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는 홍난파 작곡이며 김형준 작시로 "예술 가요"로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이다.또 최초의 기악곡이다.우리나라의 음악은 창가로 불리 m으며 쟝르 구분없시 차츰 동요.가곡.민요 대중가요로 발전햇다.
이노래는 1921년 홍난파 선생이 직접 써 발표한 단편 소설 "처녀 혼"의 슛疸
Comment 2
정관호*63
2015.04.27 01:50
잘 읽었습니다.
그 옛날 해방 후 육이오 동란전 나의 소학교 시절에 숙명고녀 다녔던 누나가 가끔 불렀던 가곡이었지요.
쓸쓸하고 처량한 감이 들지요.
친일파 건은 어느 정도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워낙 나라를 일본에게 빼앗긴 것은 당시 국왕과 친일 대신이 나라를 일본에게 팔아 먹어서 생긴 결과가 아닌가요?
백성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생업이나 장래를 위하여 위에서 즉 그 당시 일본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순종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에게는
이해를 하고 싶습니다. 물론 을사오적이나, 윤치오 일가 같은 매국노는 나라의 역적이지요.
아마 홍난파 선생은 이런 정도의 친일파는 아닌 걸로 압니다. 제 생각입니다.
정관호 선배님 덧글 감사합니다.
저는 1943 년 생으로 만주 안도 ( 백두산 옆 ) 에서 태어 나서 지금의 간도 이네요
4 살때 서을로 내려와 수원서 자라 났읍니다.
13 살때 중학교 들어가 서 서울로 올라와 하숙을 햇지요.
지금이니 변화 도 많았다면 많았죠.
2 살때 해방이 되엇으니
나라를 일어버린때의 상황을 상상해 봅니다.
역사가 말하는 말들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겟지요.
고견 다시 고맙읍니다.
그 옛날 해방 후 육이오 동란전 나의 소학교 시절에 숙명고녀 다녔던 누나가 가끔 불렀던 가곡이었지요.
쓸쓸하고 처량한 감이 들지요.
친일파 건은 어느 정도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워낙 나라를 일본에게 빼앗긴 것은 당시 국왕과 친일 대신이 나라를 일본에게 팔아 먹어서 생긴 결과가 아닌가요?
백성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생업이나 장래를 위하여 위에서 즉 그 당시 일본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순종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에게는
이해를 하고 싶습니다. 물론 을사오적이나, 윤치오 일가 같은 매국노는 나라의 역적이지요.
아마 홍난파 선생은 이런 정도의 친일파는 아닌 걸로 압니다. 제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