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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s 고흐의 침실

2016.03.24 15:27

노영일*68 Views:475



고흐의 침실

지루했던 겨울도 이제 막바지에 달한듯 주말에는 날씨가 확 풀린다고 했다. 골프를 치러 가리라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막상 주말이 되니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닭쫓던 개처럼 하늘만 처다보고 무엇을 할가 생각하던중 지금 시카고 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고흐 특별전시회가 생각났다. 차를 몰고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미술관에 도착해 보니 입장하려는 관람객이 건물에 넘처나 미시간 애버뉴에 까지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긴 줄의 맨 끝에가서 섰다. 순식간에 내 뒤로 꼬리가 늘어났다. 우산을 펼쳐들고 서있자니 미시간 호수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몸조차 가누기 힘들었고 찬 빗방울은 살을 에는듯 했다. 그냥 집에 돌아갈가 하다가 그래도 먼길을 왔는데 그냥 허탕치고 가기가 억울해서 안간힘을 다해서 버텼다. 거의 한시간을 기다려 전시관에 들어갈수 있었다. 전시관은 초만원이었다.



고흐 전시회는 전에도 두어번 했는데 이번에는 "고흐의 침실" 이라는 부제를 붙쳤다.고흐는 2년 동안 (1888-1889) 불란서 남부 프로방스 지방에서 살았다. 아르르의 노란집 (Yellow House)을 세내어 고갱과 함께 살다가 정신 착란을 일으켜 쌍 레미 정신병원에 입원 했는데 이 시기에 대부분의 걸작을 그렸다. 그시기에 그린 자기 침실 그림등을 뫃아 전시회를 하는 것이다.


고흐 (Vincent van Gogh)는 1853년 네델란드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터 엄격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 신앙심이 깊었다. 그는 연필로 기도하는 농부를 그린 밀레의 작품을 모사하기도 했다. 주로 연필이나 챠콜로 그림을 그렸는데 아무도 그가 잘 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소년시절 미술상의 견습사원으로 일했는데 런던, 파리 지점으로 파송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화란어, 영어, 불어를 다 잘했다.

25세때 벨기에의 복음주의 신학교에 들어가 선교사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성적도 좋지 않고 언변도 신통치 않아 선교지 배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가 자기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간청하여 보내진 곳이 아무도 가기 싫어하는 유배지같은 오지의 탄광촌 이었다. 그곳에서 너무나도 비참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고 자기 옷도 벗어주고, 선교사 사택도 병든 모녀에게 내어주고, 자기는 헛간에서 지푸라기를 쌓아놓고 살았다. 교단에서 시찰을 나와 보니 거지꼴을 하고 있는 고흐를 보고 교단의 수치라며 파면시켜 버린다. 이 소식을 듣고 병들고 쇄악해진 고흐를 네살 아래인 동생 테오 (Theodore van Gogh)가 다시 고향으로 데리고 온다.

그때 7살위이며 여덟살난 아들까지 있는 이혼녀인 이종사촌 누나에게 반하여 사랑을 고백하였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한다. 그녀의 집을 찾아가 그녀를 만나게 해달라고 졸르다가 그녀의 아버지가 거절하자 촛불에 자기 왼손을 대고 만나게 해줄때까지 그대로 있겠다고 하여 심한 화상을 입었다.

실연으로 상심하여 있던중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불쌍한 여자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는 그녀와 동거를 했는데 그녀는 알콜 중독자 창녀였다. 그녀는 고흐보다 8살이나 연상이었으며 이미 두아이를 낳았다가 죽었고 5살난 딸이 있었다. 고흐와 동거하는 동안 아들을 낳아 고흐의 이름을 따서 Willem 이라 불렀고 너의 아버지는 화가였다고 말해 주었으나 동거 시기로 보아 고흐의 아들일수는 없었다는것이 후세의 판단이다. 그녀도 생활능력이 없는 고흐를 떠나고 만다.

동생 테오는 파리의 화상 (畵商)이었는데 줄곳 고흐의 생활비를 대어 주었다. 돈을 받으면 그는 캔버스와 물감을 사고 먹는것은 조잡하게 먹어 건강이 나빠졌다. 1886년 테오는 파리의 그의 아파트로 고흐를 불러 함께산다.

이때 테오의 소개로 인상파 화가들과 사귀게 된다. 피싸로(Pissaro)는 모든 물건은 고유의 색깔이 있으나 시시각각 반사에 따라 다른 색깔로 보일수 있으며 그 첫 인상이 중요 하다고 말해 준다. 몬티첼리 (Monticelli)의 화려한 색채에 감동을 받아 그의 팔레트가 밝아졌고, 로트렉 (Toulouse-Lautrec), 스라 (Seurat), 시냑 (Signac), 세잔느 (Cezanne), 르노와르 (Renoir) 등과 교제를 하였다. 특히 파리에 처음온 고갱 (Paul Gauguin) 과 친해 졌다. 그당시 인상파 화가들은 그림이 팔리지 않아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로트렉이 그려준 고흐의 초상화.




