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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김희중 Essay] 거울 속의 나

2015.04.04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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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65.

거울 속의 나

[중앙일보]입력 2006.12.03

머리카락에 서리 내린 66세지만, 건강.경제력.일 모두 가져 행복


[김희중갤러리] 늙으면 약해지고 작아진다. 인생의 황혼기에 의지할 곳조차 없다면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 것이다. 1998년 경기도 하남시 영락경로원에서 103세 할머니가 생활지도사의 품을 파고들고 있다.
욕실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날 닮기도 했지만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인다. 볼은 처졌고 주름은 깊다. 이마는 넓어졌고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칼에는 하얀 서리가 내렸다. 팔과 다리의 근육은 풀어져 탄력이라고는 없고 아랫배도 불룩하다.

저 사람이 누구지? 그는 바로 나다. 탄탄했던 몸매의 내가 후줄근한 모습으로 거울 속에서 나를 보고 있다. 도대체 뭘 하느라 저렇게 늙은 것도 몰랐을까?

'거울 속의 나'를 발견한 순간 늙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1940년생이니까 66세이고 조금만 있으면 고희(古稀)가 되는데도 아직은 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과 다른 사람이 보는 나는 많이 달랐던 것이다.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고 한동안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누구나 늙으면 세 가지의 두려움이 생긴다. '건강'과 '경제력'과 '일'이다. 건강을 잃으면 다른 것은 아무 의미가 없으니 가장 중요하다. 경제력도 과거와 달리 필수적인 것이 됐다. 자식들의 부양을 바라기 힘들게 됐고 사회보장도 아직 부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다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할 일이 없다면 곤란하다. 긴긴 노년기를 등산만 하면서, 골프만 치면서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다행스럽게도 아직 건강하고 내 생활을 꾸려나갈 능력이 있으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축복이라고 생각하며 늘 감사하고 있다. 간절히 바라는 바는 마지막 순간까지 강의실에서 정열을 불태우는 것이다.

요즘 나의 생활태도는 과거와는 다소 다르다. 이제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걸 잘 안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도 않고, 하나를 받으면 둘을 준다는 자세로 사람을 대한다. 젊은이들의 주도권을 인정하고 그들을 성심성의껏 도와주려고 한다. 순리대로, 물 흐르듯이 내 역할을 후학들에게 물려준다. 그래야 그들과 어울려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 동년배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전문적인 지식과 경륜을 갖춘 그들이 너무 일찍 은퇴해 허송세월을 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 이른 데는 젊은 시절 앞만 보고 달리며 노년기를 준비하지 않은 본인들 탓이 크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일을 찾아보길 권하고 싶다. 눈높이를 낮추고 세상을 살펴보면 전문 분야는 아니더라도 새로운 일이 많다. 노년기를 건강하게 보내려면 심심하면 안 된다.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해야 한다.

노인이 일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 기회에 간단한 정책을 제안하고 싶다. 그들에게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자는 것이다. 공공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에는 나이 드신 분들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오히려 젊은이보다 책임감이나 업무 능력이 나을 것이다. 나의 외국 친구들은 은퇴해서 하루 서너 시간씩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이 느끼는 자부심과 보람은 대단하다. 부담스럽다고 노인들을 피해서는 안 된다.

제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세월이 가면 늙는다. 언젠가는 모두 '거울 속의 나'를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준비만 잘 하면 인생의 황혼도 즐겁고 여유롭게 보낼 수 있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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