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17 04:06
내 식의 귀향 수필 * 박완서친정 쪽은 휴전선 이북이고, 시댁 쪽은 대대로 서울에서도 사대문 안을 벗어나서 살아본 적이 없다는 걸 은근히 으스대는 서울 토박이라 명절이 돼도 돌아갈 곳이 마땅치 않다. 금년엔 좀 덜했지만 추석 때마다 전국의 도로란 도로가 엄청나게 정체하는 광경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돌아갈 곳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마음으로부터 그렇게 생각했고, 아이들한테까지 그것으로 생색을 내곤 했다. 마치 집 없는 거지가 남의 집 불타는 걸 고소하게 구경하면서 제 자식들에게 "너희들은 집이 없어 불날 걱정 안 해도 좋으니 얼마나 좋으냐. 다 애비 덕인 줄 알아라" 했다는 옛날이야기 속의 거지 아범처럼 말이다. 마당에서 한때 하늘을 뒤덮을 듯이 무성하던 나무들이 작은 바람에도 우수수 잎을 떨어뜨리고 있다. 흙에서 난 것들이 그 근원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건 아무도 못 말린다. 사람도 설령 나고 자란 데가 흙을 밟을 수 있는 시골이 아니라 해도 추석이 되면 조상의 묘나 집안 내의 연로한 어른들을 찾아뵙고 눈도장이든 몸 도장이든 찍고 와야 사람 사는 도리를 다한 것처럼 편안해진다. 이제 많이 살아 친·인척 간에 제일 연장자가 됐으니 가만히 앉아서 자식들이나 손자들을 맞는 입장이 됐다고 해도, 도리를 못다 한 것 같은 아쉬움이 어찌 없겠는가. 아니, 그건 도리가 아니라 그리움일 것이다. 저 지는 잎들이 어찌 섭리만으로 저리도 황홀하고 표표하게 몸을 날릴 수 있겠는가. 이 세상에 섬길 어른이 없어졌다는 건 이승에서 가장 처량해진 나이이다. 만추(晩秋)처럼. 돌아갈 고향이 없는 쓸쓸함, 내 정수리를 지그시 눌러줄 웃어른이 없다는 허전함 때문이었을까. 예년에는 한 번 가던 추석 성묘를 올해는 두 번 다녀왔다. 한 번은 벌초를 겸해 대가족을 이끌고 다녀왔고, 며칠 있다 왠지 혼자 가고 싶었지만 차 없이 갈 수 없는 곳이라 운전자만 데리고 갔다. 남편과 아들이 잠들어 있는 천주교 공원묘지이다. |
2009.10.17 04:19
2009.10.17 05:05
여기서 박완서 선생의 글을 대하니, 놀랍고 반갑습니다.
역시 좋은글은 많은사람의 공감을 얻는다는 진리를 깨닫습니다.
이글 좀 저의 여고 사이트로 퍼가도 될가요, 운영자선배님?
가장 존경받는 동문으로 저희동네 인기짱이시라서요~ 캄사!
(서울대 동문이시기도 하지요)
내 나이에 6자가 들어 있을 때까지만 해도 촌철살인의 언어를
꿈꿨지만 요즈음 들어 나도 모르게 어질고 따뜻하고 위안이
되는 글을 소망하게 되었다. 아마도 삶을 무사히 다해간다는
안도감-나잇값 때문일 것이다.
- 박완서 -
2009.10.17 05:29
북녁을 떠나온 사람들이나 동녁을 떠나온 우리들이나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긴 마찬가지이다.
다만 우리들은 고향에 가고프면 언제나 갈수 있는것이
달라 조금은 위안이 된다.
그래도 부모님이 없는 고향이란 점점 우리들에게서
멀어지는듯한 감정이 들어 슬퍼지는것도 사실이다.
평소에 좋아하는 작가 박완서의 담담하고도 솔직 담백한
이수필이 마음에 닿아옵니다. 규정
2009.10.17 05:51
김명순 님, 본인것은 언제나 퍼가셔도 됩니다.
본인이 webpage를 꾸민것밖에는 없고, 글은 본인것이 아니죠.
이분이 서울대 동문이시군요. 그러니 서울의대 website에서 꾸어 온것도 봐 주시겠군요.
이 글은 이미 website world에, 아주 단순한 webpage로 "을씨년스럽게" 돌고있는것을
본인이 좋아서 모셔다가 옷치장을 해 입힌것입니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이제 한결 좋게 보입니다.
아마 원 저자도 우리가 이렇게 돌려가면서 읽는것을 괜찮게 생각하시겠죠.
2009.10.17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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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저자는 한마디도 않했지만, "옛 시절, 향수, 고향,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본인도 모르게 잔잔한 호숫가의 가벼운 파도처럼 불러 일으키는 글입니다.
바다건너 멀리 떠나와 헤매며 늘어가는 사람에게 어딘가 마음 깊히 닫는데가 있읍니다.
역시 전문가의 글 솜씨가 나타나는군요.
특별난 문학적 기교, 말재주도 보이는것 같지 않게 그냥 그대로 맘속을 털어놓은것 처럼 쓴 글인데
그런대로 감명를 주는 글입니다. 아니면 우리와 같은 나이 또래 사람의 글이여서 그런지...
Yes, this isn't just her story.
If not already ours, is it going to be our story as well ?
Wonderful essay.
I like to read more stories like this.
우리는 물론, 누구나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조용한 노년의 감정"이 아래 구절에 잘 보이지요.
"내 주름살의 깊은 골짜기로 신산함 대신 우수가 흐르고,
달라지고 퇴락한 사물들을 잔인하게 들어내던 광채가 사라지면서
사물들과 부드럽게 화해하는 시간,
나도 내 인생의 허무와 다소곳이 화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