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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42.

취재원 보호

[중앙일보]입력 2006.10.31

회사 신참이 사진 진위 문의하자 애리조나 경찰 "범인 밝히라" 종용

서부영화에 자주 나왔던 애리조나주 모뉴먼트 밸리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부부. 미국인의 국기 사랑은 각별해 전국 어디서나 성조기가 펄럭인다.
'절도 현장 촬영'이라는 희귀한 취재를 하며 신경 썼던 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취재원 보호였다. 비록 절도범이지만 취재를 도와줬으니 끝까지 그들을 보호해야 했다. 사진을 찍기 전에 나를 믿어도 좋다고 말했고, 촬영 때는 경찰이 얼굴을 알아보기 어렵도록 배려했다.

또 하나는 연출 의혹을 예방하는 것이었다. 로이와 타이너에게 "나는 제3자로 따라갈 뿐이다. 당신들 의지대로 훔치는 것이지, 내가 시킨 게 아니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살롱에서 같이 술을 마실 때도 내가 술값을 내지 않았다. 돈을 주고 시켰다고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렸던 것은 범행을 방조했다는 것인데, 그것이 문제가 된다면 감옥까지 갈 각오를 했다.

회사로 돌아가자 칭찬이 자자했다. "무슨 수로 이런 사진을 찍었느냐?" "절도 현장 사진은 난생 처음 본다"고들 했다.

하지만 곧 문제가 발생했다. 조사부 신참직원이 사진을 애리조나 경찰에 보내 "사막에서 선인장 절도를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느냐?"고 문의한 것이다. 애리조나 경찰청이 발칵 뒤집혔다. 그렇게 애써도 확인할 수 없었던 범행 순간이 사진으로 찍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범인들의 얼굴을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경찰은 회사로 공문을 보내 나의 증언을 요청했다. 범인이 누군지 이야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난 당연히 취재원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회사는 난처해했다. 경찰의 협조 요청이 계속되자 회사는 태도를 바꿔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현장에 있을 수 있었느냐?"고 캐물었다. 연출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출장비 사용 영수증도 꼼꼼히 감사했다. 도둑들에게 돈을 주거나 선물을 사 준 흔적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받아놓긴 했지만 쓸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로이와 타이너의 각서를 내놓았다. 자기 의지로 도둑질을 했다는 문서였다. 회사는 그것을 애리조나 경찰에 보내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두 사람은 즉시 경찰에 체포될 것이었다. 난 그것도 못한다고 했다.

사진을 찍어왔을 때 칭찬 일색이던 회사 분위기가 돌변했다. 당분간 집에서 쉬라고 했다. 입사 이래 처음으로 회사에 실망했다. 목숨 바쳐 일했는데 사정이 어렵다고 등을 돌리다니. 더군다나 날 의심하다니…. 동료들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네 일은 네가 처리하라'고 했다. 잘나가는 동료에 대한 질시도 느껴졌다. 허망하고 고독했다. 꿈을 깬 듯 삭막한 현실이 보였다.

그런 가운데 로이와 타이너한테서 협박 전화가 왔다. "경찰관들이 설치고 다니는데 어떻게 된 거냐? 이따위로 하면 성치 못할 줄 알아!" 보호하려 애쓴 그들이 나를 배신자로 취급했다.

결국 사진은 게재하지 않기로 했다. 문제가 커지는 걸 회사가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필름도 모두 압수해 폐기했다.

사건이 진정되는 데는 거의 1년이 걸렸다. 어느 날 사장이 불러서 갔더니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애리조나 건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걱정하지 말게. 로이가 죽었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건강하던 로이가 왜 갑자기 죽었단 말인가? 사장은 또 그 일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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