 북쪽에서
유엔군과 국군이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처들어 갔다면 어떻게 됐을 까?
아마 미국이 이겼을 것이고 한반도는 한국이 통일 했을 것이다. 당시의
소련과 중국도 영국등의 서방국가 만큼이나 또 한번의 세계 대전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미국내의 여론은 미국 정치인들이 전쟁을 계속
할 수가 없을 정도로 한국전 종식을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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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middle of July, 1950)
"Walker had decided that he could hold along the Nakdong River in southeastern
Korea with the divisions and troops now on the way. Already, his boss, McArthur
developed plans for taking the enemy in the rear by amphibious assault-but such a
plan was worthless unless the enemy advance could be short of the Nakdong.
Talking with Bill Dean at the 34th Infantry CP, Walker told Dean he needed two
more days' delay in Taejon, so that the 1st Cavalry and 25th divisions could deploy
to the city's east. Then he flew back to his own HQ at Taegu, above Pusan."
(This Kind of War; The Classic Korean War History, T.H. Feherrenbach, 50th anniversary
ed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