독주 (Absinthe) 와 과도한 흡연, 그리고 과로로 건강이 나빠졌다. 그는 따뜻한 고장인 프랑스 남쪽 프로방스지방으로 요양을 떠난다. 그래서 아르르 (Arles)의 그 유명한 노란집에서 살게 된다. 그는 따뜻한 기후, 밝고 강렬한 태양에 매혹되었다. 그는 고갱을 설득하여 그도 거기에 내려와 함께 살게 된다.







고흐는 자기 침실을 세번 그렸다. 이번 전시회 에서는 이 세 작품을 나란히 전시 하였다.



1888년 10월 16-17일. 암스텔담 반 고흐 박물관 소장. 이 그림은 홍수가 났을때 화실이 침수되어 물에 약간 손상 되었다.



1889년 9월 5일. 시카고 미술관 소장.



1889년 9월 28일. 파리 d’Orsay 미술관 소장.



실물 크기로 만들어 놓은 침실모형. 침대가 작아 내가 누으면 발도 못 뻗게 생겼다. 유럽 여행을 하다보면 옛날 침대들이 작은것을 볼수 있는데 아마 그때 사람들은 체구가 작았던것 같다.



동생 Theo에게 보낸 편지.

..

고흐의 의자와 고갱의 의자. 고흐는 고갱이 아르르로 내려와 자기와 함께 살며 그림 그리는것을 매우 기쁘고 고맙게 생각했다. 가구도 좋은것은 고갱에게 주었다.



그는 해바라기 그림을 그려 고갱의 방을 장식해 주었다.



그들은 다정하게 같은 소재로 그림도 그렸다. 윗그림은 고흐. 아랫그림은 고갱.




아르르 시절 그린 그림. 그는 낭만적인 밤생활도 즐겼다.



시간이 흘러 가면서 고흐와 고갱은 자주 다투게 된다. 주로 그림에 대한 의견이 달라 다투었다. 고갱은 독선적이고 안하무인격인 성격이었다. 고갱은 아르르를 떠나겠다고 했다.
1888년 12월 23일. 정확하게 무슨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고흐는 면도칼을 들고 고갱을 죽이겠다고 찾아 다녔다. 고갱을 찾지 못하자 자기 방에 들어가 자기 왼쪽 귀를 잘랐다. 그것을 종이에 싸서 Rachel 이라는 창녀가 사는 호텔 문지기에게 갖다 주고 Rachel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고흐나 고갱이나 Rachel 의 단골 손님이었다. 그것이 고갱에게 주는 그의 기념품이라고 했다. 고흐는 과도한 출혈로 거의 죽을번 했다.
이 사건으로 고흐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고갱은 그후 고흐를 보지 않았다.



쌍 레미 (Saint-Remy) 정신 병원에 있을때 그린 그림. 그 당시의 병명은 "generalized delirium“ 이었다. 후세의 의사들이 쓴 의학 논문이 150개가 넘는데 정신분열증, 조울증, 측두엽 간질, 폴피리아등의 진단이 가장 많았다.



퇴원후 노란집 주인이 미치광이 (le fou roux = the redheaded madman)를 더 이상 받지 못하겠다고 쫓아내 좀더 익숙한 기후인 북부 프랑스 Auvers-sur-Olse로 이사간다.



그곳에서 Dr.Gachet 의 치료를 받는다. 이 그림은 8천 2백 50만 달러에 팔렸다.



어느날 더 이상 그림의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권총으로 자살을 기도 한다. 총알은 갈비대를 맞고 튀어나가 척추에 박혀 금방은 멀쩡했는데 이차 감염으로 죽는다. 그의 나이 37세 였다.



Theo는 고흐(Vincent)의 보호자요, 매니저요, 후견인이었다. 고흐는 생전에 그림을 하나 밖에 팔지 못했다. 그나마 단골 손님이 테오의 얼굴을 봐주어 사준 것이다. 그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천재를 알아보고 그의 창작활동을 도와 줬다. 생활비를 대 주고, 그림도구를 사주고, 그의 건강마져 챙겨준 그야말로 안목을 가진 위대한 화상(畵商)이었고 그가 아니었으면 오늘날 우리는 그 위대한 작품들을 볼수 없었을 것이다. 고흐가 죽고나서 6개월후에 Theo 도 죽어 함께 묻혔다.

 



2016년 3월  시카고에서  노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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