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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카메라로 바라본 세상 43.

새마을 운동

[중앙일보]입력 2006.11.01

"화보집 맡아달라" 박대통령이 부탁 - 10·26 겪으며 착수 1년만에 완성


1980년 5월, 경남 진주. 아낙들이 새마을 깃발을 들고 밭으로 들어가고 있다.
1978년, 워싱턴의 내 사무실로 편지 한통이 배달됐다. 대한민국의 구자춘 내무장관이 보낸 것이었다. 새마을 운동 10년을 앞두고 화보집을 낼 계획인데 내가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부탁했다고 했다.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화보를 제작하자면 최소한 1년은 필요한데 회사에는 휴직제도가 없었다. 곰곰이 생각했다. '애리조나 사건'으로 마음의 상처도 있고, 내 기여에 비해 회사에서의 지위도 만족하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늦기 전에 조국으로 돌아가 무엇인가를 기여하고 싶었다. 74년 귀국 때 본 역동적인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표를 냈다. 사장은 깜짝 놀랐다. 대뜸 애리조나 때문에 그러느냐고 했다. 사정을 이야기 하자 사장은 일을 끝내고 돌아오라고 했다. 회사 규정에도 없는 휴직을 허락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1년 간 회사를 쉬게 되었지만 사장은 곤욕을 치러야 했다. 동료들이 "왜 저 친구는 되고 우리는 안 되느냐"고 따졌기 때문이다. 기자들의 공통된 바람은 휴직을 하며 재충전하는 것이다.

79년 8월 서울에 도착해 9월부터 전국을 다니며 취재를 시작했다. 한민족은 단군 이래 5천년의 궁핍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었다. 70년 박 대통령에 의해 시작된 새마을 운동은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진행돼 국토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장마 때면 떠내려가던 다리가 튼튼한 콘크리트 다리로 바뀌고, 오솔길 같던 마을 진입로가 곧고 넓게 뚫렸다. 무엇보다 큰 성과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었다. '하면 된다'는 생각이 모두의 마음에 뿌리 내렸다.
 
하지만 급히 추진하는 일에 부작용이 없을 수 없었다. 천편일률적으로 개조된 농가는 생경하기 그지없었다. 박 대통령은 '정신계발'을 강조했지만 아래 사람들이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대통령이 등산을 하다 휴지를 주우면 다음날 장관부터 초등학생까지 온 국민이 휴지만 주웠다. 심지어 대통령이 순시하는 지방 도로에 뿌리조차 없는 나무를 심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해 10월 26일, 박 대통령이 서거했다. 그 시간에 난 경주에서 공무원들과 화보 기획회의를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사회혼란이 걱정됐다. 서울에 가보니 다행히 질서는 잘 유지되고 경건한 가운데 장례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화보 작업을 하면서 만난 김준 새마을지도자 연수원장은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 정신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열성을 다해 새마을 지도자를 교육했다. 이 분은 다음해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난 다음에도 연수원 사무실의 박 대통령 사진을 떼지 않아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새마을 운동 창시자의 사진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김준 원장은 화보제작의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10.26 후 작업을 계속할 것인지 그에게 물었다.

"당연히 그대로 추진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도 새마을 운동은 계속돼야 합니다."

80년 9월에 화보가 완성되었다. 새마을 운동 10년의 역사와 성과가 고스란히 담겼다. 한글과 영문 판으로 발간되었는데 한글판 제목은 '민주 복지의 길'이었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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