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영화에 자주 나왔던 애리조나주 모뉴먼트 밸리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부부. 미국인의 국기 사랑은 각별해 전국 어디서나 성조기가 펄럭인다. |
하나는 취재원 보호였다. 비록 절도범이지만 취재를 도와줬으니 끝까지 그들을 보호해야 했다. 사진을 찍기 전에 나를 믿어도 좋다고 말했고, 촬영 때는 경찰이 얼굴을 알아보기 어렵도록 배려했다.
또 하나는 연출 의혹을 예방하는 것이었다. 로이와 타이너에게 "나는 제3자로 따라갈 뿐이다. 당신들 의지대로 훔치는 것이지, 내가 시킨 게 아니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살롱에서 같이 술을 마실 때도 내가 술값을 내지 않았다. 돈을 주고 시켰다고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렸던 것은 범행을 방조했다는 것인데, 그것이 문제가 된다면 감옥까지 갈 각오를 했다.
회사로 돌아가자 칭찬이 자자했다. "무슨 수로 이런 사진을 찍었느냐?" "절도 현장 사진은 난생 처음 본다"고들 했다.
하지만 곧 문제가 발생했다. 조사부 신참직원이 사진을 애리조나 경찰에 보내 "사막에서 선인장 절도를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느냐?"고 문의한 것이다. 애리조나 경찰청이 발칵 뒤집혔다. 그렇게 애써도 확인할 수 없었던 범행 순간이 사진으로 찍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범인들의 얼굴을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경찰은 회사로 공문을 보내 나의 증언을 요청했다. 범인이 누군지 이야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난 당연히 취재원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회사는 난처해했다. 경찰의 협조 요청이 계속되자 회사는 태도를 바꿔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현장에 있을 수 있었느냐?"고 캐물었다. 연출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출장비 사용 영수증도 꼼꼼히 감사했다. 도둑들에게 돈을 주거나 선물을 사 준 흔적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받아놓긴 했지만 쓸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로이와 타이너의 각서를 내놓았다. 자기 의지로 도둑질을 했다는 문서였다. 회사는 그것을 애리조나 경찰에 보내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두 사람은 즉시 경찰에 체포될 것이었다. 난 그것도 못한다고 했다.
사진을 찍어왔을 때 칭찬 일색이던 회사 분위기가 돌변했다. 당분간 집에서 쉬라고 했다. 입사 이래 처음으로 회사에 실망했다. 목숨 바쳐 일했는데 사정이 어렵다고 등을 돌리다니. 더군다나 날 의심하다니…. 동료들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네 일은 네가 처리하라'고 했다. 잘나가는 동료에 대한 질시도 느껴졌다. 허망하고 고독했다. 꿈을 깬 듯 삭막한 현실이 보였다.
그런 가운데 로이와 타이너한테서 협박 전화가 왔다. "경찰관들이 설치고 다니는데 어떻게 된 거냐? 이따위로 하면 성치 못할 줄 알아!" 보호하려 애쓴 그들이 나를 배신자로 취급했다.
결국 사진은 게재하지 않기로 했다. 문제가 커지는 걸 회사가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필름도 모두 압수해 폐기했다.
사건이 진정되는 데는 거의 1년이 걸렸다. 어느 날 사장이 불러서 갔더니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애리조나 건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걱정하지 말게. 로이가 죽었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건강하던 로이가 왜 갑자기 죽었단 말인가? 사장은 또 그 일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That's The Life and The World Out There!
They Swallow When It's Sweet,
But They Spit Out When It's B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