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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44.

편집팀장

[중앙일보]입력 2006.11.02

부사장이 서울까지 찾아와 복직 요청 - 임원으로 승진해 '별들의 모임' 합류


‘내셔널 지오그래픽’ 편집팀장 시절의 필자가 저녁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예복차림으로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윌버 개러트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인재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사람이었다. 사진과 글뿐만 아니라 편집에서도 발군의 솜씨를 보였다. 취미생활도 다양했다. 자동차 경주를 즐겨 차를 몰고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기도 하고, 수천 평이나 되는 자기 집 마당에 포도 농사를 지어 와인을 직접 담그기도 했다. 그는 미주리대 이덤 교수의 제자로 나와는 동문이었는데 회사 동료들은 우리를 '미주리 마피아'라 불렀다.

새마을 운동 화보 제작으로 분주하던 1980년 봄, 그가 서울로 나를 찾아왔다. 그는 부사장이었는데 사장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에드, 다른 생각하지 말고 회사로 돌아갑시다. 편집을 맡아주시오." 그의 지원을 받으며 일하는 것은 나에게도 기회였다. 주요 보직에 대한 인사 문제 등 회사 운영에 대해 의견을 나눈 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갔고, 나는 10월 말 회사에 복귀했다. 기획위원 겸 편집팀장(Senior Editor)으로 승진했다. 임원이 된 것이다. 기획회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제작 방향을 정하고 기획안의 승인과 진행을 총괄하는 곳으로 회사에서는 '별들의 모임'으로 불린다. 난 그 중에서도 권한이 가장 광범위한 편집팀장이 되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사진과 편집이 중요한 잡지라 편집팀장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 기획 단계부터 제작의 전 과정을 관장했다. 사진 선택, 기사 분량 조절, 지도 제작, 미술 파트까지 내 손길이 미치지 않는 분야가 없었다. 내가 마무리한 편집안은 회장과 사장이 참석한 자리에서 최종 심의를 받았다. 산고를 겪으며 옥동자를 낳듯이 최선을 다해 내 색깔을 가진 책을 만들었다.

회사를 위해 공헌한 것을 생각한다면 사장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국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유색인인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정점은 기획위원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미국에서 꿈을 이룬 셈이었다.

사옥 10층에 일급 웨이터들이 서빙하는 임원용 식당이 있는데 그곳엔 화려하게 꾸며진 별실도 있었다. 회사를 방문하는 유력 인사들에게 워싱턴 최고 수준의 음식을 내놓는 곳이었다. 나는 미국 상류사회 인사들과 교류했다. 사무실에는 땀에 젖은 취재복 대신 예복이 늘 준비돼 있었다. 외국 대사관에서 수시로 파티에 초대했기 때문이었다. 힘있고, 명예롭고, 화려한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허망했다. 그 자리를 꿈꾸고 노력하던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간절히 원하던 것을 얻으면 허탈해지는 것이 인간인지….

편집팀장으로 4년 8개월 동안 일했다. 처음 맡았을 때 900만 부였던 구독부수가 1200만 부까지 늘어났다. 1200만부라는 것이 도대체 얼마만큼일까? 책 한 권의 두께를 1cm라고 할 때 일렬로 책꽂이에 꽂으면 그 길이가 120km에 달하는 양이다. 경부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에서 대전까지 가는 거리다. 미시시피의 전용 인쇄공장을 방문했을 때 화물기차가 공장 안까지 들어가 책을 실어내는 장관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만든 책은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전해졌고 서울의 아버지께도 한 부씩 배달되었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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