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English
                 

Life [김희중 Essay] 선인장 도둑

2015.02.26 13:57

운영자 Views:1222

[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41.

선인장 도둑

[중앙일보]입력 2006.10.30

애리조나 선인장 도난 현장 취재, 도둑의 애인 호감 사 촬영 성공

회사는 선인장 도둑 사진을 폐기했지만, 나는 몇 커트 남겨두었다. 도둑들 얼굴을 알아보기 어렵게 촬영했다.
1976년, 애리조나주 특집을 맡았는데 사장이 특별 주문을 했다. 애리조나에서는 선인장 도난이 큰 문제인데 누가 어떻게 그 큰 선인장을 캐가고 유통시키는지 알 수 없으니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주자고 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던 '해결사' 시절이었으니 해 보겠다고 대답했다.

선벨트(Sun Belt)에 속한 애리조나에는 건축 붐이 일고 있었다. 거대한 선인장인 사와로 캑터스(Saguaro Cactus)는 정원수로 인기가 있어 좋은 것은 2000달러를 호가했다. 그런 것들이 사막에 널려 있으니 절도의 대상이 되는 건 당연했다. 주 경찰은 특수수사대를 만들어 범인 검거에 나섰지만 현장을 덮치는 데는 번번이 실패했다.

사진을 찍자면 정면 돌파 밖에 없었다. 경찰에서 용의자 명단을 구해 가장 '활발히' 활동한다는 인물을 직접 찾아갔다. 피닉스 외곽의 슬럼가, 담배 연기 자욱하고 구석에 낡은 당구장이 있는 침침한 살롱에서 로이라는 인물을 만날 수 있었다. 큰 덩치에 머리는 빡빡 민 데다 팔뚝에는 요란한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표정은 멍했다.

그에게는 사업 파트너가 있었다. 타이너라는 젊은 여자였다. 그녀는 사막의 야생화처럼 강렬한 매력을 풍겼다. 눈치를 보니 여자가 왕초였고, 로이는 행동대원이었다. 둘은 금방 선인장을 팔아 돈이라도 챙겼는지 기분 좋게 취해 있었다.

"듣자하니 당신이 최고의 선인장 도둑이라던데…." "암, 날 따라올 선인장 도둑은 세상에 없지. 하하하…" 로이는 나의 '칭찬'에 큰 소리로 웃었다. 묘한 도둑 커플과 마주 앉아 맥주를 마시며 어떻게 그들이 선인장 훔치는 모습을 찍을 것인지 고민했다.

"난 '내셔널 지오그래픽' 기잔데 애리조나주를 취재하는 중이라오." "사막은 손금 보듯 알고 있으니 내가 안내하지." 로이는 거리낌 없이 말했다.

첫 날은 같이 술 마시며 놀았고, 다음날 차를 타고 사막을 달렸다. 로이는 선인장들을 가리키며 "내 돈 나무들"이라고 했다. 며칠 지나자 타이너가 나에게 호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싫지 않았다. 하지만 이럴 경우 여자의 정열을 받아들여서도, 결정적으로 실망시켜서도 뜻을 이루기 힘들다.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로이는 펄쩍 뛰었지만 나에게 마음이 기운 타이너가 허락했다. 사막에 해가 질 무렵 로이는 작업을 시작했다. 선인장 밑둥치를 묶은 체인을 차에 연결했다. 그리고 차가 조금 움직이자 거대한 선인장이 뿌리째 적재함에 누웠다. 나는 도둑들이 아름다운 선인장을 훔치는 진기한 장면을 빠짐없이 촬영했다.

작업을 마친 그들에게 각서를 내밀었다. "로이와 타이너는 본인들의 의지에 따라 선인장을 채취했고 사진을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사용할 것을 허락한다." 연출 의혹에 대비한 것이었다. 로이는 죽어도 못 한다고 버텼지만, 타이너의 고함 한 번에 순순히 사인했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No. Subject Date Author Last Update Views
Notice How to write your comments onto a webpage [2] 2016.07.06 운영자 2016.11.20 18193
Notice How to Upload Pictures in webpages 2016.07.06 운영자 2018.10.19 32347
Notice How to use Rich Text Editor [3] 2016.06.28 운영자 2018.10.19 5923
Notice How to Write a Webpage 2016.06.28 운영자 2020.12.23 43839
320 [김희중 Essay] 이명동 사진상 2015.03.26 운영자 2015.03.26 1195
319 저녁 먹기 [2] 2015.03.24 이건일*68 2015.03.24 1075
318 Bernie's wedding and Poppy field [2] 2015.03.23 이건일*68 2015.03.23 971
317 The First Day of Spring in My Place [9] 2015.03.21 정관호*63 2015.03.21 1379
316 괴팍한 할머니 [2] 2015.03.21 김성철*67 2015.03.21 937
315 [김희중 Essay] 국민훈장 [1] 2015.03.20 운영자 2015.03.20 929
314 [김희중 Essay] 광고 모델 2015.03.20 운영자 2015.03.20 986
313 나의 오디오 이야기 2015.03.13 이건일*68 2015.03.13 1075
312 [김희중 Essay] National Geographic 편집팀장 [2] 2015.03.08 운영자 2015.03.08 1371
311 [김희중 Essay] 박대통령, 새마을 운동 [1] 2015.03.08 운영자 2015.03.08 1093
310 봄, 새생명 태동의 소리 [2] 2015.03.02 鄭 亮#65 2015.03.02 1240
309 [김희중 Essay] 취재원 보호 [2] 2015.02.26 운영자 2015.02.26 894
» [김희중 Essay] 선인장 도둑 [1] 2015.02.26 운영자 2015.02.26 1222
307 [김희중 Essay] '해결사' [1] 2015.02.16 운영자 2015.02.16 1045
306 [김희중 Essay] 박정희 대통령 [3] 2015.02.16 운영자 2015.02.16 1097
305 [김희중 Essay] 14년 만의 귀향 [1] 2015.02.16 운영자 2015.02.16 933
304 Show and Tell [4] 2015.02.15 조승자-65 Mrs. 2015.02.15 856
303 [김희중 Essay] 해외기자단 취재상 2015.02.08 운영자 2015.02.08 822
302 [김희중 Essay] 객관성 시비 2015.02.08 운영자 2015.02.08 846
301 [김희중 Essay] 죽(竹)의 장막 [2] 2015.02.08 운영자 2015.02.08 8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