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8 09:26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0664
지난 22일 개봉한지 6일 만에 누적 관객 수 200만명 돌파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서울의봄’은 1979년 12·12 군사반란의 과정을 시간 단위로 그렸다. ‘역사가 스포’라는 말이 있듯 관객 모두가 결말을 알고 보면서도, 신군부 전두광(전두환) 보안사령관 세력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이태신(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의 긴박한 9시간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졸이게 한다.
실패한 영웅의 삶은 비극의 연속이었다. 장태완 사령관은 서빙고분실에서 45일간 고초를 겪고, 강제 예편됐다. 풀려난 후에도 6개월간 가택 연금 생활을 했다. 아버지는 이런 사실을 비관해 곡기를 끊고 술만 마시다 1980년 세상을 떠났다. 가택 연금 생활 중에도 공부를 열심히 해 서울대에 합격했던 장태완 사령관의 아들은 1982년 학교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선 후 할아버지 산소 옆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당시 장태완 사령관은 아들의 묘지에서 “우리 내외의 인생은 사랑하는 성호(아들)가 이 세상을 떠났던 1982년 1월 9일로 끝난 것이다. 이제 남은 인생은 더부살이로서 우리 일가 3대를 망친 12·12사건을 저주하면서 불쌍한 외동딸 현리 하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참고 살아가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대의를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희생하는 사람들을 역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반면에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불의를 서슴치 않는 사람들 또한 많이 있다. 사람이 세상
에 태어나서 살 수 있는 기회는 딱 한번 밖에 없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둘 중에 하나
를 선택해야만 하는 기로에 서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까?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아마 인간이 풀 수 없는 영원한 수수께끼인지도 모른다.
2023.11.28 09:32
2023.11.30 18:14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1549
이른 감이 있지만 1000만 관객의 향기가 피어오른다. 30일 개봉 9일째를 맞은 영화 ‘서울의 봄’ 말이다. 지난여름부터 ‘올해 충무로 기대작’이라는 말들이 오갔다더니, 허튼소리가 아니었음이 수치로 입증되고 있다.
극장가에는 흥행과 관련해 요일별, 월별 평균적인 기대치가 있다고 한다. 일요일과 ‘문화가 있는 날’(매월 마지막 수요일, 7000원에 영화를 볼 수 있다) 전날 화요일에는 관객이 적게 든다. 개봉 2주 차 월요일 관객 수가 대개 개봉일보다 적다. 월별로는 3~4월, 10~11월이 비수기다.
극장 비수기에 “1000만 가능성”
MZ세대는 장르 영화로 접근
반란군 주인공은 실제보다 미화
2023.11.30 23:23
이승만의 출현과 퇴장, 장면의 퇴장과 박정희의 등장, 박정희의 사망,
전두환의 등장과 퇴장; 이 모든 한국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은
보이지 않는 손, 미국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의심은 해도 잘 모른다.
12.12 사태의 성공과 전두환의 집권은 남한에 잠정적인 안정을 위해서
강력한 군사 독재정권을 원하는 미국무성의 정책 덕분이었다. 박정희
암살이 일어날 무렵 이란에서 미 영사관 인질 사태가 터지고 친미 팔레
비 정권이 크호메니에 의해서 무너지는 이변이 발생했다. 석유공급지
인 중동에 반미 국가의 출현은 미국에 큰 타격이었다.
박정희 암살 이후 남한의 혼란은 미국 안보팀에게 이란과 같은 경우가
남한에 발생 하지않을 까 하는 고민거리를 제공했다. 최악의 경우에
공산화 될수도 있는 문제였다.
미국 안보팀은 전두환을 "강력한 지도자 자질을 가진 군인"으로 판단
하고 그가 하는 일을 말리지 않고 예의 주시했다. 전두환을 적극 추천한
인물은 주한 미대사관 정보 담당관(CIA 한국지부장)이었던 Brewster 였다.
전두환은 12.12사태, 5.18등에서 정국을 안정시키는 강력한 지도력을 미국
에게 보였다.
카터를 이기고 미 대통령에 당선된 레간은 전두환을 당선 최초의 외국
정상 손님으로 초청하는 대신 사형언도를 받은 김대중을 석방하여
미국으로 보내게 했다. 우선 독재를 허용하여 정국을 안정시키고
시간을 두고 민주화 시킨다는 미국 정책의 포석이었다. 그리고 7년
뒤 6월 민주 항쟁 때는 미국 정부는 전두환에게 등을 돌리고 한국
시민들이 원하는 대통령 직선제 헌법으로 민주화가 이루지게 미 의회
와 언론을 동원하여 적극적으로 도왔다.
https://youtu.be/LwbpL6wSwPw?si=-59UhYh2XUQPnTFY
최악의 독재자 전두환, 영화 "서울의 봄" 보기전 역사 예비 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