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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63.

두 번의 결혼

[중앙일보]입력 2006.11.29


큰아들 마이클(34 右)과 둘째 선두(23)가 지난해 서울에서 만나 셀프카메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서른 살 되던 1970년에 결혼을 했다. 아내는 미국 백인 여성으로 세인트루이스 도서관에 근무하고 있었고 장인은 곤충학 박사로 미국정부의 고위 관리였다. 결혼식은 신부 집에서 처가 친지들만 참석한 가운데 간소하게 치렀다. 서울의 부모님께는 나중에 말씀드렸는데 "죽어도 거기서 죽고 돌아오지 말라"던 아버지의 말씀이 유효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결혼할 때는 희망에 부풀었다. 아버지처럼 자식도 많이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었다. 아내는 조용한 가운데 완벽하게 자기 일을 하는 사람으로 직장에서 신임도 있었고 살림까지 야무지게 했다. 곧 아이가 태어났고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입사해 정신없이 일에 빠져들 때라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다.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이럴 바에는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요." 나만 바라보고 사는 것이 미안해 그렇게 하라고 했다. 아내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미주리로 가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우리 부부는 워싱턴과 미주리에서 각자 일에 몰두했다.

몇 년이 흐르고 박사 학위까지 마친 아내가 워싱턴으로 돌아와 말했다. "우린 가는 길이 다른 것 같아요. 이만 헤어지는 것이 어떨까요?"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내 생각만 하고 그녀를 붙잡을 수는 없었다. 나 또한 그녀에게 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녀의 요구대로 집 한 채를 사 주고 결혼생활을 끝냈다. 실질적인 동거는 5년이 채 안됐다. 이 결혼은 상대가 미국 여성이었기 때문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회장 딸과 결혼해 출세했다"는 터무니없는 소문이 한국에 나기도 했다.

1981년 한국인 여자와 재혼했다. 이 사람은 아버지가 아주 좋아했다. 싹싹하고 귀엽고 어른을 잘 모셨기 때문이다. 예쁜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지냈다. 하지만 85년 귀국 후 문제가 생겼다. 난 25년 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기반을 잡느라 정신이 없었고, 미국에서 성장한 아내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녀가 부탁했다. "당신이 안정될 때까지 나는 미국에 있다 오면 어떻겠어요?" 내 곁에 있어 준다면 좋겠지만 그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미국으로 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마음 아픈 일이지만 좋아서 결혼했더라도 살다 보면 다른 길을 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 결혼관은 다른 사람이 나로 인해 희생 되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두 번 결혼했지만 여자와 같이 산 건 10년이 채 안된다. 돌이켜 보면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나와는 인연이 짧았던 것 같다. 지금도 헤어진 아내들과 소식을 주고받고 어쩌다 만나면 식사도 한다. 미국에 사는 첫 아이는 가끔 서울로 날 찾아오고, 프로골퍼인 둘째는 미국 유학 중이다.

요즘 나는 혼자 지낸다. 외롭고 힘들지만 이제 많이 익숙해졌다. 그리고 이런 삶도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생 여정에는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기게 마련 아닐까? 하지만 정말 외로울 때가 있다. 명절이 그렇다. 서울이 텅 비는 추석 때 사무실에 혼자 있으면 대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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