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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가시리평설 양주동

2019.10.05 04:37

정관호*63 Views:727

NW 15-2.m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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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리 평설(評說) / 양주동(梁柱東)
 

별리(別離)를 제재(題材)로 한 시가(詩歌)가 고금(古今) 동서(東西)에 무릇 그 얼마리요마는, 이 '가시리' 일 편(一篇) , 통편(通篇) 육십 칠 자(字) 이십 수 어(數語)의 소박미(素朴美)와 함축미(含蓄美), 그 절절(切切)한 애원(哀怨), 그 면면(綿綿)한 정한(情恨), 아울러 그 귀법(句法), 그 장법(章法)을 따를 만한 노래가 어디 있느뇨?
후인(後人)은 부질없이 다변(多辯)과 기교(技巧)와 췌사(贅辭)와 기어(綺語)로써 혹은 수천 어(數千語) 혹은 기백 행(幾百行)을 늘어놓아, 각기 자기의 일편(一片)의 정한(情恨)을 서(敍)하려 하되, 하나도 이 일편(一篇)의 의취(意趣)에 서 더함이 없고, 오히려 이 수 행(數行)의 충곡(衷曲)을 못 미침이 많으니, 이 노래야말로 동서(東西) 문학(文學)의 별장(別章)의 압권(壓卷)이 아니랴!
강엄(江淹)의 '별부(別賦)'는 기려(綺麗)에 흘러 애초에 실감(實感)이 결여(缺如)하고, 셸리의 '야별(夜別)'은 재치(才致)가 앞서 드디어 심충(深衷)이 겸연(慊然)하니, 이 일편(一篇)이 족(足)히 차종(此種) 문자(文字)의 총 기조(總基調), 총 원류(總原流)가 된다 할지라, 뉘라서 별(別)을 서(敍)하되 다시 지리(支離)한 언사(言辭)와 분운(紛紜)한 장절(章節)로서 감히 이 일편(一篇)의 초(貂)를 속(續)하료?

 
​가시리 가시리잇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수구(首句)는 두연(斗然)히 붓을 일으켜 원사(怨辭)로 직핍(直逼)하였다.
"가시리 가시리이꼬, 임은 정작 가시리이꼬. 이 나를 버려두고 임은 기어이 가시리이꼬." 기구(起句)의 문득 돌올(突兀)함이 일조(一條)의 급류(急流)를 연상(聯想)하게 한다. 그러나 그 돌올(突兀) 급박(急迫)한 속에 또 얼마나 표현(表現) 이전(以前)의 기나긴 사연(事緣)이 생략(省略)되어 있느뇨?
​처음 가신단 말씀을 들었을 때엔 그것이 오히려 농담(弄談)인 양 혹시 나를 울려 보려는 짐짓으로만 생각하였더니, 급기야(及其也) 그것이 참인 줄을 알자, 또 얼마나 임께 기나긴 말씀을 하소연하였던고, 그러나, 그것도 지금엔 모두 다 쓸데없는 말, 정작 님이 떠나시는 마당에 다시 무슨 경황(景況)으로 어젯날의 기나긴 사연(事緣)을 되풀이 할꼬. 일체(一切)의 장황(張皇)한 사설(辭說)은 지금엔 모두 췌사(贅辭)가 아니랴!
급박(急迫)한 감정(感情)과 얼크러진 심서(心緖=)는, 그러매로 일체의 군소리와 일체의 잔 생각을 거부(拒否)하고, 다짜고짜로 원사(怨辭)로 돌진(突進)할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원사(怨辭)는 원사이면서 가의(歌意)는 스스로 애소(哀訴)와 함축(含蓄)을 가졌으니, '가시리 가시리잇고'는 혹(或) 아직도 의아(疑訝)하는 사(辭), 혹 아직도 단념(斷念)ㅎ지 못하는 사(辭)로 일양(一樣) 문자리(文字裏)에 수 종(數種)의 정취(情趣)가 아울러 은현(隱見)됨을 면밀(綿密)히 음미(吟味)하라.
모종(某種)의 화학적(化學的) 물질(物質)의 액(液)으로 쓴 문자(文字)는 지면(紙面)을 불에 쬘 때 문득 다른 문자로 화(化)하는 법이 있다 한다. 이 노래의 수연(首聯)은 바로 이 비밀(秘密)을 감춘 것이니, 묘처(妙處)는 저 '가시리' 석 자의 반복(反覆)과 '리잇고'의 유원(悠遠) 처절(悽絶)한 운율적(韻律的) 정조에 있는 것이 아닐까.

