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nytimes.com/2009/12/06/opinion/06bradley.html
New York Times 2009, Diplomacy that will live in Infamy
When Theodore Roosevelt was president, three decades before World War II, the world was focused on the bloody Russo-Japanese War, a contest for control of North Asia. President Roosevelt was no fan of the Russians: “No human beings, black, yellow or white, could be quite as untruthful, as insincere, as arrogant in short, as untrustworthy in every way as the Russians,” he wrote in August 1905, near the end of the Russo-Japanese War. The Japanese, on the other hand, were “a wonderful and civilized people,” Roosevelt wrote, “entitled to stand on an absolute equality with all the other peoples of the civilized world.”
Roosevelt knew that Japan coveted the Korean Peninsula as a springboard to its Asian expansion. Back in 1900, Roosevelt had written, “I should like to see Japan have Korea.” When, in February 1904, Japan broke off relations with Russia, President Roosevelt said publicly that he would “maintain the strictest neutrality,” but privately he wrote, “The sympathies of the United States are entirely on Japan’s side
영국과 미국은 일본으로 하여금 러시아의 남진을 막게 하고,
그 댓가로 한반도를 일본에게 주는 대신 나머지 아시아를
다 차지 하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조선만 먹고 떨어지지 않았다. 만주, 중국,
동남아와 태평양의 섬들을 차지 하더니, 진주만을 폭격
했다.
러일전쟁이 러시아와 영국의 Great Game의 한장면이었
다면 일본은 영국의 대리인이었다. 루즈벨트의 미국은
영국 편에서 일본을 도왔다.
일본의 부탁으로 러일전쟁 처리를 중재 했던 루즈벨트는
러시아에게 전쟁배상금을 면제해 주었다. 자기편인줄 알았
던 일본은 루즈벨트에게 크게 실망 했다. 일본 정부와
국민은 인종차별이라고 생각 했다. 루즈벨트는 못난
동양놈이 조선과 만주 이권을 차지 했으면 됐지 백인나라
러시아 한테서 배상금 까지 받을 수는 없다고 생각 했
는지도 모른다. 근대사에서 황인종 국가가 백인종 국가를
이긴 최초의 전쟁이 러일전쟁이다.
청일전쟁 직후 러시아가 주도 했던 신국간섭으로 요동
반도를 러시아에게 넘겨준 후, 일본은 와신상담, 러시아
와의 전쟁준비를 치밀하게 해 왔다. 일본시민은 많은 세
금을 냈고, 전쟁에서 이기면 돌려 받을 것이라고 학수
고대 했으나, 루즈벨트 덕에 그렇게 되지 않았다.
2023.01.09 01:14
2023.01.09 08:25
"이 사람이 일본우파의 사주를 받은 간첩 냄새가 난다."는 제가 받은 인상은
완전히 제 추측 입니다. 이것을 증명 하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 할 것입니다.
2023.01.09 09:21
https://mediawatch.kr/mobile/article.html?no=255882
일본역사인식문제연구회논문: 최근한국의 인티반일움직임에
대하여, 2022.02.26
※ 본 논문은 일본 역사인식문제연구회(歴史認識問題研究会, http://harc.tokyo)의 논문집 ‘역사인식문제연구’ 제8호(봄/여름호, 2021년 3월 19일)에 게재된 니시오카 쓰토무(西岡 力) 교수의 ‘최근 한국의 ‘안티 반일’ 움직임에 대해서(最近の韓国のアンチ反日の動きについて)’ 제하 논문을 니시오카 교수의 허락을 얻어 완역게재한 것이다. 첨부한 일부 사진과 캡션은 미디어워치 편집부가 덧붙인 것이다. (번역 : 미나모토 히카루)
‘날조한, 징용공 없는 징용공 문제’의 출판 이후, 한국의 보수 유튜브 채널 몇 군데가 이를 호의적으로 다뤄줬다. 구독자 수가 67만 명에 이르는 ‘펜앤드마이크TV’도 그 가운데 하나다. ‘펜앤드마이크TV’에서는 지난 1월 12일 ‘월간조선’ 특종 기자로 유명한 동시에, 단행본 ‘반일 종족주의’의 공저자 중 한 사람인 언론인 김용삼 씨가 졸저의 번역자인 이우연 씨와 약 한 시간에 걸쳐 이 책을 소개하는 대담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갔다(‘니시오카 쓰토무 「날조한, 징용공 없는 징용공 문제」 옮긴 이 이우연 박사 ┃ 신간뽀개기 / 김용삼 대기자 ┃ 2021년 1월 12일’).
김용삼: 이 책을 쓴 일본인 니시오카 선생의 심정을 어땠을지를, 제가 이 책을 보면서 어느 정도 이해를 했습니다. ‘진짜 한국인들 해도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 정부도 그렇고 대법원도 그렇고 집단적인 무슨 일종의 정신질환에 앓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 히스토리컬 팩트, 즉 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종의 허상에 근거해서 (2018년 10월 전시 노동자) 판결이 나왔는데 이걸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될는지. (중략) 저는 이 니시오카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정말 뭐라고 할까요. 고통스럽더라고요. 우리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나라인가? 한국의 집단 지성은 이 정도로 쓰레기통 밖에 안 되는 상황인가?
