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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35.

죽(竹)의 장막

[중앙일보] 입력 2006.10.22

북한당국에 부탁해 비자 받아 - 한나라 묘 취재하러 중국으로


1973년 가을의 천안문 광장. 중국은 북한과 마찬가지로 접근하기 어려운 나라였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세계 각국에서 출판되는 잡지와 화보를 구독했다. 어느 나라에 어떤 취재거리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북한으로 출장을 떠날 무렵 회사는 한(漢)나라 시대 묘(墓)에 관심이 있었다. 중국 정부 홍보지 '인민화보'에 2000년 전 한나라 여인의 시신이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다. 의상과 패물 등 부장품도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중국은 '죽의 장막'이 둘러쳐진 나라였다. 북한과 마찬가지로 어떤 서방 기자의 취재도 허락하지 않았다.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이 소련에 이어 중국을 방문해 데탕트(긴장완화)를 실현했지만, 민간 차원의 교류는 아직 없었다.

북한을 떠나며 중국에 가기로 했다. 한나라 묘를 취재할 수만 있다면 또 하나의 히트작이 될 것이었다. 박오태에게 비자를 받아 달라고 했다. 중국은 미국과 국교를 맺지 않았지만 북한의 부탁은 쉽게 들어줬다.

중국은 큰 나라였다. 모든 점에서 스케일이 대단했다. 자금성의 규모는 충격적이었다. 가는 곳마다 사람이 넘쳐났다. 어쩌다 행인이 오가는 평양에 비하면 베이징은 말 그대로 인해(人海)였다. 당연히 먹을 것도 많아야 했다. 마을 입구마다 배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렇게 거대한 중국이 바깥 세계엔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 한적한 길에서 카메라를 메고 두리번거리면 곧 공안(경찰)이 따라붙었다. 골목마다 '외국인 출입금지' 팻말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변화의 조짐을 느꼈다. 호텔 종업원은 틈나는 대로 영어회화 교재를 보며 중얼거렸다. 북한에선 영어를 공부하는 젊은이를 본 적이 없었다.

'인민화보'의 편집장을 만나야 했다. 호텔 프런트에 전화 연결을 부탁했다. 여직원은 "전화번호를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더니 "번호를 모르면 전화할 일이 없는 사람"이라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직접 '인민화보'를 찾아갔다. 이번에는 경찰이 못 들어가게 막았다. 마지막 수단으로 편지를 써서 수위실에 전달했다. 한국어도 가물가물한 마당에 한자를 기억해 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내가 쓴 메모는 이랬다. '我 美國 National Geographic 記者, 人民畵報 編輯長 面談 要請(나는 미국 내셔널 지오그래픽 기자입니다. 인민화보 편집장 면담을 요청합니다)'.

표의문자(表意文字)의 장점은 문법이 틀려도 뜻이 대강 통한다는 점이다. 이틀 뒤 연락이 와 편집 책임자를 만날 수 있었다. 인민복 차림에 인상이 좋은 그는 베이징 한복판에 나타난 '미국 기자'를 신기해 했다. 북한에서 한 달간 취재하고 왔다고 하니 더욱 놀랐다. "그 어려운 곳을 다녀왔느냐"고 했다. 하지만 한나라 묘 취재는 도와주기 힘들다고 했다. 사진 자료를 줄 수는 있지만 직접 촬영하는 건 힘들다는 것이다. 사정을 들으니 그의 권한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더 이상 조르지 않았다. '인민화보' 책임자를 사귄 것만으로도 중국 방문의 성과는 충분했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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