 
​​날러는 엇디 살라하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2연(聯)은 승(承)이다. 대개(大蓋) 간절(懇切)한 생각과 지극(至極)한 정념(情念)은 스스로 절연(截然)한 일절(一節)로써 완전히 끝나지 못하는 것이니, 이른바 낭후(浪後)에 파문(波紋)이 있고, 격동(激動)은 여진(餘震)을 짝함이 그것이다. 전절(前節)의 애원(哀怨)이 본연(本聯)에서 다시 첨가적(添加的)으로 부연(敷衍)됨은 정사(情思)의 곡진(曲盡)함과 행문(行文)의 주도(周到)를 위함일새, 비(譬)ㅎ건댄 단애(斷崖)가 두기(斗起)하되 또한 여세(餘勢)가 있고, 장폭(長瀑)이 내려지되 스스로 심홍(深泓)을 이룸과 같다.
"임은 가시면 가는 곳마다 혹 위안(慰安)도 있고 혹 행락(行樂)도 있으련만, 이 나는 임 곧 없으면 죽은 몸이라, 대관절 나는 어찌 살라하고 차마 버리고 가시리이꼬." 서정(抒情)의 형식(形式)은 전연(前聯)의 여세(餘勢)를 빌었으나, 가의(歌意)는 점층(漸層)의 극(極)에 달(達)하여, 급업(岌嶪)한 속에 스스로 하나의 단락(段落)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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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사와 두어리마나난
선하면 아니 올셰라
 

​​문득 제3연의 일전(一轉)을 보라! 어떻게 삽상(颯爽)한 전환(轉換)이며, 얼마나 경이적(驚異的)인 타개(打開)인가.
행문(行文)이 임리(淋漓)하여 거의 산궁(山窮)ㅎ고 수진(水盡)한 경계(境界)에 임(臨)하였더니, 착의(着意)가 일전(一轉)하매 진작 유암(柳暗)ㅎ고 화명(花明)한 또 한 시야(視野)가 전개(展開)되지 않느뇨.
"그리도 무정(無情)스레 자꾸만 떨치고 가려는 임을 낸들 억지로라도 붙잡아 둘 생각이야 없으리요마는, 만일 그리한다면 행여나 임께서 선하게 생각하시와 다시는 오지를 않을세라." 묘처(妙處)는 전(全)혀 '선하면' 석 자의 돌올(突兀)한 자세(姿勢)에 있다. 이를 일러 천래(天來)의 기어(奇語)라 할까, 의표(意表)의 착상(着想)이라 할까. 이 석 자,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개(槪)가 있어, 통편(通篇)을 영활(靈活)ㅎ게 하며, 전연(全聯)을 약동(躍動)ㅎ게 하여, 예리(銳利)한 섬광(閃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하려 한다.
대개(大蓋) 대불(大佛)의 개안(開眼)이 바로 이 석 자요, 승요(僧遙)의 점정(點睛)이 정작 이 일 어(一語)다.
​본연(本聯)은 2귀(句)의 사의(辭意)가 스스로 연결(連結)되면서, 각귀(各句)는 다시 각귀대로 독립적(獨立的)으로 묘미(妙味)를 가졌다.
"억지로 붙들기만 하면 제 아무리 거센 임이라도 뿌리치고 가지는 못하련만" 대개 이 전귀(前句)의 뜻은 임과 나를 아울러 믿음이나, 이것이 혹 지극(至極)한 사랑의 가엾은 자신(自信)일지요, 또 혹은 어리석을손 사랑하는 이의 하염없는 생각이리라.
"그렇지만은 억지로 그랬다가는 임이 혹시 선한 생각에 다시 안 올세라."
후귀(後句)는 또 얼마나 혼자의 안타까운 사정이며, 은근(慇懃)한 걱정이며, 남 모를 가엾은 델리커시이뇨.
​그러나, 다시 이 전후귀(前後句)의 허실법(虛實法)을 주의하여 볼 것이다. 전귀(前句)는 실(實)한 듯 허(虛)하고, 후귀(後句)는 허(虛)한 듯 실(實)하니, 대저(大抵) 전귀의 '잡사와 두어리마나난'은 한번 짐짓 자신(自信)을 표(表)하는 양 뽐내어 봄이로되, 속살은 벌써 뻔한 체념(諦念)을 고백(告白)한 것이니, 다만 허세(虛勢)를 장(張)할 뿐이요, 후귀 "선하면 아니올셰라."는 겉으로 겁(劫)을 발(發)하는 듯, 약음(弱音)으로 토(吐)하는 듯하면서도, 기실(其實)은 어느덧 하문(下文)에 후약(後約)의 빌미를 만들고자 함이니, 한 마디로 말하면 전귀는 금이종(擒而縱)이요, 후귀는 종이금(縱而擒)이다. 금종(擒縱)의 허실(虛實)이 교차되는 중에 어느덧 다음 연(聯)에서 후약(後約)를 머무를 토대(土臺)는 이미 완성(完成)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겉으로 잔도(棧道)를 닦는 체하고 속살론 진창(陳倉)을 건너는 한신(韓信)의 용병법(用兵法)이다.