2023.01.09 09:43
반일종족주의 저자들
이영훈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성균관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다가 2017년에 정년퇴임을 하였다. 현재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낙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거쳐 일본 도쿄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경제사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낙성대경제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고,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김용삼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조선일보 기자와 시사월간지 <월간조선> 편집장을 역임했다.
주익종
서울대학교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실장을 지냈으며, 현재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과 이승만학당 교사로서 한국 근현대사를 강의하고 있다.
정안기
고려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교토대학 경제학연구과 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하여 경제학 박사 학위(일본경영사 전공)를 취득했다. 고려대학교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우연
성균관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하버드 대학교 방문연구원, 규슈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다.
(출처; 나무위키)
찾아보니 제 추측이 맞았네요.
2023.01.10 08:41
https://youtu.be/8PhpTDUy3ko
Jtbc News: 반일종족주의와 일본우파
https://youtu.be/VivTZwMbQaw
Jtbc News: 사실처럼 퍼지는 황당주장 - 일극우단체와의 관계
일본과의 관계를 과거와 상관없이 우호적인 정책으로
바꾸려는 새정부의 노력과 맞물려 이 사람들이 다시
입을 열고 있지 않나 의심이 간다.
더구나 반일을 생명줄로 생각하는 전정권의 부패와
윤미향등 위안부 문제 운동가들의 위선적인 부패는
이런 사람들의 주장을 정당화 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
다고 생각 한다.
그렇다고 위안부, 징용, 징병이 전쟁 범죄가 아니라고
하는 주장에 동의 해서는 안된다.
조선은 1800년, 정조의 승하 이후, 망국의 길로 들어 섰
다고 생각 한다. 그리고 1882년 임오군란과 1884년 갑신
정변으로 조선정부는 통치능력을 상실 했다고 생각 한다.
위안스카이(원세계)를 앛세운 청국은 1884-1894년 까지
조선을 통치 했다. 말하자면 조선은 중국 식민지였다.
그러나 일본은 지속적으로 조선을 청국으로 부터
분리하려는 노력을 한다. 그 다음 수순은 조선의 일
본 통치 였다.
1882년 임오군란 때도 일본은 청에게 도전 했으나
실패 했다. 2년 후 일본은 조선 개화파를 앞세워
조선-청 구도에서 조선-일본 구도로 만들려고
정변을 일으 켰다(갑신정변). 그러나 또 실패 했다.
명치유신 이후 일본은 조선을 합방하려는 야욕을
가지고 있었다. 당장 무력으로 점령하자는 파(정한론)와 점진적
인 유화 정책으로 시간을 두고 하자는 파가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등 후자가 정권을 잡아, 먼저
조선을 개화시켜 청으로 부터 분리 시켜 서서히
점령하는 방법을 선택 했다.
일본은 이정책의 초기 단계로 조선 개화파
설득에 나선다. 청 즉 중국이 조선 망조의
원인 임을 개화파가 확인하게 한다. 그들
눈에는 일본이 망하려고 하는 조선을 구해
주려고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아마 그들이 일본
의 야욕을 간파 했을 때는 한참 후였을 것이다.
1870년 대 이후의 일본과 조선 개화파의 관계
를 있는 그 대로 묘사 하면 마치 일본이 조선을
좋은 나라로 만들어 주려는 정책을 쓰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이것은 일본우파의 사주를 받은 간첩들의 좋은
먹걸이가 되고 있다.
2023.01.10 11:41
이우연은 자신의 입으로 일본 극우 단체의 지원(항공료 호텔등)을 받았다니 나쁘군요. 이우연등 극히 일부를 제외한 한국의 우파가 현금 일본의 이득을 위한 극우 일본 우파의 지시(간첩)를 받고 일본의 자금으로 운영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위에 기재된 동영상의 앵커가 여러가지로 말썽이 많은 손석희 이니 여러분들께서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좌우 대립, 이념문제 (친일, 반일, 친공 반공) 에 대해 토론 하는것은 여기서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https://www.cbck.org/Broadcast12/View/5Og?page=1
지난번의 계속으로 김용삼 기자라는 분의 강의중 하나인데 이분도 일본 극우파의 자금 도움을 받아 프로그람을 만드는 것인지요? 지난편의 제글에 첨부 해주신 비데오에는 이우연(낙성대 경제 연구소), 이영훈(전 서울대 교수) 등 이름이 있던데(일본의 이득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김용삼 기자도 여기에 속합니까?
어쨋든 위의 비데오에 어떻게 일본은 피 한방울 안흘리고 조선을 합병 할수 있었나 하는 이야기인데, 결국 막대한 돈으로 황실, 각료, 사대부 등을 매수하고, 고종과 순종은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했다는 자료들을 제출합니다. 또 국민의 대다수인 상민과, 천민 계급들은 차별없는 대접을 받게됨을 기쁘게 생각 했을것이라는 추측도 있읍니다. 고종과 순종은 일본 황실과 동급 이상의 대우를 받고 예우(순종은 일본 육군대장)받습니다. 여러가지로 어려운 화제를 모든 자료를 보여 주며 설명합니다. 최광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