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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38.

14년 만의 귀향

[중앙일보]입력 2006.10.25 22:30

부친이 받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엔 내가 쓴 북한 기사 부분은 찢겨나가

1974년 한국 특집을 준비하던 필자가 미국 포드 대통령 방한을 취재하고 있다.
북한 취재를 마치고 바로 한국 취재계획을 세웠다. 남북한을 연이어 소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진과 글을 혼자 맡겠다는 계획서를 작성해 회사에 제출했다.

하지만 회사는 말렸다. "북한을 다녀온 사람이 한국에 가서 무슨 일을 당할지 아느냐"는 걱정이 이유였다.

미국이 본 1970년대 한국은 북한 못지않은 독재국가였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나라였다. TV의 한국뉴스는 데모장면만 보여줬다. 동료들이 "왜 저런 일이 벌어지느냐"고 물을 땐 창피했다.

하지만 한국은 나의 조국 아닌가. 부모.형제가 살고 있고, 태어나서 자란 곳이다. 직접 취재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회사는 허락했지만 혼자서는 안 된다고 했다. 글 쓰는 기자와 같이 가라고 했다. 그에게는 나의 '신변보호' 임무도 맡겨졌다.
 
74년 가을, 14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조국의 발전 속도에 놀랐다. 거리는 활기가 넘치고, 곳곳에 고층건물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외형적 발전보다 훨씬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 절망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50년대의 표정이 진취적이고 희망적인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온 나라에 에너지가 충만한 듯했다.

하지만 한국은 힘든 고비를 넘고 있었다. 10월 유신 반대 데모가 연일 이어졌다. 남북 경색은 숨막힐 정도였다. 아버지에게 배달된 '내셔널 지오그래픽'엔 나의 북한 기사가 찢겨나가 있었다. 사람들은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일했지만 풍요를 피부로 느끼기에는 일렀다. '공돌이''공순이'들이 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눈물겨운 나날이었다.

하늘도 무심했는지 몇 년째 흉작이 계속됐다. 급기야 식량이 모자라는 사태가 발생하자 혼.분식 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됐다. 장학관이 점심시간마다 학교를 돌며 학생들의 도시락을 검사했다. 30% 이상 혼식이 아닌 학생은 반성문을 써야 했다.

외국기자가 취재차 입국하면 문화공보부는 직원을 동행시켰다. 하지만 나를 맡은 사람은 중앙정보부 요원이었다. 북한을 다녀왔다는 특수성 때문인 것 같았다. 꺼림칙했지만 편리한 점도 있었다. 당시는 정보부 세상이라 안 되는 일이 없었다. 혼자 다녔다면 접근이 불가능했을 정부기관이나 산업시설도 제한 없이 취재할 수 있었다.

70년대 중반의 남북한을 나만큼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외국에서 살다가 거의 같은 시기에 양쪽을 자세히 들여다봤기 때문이다. 남한 사람들은 북한이 자기들과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었다. 심지어 아이들은 북한 사람들 머리에는 뿔이 있고, 하늘은 빨갛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남북은 쌍둥이였다. 북측 안내인은 신발 벗고 노는 아이 사진을 못 찍게 했고, 남측 요원은 때 묻은 옷을 입은 근로자를 찍지 못하게 했다. 체제는 달랐지만 생각도, 가치관도, 서로에 대한 인식도 비슷했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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