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3일에는 중일전쟁 승전 70주년 기념일 열병식이 천안문 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박근혜대통령 께서도 시진핑의 초대를 받아드려서 첨석 한다고 한다.
중국은 대일 전쟁을 1,2차로 나누는 데 청일전쟁을 제1차, 2차대전 때의 전쟁을 제2차 중일 전쟁이라고 한다.
일본은 청일전쟁 승리 후에, 조선을 청의 보호 막으로 부 터 끌어 내는 데 성공하나 러시아의 방해에 부H 치게 된다.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의 침략을 막아 볼려는 민비를 시해 하고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열강의 승인 하에 조선을 식민지 화하는 데 성공한다. 임진왜란 때 부터의 오랜 숙원인 중국 점령을 목표로
1931년에 만주사변을 일으킨다. 그 다음해에 푸이 황제를 왕으로 하는 허수아비 나라 만주국을 세움으로 써 사실상 만주를 점령한다.
당시 중국의 장개석이 주도하는 국민당 정부는 전국에 활거하는 군벌(warlord)들과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주의세력과의 싸움으로 전국이 내전에 휩싸여 있었다.
일본의 침략이 시작되자 중국내의 여론은 안에서 서로 싸우지 말고 힘을 합처서 일본과 싸워야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으나 장개석은 공산주의자 소탕 부터 해야한다고 고집한다. 그러다가 1936년에 시안에서 반대파 장군들(Chang and Yang)에게 잡혀 감금 당하게 되고 공산주의자들과 싸우지 않고 서로 협력하여 일본의 침략에 대처 하겠다고 약속하고 살아 난다. 1937년 7월7일 일본군과 중국군이 북경교외 마르코 폴로 다리에서 충돌함으로 써 제2차 중일 전쟁이 시작된다. 이후 다시 국공합작을 선언하나 이들의 갈등은 전쟁중 계속 되었다고 한다.
부패하고 억압적인 장개석의 국민당에 비해서 농민들에게 친절하고 유리한 정책을 주장하는 공산당을 대중들이 선호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군은 예상보다 강한 중국군의 저항으로 답보 상태의 전쟁을 계속 하던중 전 쟁 말기에 쏘련군이 개입함으로 써 종말을 맞이한다. 일본은 당시 중국을 대표하는 국민당(장개석)에게 항복한다.
쏘련은 일본군이 버리고 간 무기등 군수 품을 국민당 정부 에게 줄것을 열강에 약속하고 민주 개입을 허락 받았으나, 이를 묵살하고 모택통에게 모두 건녀 준다. 이는 일본항복후 1949년 까지 계속된 국민당과 공산당과의 전쟁에서 모택통에게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만주에 주둔하고 있던 관동군은 세계 제일의 육군으로 알려져 있었다고 하니 그 전리품 또한 막대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후 공산당의 중국 대륙 평정은 일본과 한국의 운명에 커더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중국은 쏘련에 과학기술 원조 를 약속 받고 만약 김일성이 불리 해지면 중공군이 개입할것을 쏘련에게 약속한다. 그후에 쏘련은 김일성에게 남침을 허락 함으로 써 6.25 사변이 발발하게 된다. 미국은 장개석이 패배하고 중국이 공산화 되자 일본을 전쟁의 대가를 치루도록 처벌하는 정책에서 일본을 중국에 대적 할만한 강국으로 만드 는 정책으로 전환 하게 된다. 그리하여 일본은 패전국임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자금과 기술 원조를 받게 되고 기적 같이 세계 제2의 경제 강국으로 짧은 시간에 성장하게 된다. 이는 지금 까지 계속되고 있는 미국의 태평양 지역 에서의 중국을 견제하는 세력균형정책의 일환이다.
중국 근대사를 간단 명료하게 설명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중국의 승전 기념일같은 큰 명절에 시진핑 중국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옆에 북한 김정은이 아닌 대한민국 박근혜 대통령이 동석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역사의 격세 지감을 느끼며 박근혜 정부의
외교 가닥을 보는듯하여 마음이 뿌듯합니다. 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