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25 05:27
성당시절 어느 날 이백은 詩友(시우) 최호와 더불어 황학루에서 詩會(시회)를 열기로 약속하였는데, 그 옛날 교통이 현재만큼 발달되지 못했기 때문인지 두 분이 같은 시간에 만나지 못했다. 지금 같으면 Cell Phone으로 연락해서 왜 악속시간에 오지 못하는지 힐문을 하였겠지만, 그런 걸 모르던 물 맑고 공기가 깨끗했던 그 좋은 세월인지라(Good Old Days), 먼저 온 최호가 아무리 기다려도 이백은 나타나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하였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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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鶴樓 崔顥 황학루 최호 昔人已乘黃鶴去, 此地空餘黃鶴樓. 석인이승황학거하니, 차지공여황학루를 黃鶴一去不復返, 白雲千載空悠悠. 황학일거부부반하니, 백운천재공유율 晴川歷歷漢陽樹, 芳草萋萋鸚鵡洲. 청청역력한양수요, 방초처처앵무주를. 日暮鄕關何處是, 烟波江上使人愁. 일모향관하처시오, 연파강상사인수를 |
황학루에서 성당시인 최호 옛 사람이 이미 황학을 타고 가버렸으니 이곳에 헛되이 황학루만 남았도다. 황학은 한번 가고 돌아오지 않으니, 흰 구름은 천년동안 .공연히 한가롭네. 맑은 시내는 분명하니 한양 나무숲이요, 향기로운 풀은 앵무주에 수북하도다. 날이 저묾에 고향은 어디인고? 연기 낀 강위에서 사람을 근심케 하네. |
登鳳凰臺 李白 등봉황대 이백 鳳凰臺上鳳凰遊, 鳳去臺空江自流. 봉황대상봉황유하니, 봉거대공강자류를. 吳宮花草埋幽徑, 晉國衣冠成古邱. 오궁화초매유경이요, 진국의관성고구를. 三山半落靑天外, 二水中分白鷺洲. 삼산반락청천외요, 이수중분백로주로다. 總爲浮雲能蔽日, 長安不見使人愁. 총위부운능폐일하니, 장안불견사인수를. |
봉황대에 오르다 성당시선 이백 봉황대위에 봉황이 놀더니, 봉황이 가고 대는 비어 강은 스스로 흘러. 오궁의 화초는 그윽한 길에 묻혀 있고, 진나라 의관은 옛 언덕을 만들었네. 세 산은 반쯤 떨어져 푸른 하늘밖에 있고, 두 물줄기는 백로주를 가운데로 가르네. 항상 떠있는 구름이 해를 가리니, 장안이 보이지 않아 사람을 근심케 하네. |
黃鶴樓 Youtube: Beautiful drama 鳳凰臺 鳳凰臺Youtube ; 解說(해설) 註解 |
2021.01.25 05:35
2021.01.25 08:41
이백은 많은 사람들이 아나, 최호의 황학루 시를 아는 동문들은 그리 많치 않을듯 합니다. 제가 오래 전에 지금은 바이러스의 진원지로 유명한 Wuhan(武漢) 을 가본 기억이 있고 황학루에 오른 기억이 있습니다. 그후에도 많은 보수 공사를 해서 현재는 Elevator 도 있다고 하나 걸어서 올라갔던 기억이 있고, 최호의 시, 붉은 글씨로 쓴 모택동의 글, 그밖의 황학 그림도 보았지요. 오르니 장강(양자강)이 보이는데 당시에 불과 얼마전까지 장강에 다리(차도, 철교)가 없어 북경에서 광동까지 가는 기차가 분해되어 배로 장강을 건너 다시 조립하여 운행했다고 설명을 들었습니다. 근처의 모택동 별장(소박하고 깨끗했어요), 강청이 즐기던 테니스장, 장강에서 즐겨 수영하고 흙냄새 나는 민물고기 즐겨먹던 등소평 이야기도 들었어요.
황학루 이야기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제가 안내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대충 옮김니다. 옛날 삼국시대에 이곳은 오나라 손권의 국경지방의 군사 요새이니 군인들이 머물어 자연히 밥집(술집 겸업)이 생기고, 주인이 장사 끝나면 오는 거렁뱅이 노인에게 공짜로 밥을 약 1년가까이 주었는데, 그가 어느날 고맙다고 벽에 황학 한 마리를 그려놓고 사라졌어요. 그런데 저녁에 사람들이 밥을 먹다 손벽을 치면 황학이 그림에서 나와 춤을 추고 다시 벽의 그림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와 장사가 잘되어 주인이 돈을 많이 벌었어요. 10년정도 후에 노인이 다시 찾아와 이정도면 돈을 많이 버셨으니 신세를 갚았을 거라며 하루 머물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러난 주인이 보니, 노인(신선)이 벌써 그림의 황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후였다 합니다. 그곳에 황학루를 지었는데 정말로 여러차례 보수, 허물고 다시짓기를 했다고 들었어요. 그후에 이백 최호의 약속 장소로도 사용되고. 지금은 물론 가기가 어려울 것이고, 격세지감이 있습니다.
2021.01.27 10:21
Dr. 최; 여기에 百度百科(Baidu)에서 찾은 황학루(黃鶴樓)를 싣습니다.
황학루는 호북성 무한(우한)시 장강 남안의 무창 사산의 꼭대기에 있고, 가까이는 만리 장강에 임하였고, 국가의 다섯개 A급의 여행구역이니, “강남삼대명루”중의 하나로서 자고로 “전하강산제일루” 그리고 “천하절경”의 칭호를 향유하였다. 황학루는 무한시의 상징적 건물로서 청천각(晴川閣), 고금대(古琴台)와 더불어 “무한삼대명승”이라고 병칭한다.
황학루는 삼국시대 오 황무2년(AD 223)에 짓기 시작하여서, 삼국시기에는 루가 오로지 하구성 한모통이에 멀리 바라보아서 둔영을 지키는 “군사루”였고, 진나라가 동오를 멸망한 후 삼국은 통일되었고, 이 루는 군사적가치를 동시에 잃고, 강하성지가 발전함에 따라, 점차 발전하여 관가에서 사용하는 호텔이 되었고, “놀기에는 바로 이곳!” 이라 하니 관상루가 되었고, 당대시인 최호는 <황학루>시 한수를, 이백은 <황학루송맹호연지관릉>을 남겼고,역대의 문인묵객은 이곳에 머물며 허다한 천고의 절창을 남겼기에, 황학루로 하여금 자고이래 잘 알려졌다,
황학루는 해발 61.7 meter나 되는 산마루에 앉았으니, 청대에 “동치루”로써 원형설계를 하였다.
높이는 5층이며 51 meter이고, 건축면적은 3219 m² 이니, 누 안에 72개의 기둥이 지탱하며, 외부에 60개의 휜 각이 있어 밖으로 연장되었고, 지붕은 십만개 이상의 황색유리로 덮었다.
황학루 밖에 황학조형은 구리로 하여서, 놀라운 모습의 보탑, 패방, 헌랑, 정각등이 일단의 보조건축이며, 주루(主樓)의 장식은 장려를 더 한다. 주루 주위는 백운각, 상보탑, 비랑, 산문등 건축으로 둘려있다.
이는 사산아래 무한장강대교와 서로 비추며, 누를 올라 멀리 바라보면, 무한 삼진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 주인공 최호는 이백, 두보와 더불어, 성당시기에 이름이 높았던 시인중 한 사람이었다.
이 두분의 시가 대결을 이루어 후세인으로하여금 흥미진진하게 읽고 감상케 한다.
해설자의 글 또한 흥미롭다.