 
​셜온님 보내압노니
가시난닷 도셔 오쇼셔
 

​본연(本聯)은 결사(結辭).
원(怨)한들 무엇하며, 소(訴)한들 무엇하며, 짐짓 반발(反撥)하고 다시 눙쳐본들 또한 무엇하랴.초연(初聯)으로부터 2,3연(聯)을 지내 온 몇몇 층절(層折)과 우회(迂廻)는 모두 이 결어(結語)를 위함이었다.
"이도 저도 못하여, 설운 님을 이제는 하는 수 없이 보내옵노니, 가시기는 가셔도 지금 가실 때 그렇게 총총히 가시는 듯, 제발 총총히 고대 다시 돌아서 오소서."
결귀(結句)의 묘(妙)는 언제나 무한(無限)한 의취(意趣), 이른바 '사진의부진(辭盡意不盡)'의 경지(境地)에 있다. 하물며 길도 떠나기 전에 먼저 돌아올 기약(期約)부터 묻는 것은 고금(古今) 별리(別離)의 통유(通有)의 정(情)임에랴.
​우리는 이 몇 행(行)을 읽어 온 끝에, 결귀(結句)의 은근한 정서(情緖)에 끌려서, 수귀(首句)의 원사(怨辭)이었음과 2연(聯)의 점층적(漸層的) 부연(敷衍), 3연의 금종(擒縱) 허실(虛實) 등 기다(幾多)의 층절(層折)을 지내 온 것을 거의 망각(忘却)할 뻔하였다.
그러나, 작자(作者)는 오히려 이를 먼저 염려(念慮)함인지, 이 결귀(結句) 중에 '가시난닷' 넉 자를 잊지 않았으니, 대개(大蓋) "가시난닷 도셔 오쇼셔."는 얼른 보면 순연(純然)한 부탁(付託)의 사(辭)이건만, 실은 가는 걸음의 너무나 총총함을 원망하는 사의(辭意)가 은연중 이에 포함되어 있으매, 이것이 또한 일자양의(一字兩意)의 묘체(妙諦)요, 허실상조(虛實相照)의 비법(秘法)인 동시에 , 원사(怨詞)는 원사(怨詞)로써 끝맺는 수미쌍관(首尾雙關)의 장법(章法)이다.그리하여, 전편(全篇)의 사의(辭意)는 스스로 환상(環狀)을 이루어 무한(無限)한 정취(情趣)를 우(寓)하나, 결어(結語)는 결어대로 '도셔 오쇼셔' 1어(一語)에 결정(結晶)되어, 읽는 이로 하여금 그 원사(怨辭)임을 잊고 오직 별리(別離)의 정서(情緖)가 전면(纏綿)함을 깨닫게 할 뿐이니, 이 노래의 작자(作者)야 말로 저 여래(如來)의 수단 설법(數段說法)을 끝으로 무소설(無所說)이라 답한 수보리(須菩提)의 대승불법(大乘佛法)의 진제(眞諦)를 영득(領得)하였다 이를 것이다.

  저자 양주동교수
Ju-Dong Yang - Wikipedia1903년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나 중동학교를 마치고 1921년 와세다대학 불문과에 입학했다. 재학 중 영문과로 전과하여 1928년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평양 숭실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본래 영문학 전공이었으나 시인이 되고 싶다는 소망 때문에 당시 유행하던 문학 동인지 활동을 하며 자연스럽게 국문학계에 발을 들였다. 카프가 등장하여 계급 문학론과 민족 문학론으로 문단이 나뉘었을 때, 염상섭과 더불어 절충론적 입장을 취했다. 1930년에 시집 '조선의 맥박'을 내놓았다.
그러나 광복후에는 그는 문인으로서보다 향가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더 큰 명성을 떨쳤다. 그에 앞서 향가를 해독, 연구한 것은 1929년 오구라 신페이의 '향가 및 이두의 연구'뿐이었는데,[1] 194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향가 25수를 해독한 '조선고가연구'를 펴냈다. 이후 김완진, 황패강, 서재극, 김동욱, 유창균 등이 향가 연구를 이어갔으나, 현재 국어 및 문학 교과서에 실린 향가 해독문의 대부분은 여전히 양주동의 것일 정도로 그의 그늘이 크다.[2][3] 1947년에는 고려 속요를 연구한 '여요전주'를 저술한 바 있다. 전해진 여요가 모두 수록되어 있으며 한 글자씩 그에 맞는 해석과 주석을 붙인 여요마스터본이다. 그만큼 내용도 많은데다가, 세로쓰기로 기술되어 있고, 온통 한자라는 점에서 읽기에는 어렵기 그지 없으나 국문학도라면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2탄으로 향가를 다룬 '사뇌가전주'[4]도 있는데, 고등학교를 무사히 마친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 보았을 작품들이 모두 들어가 있다.

  
[출처] 가시리 평설(評說) / 양주동|작성자 영하나
Kwan Ho Chung - October 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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