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30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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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의 중도 정책과 추진기반
미국은 38 이남에서 소련은 이북에서 자국이 원하는 나라를 건설하려는
공작을 했다. 이 와중에 한국의 양식있는 정치지도자들은 통일된 나라를
만들려고 좌우 합작을 시도했다. 미국은 이 중도파를 이용하여 남한에
친미정권을 수립하게 하려고 했다. 미군정은 중도 좌파인 여운형과 중도
우파인 김규식을 앞세웠다. 중도 좌파인 여운형을 껴안음으로 써 극 좌파
인 박헌영을 고립시켜 제거한 후 극우와 중도 우파 김규식을 합하여 새로
운 나라의 정부가 우파에 의해서 설립되도록 하는 것이 미국의 중도파
지원의 목적이었다.
1945년 8웡15일은 일본이 미국에게 항복한 날이다. 일본제국이 패망한
날이다. 그러나 한국사람들은 해방의 날로 기억한다. 그리고 일본으로 부터
나라를 되 찾은 것으로 믿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향후 3년간 38선 이북는 소련이 이남은 미국이
점령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북은 소련의 식민지, 남은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다행히 2차대전 후에는 식민지라는 말을 세계적으로 잘 쓰지 않았다.
1945년 8월15일 이전의 지배자는 일본이었고 이후의 지배자는 소련과 미국
이었다. 그래서 남한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국가 반역자가 출현한다. 친일파
와 공산주의자이다.
미국은 남한에 자본주의 민주국가를 건설해야 했다. 무엇 보다도 공산주의
팽창을 저지 하기 위해서는 남한을 자유진영 국가로 만들려고 총력을 기울
였다.
미군정은 능력있는 친일파를 기용했다. 특히 경찰과 군대는 일제때 경력을
우선으로 하여 임용되었다. 이들에게 미군정은 구세주였다. 친일파 경력은
민중의 공분을 사던 시절에 대단한 출세였다. 그들의 미군정에 대한 충성은
지극했다. 그들은 미군정이 요구하는 공산당 잡기에 나섰다. 그들은 결백한
정적에게 공산당 누명을 씨워 제거 하는 행위를 서슴치 않았고 미군정은
이를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해서 적과 내통한(친일파) 범죄에서 반공의
투사로 변신하여 벗어났다.
경제정책을 포함한 미군정 3년 동안의 서투른 정책은 민중을 분개하게 하여 연일 시위가
계속 되는 등 사회가 무척 불안했다. 이틈을 이용하여 민중의 인기를 등에 업은공산주의
자들은 파업을 선동하는 등 정권 장악에 혈안이 되었다. 미군정과 미군정하의 한인
경찰은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려 했다. 그러나 경찰력으로 만은 불가능 했다. 그래서
수많은 우익 폭력단체들이 동원 되었다. 백의사, 서북청년당등이 그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