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6 08:28
https://youtu.be/NgFHI7Cx-M4?si=4RVBWNR1QpZphN70
늙으면 친구가 없어진다. 정약용
2024.03.06 09:09
2024.03.06 16:46
https://m.blog.naver.com/kkwmmk/221279850340
정약용 집안 계보
"정약용의 장손이자, 정역연의 큰아들인 정대림(1807-1895)은... 선릉 참봉을 지냈다."
혹시 어머님의 스승이 정대림이 아닐지?
2024.03.07 02:28
그건 불가능합니다. 어머니의 생평연도는 1899-1993년입니다. 95세에 돌아가셨지요.
아마 장손은 아니었겠고, 그 아래에 손자중 한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항상 어머니만 칭찬을 들었고, 한시를 지을 때 어머니 시를 보고 많이 감탄하셨고,
이 정도라면 이름있는 고서에 실을 만 하다고 칭찬하셨다고 합니다.
아, 어머니는 우리가문에 시집오셔서 고생만 하지 마시고, 하고 싶었던 신학문을 배우셔서
여성활동을 하셨어야 할 분이라고 믿습니다.
2024.03.07 09:25
https://youtu.be/XQmrY3U2R_Q?si=peErrF4pem-qEbbH
쇼펜하우어: 나이들 수록 혼자 행복한 이유
2024.03.08 08:05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3735
아주버니여, 나를 살려주시오. 아주버니여, 나를 불쌍히 여기시오. 나를 돕지는 못할망정 어찌 차마 나에게 그러십니까. 자산(玆山)은 아들이 있으나 나는 아들이 없습니다. 나야 비록 아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청상과부인 며느리는 아들이 없으니, 청상의 애절한 슬픔에 예가 무슨 소용이겠소. 예에는 없다 하더라도 나는 그를 데려오겠소.”(叔兮活我. 叔兮矜我. 雖不助我, 胡寧忍我. 玆山有子, 我則無子. 我雖有子, 孀婦無子. 情之絶悲, 禮於何有. 禮雖亡矣, 我則取之.)
형수의 편지를 받은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은 “천 마디 만 마디 말이 원망하는 듯 간절한 듯 우는 듯 호소하는 듯하여 읽자니 눈물이 흘러내려 답변할 말이 없었다”라고 썼다. 다산의 유배지 강진으로 편지를 보낸 이는 자산(玆山) 정약전(1758~1816)의 부인 풍산 김씨다. 무슨 일일까.
아! 정약용의 손자분이 나의 어머니의 한문선생님이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그 이야기를 들었지만, 지금같으면 그 선생님의 함자를 받았을텐데...
그 당시 외가 가세가 번성하였고, 외조부님이 장안에서 제일 가는 한학자를 초청하여, 어머니 오라버니 (두살 위), ,어머니 조카딸 (한살 아래) 그리고 어머니 이렇게 세분이 배우셨는데,
그 오라버니와 질녀는 공부를 잘못해서 항상 선생님으로부터 혼이 났고, 어머니만 칭찬을 받아서 그 오라버니가 사람 없을 때 어머니를 못살게 굴었다고 합니다.
한문글을 읊을 때, 우리말로 토를 붙이지요. 그런데 조선사람들은 토를 쓸데없이 길게 붙였기에 선생님은 항상 토를 짧게 하여라. 그게 길면 넋두리가 되느니라하셨답니다.
내가 예를 들지요. 승상사당하처심(고)하여야 되는 걸 어떤 사람은 승상사당하처심(이리오)
장안일편월(하니)를 장안일편월(하려니) 같은 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