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충청도의 한적한 시골길에서 만난 어릴 적 내 모습. 도시 출신 성인들도 어린 시절에는 개울에서 물장구 치고 피라미를 잡았었다. 소중한 추억이 아닐 수 없다. [김희중 갤러리] |
한국이 나의 능력을 필요로 했던 분야는 국가 해외홍보였다. 86아시안게임이 끝나고 88올림픽이 다가오자 정부는 홍보에 힘을 쏟았다.
'한국화보'를 제작하느라 분주했지만 도와 달라는 곳은 어디든 다녔다. 한국관광공사와 문화공보부.외교부 등을 내 집 드나들 듯했다. 한국 정부는 올림픽이라는 세계적인 행사를 앞두고 있었지만 외신기자 취재 지원에서 캘린더.포스터 제작까지 많은 분야에서 경험이 없었다.
내가 가장 힘주어 강조한 것은 '진솔한 홍보'였다. 공무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겠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우리의 어두운 부분이 가려지는 게 아닙니다. 우리를 외국에 잘 알리는 방법은 '솔직함'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아파트 100만 채를 지었다고 자랑하려면 왜 그렇게 많은 주택이 필요했는지 우리의 실상도 알려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최고'라는 이야기도 하지 맙시다. 다른 나라 국민은 열등하다는 얘기가 되지 않습니까?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해 긍지를 가질 수 있지만 남의 문화를 얕봐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세계속의 한국'을 알리는 방법입니다."
94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국가 홍보를 위한 노력을 정부가 인정해준 것이다. 국민훈장은 '국민 복지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훈장이다. 사진가가 좋은 사진으로 문화훈장을 받는 경우는 있었지만 국민훈장은 내가 처음이었다.
훈장을 받은 것은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부터 틈만 나면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교육하는 것은 너희만 배불리 먹고 편히 살라는 뜻이 아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쓸 만한 재목이 되어야 한다."
인쇄소와 곰탕집을 운영하셨지만 정치에 뜻이 있는 분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항상 나라와 민족을 앞세우셨다. 한국전쟁 이후 나라가 워낙 빈곤했기 때문에 훌륭한 인재가 많이 나와서 나라를 살찌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다.
훈장을 받던 날, 내 가족과 형제들은 전원 남한산성의 부모님 산소를 찾았다. 가장 기뻐할 분은 바로 아버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돌아가신 지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하는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훈장을 산소 앞에 놓고 말씀드렸다. "아버지! 제가 오늘 받은 훈장입니다. 어머니! 저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살았습니다."
많은 상을 받았지만 아버지와 연결지어 생각한다면 국민훈장이 가장 의미 있는 상이었다. 비록 묘소 앞이었지만 나라를 위해 뭔가 했다는 것을 걸 말씀드릴 수 있어 기뻤다. 부모님 산소에 조그만 비석을 세우고 훈장을 동판으로 제작해 붙였다. 훈장은 아버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인쇄소와 곰탕집을 운영하셨지만 정치에 뜻이 있는 분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항상 나라와 민족을 앞세우셨다. 한국전쟁 이후 나라가 워낙 빈곤했기 때문에 훌륭한 인재가 많이 나와서 나라를 살찌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다.
훈장을 받던 날, 내 가족과 형제들은 전원 남한산성의 부모님 산소를 찾았다. 가장 기뻐할 분은 바로 아버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돌아가신 지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하는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훈장을 산소 앞에 놓고 말씀드렸다. "아버지! 제가 오늘 받은 훈장입니다. 어머니! 저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살았습니다."
많은 상을 받았지만 아버지와 연결지어 생각한다면 국민훈장이 가장 의미 있는 상이었다. 비록 묘소 앞이었지만 나라를 위해 뭔가 했다는 것을 걸 말씀드릴 수 있어 기뻤다. 부모님 산소에 조그만 비석을 세우고 훈장을 동판으로 제작해 붙였다. 훈장은 아버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김희중 (상명대 석좌교수)
He is A Good Son - to his late father and to his motherland, ROK.
And
He is A Great Role Model - for our young generation to be remembered
by what he said as ab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